198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1. 개요
198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련/기사련 연합과 자유민주당의 연립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사회민주당은 요하네스 라우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으나 당내 분열과 녹색당과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주요 쟁점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의 환경 문제, 경제 정책, 사회 복지 정책 등이었다. 선거 결과, 기민련/기사련 연합이 제1당을 유지했지만 의석수가 감소했고, 사회민주당도 의석이 줄었으며, 자유민주당과 녹색당은 의석을 늘리거나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 국가 | 독일 |
|---|---|
| 선거 유형 | 의회 |
| 이전 선거 | 1983년 서독 총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1983년 |
| 차기 선거 | 1990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
| 차기 선거 연도 | 1990년 |
| 선거일 | 1987년 1월 25일 |
| 선출 의석 | 연방의회 전체 497석 |
| 과반 의석 | 249석 |
| 등록 유권자 | 45,327,982명 |
| 투표율 | 84.3% ( 4.8%p) |
| 후보 | 헬무트 콜 |
|---|---|
| 정당 | 기민련/기사련 |
| 이전 선거 결과 | 48.8%, 244석 |
| 의석수 | 223 |
| 의석 변동 | 21 |
| 득표수 | 16,761,572 |
| 득표율 | 44.3% |
| 득표율 변동 | 4.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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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 요하네스 라우 |
|---|---|
| 정당 | 독일 사회민주당 |
| 이전 선거 결과 | 38.2%, 193석 |
| 의석수 | 186석 |
| 의석 변동 | 7 |
| 득표수 | 14,025,763 |
| 득표율 | 37.0% |
| 득표율 변동 | 1.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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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 마르틴 방에만 |
|---|---|
| 정당 | 자유민주당 |
| 이전 선거 결과 | 6.9%, 34석 |
| 의석수 | 46석 |
| 의석 변동 | 12 |
| 득표수 | 3,440,911 |
| 득표율 | 9.1% |
| 득표율 변동 | 2.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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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 페트라 켈리 |
|---|---|
| 정당 | 동맹 90/녹색당 |
| 이전 선거 결과 | 5.6%, 27석 |
| 의석수 | 42석 |
| 의석 변동 | 15 |
| 득표수 | 3,126,256 |
| 득표율 | 8.3% |
| 득표율 변동 | 2.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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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이전 정부 | 제2차 헬무트 콜 내각 |
|---|---|
| 선거 이전 정당 | 기민련/기사련-자유민주당 |
| 선거 이후 정부 | 제3차 헬무트 콜 내각 |
| 선거 이후 정당 | 기민련/기사련-자유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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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독 -
이 장벽을 허무시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7년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에게 베를린 장벽 철거와 동유럽 자유화를 촉구한 "이 장벽을 허무시오" 연설은 발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냉전 시대의 상징으로 재평가되며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
1987년 독일 -
이 장벽을 허무시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7년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에게 베를린 장벽 철거와 동유럽 자유화를 촉구한 "이 장벽을 허무시오" 연설은 발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냉전 시대의 상징으로 재평가되며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
1987년 선거 -
1987년 뉴질랜드 총선
1987년 뉴질랜드 총선은 로저노믹스에 대한 반발과 핵무기 금지 정책 지지 속에 노동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며 승리하고 국민당은 40석을 얻었으며, 노동당과 국민당만이 하원 의석을 차지한 가장 최근 선거로, 선거구 재분포로 총 의석 수는 97석으로 증가하였다. -
1987년 선거 -
1987년 영국 총선
1987년 영국 총선은 1987년 6월 11일에 치러졌으며, 보수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여 마거릿 대처가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2. 선거 배경
198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환경 문제와 주요 정당들의 내부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배경 속에서 치러졌다.
2.1. 정치적 상황
사회민주당은 요하네스 라우 당시 부대표이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은 내부 분열과 녹색당과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녹색당 또한 정부 참여 여부를 두고 분열되어 있어, 이들이 어떻게 정부를 구성할지도 불분명했다.
이 선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환경 문제였다.
2.2. 주요 쟁점
198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환경 문제였다. 사회민주당은 요하네스 라우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으나, 내부 분열과 녹색당과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녹색당 또한 정부 참여 여부를 두고 분열되어 있었다.
3. 선거 제도
서독 연방의회의 선거 제도는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용 제도이다. 소선거구 248석으로 구성된다.
전체 의석은 제2투표(정당에 대한 투표)의 득표에 따라 비례대표제로 배분된다. 다만, 소수 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 전국 득표율 5% 이상을 얻거나, 제1투표(후보자에 대한 투표, 최다 득표자가 당선)에서 3명 이상의 당선자를 낸 정당에게만 의석을 배분한다(5% 3인 조항).
선거구 의석수가 비례대표 의석수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연방의회 정수는 496석이지만, 초과 의석 때문에 변동될 수 있다. (표결권이 없는 서베를린 선출 의원 22석 제외)
4. 선거 결과
1987년 1월 25일에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84.3%였다. 총 유권자 수는 45,327,982명이었고, 이 중 38,225,294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유효 투표 수는 37,867,319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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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정당별 득표 및 의석 현황은 하위 섹션 "정당별 득표 및 의석"에 상세히 나와있다.
4.1. 정당별 득표 및 의석
198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기민련/기사련 연합은 34.5%의 득표율로 174석을, 기사련은 9.8%의 득표율로 49석을 획득하여 총 223석을 차지하며 제1당 지위를 유지했다. 사민당은 37.0%의 득표율로 186석을 얻었으나, 이전 선거보다 의석이 줄었다. 자민당은 9.1%의 득표율로 46석을 얻어 의석을 늘렸다. 녹색당은 8.3%의 득표율로 42석을 얻어 원내에 진입했다.
4.2. 주별 결과
5. 통일 이후 변화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1990년 동독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구 동독 지역에 의석이 할당되어 연방의회 의원 수가 조정되었다. 1990년 동독 총선은 크라이스 단위로 결과가 발표되었고, 새롭게 구성된 주는 크라이스를 합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가능했다. 각 주의 의석수는 해당 주를 구성하는 크라이스들의 결과를 합산하여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연방의회는 총 662석으로 늘어났으며, 각 정당별 의석수는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 정당 | 의석수 |
|---|---|
| 기민련/기사련 연합 | 297석 |
| 사민당 | 226석 |
| 자민당 | 57석 |
| 동맹 90/녹색당 | 51석 |
| 민사당(PDS) | 23석 |
| 독일 사회 연합(DSU) | 8석 |
| 연합 좌파(VL) | 1석 |
구 동독 지역에 할당된 정당별 의석수는 다음과 같다.
한편, 통일 이전인 1990년 6월 8일에 서베를린의 비투표 대표 22명은 정식 투표 의원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