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3
1. 개요
KV3는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무덤으로, 왕족의 매장을 위해 건설되었다. 묘의 구조는 왕비의 계곡에 있는 묘들과 유사하며, 입구를 지나 복도, 방, 그리고 아치형 천장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 내부의 장식은 람세스 3세와 왕자를 묘사한 벽화가 남아 있으며, 과거에는 더 많은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KV3는 고대부터 외부에 노출되었으며, 1912년 해리 버튼에 의해 발굴되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 예배당으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소유자 | 람세스 3세의 아들 (이름 불명) |
|---|---|
| 위치 | 왕가의 계곡 (이스트 밸리) |
| 발견 시기 | 고대에 개방됨 |
|---|---|
| 발굴자 | 에드워드 에어턴 (1904년~1906년) 해리 버튼 (1912년) |
| 장식 | 람세스 3세를 따르는 왕자와 여러 신들 |
| 구조 | 직선축 |
| 이전 무덤 | KV2 |
| 다음 무덤 | KV4 |
-
람세스 3세 -
KV11
KV11은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188m 길이의 무덤으로, 다양한 종교적 내용을 담은 벽화와 석관을 특징으로 하며, 1730년대에 존재가 언급되었고, 현재 독일, 이집트 공동 조사단이 내부 조사 및 보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1912년 발굴 -
네페르티티 흉상
네페르티티 흉상은 기원전 14세기에 제작된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의 흉상으로, 1912년 아마르나에서 발견되어 현재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계적인 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1912년 발굴 -
브란덴부르크 돌
브란덴부르크 돌은 1912년 오하이오강에서 발견된 입자암 석조 유물로, 중세 웨일스어 비문 주장이 있었으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으며, 진위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유물이다. -
기원전 12세기 건축 -
KV2
람세스 4세를 위해 건설된 KV2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 위치하며 직선 축 구조를 가지고 있고 고대부터 외부에 노출되어 방문객들의 낙서가 많으며 초기 유럽인들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학자들에 의해 탐사 및 조사되었다. -
기원전 12세기 건축 -
KV6
KV6는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으로 람세스 9세를 위해 건설되었으며, 독특하고 화려한 벽화 장식과 고대 로마인과 콥트인의 낙서가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상세
KV3 묘는 왕가의 계곡 입구 근처 주요 경로에 위치한다. 이 묘의 설계는 왕비의 계곡에 있는 다른 묘들과 유사하다.
묘의 입구를 지나면 내부는 거의 더 깊어지지 않는 구조이며, 여러 복도와 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는 공사가 중단되어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장식은 일부 복도에서만 발견되며, 과거에는 더 많은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이 묘가 기독교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던 증거가 남아있다. 1912년에 고고학자 해리 버튼에 의해 제대로 발굴되었다.
2.1. 구조
왕가의 계곡 입구 근처 큰길가에 있다. KV3의 설계는 여왕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의 설계와 매우 유사하며, 그 규모는 왕족을 매장하기 위한 노력을 반영한다.
무덤 입구를 지나면 거의 더 내려가지 않고 완만한 깊이를 이루는데, 이는 람세스 3세가 아들들을 위해 지은 다른 무덤들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입구에서 두 개의 복도(A와 B로 표시)가 이어지며, 두 번째 복도(B) 끝 부분 근처 양쪽으로 방이 나 있다. 이 중 남쪽 방(Bb)은 완성되었으나, 북쪽 방(Ba)은 공사가 시작된 직후 무덤 전체가 버려지면서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복도 B 끝에는 네 개의 기둥이 있는 더 큰 방(F)이 있다. 이 방의 양쪽 측면에도 작은 방이 하나씩 연결된다. 북쪽 측면실(Fa)은 완공되었지만, 남쪽 측면실(Fb)은 무덤 공사가 중단되면서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큰 방(F)을 지나 복도 축을 따라가면 세 개의 방(G, H, I)이 더 나타난다. G와 H는 궁륭(아치형 천장)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 두 방 중 하나를 묘실로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장식은 복도 B의 벽화가 유일하다. 이 벽화는 복도 전체와 끝 부분 측면실 입구까지 이어지며, 이름을 알 수 없는 왕자가 람세스 3세를 따르고, 그 뒤로 여러 신과 여신이 시중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과거에는 더 많은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40년대 카를 리하르트 렙시우스의 탐사 기록에 따르면, 아치형 방에 채색된 흔적과 첫 번째 복도에 카르투슈(왕 이름 표기)와 람세스 3세의 그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이 무덤이 기독교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