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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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톨릭신문은 1927년 창간된 대한민국의 천주교 관련 신문이다. 조선남방 천주공교 청년회의 기관지인 천주교회보로 시작하여, 가톨릭신보, 가톨릭시보를 거쳐 현재의 제호로 변경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사장으로 재임했으며, 90여 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역사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해외 성지순례 사업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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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방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설립하여 라디오와 TV 방송을 운영하며, 전국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cpbc+라는 OTT 서비스도 제공한다.
가톨릭신문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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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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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종교 신문(천주교) |
소유주 | 천주교 대구대교구 |
창간자 | 최정복, 윤창두, 이효상, 서정섭, 최재복 |
창간일 | 1927년 4월 1일 |
언어 | 한국어 |
본사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 |
웹사이트 | 가톨릭신문 |
2. 역사
가톨릭신문은 1927년 4월 1일 창간된 이래 한국 천주교회와 함께 성장하며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1927년 '조선남방 천주공교 청년회' 기관지인 천주교회보로 시작하여, 1933년 전국주교회의 결의에 따라 휴간하였다가 1949년 복간되었다. 이후 제호와 판형 변경, 발행 주기 변화, 사옥 이전 등 여러 변화를 거쳤다.
1964년 김수환 신부(추기경)가 사장으로 부임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식을 심층 보도하는 등 교회 내외 소식을 전하는 데 힘썼다. 1972년에는 김지하의 시 '경칩'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가톨릭신문은 제호 변경, 칼라 지면 발행, 미주 지사 개설 등 외형적 성장을 이루었다. 1990년대에는 주식회사로 법인 명의를 변경하고, 양한모 기념 한국가톨릭학술상 제정, 디지털 신문 창간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발전을 거듭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가톨릭신문사투어 설립, 서울 왕십리사옥 축복식, 수원지사 재개소, 창간 80주년 기념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수원교구판 발행, 해외 가톨릭 기관과의 MOU 체결, 편집자문위원회 발족, 가톨릭e신문 창간 등 한국 천주교회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0년대와 2020년대 들어서도 가톨릭신문은 중국, 홍콩 등 여러 기관과 MOU를 맺고, 역사전시관을 여는 등, 교회의 발전과 현대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2. 1. 창간과 발전 (1927~1959)
1927년 4월 1일, '조선남방 천주공교 청년회'의 기관지로 천주교회보가 창간되었다. 초대 사장은 장약슬 신부였다. 1931년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는 '천주교회보'를 대구교구 기관지로 인준하였고, 같은 해 8월 1일 천주교회보사가 발족되었다.
그러나 1933년 4월 2일, 모든 출판물을 서울에서 발간하기로 한 전국주교회의 결의에 따라 자진 휴간하였다.
1949년 4월 1일, 대구교구 청년회는 '천주교회보'를 복간하고, 사시(社是)를 '의견교환'에서 '조국성화'로 변경하였다. 같은 해 8월 8일에는 정기간행물 발행 허가(허가번호 158호)를 받았다. 1951년 5월 1일, 대구교구는 '천주교회보'의 운영권을 인수하였다.
1953년 3월 7일, 제호를 '가톨릭신보'로 변경하였다.

1954년 1월 15일에는 제호를 다시 '가톨릭시보'로 변경하였다.

1959년 10월 11일, 판형을 타블로이드판에서 현재의 신문판으로 확대하였다.
2. 2. 격변과 성장 (1960~1999)
- 1960년 1월 3일: 격주간에서 주간으로 발행 방식을 변경하였다.
- 1961년 12월 3일: 매일신문사로 사옥을 이전하였다.(대구시 남일동 138번지)
- 1964년 6월 1일: 김수환 신부(추기경)가 제12대 사장으로 부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식을 심층 보도하였다.
- 1972년 3월 19일: 제808호 4면에 게재한 신춘수상 ‘경칩’(김지하 作) 필화사건이 발생하였다.
- 1980년 4월 1일: 제호를 '가톨릭신문'으로 변경하였다.
- 1984년 1월 1일: 최초로 칼라 지면을 발행하였다.
- 1984년 9월 1일: 미주지사를 개설하고(미국 뉴욕), 미주판을 창간하였다.(9월 23일)
- 1993년 3월 1일:「주식회사 가톨릭신문사」로 법인 명의를 변경 등록하였다.
- 1997년 6월 20일: 양한모 기념 한국가톨릭학술상을 제정하였다.
- 1998년 4월 5일: 제호를 순한글로 변경하고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하였다. 영문 표기를 The Catholic Shinmun에서 The Catholic Times로 변경하였다.
- 1998년 5월 15일: 디지털 가톨릭신문「Catholic Times」를 창간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http://www.catholictimes.org)
2. 3. 현대화와 도약 (2000~현재)
- 2005년 9월 1일: '가톨릭신문사투어'를 설립하였다.
- 2005년 11월 10일: 서울 왕십리사옥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 2007년 3월 28일: 수원지사를 재개소하였다(수원 1대리구청 내).
- 2007년 4월 1일: 창간 80주년을 맞이하였다(80주년 기념 특별호 80면 발행). 창간 80주년 기념 ‘신자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설문조사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 2007년 4월 29일: 창간 80주년 기념 '희망나눔자선음악회'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하였다.
- 2007년 9월 5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가톨릭신문 창간80주년 기념호'를 봉정하였다.
- 2007년 9월 19일: 가톨릭신문-군종교구 '군 복음화를 위한 협약서' 조인식을 가졌다.
- 2007년 10월 11일: 수원교구와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약정 조인하였다.
- 2007년 10월 28일: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 2015년 11월 20일: 중국 신더셔(信德社)와 MOU를 체결하였다.
- 2015년 12월 11일: 편집자문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2016년 3월 18일: 아시아가톨릭뉴스(UCAN)와 MOU를 체결하였다.
- 2016년 4월 1일: 가톨릭e신문 창간 및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 2018년 1월 11일: 홍콩교구 성신연구소와 MOU를 체결하였다.
- 2018년 10월 18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MOU를 체결하였다.
- 2018년 12월 26일: 가톨릭신문 역사전시관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 2019년 1월 23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와 MOU를 체결하였다.
- 2020년 7월 1일: 올리베따노 베네딕도 수도회와 '수도원 스테이' MOU를 체결하였다.
3. 제호 변천
가톨릭신문은 1927년 천주교회보라는 제호로 창간되었다. 이후 1953년 가톨릭신보, 1954년 가톨릭시보를 거쳐 1980년부터 현재의 제호로 발행되고 있다.
3. 1. 역대 제호
제호 | 기간 |
---|---|
천주교회보 | 1927년 ~ 1953년 |
가톨릭신보 | 1953년 |
가톨릭시보 | 1954년 ~ 1980년 |
가톨릭신문 | 1980년 ~ 현재 |
4. 사시(社是)
소식보도(消息報道), 보조일치(步調一致), 조국성화(祖國聖化)
5. 역대 지도부
가톨릭신문은 여러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발전해 왔다.
초창기 편집위원으로는 최정복(요셉), 윤창두(요셉), 이효상(아길노), 서정섭(스테파노), 최재복(요한)이 1927년 4월 1일부터 1930년 4월까지 활동했다. 초기 편집부는 김구정(1930.1.5~1930.7.27), 이효상(1930.7.28~1931.7.31)이 이끌었으며, 이후 최정복, 이효상, 김주석이 1931년 8월 1일부터 1932년 10월 1일까지 편집대표를 맡았다. 최정복은 1932년 10월 2일부터 1933년 4월 1일까지 단독으로 편집대표를 역임했다.
1949년 4월 1일부터 1960년 9월 3일까지 윤광선이 편집국장으로 재직했으며, 이후 강달수가 1964년 6월 22일까지 편집국장을 맡았다. 유재홍은 1964년 6월 23일부터 1969년 9월 11일까지 편집부장으로 활동했고, 박석돈은 1972년 3월 15일부터 1974년 3월 10일까지 편집부장 서리를 역임했다.
김성일(모세) 신부는 2002년 9월 6일부터 2003년 8월 29일까지 편집위원으로, 김문상(디오니시오) 신부는 2012년 8월 24일부터 2013년 8월 29일까지 부주간으로 활동했다.
장병일은 2014년 10월 21일부터 2016년 11월 1일까지 편집부국장을 역임했다. 최홍국(2000.3.1~2000.7.31), 김춘곤(2002.8.1~2006.8.20), 마승열(2010.9.8~2013.5.14), 박영호(2013.5.15~2014.10.20)는 편집국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박태봉은 1999년 4월 15일부터 2000년 2월 28일까지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5. 1. 역대 사주
임기 | 이름 | 세례명 | 직책 | 재임 기간 |
---|---|---|---|---|
초대 | 안세화 | 플로리앙 드망즈 | 주교 | 1927년 4월 1일 ~ 1938년 2월 9일 |
제2대 | 최덕홍 | 요한 | 주교 | 1949년 4월 8일 ~ 1954년 12월 14일 |
제3대 | 서정길 | 요한 | 대주교 | 1955년 9월 15일 ~ 1986년 7월 4일 |
제4대 | 이문희 | 바울로 | 대주교 | 1986년 7월 5일 ~ 2007년 4월 29일 |
제5대 | 최영수 | 요한 | 대주교 | 2007년 4월 30일 ~ 2009년 8월 17일 |
제6대 | 조환길 | 타대오 | 대주교 | 2009년 8월 18일 ~ 현재 |
5. 2. 역대 사장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
1 | 장약슬(요셉) 신부 | 1927.4.1~1931.4.30 |
2 | 백학로(르네) 신부 | 1931.5.1~1932.7.6 |
3 | 권유량(바오로) 신부 | 1932.7.7~1933.4.1 |
4 | 최정복(요셉) | 1949.4.1~1951.4.30 |
5 | 최민순(요한) 신부 | 1951.5.6~1956.5.31 |
6 | 임화길(안드레아) 신부 | 1956.6.1~1959.6.19 |
7 | 서기호(루디) 신부 | 1959.6.20~1961.7.31 |
8 | 장병보(베드로) 신부 | 1961.8.1~1962.1.31 |
9 | 신상조(스테파노) 신부 | 1962.2.1~1962.4.30 |
10 | 김영호(엘키올) 신부 | 1962.5.1~1962.6.30 |
11 | 신현옥(치릴로) 신부 | 1962.7.1~1964.5.31 |
12 |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 1964.6.1~1966.4.30 |
13 | 박도식(도미니코) 신부 | 1966.5.1~1967.2.6 |
14 | 김영호(엘키올) 신부 | 1967.2.7~1978.5.27 |
15 | 전달출(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1978.6.5~1992.3.15 |
16 | 최현철(파비아노) 신부 | 1993.3.1~1995.7.3 |
17 | 최영수(요한) 대주교 | 1995.7.4~1997.2.27 |
18 | 최홍길(레오) 신부 | 1997.2.28~1999.12.2 |
19 | 이용길(요한) 신부 | 1999.12.3~2005.8.25 |
20 | 이창영(바오로) 신부 | 2005.8.26~2009.9.3 |
21 | 이성도(안드레아) 신부 | 2009.9.4~2011.8.25 |
22 | 황용식(타대오) 신부 | 2011.8.26~2014.8.28 |
23 | 이기수(비오) 신부 | 2014.8.29~2020.1.17 |
24 | 김문상(디오니시오) 신부 | 2020.1.18~현재 |
5. 3. 역대 주간
대수 | 이름 | 직함 | 재임 기간 |
---|---|---|---|
1 | 박도식(도미니코) | 주간 | 1967.2.7~1967.4.30 |
2 | 박병원(필립보) | 주간 | 1967.5.1~1969.8.4 |
3 | 김경환 (토마스) | 주간 | 1969.8.5~1974.2.27 |
4 | 정재완(니콜라오) | 주간 | 1974.2.28~1977.7.4 |
5 | 전달출(토마스 아퀴나스) | 주간 | 1977.7.5~1978.6.4 |
6 | 이창배(안드레아) | 주간 | 1987.9.25~1992.3.15 |
7 | 최현철(파비아노) | 주간 | 1992.3.16~1993.2.28 |
8 | 이창영(바오로) | 주간 | 2005.3.15~2005.8.25 |
9 | 이상재(가스톨) | 주간 | 2008.9.5~2010.2.4 |
10 | 김충귀(베드로) | 주간 | 2010.9.4~2010.10.19 |
11 | 이기수(비오) | 주간 | 2011.8.26~2014.8.28 |
12 | 윤지종(미카엘) | 주간 | 2015.1.30~2016.8.15 |
13 | 이영탁(스테파노) | 주간 | 2016.8.16~2019.8.22 |
14 | 김경훈(프란치스코) | 주간 | 2020.8.1~현재 |
5. 4. 역대 편집국장
역대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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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선 (1949년 4월 1일 ~ 1960년 9월 3일) |
강달수 (1960년 9월 4일 ~ 1964년 6월 22일) |
유재두 (1974년 3월 11일 ~ 1984년 8월 31일) |
박석돈 (1984년 9월 1일 ~ 1986년 2월 28일) |
박태봉 (1986년 3월 1일 ~ 1992년 11월 30일, 1995년 3월 1일 ~ 1997년 4월 6일) |
고국상 (1992년 12월 1일 ~ 1995년 2월 28일) |
이윤자 (1997년 4월 7일 ~ 1999년 4월 14일) |
최홍국 (2000년 8월 1일 ~ 2002년 7월 31일) |
김춘곤 (2006년 8월 21일 ~ 2007년 7월 31일) |
전대섭 (2007년 8월 1일 ~ 2010년 9월 7일) |
장병일 (2016년 11월 2일 ~ 2022년 12월) |
박영호 (2023년 1월 1일 ~ 현재) |
6. 김수환 추기경과 가톨릭신문
1964년 6월부터 1966년 5월까지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신문사(가톨릭시보사) 제12대 사장을 지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식을 신속하고 심층적으로 번역, 보도하는 데 힘썼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 축사에서 "가톨릭신문사에서 일했던 시간은 평생 사제 생활 중 가장 투철한 사명감과 기쁨으로 투신한 시기였다"라고 회고했다. 또한 "재직 시절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정을 다해 일했었다"라며 "정말 하루 24시간 중 밥 먹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비타민 같은 것으로 대신할 수 없을까 고민할 정도였다"라고 밝혔다.
7. 가톨릭신문 역사전시관
天主教新聞|천주교신문중국어 역사전시관은 90여 년의 가톨릭신문 발자취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100주년을 준비하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조명하기 위한 취지에서 2019년 12월 개관하였다.
면적은 144m2이며, 역사전시관, 직원 휴게 공간, 미사 공간 등 다목적으로 사용된다.
전시 항목은 다음과 같다.
전시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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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역사 조형물, 신문, 카메라, 렌즈, 납활자, 워드프로세서, 카세트레코더, 보도증, 액자, 역대 사주·사장·주간 사진, 본사 발행 도서 |
8. 사업
가톨릭신문사는 해외성지순례(http://www.cttour.org/ 가톨릭신문투어),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료 진료, 사랑의 집 고쳐주기 사업도 진행했으나 현재는 종료되었다.
8. 1. 현재 진행 중인 사업
- 해외성지순례 (http://www.cttour.org/ 가톨릭신문투어)
-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8. 2. 종료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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