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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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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인마을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신조야가 2002년 이주하여 고려인 노동자들을 지원하면서 형성된 지역이다. 2013년 수천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게 되었고, 광주시는 고려인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마련했다. 2014년 법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되었으며, 2017년에는 "고려인마을 방문의 해"로 지정되어 관광 명소로 발전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난민을 지원했으며, 현재는 다양한 시설과 지역 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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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마을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마을 공동체 센터 (2022년)
한글 표기광주고려인마을
위치대한민국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설립 시기2002년
최초 고려인 정착2002년
법인 설립2014년
설립자신조야
웹사이트광주고려인마을 공식 웹사이트
인구약 7,000명 (고려인)
참고 자료


2. 역사

고려인 마을은 신조야라는 한 사람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여겨진다.[1][3][7] 1세대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주로 저임금, 육체 노동 분야에서 일하며, 직장 차별을 겪는다.[3] 많은 이들이 공동 농장에서 일하거나 농촌 마을에서 집을 수리한다.[1] 언어 또한 어려움의 원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할 수 없지만, 일부는 고려말 방언을 구사하는데, 이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그들을 외국인으로 식별하게 만든다.[9]

2. 1. 형성 배경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신조야는 2001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딸을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여행 비자가 만료된 후 불법 체류했지만,[3] 2003년 6월에 합법적인 거주 자격을 얻었다.[7] 신조야는 대한민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사는 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어를 하지만 우즈베크어를 구사하지 못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살 때 어려움을 겪었다.[3]

신조야는 2002년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수년 동안 공장에서 일했다. 그녀는 이 지역의 많은 고려인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이주 노동자 지원 센터를 열었다. 고려인 마을은 약 20명으로 시작되었으며, 친구와 친척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성장했다. 2013년에는 이 지역에 수천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광주시는 고려인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마련했다.[3] 이 마을은 2014년 4월에 법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되었다.[7] 신조야는 2015년에 이 마을을 위한 자선 단체를 열어 비자 문제, 노동자 권리 옹호, 통역을 지원했다.[3]

2. 2. 발전 과정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3세대 고려인인 신조야는 2001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딸을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여행 비자가 만료된 후 불법 체류했지만,[3] 2003년 6월에 합법적인 거주 자격을 얻었다.[7]

신조야는 2002년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수년 동안 공장에서 일했다. 그녀는 이 지역의 많은 고려인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이주 노동자 지원 센터를 열었다. 이 마을은 약 20명으로 시작되었으며, 친구와 친척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성장했다. 2013년에는 이 지역에 수천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광주시는 고려인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마련했다.[3] 이 마을은 2014년 4월에 법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되었다.[7] 신조야는 2015년에 이 마을을 위한 자선 단체를 열어 비자 문제, 노동자 권리 옹호, 통역을 지원했다.[3]

이후 이 지역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광주시와 협력하여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이루어졌다. 시는 2017년을 "고려인마을 방문의 해"로 지정했다.[8]

2.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고려인마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민들의 권유와 재정 지원으로, 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백 명의 난민이 지역 사회에 도착했다. 2022년 12월까지 주민들은 875명의 난민 도착을 지원했고,[1] 이 중 약 600명이 마을로 왔다.[1]

2022년 8월,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을 위한 센터가 지역에 문을 열었다. 지역 주민들과 다른 대한민국 기부자들은 한국계 우크라이나인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여 재정착하는 데 상당한 돈을 기부했으며,[10] 건물을 개조하여 난민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10] 쉼터는 입주자가 첫 월급을 받는 즉시 다른 난민들을 위해 퇴거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을 유지했다.[1] 시민 변호사와 구호 활동가들이 쉼터에서 자원 봉사를 했다.[1] 2022년 8월에는 쉼터 거주자 400명이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로 이주했다는 보고가 있었다.[10]

이 지역의 학교들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의 유입에 대비하지 못했다. 2016년경 이 지역에는 단 두 개의 학급이 있었으나, 2023년까지 8개가 더 개설될 것으로 예상되었다.[11]

2022년경, 마을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약 7,000명의 고려인이 있었다.[12] 2023년 2월에는 자금 부족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노력을 잠정 중단했다고 보고되었다.[1] 많은 한국계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의 이전 집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장기적으로 머물기를 희망한다고 전해졌다.[1][9]

3. 현황

고려인 마을은 2022년 기준 약 40개의 고려인 지원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종합 지원 센터, 유치원, 대안학교, 의료 센터, 라디오 방송국, 한국어 교육원, 박물관, 집단 농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3][8] 또한 신문을 발행하고, 2016년에는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했다.[3]

이 공동체는 광주광역시 지방 정부와 주변 사업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일부 병원에서는 의료비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1] 2010년대 초부터는 '고려인마을 특화거리'가 조성되어 100개 이상의 고려인 운영 사업체가 운영 중이며, 시 정부는 추가 주차 공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5][6]

3. 1. 시설 및 지원 현황

2022년 기준으로 고려인 마을에는 고려인 지원을 위한 약 40개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3] 여기에는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8] 유치원, 대안학교, 의료 센터, 라디오 방송국, 한국어 교육원, 박물관 등이 포함된다.[3][8] 마을은 추가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집단 농장을 운영하며, 새마을이라는 지역 신용 협동조합으로부터 농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1]

고려인 공동체는 신문도 발행한다. 라디오 방송국은 2016년에 설립되었으며, 공동체 지원 센터 3층에서 운영된다. 주간 프로그램 중 하나는 러시아 문학에 관한 것으로, 타슈켄트 국립대학교 러시아 문학 전 교수였던 블라디미르 김이 운영한다.[3]

지방 정부와 주변 사업체들은 고려인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일부 병원은 마을의 고려인에게 의료비 3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1]

2010년대 초부터 이 지역에는 2024년까지 100개 이상의 고려인 운영 사업체가 있는 거리가 생겼다. 이 거리는 "고려인마을 특화거리"로 불리며, 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 정부는 이 거리의 사업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 주차 공간을 건설할 계획이다.[5][6]

3. 2. 경제 활동

고려인 마을은 집단 농장을 운영하여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새마을 지역 신용 협동조합으로부터 농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1]

2010년대 초부터 이 지역에는 100개 이상의 고려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있는 거리가 생겼다. 이 거리는 "고려인마을 특화거리"로 불리며, 광주광역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이 거리의 사업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 주차 공간을 건설할 계획이다.[5][6]

광주광역시의 일부 병원은 마을의 고려인에게 의료비 3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1]

3. 3. 지역 사회와의 관계

고려인마을 공동체는 광주광역시 지방 정부와 주변 사업체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일부 병원들은 고려인 마을 주민들에게 의료비를 30% 할인해 주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1]

2010년대 초부터 이 지역에는 2024년까지 100개 이상의 고려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있는 거리가 생겼다. 이 거리는 "고려인마을 특화거리"로 불리며, 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시 정부는 이 거리의 사업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로 주차 공간을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5][6]

4. 과제 및 전망

고려인마을은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1세대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어려움, 직장 차별, 언어 장벽 등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난민 지원 과정에서 재정 문제와 난민 학생 교육 시설 부족 문제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려인마을은 지역 주민과 대한민국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난민 쉼터를 마련하고 장기 정착을 지원하는 등 인도주의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고려인마을은 이러한 과제를 극복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4. 1. 1세대 주민들의 어려움

1세대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육체 노동 분야에서 일하며, 직장 차별을 겪는다.[3] 많은 사람들이 공동 농장에서 일하거나 농촌 마을에서 집을 수리한다.[1] 언어 또한 어려움을 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할 수 없지만, 일부는 고려말 방언을 구사하는데, 이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그들을 외국인으로 식별하게 만든다.[9]

4. 2. 우크라이나 난민 정착 지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난민들이 고려인마을에 도착했다.[1] 2022년 12월까지, 주민들은 875명의 난민 도착을 지원했고, 이 중 약 600명이 마을에 정착했다.[1]

2022년 8월,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을 위한 센터가 문을 열었다.[10] 지역 주민들과 대한민국 기부자들은 한국계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착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기부했고,[10] 난민 쉼터를 마련했다.[10] 쉼터는 입주자가 첫 월급을 받으면 퇴거해야 한다는 조건을 유지했다.[1] 시민 변호사와 구호 활동가들이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다.[1] 2022년 8월, 쉼터 거주자 400명이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에 정착했다는 보고가 있었다.[10]

이 지역 학교들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의 유입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2016년경에는 두 개의 학급만 있었으나, 2023년까지 8개가 추가로 개설될 예정이었다.[11]

2023년 2월, 마을은 자금 부족으로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노력을 잠정 중단했다.[1] 많은 한국계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집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장기적으로 머물기를 희망한다고 알려졌다.[1][9]

참조

[1] 웹사이트 "[Weekender] Koryoin from Ukraine find new home in ancestors' land" https://www.koreaher[...] 2023-02-24
[2] 웹사이트 The long journey of Korejskij https://koreajoongan[...] 2020-10-13
[3] 웹사이트 "[SPECIAL REPORT] Koryoin feel at home in Gwangju" https://www.koreatim[...] 2022-04-01
[4] 웹사이트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고려인 동포 음식과 광주 고려인 마을" http://www.kookje.co[...] 2023-10-12
[5] 웹사이트 ""고려인마을 만세!" 고려인마을 특화거리 현판식" http://www.namdonews[...] 2024-06-14
[6] 웹사이트 ""고려인마을 우라!" 고려인마을 특화거리 현판식" https://www.mdilbo.c[...] 2024-06-14
[7] 웹사이트 고려인마을 연혁 https://www.koreanco[...] 2023-10-08
[8] 웹사이트 "'광주고려인마을 관광지도' 전국 배포에 나서" http://www.siminsori[...] 2017-02-08
[9] 웹사이트 마리우폴에 있는 집 폭격 피해 한국행… 고려인 밥심은 나물 반찬"[나를 살리는 밥심]" https://www.seoul.co[...] 2022-05-22
[10] 웹사이트 Center for Koryoin refugees opens in Gwangju https://www.koreatim[...] 2022-08-05
[11] 웹사이트 Lawmaker calls for Koryoin school in Gwangju https://www.koreatim[...] 2022-10-10
[12] 웹사이트 Visa denial frustrates Ukrainian refugees in South Korea - UCA News https://www.ucanews.[...]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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