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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서원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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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암서원은 1665년 대구부민이 구계 서침을 봉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현종 6년에 숭현사를 세워 시작되었으며, 숙종 43년에 중구 동산동으로 이건되었다. 이후 서거정, 약봉 서성, 함재 서해를 추가 배향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24년 복설되었고, 여러 차례의 중수와 이전을 거쳐 현재는 북구 연암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침, 서거정, 서성, 서해, 서사원을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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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서원 (대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구암서원 - 2014년
구암서원 - 2014년
이름구암서원숭현사 (龜岩書院崇賢祠)
영문 이름Guamseowon Confucian Academy in Daegu
국가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2
지정일1982년 3월 4일
주소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 (산격동)
시대조선시대
관리달성서씨대종회
전승지구암서원

2. 역사

구계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구암서원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구암서원은 정남향으로 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지고 있고,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1] 현재는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연 1만 5천 명이 선비문화체험을 하고 있으며 2024년 10월 말까지 수료생은 10만 명이 넘었다.[1]

서원에 들어서면 관리사인 백인당, 정문인 연비루, 동재(경례재), 서재(누학재), 강당(초현당), 내삼문(경앙문), 맨 위에 사당인 숭현사가 있다.[1]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2025년부터 매달 1회씩 야간 개장을 할 예정이다.[1] 구암서원 야경은 대구 야경 십경 중 하나이다.[1]

2. 1. 설립과 이건

구계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이다. 서침은 고려 말~조선 초 변혁기에 향촌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에 노력하였다. 대구부민이 구계 선생을 구암서원 숭현사에 봉향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1]

구계 선생이 조선 초에 달성 서씨 종손(胄孫)으로 세거지인 달성에 살았는데, 임금이 달성이 국가의 군사 요새로 필요하다고 하면서 땅을 바꾸어 주도록 명하였다. 현재의 영선시장 자리인 연신(蓮信)과 현재의 서문시장 아래 몽리토지(蒙利土地)에 대한 세금을 서씨 일문에 받게 하고, 남산고역(南山古驛)과 동산 일대의 땅을 하사하며, 두터운 상과 세록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종손(胄孫) 구계 선생은 "이 나라의 모든 것이 국왕의 땅이거늘, 국가 시책에 따라 땅을 바친다고 어찌 신(臣) 혼자만이 부귀를 바라겠습니까?"라고 쾌히 사양하고, 일가의 사사로운 은혜를 받기보다는 대구부민이 고르게 은혜를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대구 지방의 환곡이자(還穀利子)를 한 섬에 다섯 되씩 감해 주기를 청하여 임금의 윤허를 받아 실시하게 되었다. 그 뒤 대구부민이 조선 말까지 그 혜택을 입었다.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1]

구암서원은 1665년(현종 6년)에 연구산(連龜山) 서남쪽(현재 대구초등학교 서남쪽 언덕)에 숭현사(崇賢祠)를 건립하고 대구부민이 구계 서침을 봉향하였다. 이후 1717년(숙종 43년)에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229번지로 이건하고, 1718년(숙종 44년) 3월에 서거정을 추가 배향하고, 1741년(영조 17년) 2월에 약봉 서성(徐渻)을, 1757년(영조 33년) 8월에 함재 서해(徐嶰)를 추가 배향하였다.[1]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24년 유림에서 복설하고, 1943년 숭현사와 강당을 중수하였고, 숭현사를 1974년에 보수하였다. 1975년 2월 5일 건조물 경북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대구직할시 승격 후에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1동 연암공원로 17길 20번지 연암공원 내로 옮기고 2008년 8월 27일 유림에 의해 약재 서사원(徐思遠)을 추향하였다.[1]

2. 2. 문화재 지정

1975년 2월 5일 건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대구직할시 승격 후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변경되었다.

3. 건축 및 시설

조선달성 서씨 주손(胄孫)인 구계 서침은 임금이 달성을 국가 군사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땅을 요구하자, "이 나라의 모든 것이 국왕의 땅이거늘 국가 시책에 따라 땅을 바친다고 어찌 신(臣) 혼자만이 부귀를 바라겠습니까?"라며 쾌히 사양하고 대구부민이 고르게 은혜를 입기를 원했다. 그는 대구 지방의 환곡 이자를 한 섬에 다섯 되씩 감해 줄 것을 청하였고, 임금이 이를 윤허하여 대구부민은 조선 말까지 그 혜택을 입었다. 대구부민은 그 덕을 기리기 위해 구암서원을 세워 서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1]

구암서원 경내에는 관리사인 백인당, 정문인 연비루, 동재인 경례재, 서재인 누학재, 강당인 초현당, 내삼문인 경앙문, 사당인 숭현사 등이 있다.[1]

3. 1. 주요 건물

구암서원 경내에는 관리사인 백인당, 정문인 연비루, 동재인 경례재, 서재인 누학재, 강당인 초현당, 내삼문인 경앙문,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사당인 숭현사가 있다. 구암서원은 정남향으로 대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서원이다.[1]

숭현사(崇賢祠)는 선현을 높이 받들어 제사 지내는 사당으로, 1665년(현종 6년) 연구산(連龜山)에 세워졌으나 1718년(숙종 44년)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229번지로 이건되었다.[1]

3. 2. 경관

구암서원은 정남향으로 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지고 있으며,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1] 현재는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연 1만 5천 명이 선비문화체험을 하고 있으며, 2024년 10월 말까지 수료생은 10만 명이 넘었다.[1]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2025년부터 매달 1회 야간 개장을 한다.[1] 구암서원 야경은 대구 야경 십경 중 하나이다.[1]

4. 배향 인물



배향 인물 5인 가운데 대구 서씨가 4인이므로 문중서원 성격이 강하다.

5. 현대적 활용

구암서원은 정남향으로 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지고 있으며,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현재는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연간 1만 5천 명이 선비문화체험을 하고 있으며, 2024년 10월 말까지 수료생은 10만 명이 넘었다.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2025년부터 매달 1회씩 야간 개장을 할 예정이다. 구암서원 야경은 대구 야경 10경 중 하나이다.[1]

6. 기타

구암서원은 조선 초 달성 서씨 주손(胄孫) 서침이 국가 시책에 따라 땅을 바치면서 개인의 부귀 대신 대구 백성이 고르게 은혜를 입도록 환곡 이자를 감면받게 한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대구 백성들은 조선 말까지 그 혜택을 입었다.[1]

서원 경내에는 관리사 백인당, 정문 연비루, 동재 경례재, 서재 누학재, 강당 초현당, 내삼문 경앙문, 사당 숭현사 등이 있다. 구암서원은 정남향으로 대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서원 중 하나이다.[1]

현재는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연간 1만 5천 명이 선비문화체험을 하고 있으며, 2024년 10월 말까지 수료생은 10만 명이 넘었다.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2025년부터 매달 1회 야간 개장을 한다. 구암서원의 야경은 대구 야경 10경 중 하나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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