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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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거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을 시작으로 이조 참의, 대사헌, 좌찬성 등을 역임했다. 여섯 왕을 섬기며 45년간 조정에 봉사했으며, 시문과 글씨에도 능하여 《동문선》, 《필원잡기》 등의 저술을 남겼다. 또한 《경국대전》, 《동국통감》 등의 편찬에 참여하고,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사후 문충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서울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은 그의 호를 따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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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서거정 |
한자 이름 | 徐居正 |
![]() | |
직책 | 조선의 좌찬성 |
재임 | 1470년~ |
임금 | 조선 성종 |
휘 | 거정(居正) |
자 | 강중(剛中) |
호 | 사가정(四佳亭) · 정정정(亭亭亭) |
시호 | 문충(文忠) |
국적 | 조선 |
성별 | 남성 |
출생일 | 1420년 |
사망일 | 1488년 |
본관 | 대구 |
아버지 | 서미성(徐彌性) |
어머니 | 안동 권씨 |
당파 | 훈구파 |
경력 | |
경력 | 사재감직장, 집현전박사·경연사경, 홍문관부수찬, 지제교 겸 세자우정자, 부교리, 세자우필선, 성균사예, 예조참의, 예문관제학·중추부동지사, 예조참판, 행동지중추부사, 예문관대제학·성균관지사, 형조판서, 좌참찬, 우찬성,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대제학 |
학문 | |
분야 | 성리학, 천문학, 지리학, 약학, 역사학, 한문학, 법학 |
스승 | 조수(趙須), 유방선(柳方善), 최항(崔恒), 이계전(李季甸) |
훈작 | |
서훈 | 순성명량좌리공신 3등 |
주요 저작 |
2. 생애
서거정은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여섯 왕을 섬기며 45년간 조정에 봉사하였고, 신라 이래 조선 초까지의 시문과 산문 문학을 집대성한 《동문선(同文選)》과 설화집 《필원잡기(筆苑雜記)》를 남겼다. 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 통달하여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책 편찬에 참여하고,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하기도 했다.
사후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상도 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1]
2. 1. 관직 경력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을 지냈다. 이후 이조참의, 사헌부 대사헌(1478년), 의정부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를 하고 집현전 박사, 부수찬, 응교를 역임하였다.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하고,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 학자들과 문장과 시를 논하여 해동의 기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이 되고,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 대제학(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함)이 되었다. 1466년 발영시에 또 장원, 이후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등을 거쳐 1470년(성종 1) 좌찬성에 올랐다. 이듬해 좌리공신 3등으로 달성군에 봉해졌다.
2. 2. 학문 및 저술 활동
조선 세조 때 《경국대전》, 성종 때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책의 편찬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했다.[1]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1]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시화(詩話)의 백미인《동문선(同文選)》과 설화집인 《필원잡기(筆苑雜記)》 등을 남겨 신라 이래 조선 초에 이르는 시문과 산문 문학을 집성했다.[1]3.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
할아버지 | 서의 |
아버지 | 서미성 |
어머니 | 권근의 딸 권씨 |
누나 | 최항에게 출가 |
형님 | 서거광 |
형수 | 수원 백씨 |
부인 | 김여회의 딸 |
측실 | 이영근의 딸 |
서자 | 서복경(徐福慶) |
4. 평가 및 영향
서거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여섯 왕을 섬기며 45년간 조정에서 활동했다. 시문, 문장, 글씨에 능했으며, 신라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시문과 산문 문학을 집대성한 《동문선(同文選)》, 설화집 《필원잡기(筆苑雜記)》를 편찬하여 문학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 다양한 서적 편찬에 참여하고,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학문 발전에도 기여했다.
4. 1. 긍정적 평가
조선 초기 문학 및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신라 이래 조선 초까지의 시문과 산문 문학을 집대성한 《동문선(同文選)》과 설화집 《필원잡기(筆苑雜記)》를 편찬하여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 다양한 서적 편찬에 참여하고,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하여 지식 보급에도 힘썼다.4. 2. 사회적 영향
서거정은 사후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상도 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되었다.[1] 그의 호를 따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사가정역 이름을 지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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