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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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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는 동독 그라이프스발트 인근 루브민에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이다. 1965년 동독과 소련의 협약에 따라 건설이 시작되어, VVER-440/230 원자로 4기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상업 운전을 시작했으며, 동독 전력 수요의 약 10%를 담당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안전 기준 미달, 압력용기 취성화 문제 등으로 인해 안전 문제가 제기되었고, 독일 재통일 이후 1990년 1호기부터 4호기까지 가동이 중단되었다. 1991년에는 5호기 역시 폐쇄 결정되었으며, 1995년부터 폐쇄 작업이 시작되어 독일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 폐쇄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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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
원어 이름Kernkraftwerk Greifswald (독일어)
다른 이름Kernkraftwerk Lubmin (독일어)
위치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루브민, 독일, (이전 동독)
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의 여러 시설
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의 여러 시설 (2005년)
발전소 정보
상태해체
운영자Energiewerke Nord
건설 시작1967년
상업 운전 시작1974년 7월 12일
운전 종료1990년 7월 22일
원자로 정보
원자로 형태VVER
원자로 공급사Atomenergoexport, Škoda
발전 설비 정보
발전 설비 제조사/모델Škoda, Electrosila
발전 설비 해체 용량5 x 440 MW
연간 발전량10,678 GWh (1989년 기준)
전기 설비 용량 계수55.4%

2. 역사

1989년 말, VVER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들의 원자력 규제 기관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많은 새로운 안전 시스템을 설치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했다.[1] 통일 직후 동독의 모든 원자로는 폐쇄되었으며, 재가동은 더 엄격한 서독 안전 기준을 준수해야 했다.

새로운 안전 기준에 맞게 설비를 개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통일 독일 정부는 1991년 초 가동 중인 4개 유닛과 시험 중이던 5호기를 폐쇄하고, 슈텐달 원자력 발전소의 VVER-1000 2기 건설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2]

발전소에서 공급되던 지역 난방은 석유 수입으로 대체되었고, 1995년 새로운 천연가스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1~5호기 폐쇄는 1995년에 시작되었으며, 그라이프스발트는 이 과정을 거친 독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였다. 1996년 헝가리 팍스 원자력 발전소로 미사용 연료 집합체 235개를 옮기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발전소는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약 10,000명의 정규직 직원을 고용했으며, 현재 약 1,000명이 폐쇄 및 기타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2. 1. 착공

1965년 7월 14일 동독과 소련은 2000 MWe급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및 소련에서의 원자로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6][21] 발전소 부지로는 그라이프스발트 인근의 루브민이 선택되었는데, 발트해에서 냉각수를 공급받을 수 있고, 농업용지로서의 활용도가 낮으며, 인구 밀도가 낮아 사고 발생 시 피해가 적을 것이라는 점이 선정 이유였다. 반면 동독의 전력 주요 사용처인 남부 지역과 거리가 멀어 송전 손실이 발생한다는 단점도 지적되었다.[21] 1967년 부지 위치가 확정되었고, 1969년 VVER-440/230 원자로 4기가 착공했다. 동독 측 건설사는 VEB BMK Kohle und Energie였다. 원자로 4기 건설은 당시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 진행되었으나, 1970년 12월 9일부터 12월 11일까지 열린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제14차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건설 비용이 계획의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7]

1970년대 중반 동형 원자로 4기 추가 건설이 승인되어 1980년 이후 상업 운전이 계획되었다.[8] 5호기부터 8호기까지는 안전 장치가 보강된 VVER-440/213형 원자로로 변경되었다. 주 냉각 계통 다중화, 냉각수 손실 및 응축수 감소를 통한 비상 냉각 시스템 개선 등이 주요 변경 사항이었다. VVER-440/213형 원자로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과 핀란드에도 건설되었다.

그러나 소련 측의 공급 부족 및 품질 문제로 인해 신규 원자로 건설은 지연되었다.[9][10] 동독은 소련 측에 공급 지연에 대해 항의했으며, 동독 원자력부는 원자로 건설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을 통보했다.[10]

2. 2. 운영 및 지역 난방 공급

라인스베르크 원자력 발전소의 상업 가동이 시작되기 전인 1965년 7월 14일, 동독과 소련은 2000 MWe급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및 소련의 원자로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6][21] 1967년 부지 위치가 선정되었고, 1969년 VVER-440/230 원자로 4기가 착공했다. 1호기는 1974년, 2호기는 1975년, 3호기는 1978년, 4호기는 1979년에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발전소의 발전량은 동독 전체 수요의 약 10%를 충당했다.[21]

1978/1979년 폭설 사태 당시 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는 동독에서 정상 가동했던 몇 안 되는 발전소였다. 발전소 근무 인력 일부는 군용 헬리콥터를 통해 출퇴근하기도 했다. 1979년 2월 13일 동독 북부에서 최대 25m/s의 눈폭풍이 불면서 발전소로 향하는 도로와 철도가 차단되었다. 당시 발전소에 있던 야간조 직원 약 1,000명은 2월 14일 오전에 교대할 예정이었으나, 50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한 후 2월 16일이 되어서야 군용 헬리콥터를 통해 다른 직원과 교대할 수 있었다.[15]

1982년에는 지역 난방 연결이 착공했다. 1983년부터는 1호기부터 4호기까지에서 75MWt 난방 공급이 시작되었고, 그라이프스발트 지역의 14,000가구 및 산업체에 공급되었다.[21]

2. 3. 안전 문제, 독일 통일과 폐로

1호기부터 4호기까지 사용된 VVER-440/230 원자로는 1960년대에 최초로 설계되었고 1980년대 이후의 안전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다. 원자로 설계 문제 외에도 동독 원자력안전부는 1호기부터 4호기까지의 압력용기 취성화 문제를 주시하고 있었다. 국제적인 안전 기준에 맞게 원자로를 개수하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소련 측의 비협조로 인해 진행되지 못했다.[10] 1980년대에 안전 문제가 악화되면서, 감시 위원회는 1987년 5월에 1호기 가동 중단을 권유했다. 그러나 동독의 에너지 위기로 인해 사회주의통일당 정치국은 1987년 6월 30일에 발전소 현대화 작업을 연기했다. 1호기는 안전 문제를 무시하고 계속 가동되었다. 이듬해에는 압력용기 용접부의 취성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처리가 진행되었다.[10][17]

동독 정권 내에서도 향후 원자력 발전소의 방향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사회주의통일당 중앙위원회는 1989년 5월 30일에 원자로 재건축을 결의했으나, 원자력안전부는 1990년대 국제 원자력 안전 기준에 적합한 재건축이 불가능하며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자력안전부는 사회주의통일당의 결의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계획된 재건축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9]

1990년 2월 1일 슈피겔에 공개된 《시한폭탄 그라이프스발트》(Zeitbombe Greifswaldde)[16] 기사에서 그라이프스발트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최초로 공개되었다. 몇 해 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빗대 체르노빌 노르트(Tschernobyl Nord) 원자력 발전소라고 언급했지만, 체르노빌과 그라이프스발트에 사용된 원자로 종류는 서로 달랐다. 당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사건 사고 외에도 압력용기의 취성화 가능성 및 부식 문제, 주 열교환기의 너무 큰 크기로 인한 원자로 순환 문제가 기사에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차후에 발표된 GRS(Gesellschaft für Reaktorsicherheit, 원자로안전협회)의 안전 감사 보고서에서는 압력용기 부식 문제와 열교환기 크기 문제 제기에 대해 반박했다.[17]

GRS는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 1990년 초 소련과 프랑스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안전 진단을 시작했다. 당시 가동 중이었던 총 4기의 원자로에서 원자로 긴급 냉각 시스템의 다중화 부재, 주 냉각재관의 손상 탐지 부재, 격납 건물의 부재, 수분 응축 등의 일반적인 안전 장치 미비 외에도 압력용기의 취성화로 인한 긴급한 안전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1990년 2월에 2호기와 3호기를 임시로 가동 중단할 것을 추천했다.[17] 동독 정부는 이 조치를 수행했다.[18]

4호기는 1990년 초여름에 안전 진단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고, 이후 가동이 재개되지 않았다.[19] 1990년 7월 1일 동독 정부는 GRS의 안전 진단 보고서를 인용하여, 그라이프스발트 1호기부터 4호기까지를 서독의 안전 기준에 따라 개수하는 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이라고 판단하여 원전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20] 그라이프스발트 지역의 난방 공급을 위해 1호기는 1990년 12월 17일까지 가동을 계속했고, 대체 설비로 20MW급 석유 난방 설비 10기가 가동을 시작하면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었다.[21] 1995년부터는 지역 난방이 가스식으로 변경되었다.

1990년 11월 17일에는 5호기의 시험 가동이 거부되었다. 4호기까지와는 다르게 VVER-440/213형 원자로를 사용했고, 안전 설비를 추가로 도입하여 서독의 원자력 안전 기준에 적합하게 개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할 에너지 기업이 없었다.[20] 5호기와 6호기의 안전 설비 개수 비용은 로 예상되었으며, 6개월 내에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22]

1996년에는 발전소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연료봉 235개를 같은 원자로를 사용하는 헝가리의 Paks Nuclear Power Plant|퍽시 원자력 발전소영어에 수출했고, 그린피스는 이에 대해 항의했다.

독일 통일 이후 폐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1995년 6월 30일에 해체 계획이 승인되었고[20] 이 날부터 원자력 발전소가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당시 해체 비용은 약 30억유로에서 50억유로로 예상되었다.[23] 방사성 폐기물은 1998년까지 모르슬레벤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Endlager Morsleben)로 옮겨졌다.[24] 2007년까지 해체에 투입된 비용은 25억유로였다.[25] 원래 계획은 2012년까지 해체 작업을 끝내고 부지를 원상 복구하는 것이었다.[26]

2012년 4월에는 발전소 운영사 측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대부분 시설은 즉시 해체하고, 건물은 향후 50년간 유지하면서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가 진행된 후에 철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해체 작업을 불필요하게 지연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다.[27] 2013년 2월에는 주요 해체 작업이 2015년까지 완성될 것이라고 발표했다.[28] 2015년에는 50년간 유지할 예정이었던 건물도 2028년까지 철거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29]

발전소 가동 당시 고용 인원 수는 약 10,000명이었으나, 가동 중단 이후에는 발전소 해체 및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필요한 인력 약 1,000명만 고용하고 있다. 발전소 건설 당시 그라이프스발트 동부에 건설되었던 노동자 사택도 대부분 철거되었다.

1989년 말, VVER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들의 원자력 규제 기관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다고 명시된 많은 새로운 안전 시스템을 설치할 필요성을 발견했다.[1] 동독의 모든 원자로는 재통일 직후 폐쇄되었으며, 재가동은 더 엄격한 서독 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새로운 안전 기준에 맞게 설비 개선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새로운 통일 독일 정부는 1991년 초에 가동 중인 4개 유닛을 폐쇄하고, 당시 시험 중이던 5호기를 폐쇄하며, 그곳의 나머지 유닛 건설과 슈텐달 원자력 발전소의 VVER-1000 2기의 건설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2]

발전소에서 공급되던 지역 난방은 석유 수입으로 대체되었고, 1995년에는 새로운 천연가스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1~5호기 폐쇄는 1995년에 시작되었으며, 그라이프스발트는 이 과정을 거친 독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가 되었다. 1996년 헝가리 팍스 원자력 발전소로 미사용 연료 집합체 235개를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 발전소는 약 10,000명의 정규직 직원을 고용했으며, 현재 약 1,000명이 폐쇄 및 기타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2. 4. 후속 계획

발전소 해체 이후 덴마크의 외르스테드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으나, 주민 반대로 취소되고 소규모 가스 화력 발전소로 변경되었다.[30] 해체 이후 발전소 부지 일부에는 재생 에너지 기업이 입주한 산업단지가 구축되었다.[31]

3. 발전 설비

총 8기의 원자로가 계획되었으나, 실제로 가동된 것은 5호기까지였다.[32]

원자로 명칭원자로형설비용량착공일전력망 연동일상업운전 개시일가동 중단일
그라이프스발트-1 (KGR 1)VVER-440/230408MW/440MW1970년 3월 1일1973년 12월 17일1974년 7월 12일1990년 12월 18일[33]
그라이프스발트-2 (KGR 2)1970년 3월 1일1974년 12월 23일1975년 4월 16일1990년 2월 14일
그라이프스발트-3 (KGR 3)1972년 4월 1일1977년 10월 24일1978년 5월 1일1990년 2월 28일
그라이프스발트-4 (KGR 4)1972년 4월 1일1979년 9월 3일1979년 11월 1일1990년 7월 22일
그라이프스발트-5 (KGR 5)VVER-440/2131976년 12월 1일1989년 4월 24일1989년 11월 1일1989년 11월 24일
그라이프스발트-6 (KGR 6)[34]1976년 12월 1일--원자로는 완공되었으나 연료 주입이 진행되지 않음
그라이프스발트-7 (KGR 7)[35]1978년 12월 1일공사 중단됨-1990년 10월 1일(해체)
그라이프스발트-8 (KGR 8)[36]1978년 12월 1일공사 중단됨-1990년 10월 1일(해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은 볼미르슈테트 변전소와 베를린 근교 아렌스펠데 변전소로 각각 380 kV 선로를 통해서 송전되었다. 볼미르슈테트 변전소까지의 송전선로의 길이는 287.8km로 독일에서 가장 긴 송전선로였다. 발전소 냉각수는 페네슈트롬 해협에 위치해 있는 슈판도어하겐 만(Spandowerhagener Wiek)에서 취수되었고, 시간당 약 20000m3~40000m3의 온배수가 그라이프스발트 보덴으로 배수되었다.[37] 따라서 별도의 냉각탑이 건설되지 않았고, 온배수의 폐열 중 일부는 그라이프스발트 지역 난방에 사용되었다.

4. 사고

1975년 12월 7일, 그라이프스발트 1호기에서 전기 기술자가 전력 회로 연결 과정을 가르치던 중 예비 변압기 저압 회로 단락으로 화재가 발생했다.[38] 이 화재는 주 케이블 덕트에서 발생하여 전력 공급망과 주 냉각기 펌프 6기 중 5기의 제어 회로를 파괴했다.[38] 나머지 1기는 다른 원자로 회로에 연결되어 있어 1호기의 비상 냉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38] 발전소 소방대가 화재를 진압하고 빠르게 대응하여 나머지 냉각기 펌프의 전력 공급을 신속하게 복구했다.[38]

사고 후, 발전소 내 추가 방화 조치가 계획되었고 안전 중요 시설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38] 각 냉각기 전력 공급 회로는 수 주간의 공사를 거쳐 분리되었으나, 방화 조치는 사고 후 약 11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고 1977년에는 수처리 시설에서 또 다른 화재가 발생했다.[38] 1975년 사고는 1989년이 되어서야 TV 방송과 슈피겔을 통해 공개되었다.[38] 이 사고는 소련을 통해 사고 발생 몇 시간 후 IAEA에 보고되었으며, INES 기준 3단계로 분류될 수 있었다.[38] 1990년 이후 VVER-440 원자로 시뮬레이터의 표준 사고 시나리오에 포함되었다.

1989년 11월 24일에는 냉각수 펌프 6기 중 3기를 테스트하기 위해 정지시켰는데, 네 번째 펌프가 고장 나면서 원자로 제어를 상실했다.[5] 이로 인해 연료봉 10개가 손상되었고 원자로는 용융 직전까지 갔다.[5] 이 사고는 릴레이 접점의 끈적거림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5]

1990년 2월, 그라이프스발트 원전 폐쇄 촉구 집회


1990년 그라이프스발트 제어실

참조

[1] 웹사이트 Safety Assessment of the Greifswald Nuclear Power Plant, Units 1 to 4 https://web.archive.[...] 2007-08-26
[2] 웹사이트 NEI Source Book: Fourth Edition (NEISB_4.1), section on "NUCLEAR ENERGY IN EASTERN EUROPE" https://web.archive.[...]
[3] 간행물 1990-07
[4] 뉴스 Last Soviet Reactor in Eastern Germany Shut https://www.nytimes.[...] 1990-12-16
[5] 웹사이트 nuclearfiles.org, ''Accidents 1980's'' https://web.archive.[...] 2009-11-25
[6] 서적 Die Kernenergiepolitik in der DDR – Zur Geschichte uneingelöster Fortschrittshoffnungen http://epub.ub.uni-m[...] Verlag Wissenschaft und Politik
[7] 서적 Die heile Welt der Diktatur: Alltag und Herrschaft in der DDR 1971–1989 https://books.google[...] Ch. Links Verlag
[8] 문서 Joachim Kahlert: ''Die Energiepolitik der DDR. Mängelverwaltung zwischen Kernkraft und Braunkohle''. Bd. 92. Bonn, 1988, Verlag Neue Gesellschaft https://epub.ub.uni-[...]
[9] 문서 Felix Christian Matthes: ''Stromwirtschaft und deutsche Einheit: Eine Fallstudie zur Transformation der Elektrizitätswirtschaft in Ost-Deutschland''
[10] 문서 Michael Hänel: ''Das Ende vor dem Ende: Zur Rolle der DDR-Energiewirtschaft beim Systemwechsel, 1980–1990'' https://haenel.files[...]
[11] 뉴스 Blackout in Deutschland – vor 40 Jahren war alles zu spät (Teil 1) https://www.achgut.c[...] Achse des Guten 2018-12-27
[12] 뉴스 Blackout in Deutschland (Teil 2) – der Tag, an dem ich die Mauer beleuchtete https://www.achgut.c[...] Achse des Guten 2018-12-28
[13] 뉴스 Stromausfall im Schneewinter 1978/79 https://www.ndr.de/f[...] Nordmagazin, NDR 2018-12-22
[14] 문서 Sechs Tage Eiszeit - Der Katastrophenwinter 1978/79 | Video | ARD Mediathek 2020-01-01
[15] 웹인용 Lebensretter: Winter 1978/79: Menschen in Not (2) https://www.ardmedia[...] 2022-02-13
[16] 웹인용 Zeitbombe Greifswald http://www.spiegel.d[...] 슈피겔 2017-01-15
[17] 문서 Gesellschaft für Reaktorsicherheit - Zweiter Zwischenbericht zur Sicherheitsbeurteilung des Kernkraftwerks Greifswald Blöcke 1-4 (WWER-440/W-230) https://www.grs.de/G[...]
[18] 웹인용 DDR-Kernkraft – Mit den Jahren spröde http://www.spiegel.d[...] 슈피겔 2017-01-15
[19] 웹인용 Da kommt nichts Gutes http://www.spiegel.d[...] 슈피겔 2017-01-15
[20] 문서 Journalisten-Akademie der Konrad-Adenauer-Stiftung e.V. – Zeitraffer – Geschichte des KKW Nord http://www.brueckerh[...]
[21] 서적 Die deutsch-deutsche Geschichte des Kernkraftwerkes Greifswald. Atomenergie zwischen Ost und West Berliner Wissenschafts-Verlag
[22] 웹인용 Strahlender Schrott http://www.zeit.de/1[...] 2017-01-15
[23] 문서 Kleine Anfrage zum Kernkraftwerk Greifswald 1994 http://www.landtag-m[...]
[24] 문서 Atommüllreport ERA Morsleben https://www.atommuel[...] 2016-08-31
[25] 문서 Entsorgungskosten
[26] 문서 Jahresbericht 2008 – Zeit für Energieverantwortung Deutsches Atomforum e.V.
[27] 웹인용 AKW Lubmin – Energiefirma plant Billig-Entsorgung für Kernkraftwerk http://www.spiegel.d[...] 2017-01-15
[28] 웹인용 Demontage des letzten Großteils in KKW Lubmin begonnen https://www.welt.de/[...] 2017-01-15
[29] 서적 Rückbau der DDR-Kernkraftwerke - Strahlende Vergangenheitsbewältigung http://www.deutschla[...] 2017-04-14
[30] 웹인용 Lubmin: Streifzug durch deutsche Energiewirtschaftsgeschichte https://www.ndr.de/n[...] 2023-05-27
[31] 뉴스 원전, '불량부품'만 문제가 아니었다 https://www.ohmynews[...] 2024-03-24
[32] 웹인용 Power Reactor Information System http://pris.iaea.org[...] IAEA 2024-03-23
[33] 웹인용 Die Strahlenschutzkommission - Beratungsergebnisse - Kernkraftwerk Greifswald (KGR), Blöcke 1 bis 6, Stillegung der Anlage mit Abbau von Anlagenteilen https://www.ssk.de/S[...]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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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웹인용 "Greifswalder Bodden und anthropogene Einflüsse" http://kein-kohlekra[...] 2024-03-23
[38] 웹인용 BMU – 2005-664, „Bewertung von Personalhandlungen bei der Brandentstehung, Branderkennung und Brandbekämpfung in deutschen Kernkraftwerken“, M. Röwekamp, M. Türschmann, Erscheinungsjahr: 2005, Seite 29 http://www.bmub.bund[...]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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