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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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트해는 길이 1,600km, 폭 193km, 평균 수심 55m의 면적 377,000km²의 기수 내해이다.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하여 겨울철에는 최대 45%가 얼어붙으며, 해빙의 정도는 기온에 따라 다르다. 발트해는 만과 같은 구조로 인해 수질 오염에 취약하며, 1970년대 오염이 최고조에 달했으나, 1974년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협약(헬싱키 협약) 체결 이후 환경 보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변국으로는 덴마크, 독일, 라트비아, 러시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에스토니아, 폴란드, 핀란드가 있으며, 발트해 국가 이사회가 설립되어 지역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발트해는 역사적으로 무역과 어업이 발달했으며, 현재도 해상 교통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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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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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위치 | 유럽 |
종류 | 바다 |
유입 하천 | 다우가바 강 케미 강 네만 강 (네무나스) 네바 강 오데르 강 비스와 강 룰레 강 나르바 강 토르네 강 |
유출 | 덴마크 해협 |
유역 면적 | 1,641,650km² |
연안 국가 |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독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스웨덴 |
비연안 국가 | 벨라루스 체코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
길이 | 1,601km |
폭 | 193km |
면적 | 377,000km² |
평균 깊이 | 55m |
최대 깊이 | 459m |
부피 | 21,700km³ |
체류 시간 | 25년 |
해안선 길이 | 8,000km |
섬 | |
주요 섬 | 아브루카 아에그나 군도 해 섬들 (올란드 제도) 보른홀름 섬 댄홀름 에르트홀메네 팔스테르 섬 페뢰 섬 페마른 섬 고틀란드 섬 하일루오토 히덴제 히우마 섬 홀뫼아르나 카사리 케셀라이드 키흐누 키미토 섬 쾨이나스투 코틀린 섬 라야살로 라우타사리 리딩외 류스테뢰 롤란드 섬 마닐라이드 모니 묀 섬 무후 푈 프랑글리 오스무사르 욀란드 섬 레플로트 루흐누 뤼겐 섬 사레마 섬 스토라 칼쇠 수오멘린나 파크리 제도 (수르파크리, 배이크파크리) 우만츠 우제돔/우즈남 섬 배드외 베름되 섬 빌산디 보름시 볼린 |
주요 도시 | |
연안 도시 | 코펜하겐 그단스크 그디니아 그라이프스발트 합살루 헬싱키 유르말라 칼리닌그라드 킬 클라이페다 코워브제크 쿠레사레 캐르들라 뤼베크 룰레오 마리에함 오울루 팔랑가 팔디스키 패르누 리가 로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 리에파야 스톡홀름 탈린 투르쿠 벤츠필스 |
2. 지리와 자연
## 측량
발트해는 길이 1,600 km, 폭 193 km, 평균 수심 55m이다. 가장 깊은 곳은 스웨덴 중앙 해역에 위치한 459m이다.[34] 면적은 약 377,000 km2, 체적은 약 21,000 km3이다. 둘레는 약 8,000km이다.[34] 발트해는 면적 기준으로 가장 큰 기수 내해 중 하나이며, 마지막 몇 차례의 빙하기 동안 빙하 침식으로 형성된 분지("\Zungenbecken")를 차지하고 있다.
하위 지역 | 면적 | 부피 | 최대 수심 | 평균 수심 | ||||
---|---|---|---|---|---|---|---|---|
km2 | sq mi | km3 | cu mi | m | ft | m | ft | |
본해(Baltic proper) | 211,069 | 81,500 | 13,045 | 3,130 | 459 | 1506 | 62.1 | 203.7 |
보트니아만(Gulf of Bothnia) | 115,516 | 44,600 | 6,389 | 1,533 | 230 | 755 | 60.2 | 197.5 |
핀란드만(Gulf of Finland) | 29,600 | 11,400 | 1,100 | 264 | 123 | 404 | 38.0 | 124.7 |
리가만(Gulf of Riga) | 16,300 | 6,300 | 424 | 102 | 60 | 197 | 26.0 | 85.3 |
벨트 해/카테가트 해협(Belt Sea/Kattegat) | 42,408 | 16,400 | 802 | 192 | 109 | 358 | 18.9 | 62.0 |
발트해 총계 | 415,266 | 160,300 | 21,721 | 5,211 | 459 | 1506 | 52.3 | 171.6 |
국제수로기구(IHO)는 발트해의 경계를 독일,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해안에 접해 있으며, 다음 경계선을 기준으로 북동쪽으로 확장된다고 정의한다.[36]
- ''리틀 벨트에서.'' 팔스회프트와 베이스네스 나케(에뢰(Ærø))를 잇는 선.
- ''그레이트 벨트에서.'' 랑엘란드 섬의 남쪽 끝인 굴스타브와 롤란드 섬의 카펠 키르케를 잇는 선.
- ''굴드보르그 해협에서.'' 플린토른-레브와 스켈비를 잇는 선.
- ''외레순 해협에서.'' 스테븐스 등대와 팔스터보 곶를 잇는 선.
## 해빙
발트해는 지구의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하여 겨울 동안 많은 지역이 얼어붙는다.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 리가 만을 포함한 최대 45%의 지역이 겨울에 얼어붙는다.[132] 보트니아만 북부에서 생기기 시작한 얼음은 1월이 되면 보트니아 만 전체로 퍼진다. 1월 말이 되면 핀란드 만과 리가만도 얼게 된다. 겨울철에 형성된 해빙은 2월 - 3월까지도 존재한다. 보트니아 만 북부의 경우 얼음의 두께가 70cm 이상이 된다.[132]



얼음이 어는 정도는 겨울철 기온에 따라 다르다.[132] 1703년 겨울에는 덴마크 해협까지 얼어붙은 적이 있는가 하면 1708년 겨울에는 보트니아 만과 리가 만 정도만 얼어붙고 다른 지역은 얼지 않기도 하였다. 2007년 겨울에는 3월이 되기 전에 모든 지역의 얼음이 녹았다.[132] 일반적으로 핀란드 만의 경우 4월 말에 얼음이 녹으며 보트니아 만의 경우 늦어도 6월 초에는 얼음이 사라진다.
장기 평균적으로 발트해는 연간 최대 얼음 덮개 면적의 약 45%가 얼음으로 덮인다. 이러한 일반적인 겨울 동안 얼음으로 덮인 지역에는 보트니아 만, 핀란드 만, 리가 만, 에스토니아 서쪽의 군도, 스톡홀름 군도, 핀란드 남서쪽의 군도 해가 포함된다. 발트해의 나머지 지역은 일반적인 겨울에는 쿠르슈 해협과 같은 폐쇄된 만과 얕은 석호를 제외하고는 얼지 않는다. 얼음은 2월이나 3월에 최대 범위에 도달하며, 보트니아 만의 북쪽 분지인 보트니아만의 북쪽 끝 지역의 일반적인 얼음 두께는 약 70cm의 부동빙이다. 두께는 남쪽으로 갈수록 감소한다.
보트니아 만의 북쪽 끝에서의 결빙은 일반적으로 11월 중순에 시작하여 1월 초에 보트니아만의 개방 수역에 도달한다. 크바르켄 남쪽 분지인 보트니아 해는 평균 2월 말에 얼어붙는다. 핀란드 만과 리가 만은 일반적으로 1월 말에 얼어붙는다. 2011년에는 2월 15일에 핀란드 만이 완전히 얼어붙었다.[39]
얼음의 범위는 겨울이 온화한지, 중간 정도인지, 심한지에 따라 달라진다. 혹독한 겨울에는 남쪽 스웨덴 주변과 심지어 덴마크 해협에도 얼음이 형성될 수 있다. 18세기 자연사가인 윌리엄 더햄(William Derham)에 따르면, 1703년과 1708년의 혹독한 겨울에는 얼음이 덴마크 해협까지 뻗어 있었다.[40]
1720년 이후 발트해는 20번 완전히 얼어붙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1987년 초로, 이는 1720년 이후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다.
겨울에는 해안선에 붙어 있는 정착빙이 먼저 발달하여 쇄빙선의 서비스 없이는 항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평탄빙, 슬러시 얼음, 팬케이크 얼음, 래프터 얼음은 보다 개방된 지역에서 형성된다.
봄에는 핀란드 만과 보트니아 만이 일반적으로 4월 말에 녹으며, 핀란드 만 동쪽 끝에서는 5월까지 일부 빙상이 지속된다. 보트니아만의 북쪽 끝에서는 일반적으로 5월 말까지 얼음이 남아 있으며, 6월 초에는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1867년 기근 년도에는 우드스케르 근처에서 7월 17일까지 얼음의 잔해가 관찰되었다.[43]
얼음 덮개는 두 종의 대형 포유류인 회색물범(''Halichoerus grypus'')과 발트해 얼룩물범(''Pusa hispida botnica'')의 주요 서식지이며, 두 종 모두 얼음 아래에서 먹이를 먹고 표면에서 번식한다.
## 환경
발트해는 만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어 수질 오염에 취약하다. 1970년 룬트홀름은 발트해 심층부에서 산소가 급격히 줄고 인이 늘어나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하였고, 1968년 환경 조사에서는 황화수소가 검출되기도 하였다.[133] 1950년대부터 환경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오염이 최고조에 달했다. 1977년부터 1993년 초까지 북해에서 유입되는 높은 염분 농도의 해수 유입이 거의 중단되었기 때문에 오염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무렵에는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는 오염 방지 대책이 진전된 반면,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에서는 오염 방지 대책이 지연되어 특히 핀란드만, 리가만, 그단스크만 등에서 수질 오염과 부영양화가 진행되었다.[124][125]


2010년 7월에 촬영된 위성 사진은 발트해에서 약 377,000 km2에 달하는 거대한 적조를 보여주었다. 적조 지역은 독일과 폴란드에서 핀란드까지 뻗어 있었다. 이 현상을 연구한 연구자들은 수십 년 동안 매년 여름 적조가 발생해 왔다고 밝혔다. 주변 농경지에서 유입되는 비료는 문제를 악화시켜 부영양화를 가중시켰다.[87] 발트해 해저의 약 100,000 km2 (총 면적의 4분의 1)는 다양한 정도의 무산소 지역이다. 더 염도가 높고 밀도가 더 높은 물은 바닥에 남아 표층수와 대기와 분리되어 해당 지역 내 산소 농도가 감소한다. 주로 박테리아가 서식하며 유기물을 분해하고 황화수소를 방출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혐기성 지역으로 인해 해저 생태계는 인접한 대서양과 다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무장 해제되어야 했고, 다량의 탄약이 발트해와 북해에 직접 투기되었다. 환경 전문가와 해양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탄약 매립장이 환경에 위협을 가하며, 이 해역 연안의 인간의 건강과 안전에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89] 기후 변화와 농업 및 임업으로 인한 수질 오염은 발트해 생태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쳐, 발트해가 탄소 흡수원에서 이산화탄소(CO2)와 메탄의 배출원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90]
이러한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 1974년에는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협약(헬싱키 협약)이 체결되었다.[126][125] 1974년, 당시 발트해 연안 7개국이 서명한 단일 협약에 따라, 하나의 바다를 둘러싼 모든 오염원이 최초로 규제 대상이 되었다. 1974년 협약은 1980년 5월 3일 발효되었다. 국제 환경 및 해양법의 정치적 변화와 발전을 고려하여, 1992년 발트해 연안국들과 유럽 공동체가 새로운 협약에 서명했다. 비준 절차를 거쳐, 협약은 2000년 1월 17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은 내수면과 해역 자체뿐만 아니라 해저까지 포함한 발트해 전역을 다룬다. 또한 육상 기반 오염을 줄이기 위해 발트해 유역 전체에 걸쳐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협약(1992)은 2000년 1월 17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의 관리 기구는 헬싱키 위원회(HELCOM 또는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위원회로도 알려져 있음)이다.[94] 현재 당사국은 덴마크, 에스토니아, 유럽 공동체, 핀란드, 독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및 스웨덴이다.
1982년에는 국제 발트해 어업 회의가 설치되어 발트해의 생물 자원 보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2005년에는 연안 국가들의 신청에 따라 국제해사기구(IMO)가 발트해를 특별취약해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발트해 어젠다 21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발트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발트해의 수질, 대기 등에 대한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있다.[134]
지구온난화에 의한 영향도 나타나, 지난 200년간 연평균 기온은 1도 정도 상승하였고 해수면 역시 20 cm 정도 상승하였다. 또한 매년 얼음이 어는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135]
또한, 발트해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쟁 때마다 양측에서 다량의 기뢰가 매설되었다. 원래라면 전쟁 종식과 함께 제거되어야 하지만, 러시아 혁명과 냉전 등의 정치적 혼란이 잇따르면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방치되어 21세기 현재에도 주변 국가들의 소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2. 1. 측량
발트해는 길이 1600 km, 폭 193 km, 평균 수심 55m이다. 가장 깊은 곳은 스웨덴 중앙 해역에 위치한 459m이다.[34] 면적은 약 377,000 km2, 체적은 약 21,000 km3이다. 둘레는 약 8000km이다.[34] 발트해는 면적 기준으로 가장 큰 기수 내해 중 하나이며, 마지막 몇 차례의 빙하기 동안 빙하 침식으로 형성된 분지("\Zungenbecken")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수로기구(IHO)는 발트 해의 경계를 독일,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해안에 접해 있으며, 다음 경계선을 기준으로 북동쪽으로 확장된다고 정의한다.[36]
- ''리틀 벨트에서.'' 팔스회프트 ()와 베이스네스 나케(에뢰(Ærø): )를 잇는 선.
- ''그레이트 벨트에서.'' 랑엘란드 섬의 남쪽 끝인 굴스타브(Gulstav)와 롤란드 섬의 카펠 키르케()를 잇는 선.
- ''굴드보르그 해협에서.'' 플린토른-레브(Flinthorne-Rev)와 스켈비()를 잇는 선.
- ''외레순 해협에서.'' 스테븐스 등대()와 팔스터보 곶()를 잇는 선.
2. 2. 해빙
발트해는 지구의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하여 겨울동안 많은 지역이 얼어붙는다.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 리가 만을 포함한 최대 45%의 지역이 겨울에 얼어붙는다.[132] 보트니아만 북부에서 생기기 시작한 얼음은 1월이 되면 보트니아 만 전체로 퍼진다. 1월 말이 되면 핀란드 만과 리가만도 얼게 된다. 겨울철에 형성된 해빙은 2월 - 3월 까지도 존재한다. 보트니아 만 북부의 경우 얼음의 두께가 70cm이상이 된다.[132]얼음이 어는 정도는 겨울철 기온에 따라 다르다.[132] 1703년 겨울에는 덴마크 해협까지 얼어붙은 적이 있는가 하면 1708년 겨울에는 보트니아 만과 리가 만 정도만 얼어붙고 다른 지역은 얼지 않기도 하였다. 2007년 겨울에는 3월이 되기 전에 모든 지역의 얼음이 녹았다.[132] 일반적으로 핀란드 만의 경우 4월 말에 얼음이 녹으며 보트니아 만의 경우 늦어도 6월 초에는 얼음이 사라진다.
장기 평균적으로 발트해는 연간 최대 얼음 덮개 면적의 약 45%가 얼음으로 덮인다. 이러한 일반적인 겨울 동안 얼음으로 덮인 지역에는 보트니아 만, 핀란드 만, 리가 만, 에스토니아 서쪽의 군도, 스톡홀름 군도, 핀란드 남서쪽의 군도 해가 포함된다. 발트해의 나머지 지역은 일반적인 겨울에는 쿠르슈 해협과 같은 폐쇄된 만과 얕은 석호를 제외하고는 얼지 않는다. 얼음은 2월이나 3월에 최대 범위에 도달하며, 보트니아 만의 북쪽 분지인 보트니아만의 북쪽 끝 지역의 일반적인 얼음 두께는 약 70cm의 부동빙이다. 두께는 남쪽으로 갈수록 감소한다.
보트니아 만의 북쪽 끝에서의 결빙은 일반적으로 11월 중순에 시작하여 1월 초에 보트니아만의 개방 수역에 도달한다. 크바르켄 남쪽 분지인 보트니아 해는 평균 2월 말에 얼어붙는다. 핀란드 만과 리가 만은 일반적으로 1월 말에 얼어붙는다. 2011년에는 2월 15일에 핀란드 만이 완전히 얼어붙었다.[39]
얼음의 범위는 겨울이 온화한지, 중간 정도인지, 심한지에 따라 달라진다. 혹독한 겨울에는 남쪽 스웨덴 주변과 심지어 덴마크 해협에도 얼음이 형성될 수 있다. 18세기 자연사가인 윌리엄 더햄(William Derham)에 따르면, 1703년과 1708년의 혹독한 겨울에는 얼음이 덴마크 해협까지 뻗어 있었다.[40]
1720년 이후 발트해는 20번 완전히 얼어붙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1987년 초로, 이는 1720년 이후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다.
겨울에는 해안선에 붙어 있는 정착빙이 먼저 발달하여 쇄빙선의 서비스 없이는 항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평탄빙, 슬러시 얼음, 팬케이크 얼음, 래프터 얼음은 보다 개방된 지역에서 형성된다.
봄에는 핀란드 만과 보트니아 만이 일반적으로 4월 말에 녹으며, 핀란드 만 동쪽 끝에서는 5월까지 일부 빙상이 지속된다. 보트니아만의 북쪽 끝에서는 일반적으로 5월 말까지 얼음이 남아 있으며, 6월 초에는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1867년 기근 년도에는 우드스케르 근처에서 7월 17일까지 얼음의 잔해가 관찰되었다.[43]
얼음 덮개는 두 종의 대형 포유류인 회색물범(''Halichoerus grypus'')과 발트해 얼룩물범(''Pusa hispida botnica'')의 주요 서식지이며, 두 종 모두 얼음 아래에서 먹이를 먹고 표면에서 번식한다.
2. 3. 환경
발트해는 만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어 수질 오염에 취약하다. 1970년 룬트홀름은 발트해 심층부에서 산소가 급격히 줄고 인이 늘어나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하였고, 1968년 환경 조사에서는 황화수소가 검출되기도 하였다.[133] 1950년대부터 환경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오염이 최고조에 달했다. 1977년부터 1993년 초까지 북해에서 유입되는 높은 염분 농도의 해수 유입이 거의 중단되었기 때문에 오염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무렵에는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는 오염 방지 대책이 진전된 반면,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에서는 오염 방지 대책이 지연되어 특히 핀란드만, 리가만, 그단스크만 등에서 수질 오염과 부영양화가 진행되었다.[124][125]2010년 7월에 촬영된 위성 사진은 발트해에서 약 377,000 km2에 달하는 거대한 적조를 보여주었다. 적조 지역은 독일과 폴란드에서 핀란드까지 뻗어 있었다. 이 현상을 연구한 연구자들은 수십 년 동안 매년 여름 적조가 발생해 왔다고 밝혔다. 주변 농경지에서 유입되는 비료는 문제를 악화시켜 부영양화를 가중시켰다.[87] 발트해 해저의 약 100,000 km2 (총 면적의 4분의 1)는 다양한 정도의 무산소 지역이다. 더 염도가 높고 밀도가 더 높은 물은 바닥에 남아 표층수와 대기와 분리되어 해당 지역 내 산소 농도가 감소한다. 주로 박테리아가 서식하며 유기물을 분해하고 황화수소를 방출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혐기성 지역으로 인해 해저 생태계는 인접한 대서양과 다릅니다. 괴테보리 대학교와 Inocean AB는 부영양화를 경험한 발트해 지역에 인공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풍력 추진 펌프를 사용하여 산소가 풍부한 표층수를 약 130m 깊이까지 펌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88]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무장 해제되어야 했고, 다량의 탄약이 발트해와 북해에 직접 투기되었다. 환경 전문가와 해양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탄약 매립장이 환경에 위협을 가하며, 이 해역 연안의 인간의 건강과 안전에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89] 기후 변화와 농업 및 임업으로 인한 수질 오염은 발트해 생태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쳐, 발트해가 탄소 흡수원에서 이산화탄소(CO2)와 메탄의 배출원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90]
이러한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 1974년에는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협약(헬싱키 협약)이 체결되었다.[126][125] 1974년, 당시 발트해 연안 7개국이 서명한 단일 협약에 따라, 하나의 바다를 둘러싼 모든 오염원이 최초로 규제 대상이 되었다. 1974년 협약은 1980년 5월 3일 발효되었다. 국제 환경 및 해양법의 정치적 변화와 발전을 고려하여, 1992년 발트해 연안국들과 유럽 공동체가 새로운 협약에 서명했다. 비준 절차를 거쳐, 협약은 2000년 1월 17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은 내수면과 해역 자체뿐만 아니라 해저까지 포함한 발트해 전역을 다룬다. 또한 육상 기반 오염을 줄이기 위해 발트해 유역 전체에 걸쳐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협약(1992)은 2000년 1월 17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의 관리 기구는 헬싱키 위원회(HELCOM 또는 발트해 해양 환경 보호 위원회로도 알려져 있음)이다.[94] 현재 당사국은 덴마크, 에스토니아, 유럽 공동체, 핀란드, 독일,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및 스웨덴이다. 비준 문서는 1994년 유럽 공동체, 독일, 라트비아, 스웨덴에 의해, 1995년 에스토니아와 핀란드에 의해, 1996년 덴마크에 의해, 1997년 리투아니아에 의해, 그리고 1999년 11월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기탁되었다.
1982년에는 국제 발트해 어업 회의가 설치되어 발트해의 생물 자원 보호를 담당하게 되었다. 2005년에는 연안 국가들의 신청에 따라 국제해사기구(IMO)가 발트해를 특별취약해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발트해 어젠다 21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발트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발트해의 수질, 대기 등에 대한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있다.[134]
지구온난화에 의한 영향도 나타나, 지난 200년간 연평균 기온은 1도 정도 상승하였고 해수면 역시 20 cm 정도 상승하였다. 또한 매년 얼음이 어는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135] 높은 신뢰도를 가진 미래 예측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기온 상승, 강우량 증가, 적설량 감소, 북부 유역의 영구 동토층 및 빙하 감소, 온화한 겨울 증가, 평균 수온 상승 및 해양 열파 증가, 열염 순환의 변화 없이 계절적 수온 약층 강화, 해수면 상승.[91] 더 많은 예측이 있지만, 이것들은 신뢰도가 낮다.[91][92]
또한, 발트해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쟁 때마다 양측에서 다량의 기뢰가 매설되었다. 원래라면 전쟁 종식과 함께 제거되어야 하지만, 러시아 혁명과 냉전 등의 정치적 혼란이 잇따르면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방치되어 21세기 현재에도 주변 국가들의 소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3. 역사
고대 로마 시기 발트해는 수에비해로 알려져 있었다. 바이킹 시기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동쪽 호수"라 불렀는데,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해"라고 부른다. 바이킹 시대 이후로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발트해를 "오스트마르"("동쪽 바다")라고 불렀으며, "동쪽 바다"는 ''헤임스크링글라''와 ''에이스트라 살트''는 ''쇠를라 사가''에 등장한다.[136]
발트해는 전통적으로 어업이 성했으며 특산물로는 호박과 함께 목재, 나무 타르, 아마, 삼, 모피 등이 취급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철과 은을 캐는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폴란드에서는 지금도 소금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특산물들은 고대 로마 시기부터 주요한 교역품이었다.[20]
초기 중세에 노르드(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은 발트해 전역에 걸쳐 무역 제국을 건설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발트해 전역의 무역로를 독점하고 있었으나 후일 웬드족과 무역로를 놓고 싸우기도 하였다. 바이킹들은 러시아의 강을 이용하여 이 지역의 특산물을 흑해까지 운반하였다.[136] 11세기 무렵부터 12세기 동안 발트해에서는 웬드족을 중심으로한 슬라브족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이들은 독일 북부를 거점으로 발트해에서 해적 활동을 벌였다.[139]
발트해 지역은 유럽 가운데 가장 늦게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으로 북방 십자군이후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137] 핀란드는 12세기 스웨덴의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지금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13세기 초 덴마크와 독일의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라 불린 이들 십자군은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으며 이후 튜턴 기사단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였다. 튜턴 기사단은 발트해 동부를 지배하였는데 이들 기사단은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옛 국가 중 하나인 노브고로드 공화국 등에서 모인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튜턴 기사단의 국가는 모자이크 국가라고도 불린다.[138] 리투아니아는 기독교로 개종한 마지막 유럽 국가였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발트해 남쪽 해안에서 동방 식민 운동이 일어났고, 독일 기사단 등 기사 수도회에 의해 발트해 남동부의 비기독교인에 대한 군사 침략과 식민이 이루어졌다. 북방 십자군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서쪽 독일에서 독일인들이 잇따라 이주하여 이 지역은 독일화되었다. 이 동방 식민으로 독일 상인들도 이 지역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한자 동맹을 결성하여 발트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13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동안 발트해는 한자 동맹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한자 동맹은 발트해를 도시간의 주요 무역로로 이용하였다. 12세기에 설립된 이 동맹은 발트해 남쪽 해안의 뤼벡을 맹주로 하여, 비스뷔와 리가, 단치히 등 많은 발트해 연안 도시가 가입했다.
한편,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덴마크 왕국이 발트해 연안 지역으로 진출하여 한때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정복왕이라고도 불리는 발데마르 2세 시대에는 홀슈타인, 메클렌부르크, 폼머른, 그리고 바다를 건너 에스토니아까지 정복하여 발트해를 한때 덴마크의 내해로 만들었다. 그러나 1223년 슈베린 백작 하인리히에 의해 발데마르 2세가 포로가 되어, 석방 조건으로 많은 해외 영토를 상실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고 1227년 북독일 제후들과 뤼벡과 싸웠지만 이것에도 패했다. 그러나 덴마크는 이후에도 발트해의 강국으로 존재했고, 마침내 신흥 한자 동맹과 충돌하게 되었다. 1340년 덴마크 왕에 발데마르 4세가 즉위하자, 에스토니아를 독일 기사단에게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지배 체제를 강화했다. 국내를 안정시키자 1361년 한자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갓트란드 섬의 비스뷔를 점령하고 한자 동맹과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쟁은 초반에는 덴마크 측이 우세했지만, 마침내 주변 국가들의 지원도 얻은 한자 측이 우세해져, 1370년 슈트랄준트 조약에서 한자의 승리가 확정되었고, 이에 따라 발트해는 한자의 제해권 하에 완전히 들어가게 되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덴마크, 스웨덴은 발트해를 두고 싸웠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스웨덴 제국은 발트해의 무역로를 독점하게 되었다.[140]
18세기가 되자 발트해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프로이센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한 러시아 제국은 발트3국을 독점하였고 유럽의 주요 국가로 부각되었다.[141]
제1차 세계대전이후 폴란드는 독일 영토인 폴란드 회랑을 영토로 편입시켜 폴란드도 발트해 인접 국가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부터 계속 독일 제국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 하였고,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자 그 요구는 더욱 강해져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한편 독일의 민간 여객선이었던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소련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기도 하였다. 이 학살로 인해 9천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일어난 해난 사고 가운데 최악의 것이다.[14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트 3국은 소련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또한 동유럽이 역시 공산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발트해는 냉전 기간 동안 양극 체제의 경계선이 되었다. 서방 측은 소련의 함대가 덴마크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냉전 체계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 12월 26일까지 지속되었다.
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 대부분의 지역이 유럽 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주뿐이다.
3. 1. 고대와 중세
고대 로마시기 발트해는 수에비해로 알려져 있었다. 바이킹시기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동쪽 호수"라 불렀는데 이로 인해 스칸다니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해"라고 부른다.발트해는 전통적으로 어업이 성했으며 특산물로는 호박과 함께 목재, 타르, 아마, 삼, 모피등이 취급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철과 은을 캐는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폴란드에서는 지금도 소금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특산물들은 고대 로마 시기부터 주요한 교역품이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발트해 남동부를 '스웨비의 바다'(Mare Suebicum)라고 불렀다.[105] 이 무렵, 이미 슐레스비히에는 교역 도시 하이타브(헤ーゼ뷰)가 건설되었고, "바랴그에서 그리스로 가는 길"이라고 불리는 발트해에서 노브고로드와 볼가 강을 거쳐 흑해로,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어지는 무역 루트가 형성되어 이미 중요한 교역 거점이 되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발트해 전역의 무역로를 독점하고 있었으나 후일 웬드족과 무역로를 놓고 싸우기도 하였다. 바이킹들은 러시아의 강을 이용하여 이 지역의 특산물을 흑해까지 운반하였다.[136] 노르드인과 덴마크인이 서쪽 북해 쪽으로 진출한 것에 비해, 스웨덴인은 동쪽 발트해 쪽으로 진출했다. 이 루트는 직접 이슬람 세계로 연결되는 것이었고, 프랑크 왕국 경유 루트를 대신하여 이 발트해 루트가 한때 스칸디나비아와 동방 세계를 연결했다.[106]
발트해 지역은 유럽 가운데 가장 늦게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으로 북방 십자군이후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137] 핀란드는 12세기 스웨덴의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지금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13세기 초 덴마크와 독일의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라 불린 이들 십자군은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으며 이후 튜턴 기사단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였다. 튜턴 기사단은 발트해 동부를 지배하였는데 이들 기사단은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옛 국가 중 하나인 노브고로드 공화국 등에서 모인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튜턴 기사단의 국가는 모자이크 국가라고도 불린다.[138]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발트해 남쪽 해안에서 동방 식민 운동이 일어났고, 독일 기사단 등 기사 수도회에 의해 발트해 남동부의 비기독교인에 대한 군사 침략과 식민이 이루어졌다. 북방 십자군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서쪽 독일에서 독일인들이 잇따라 이주하여 이 지역은 독일화되었다. 이 동방 식민으로 독일 상인들도 이 지역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한자 동맹을 결성하여 발트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12세기에 설립된 이 동맹은 발트해 남쪽 해안의 뤼벡을 맹주로 하여, 비스뷔와 리가, 단치히 등 많은 발트해 연안 도시가 가입했다. 이 무렵에는 해류의 영향으로 발트해 입구의 스코네 지방에서 매우 많은 청어가 잡혔고,[107] 이 청어는 동맹 도시들의 중요한 수출 품목이 되었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주로 북해 쪽에 주목했던 덴마크 왕국이 발트해 연안 지역으로 진출하여 한때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정복왕이라고도 불리는 발데마르 2세 시대에는 홀슈타인, 메클렌부르크, 폼머른, 그리고 바다를 건너 에스토니아까지 정복하여 발트해를 한때 덴마크의 내해로 만들었다. 그러나 1223년 슈베린 백작 하인리히에 의해 발데마르 2세가 포로가 되어, 석방 조건으로 많은 해외 영토를 상실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고 1227년 북독일 제후들과 뤼벡과 싸웠지만 이것에도 패했다. 그러나 덴마크는 이후에도 발트해의 강국으로 존재했고, 마침내 신흥 한자 동맹과 충돌하게 되었다. 1340년 덴마크 왕에 발데마르 4세가 즉위하자, 에스토니아를 독일 기사단에게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지배 체제를 강화했다. 국내를 안정시키자 1361년 한자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갓트란드 섬의 비스뷔를 점령하고 한자 동맹과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쟁은 초반에는 덴마크 측이 우세했지만, 마침내 주변 국가들의 지원도 얻은 한자 측이 우세해져, 1370년 슈트랄준트 조약에서 한자의 승리가 확정되었고, 이에 따라 발트해는 한자의 제해권 하에 완전히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을 통해 발트해 측과 북해 측 한자 도시들의 연계가 성립되었고,[108], 한자 동맹은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3. 2. 북방 십자군과 한자 동맹
고대 로마 시기 발트해는 수에비해로 알려져 있었다. 바이킹 시기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동쪽 호수"라 불렀는데,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해"라고 부른다. 바이킹 시대 이후로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발트해를 "오스트마르"("동쪽 바다")라고 불렀으며, "동쪽 바다"는 ''헤임스크링글라''와 ''에이스트라 살트''는 ''쇠를라 사가''에 등장한다.[136]발트해는 전통적으로 어업이 성했으며 특산물로는 호박과 함께 목재, 나무 타르, 아마, 삼, 모피 등이 취급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철과 은을 캐는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폴란드에서는 지금도 소금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특산물들은 고대 로마 시기부터 주요한 교역품이었다.[20]
초기 중세에 노르드(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은 발트해 전역에 걸쳐 무역 제국을 건설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발트해 전역의 무역로를 독점하고 있었으나 후일 웬드족과 무역로를 놓고 싸우기도 하였다. 바이킹들은 러시아의 강을 이용하여 이 지역의 특산물을 흑해까지 운반하였다.[136] 11세기 무렵부터 12세기 동안 발트해에서는 웬드족을 중심으로한 슬라브족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이들은 독일 북부를 거점으로 발트해에서 해적 활동을 벌였다.[139]
발트해 지역은 유럽 가운데 가장 늦게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으로 북방 십자군이후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137] 핀란드는 12세기 스웨덴의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지금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13세기 초 덴마크와 독일의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라 불린 이들 십자군은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으며 이후 튜턴 기사단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였다. 튜턴 기사단은 발트해 동부를 지배하였는데 이들 기사단은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옛 국가 중 하나인 노브고로드 공화국 등에서 모인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튜턴 기사단의 국가는 모자이크 국가라고도 불린다.[138] 리투아니아는 기독교로 개종한 마지막 유럽 국가였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발트해 남쪽 해안에서 동방 식민 운동이 일어났고, 독일 기사단 등 기사 수도회에 의해 발트해 남동부의 비기독교인에 대한 군사 침략과 식민이 이루어졌다. 북방 십자군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서쪽 독일에서 독일인들이 잇따라 이주하여 이 지역은 독일화되었다. 이 동방 식민으로 독일 상인들도 이 지역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한자 동맹을 결성하여 발트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13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동안 발트해는 한자 동맹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한자 동맹은 발트해를 도시간의 주요 무역로로 이용하였다. 12세기에 설립된 이 동맹은 발트해 남쪽 해안의 뤼벡을 맹주로 하여, 비스뷔와 리가, 단치히 등 많은 발트해 연안 도시가 가입했다.
한편,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덴마크 왕국이 발트해 연안 지역으로 진출하여 한때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정복왕이라고도 불리는 발데마르 2세 시대에는 홀슈타인, 메클렌부르크, 폼머른, 그리고 바다를 건너 에스토니아까지 정복하여 발트해를 한때 덴마크의 내해로 만들었다. 그러나 1223년 슈베린 백작 하인리히에 의해 발데마르 2세가 포로가 되어, 석방 조건으로 많은 해외 영토를 상실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고 1227년 북독일 제후들과 뤼벡과 싸웠지만 이것에도 패했다. 그러나 덴마크는 이후에도 발트해의 강국으로 존재했고, 마침내 신흥 한자 동맹과 충돌하게 되었다. 1340년 덴마크 왕에 발데마르 4세가 즉위하자, 에스토니아를 독일 기사단에게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지배 체제를 강화했다. 국내를 안정시키자 1361년 한자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갓트란드 섬의 비스뷔를 점령하고 한자 동맹과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쟁은 초반에는 덴마크 측이 우세했지만, 마침내 주변 국가들의 지원도 얻은 한자 측이 우세해져, 1370년 슈트랄준트 조약에서 한자의 승리가 확정되었고, 이에 따라 발트해는 한자의 제해권 하에 완전히 들어가게 되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덴마크, 스웨덴은 발트해를 두고 싸웠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스웨덴 제국은 발트해의 무역로를 독점하게 되었다.[140]
18세기가 되자 발트해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프로이센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한 러시아 제국은 발트3국을 독점하였고 유럽의 주요 국가로 부각되었다.[141]
제1차 세계대전이후 폴란드는 독일 영토인 폴란드 회랑을 영토로 편입시켜 폴란드도 발트해 인접 국가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부터 계속 독일 제국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 하였고,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자 그 요구는 더욱 강해져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한편 독일의 민간 여객선이었던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소련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기도 하였다. 이 학살로 인해 9천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일어난 해난 사고 가운데 최악의 것이다.[14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트 3국은 소련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또한 동유럽이 역시 공산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발트해는 냉전 기간 동안 양극 체제의 경계선이 되었다. 서방 측은 소련의 함대가 덴마크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냉전 체계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 12월 26일까지 지속되었다.
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 대부분의 지역이 유럽 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주뿐이다.
3. 3. 근세와 근대
고대 로마 시기 발트해는 수에비해로 알려져 있었으며, 바이킹 시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동쪽 호수"라 불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해"라고 부른다.발트해는 전통적으로 어업이 성했으며, 호박, 목재, 타르, 아마, 삼, 모피 등이 주요 교역품이었다.[136] 스웨덴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철과 은을 캐는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폴란드에서는 소금 광산이 운영되었다. 바이킹들은 발트해 전역의 무역로를 독점했으나, 웬드족과 무역로를 놓고 경쟁했으며, 러시아의 강을 이용하여 흑해까지 특산물을 운반하였다.[136]
발트해 지역은 북방 십자군 이후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이다.[137] 핀란드는 12세기 스웨덴의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13세기 초 덴마크와 독일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으며, 튜턴 기사단은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 노브고로드 공화국 등에서 온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138]
11세기부터 12세기 동안 슬라브족의 영향력이 증대되었고, 이들은 독일 북부를 거점으로 해적 활동을 벌였다.[139] 13세기에서 17세기에는 한자 동맹이 발트해를 주요 무역로로 이용하였다. 15세기가 되자 한자 동맹의 쇠퇴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발전된 항해 기술을 가진 네덜란드 상인들이 에레스룬드 해협을 항해하여 북해와 발트해를 직접 잇는 무역을 시작하면서 한자동맹은 타격을 입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덴마크, 스웨덴이 발트해를 두고 경쟁하였다. 스웨덴 제국이 승리하여 발트해 무역로를 독점하게 되었다.[140] 17세기에는 네덜란드 공화국이 발트해 무역을 지배했다.
18세기에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 제국은 발트3국을 독점하고 유럽의 주요 국가로 부각되었다.[141]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발트해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핀란드 만 동쪽 끝에 새로운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는 폴란드 회랑을 통해 발트해에 접근하게 되었다. 독일 제국은 영토 반환을 요구했고,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소련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여 9천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14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트 3국은 소련에 점령되었고, 동유럽은 공산 국가가 되었다. 발트해는 냉전 기간 동안 양극 체제의 경계선이 되었다. 냉전은 1991년 소련 붕괴로 종식되었다.
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여 발트해 대부분 지역이 유럽 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주뿐이다.
3. 4. 세계 대전과 냉전
고대 로마시기 발트해는 수에비해로 알려져 있었으며, 바이킹시기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동쪽 호수"라 불렀다. 스칸다니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해"라고 부른다.[136] 발트해는 전통적으로 어업이 성했으며 특산물로는 호박과 함께 목재, 타르, 아마, 삼, 모피등이 취급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철과 은을 캐는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폴란드에서는 지금도 소금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특산물들은 고대 로마 시기부터 주요한 교역품이었다.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발트해 전역의 무역로를 독점하고 있었으나 후일 웬드족과 무역로를 놓고 싸우기도 하였다. 바이킹들은 러시아의 강을 이용하여 이 지역의 특산물을 흑해까지 운반하였다.[136] 발트해 지역은 유럽 가운데 가장 늦게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으로 북방 십자군이후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137] 핀란드는 12세기 스웨덴의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지금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13세기 초 덴마크와 독일의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라 불린 이들 십자군은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으며 이후 튜턴 기사단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였다. 튜턴 기사단은 발트해 동부를 지배하였는데 이들 기사단은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옛 국가 중 하나인 노브고로드 공화국 등에서 모인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튜턴 기사단의 국가는 모자이크 국가라고도 불린다.[138] 11세기 무렵부터 12세기 동안 발트해에서는 웬드족을 중심으로한 슬라브족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이들은 독일 북부를 거점으로 발트해에서 해적 활동을 벌였다.[139]
13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동안 발트해는 한자 동맹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한자 동맹은 발트해를 도시간의 주요 무역로로 이용하였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덴마크, 스웨덴은 발트해를 두고 싸웠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스웨덴 제국은 발트해의 무역로를 독점하게 되었다.[140] 18세기가 되자 발트해에서는 러시아 제국과 프로이센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한 러시아 제국은 발트3국을 독점하였고 유럽의 주요 국가로 부각되었다.[141]
제1차 세계대전이후 폴란드는 독일 영토인 폴란드 회랑을 영토로 편입시켜 폴란드도 발트해 인접 국가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부터 계속 독일 제국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 하였고,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자 그 요구는 더욱 강해져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한편 독일의 민간 여객선이었던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소련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기도 하였다. 이 학살로 인해 9천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일어난 해난 사고 가운데 최악의 것이다.[142]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소련, 영국,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발트해에 화학 무기를 투기하여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22] 오늘날에도 어부들은 가끔 이러한 물질들을 발견한다. 헬싱키 위원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에 약 105kg의 화학 무기가 소량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는 2003년 1110kg의 화학 무기가 발견되었던 25건의 사례에 비해 감소한 수치이다.[23]
1945년 이후, 독일 인구는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지역에서 모두 추방되었고, 새로운 폴란드와 러시아 정착민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독일 인구 추방). 폴란드는 남쪽 해안 대부분을 얻었다(폴란드의 영토 확장). 소련은 옛 독일인 거주지였던 동프로이센의 일부였던 칼리닌그라드주를 얻어 발트해에 대한 또 다른 접근권을 확보했다. 발트해 동쪽 해안에 위치한 발트 3국은 소련에 합병되었다. 이후 발트해는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 기구라는 상반되는 군사 블록들을 분리시켰다. 중립국 스웨덴은 스웨덴 잠수함 사건 이후 영토 해역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개발했다.[24]
2차 세계대전 이후 발트 3국은 소련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또한 동유럽이 역시 공산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발트해는 냉전 기간 동안 양극 체제의 경계선이 되었다. 서방 측은 소련의 함대가 덴마크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냉전 체계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12월 26일까지 지속되었다.
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 대부분의 지역이 유럽 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주뿐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각각 2023년과 2024년에 나토에 가입하여 발트해가 거의 전적으로 나토 회원국들에 둘러싸이게 되었고, 일부 해설가들은 발트해를 "나토의 호수"라고 부르기도 한다.[25][26][27][28][29]
3. 5. 냉전 이후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된 후,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이 재독립하였고,[142]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연방의 외딴 지역이 되었다. 또한, 북유럽 발트해 주변 국가들에 의해 발트해 국가 이사회가 1992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24] 2004년에는 발트 3국이 모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고,[25][26][27][28][29] 러시아 발트함대의 기지인 칼리닌그라드는 NATO 가입국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되었다.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 대부분의 지역이 유럽 연합에 속하게 되었다.[25][26][27][28][29]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주뿐이다.
더욱이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 및 동부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싸고 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심화시키면서 발트해에서도 다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2014년에는 스웨덴 영해에서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목격되어 스웨덴 해군이 수색을 실시하였다. 2015년에는 핀란드 해군이 영해에서 탐지한 잠수 물체에 대해 소형 기뢰를 투하하여 경고하였다.
2022년 5월, 같은 해 2월 24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을 계기로 핀란드와 스웨덴 양국이 NATO 가입을 신청하였다. 2023년 4월 4일에는 핀란드가[118], 2024년 3월 7일에는 스웨덴이 정식으로 가입하였다.[119] 이에 따라 발트해 연안은 러시아령 레닌그라드주와 칼리닌그라드주를 제외하고 모두 NATO 가입국의 영토가 되었다.
4. 발트해 연안국
발트해에 접해 있는 국가는 덴마크, 독일, 라트비아, 러시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에스토니아, 폴란드, 핀란드이다.[57] 발트해 유역의 면적은 발트해 자체 면적의 약 4배에 달하며, 이 지역의 약 48%는 삼림으로 덮여 있다. 특히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 주변의 스웨덴과 핀란드에 삼림이 많이 분포한다.[57] 약 20%의 토지는 농업 및 목초지로 이용되며, 주로 폴란드와 발트해 본해(Baltic Proper) 주변의 독일, 덴마크, 스웨덴에 집중되어 있다.[57] 유역의 약 17%는 미개발 개방지이고, 나머지 8%는 습지이며, 습지의 대부분은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에 위치한다.[57]
발트해 유역에는 약 8,500만 명이 거주하며, 그중 1,500만 명은 해안에서 10km 이내, 2,900만 명은 해안에서 50km 이내에 거주한다.[57] 25만 명 이상의 인구 밀집 지역에는 약 2,200만 명이 거주하며, 이 중 90%는 해안 주변 10km 범위에 집중되어 있다.[57] 유역의 전부 또는 일부를 포함하는 국가 중 폴란드는 8,500만 명 중 45%를 차지하고, 러시아는 12%, 스웨덴은 10%, 다른 국가들은 각각 6% 미만을 차지한다.[57]
냉전 시대에는 동진영에 속한 소비에트 연방과 서진영에 속한 서독, 그리고 중립을 표방한 북유럽 국가들 간의 각축장이었지만, 냉전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 붕괴와 함께 지역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92년에는 연안 10개국과 아이슬란드가 가입하는 발트해 국가 이사회가 설립되었다.[123] 2005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 건설 협정을 체결하였고, 2011년 11월 8일에 가동을 시작했다.[123]
발트해의 외부 유역에 속하는 국가는 벨라루스, 체코,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이다.[57]
4. 1. 발트해에 접해 있는 국가
발트해에 접해 있는 국가는 덴마크, 독일, 라트비아, 러시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에스토니아, 폴란드, 핀란드이다.[57] 발트해 유역의 면적은 발트해 자체 면적의 약 4배에 달하며, 이 지역의 약 48%는 삼림으로 덮여 있다. 특히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 주변의 스웨덴과 핀란드에 삼림이 많이 분포한다.[57] 약 20%의 토지는 농업 및 목초지로 이용되며, 주로 폴란드와 발트해 본해(Baltic Proper) 주변의 독일, 덴마크, 스웨덴에 집중되어 있다.[57] 유역의 약 17%는 미개발 개방지이고, 나머지 8%는 습지이며, 습지의 대부분은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에 위치한다.[57]발트해 유역에는 약 8,500만 명이 거주하며, 그중 1,500만 명은 해안에서 10km 이내, 2,900만 명은 해안에서 50km 이내에 거주한다.[57] 25만 명 이상의 인구 밀집 지역에는 약 2,200만 명이 거주하며, 이 중 90%는 해안 주변 10km 범위에 집중되어 있다.[57] 유역의 전부 또는 일부를 포함하는 국가 중 폴란드는 8,500만 명 중 45%를 차지하고, 러시아는 12%, 스웨덴은 10%, 다른 국가들은 각각 6% 미만을 차지한다.[57]
냉전 시대에는 동진영에 속한 소비에트 연방과 서진영에 속한 서독, 그리고 중립을 표방한 북유럽 국가들 간의 각축장이었지만, 냉전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 붕괴와 함께 지역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92년에는 연안 10개국과 아이슬란드가 가입하는 발트해 국가 이사회가 설립되었다.[123] 2005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 건설 협정을 체결하였고, 2011년 11월 8일에 가동을 시작했다.[123]
발트해의 외부 유역에 속하는 국가는 벨라루스, 체코,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이다.[57]
4. 2. 발트해 수계에 있으나 접해 있지 않은 국가
냉전 시대에는 소비에트 연방과 서독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 간의 각축장이었으나, 냉전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1992년 연안 10개국과 아이슬란드가 참여하는 발트해 국가 이사회가 설립되었다.[123] 2005년에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 건설 협정을 체결하였고, 2011년 11월 8일에 가동을 시작했다.[123]5. 섬
발트해에는 다음과 같은 섬들이 있다.
- 올란드 제도 (핀란드, 자치)
- 군도해 (핀란드)
- 파르가스(Pargas)
- 나구(Nagu)
- 코르포(Korpo)
- 호우츠스케르(Houtskär)
- 쿠스타비(Kustavi)
- 키미토(Kimito)
- 블레킹예 군도 (스웨덴)
- 뵬른홀름 (덴마크), 크리스티안쇠(Christiansø) 포함

- 팔스터(Falster) (덴마크)
- 고틀란드(Gotland) (스웨덴)
- 하일루오토(Hailuoto) (핀란드)
- 코틀린(Kotlin) (러시아)
- 롤란드(Lolland) (덴마크)
- 크바르켄(Kvarken) 군도, 발쇠르아르나(Valsörarna) 포함 (핀란드)
- 묀(Møn) (덴마크)
- 외란드(Öland) (스웨덴)


- 베름도(Värmdön) (스웨덴)
- 우제돔(Usedom) 또는 우즈남(Uznam) (독일과 폴란드 분할)
- 서에스토니아 군도 (에스토니아):
- 히우마아(Hiiumaa)
- 무후(Muhu)
- 사레마(Saaremaa)
- 보름시(Vormsi)
- 볼린(Wolin) (폴란드)
- 젤란디아(Zealand) (덴마크)

발트해에는 17세기 당시 세계 최대의 군함 바사호(스웨덴 해군 소속 함)를 포함하여 수많은 배가 침몰해 있다.
6. 도시
발트해 연안은 매우 잘 개발된 지역이며, 대규모 도시들이 많이 존재한다. 연안 도시 중 가장 큰 도시는 인구 470만 명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이다.
'''인구 순 주요 해안 도시:'''
-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5,392,992 (광역권 6,000,000)
- 스톡홀름 (스웨덴) 962,154 (광역권 2,315,612)
- 헬싱키 (핀란드) 665,558 (광역권 1,559,558)
- 리가 (라트비아) 614,618 (광역권 1,070,000)
- 그단스크 (폴란드) 462,700 (광역권 1,041,000)
- 탈린 (에스토니아) 458,398 (광역권 542,983)
-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431,500
- 슈체친 (폴란드) 413,600 (광역권 778,000)
- 에스포 (핀란드) 306,792 (헬싱키 광역권의 일부)
- 그디니아 (폴란드) 255,600 (광역권 1,041,000)
- 킬 (독일) 247,000[58]
- 뤼베크 (독일) 216,100
- 로스토크 (독일) 212,700
- 클라이페다 (리투아니아) 194,400
- 오울루 (핀란드) 191,050
- 투르쿠 (핀란드) 180,350
'''기타 중요 항구:'''
- ''에스토니아:''
- 퍼르누 44,568
- 마르두 16,570
- 실라마에 16,567
- ''핀란드:''
- 포리 83,272
- 코트카 54,887
- 코콜라 46,809
- 나안탈리 항 18,789
- 마리에함 11,372
- 한코 9,270
- ''독일:''
- 플렌스부르크 94,000
- 슈트랄준트 58,000
- 그라이프스발트 55,000
- 비스마르 44,000
- 에커른푀르데 22,000
- 노이슈타인 인 홀슈타인 16,000
- 볼가스트 12,000
- 자스니츠 10,000
- ''라트비아:''
- 리예파야 85,000
- 벤트스필스 44,000
- ''리투아니아:''
- 팔랑가 17,000
- ''폴란드:''
- 콜로브제그 44,800
- 슈비누이시체 41,500
- 폴리체 34,284
- 블라디스와보보 15,000
- 다르워보 14,000
- ''러시아:''
- 비보르크 79,962
- 발티스크 34,000
- ''스웨덴:''
- 노르셰핑 84,000
- 예블레 75,451
- 트렐레보리 26,000
- 칼스함 19,000
- 옥셀뢰순드 11,000









7. 해상 교통망
역사적으로 덴마크 왕국은 발트해와 육지 사이의 경계인 외레순의 크론보르 성 근처 헬싱외르, 대벨트의 뉘보르, 소벨트의 가장 좁은 지점(당시 요새가 건설된 후 프레데리시아)에서 선박에 오레순 세를 징수했다. 소벨트의 가장 좁은 지점은 미델파르트 근처의 "미델파르트 순"이다.[5]
덴마크의 대벨트 다리(1997년 완공)와 스웨덴과 덴마크를 연결하는 외뢰순 다리-터널(1999년 완공) 건설은 스웨덴과 덴마크 본토(유틀란트 반도, 특히 셸란 섬) 사이에 고속도로와 철도 연결을 제공했다. 외뢰순 다리-터널의 해저 터널은 발트해로 들어오고 나가는 대형 선박의 항해를 가능하게 한다. 발트해는 러시아 석유 수출의 주요 무역로이다. 발트해 인접 국가들은 해상 탱커의 대규모 기름 유출은 느린 물 교환으로 인해 발트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발트해 주변 관광 산업은 기름 오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발트해 주변 조선소에서는 많은 선박 건조가 이루어진다. 가장 큰 조선소는 폴란드의 그단스크, 그디니아, 슈체친, 독일의 킬, 스웨덴의 칼스쿠로나와 말뫼, 핀란드의 라우마, 투르쿠, 헬싱키, 라트비아의 리가, 벤트스필스, 리에파야,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스칸드라인스, 실야 라인, 폴페리스, 바이킹 라인, 탈링크, 슈퍼패스트 페리스와 같이 발트해를 운항하는 여러 화물 및 여객 페리가 있다.
1980년대에는 이미 소 벨트 해협을 넘어 유틀란트 반도와 퓔른 섬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었지만, 1997년 6월 1일에는 대 벨트 해협을 넘어 퓔른 섬과 셸란 섬을 잇는 그레이트 벨트 링이 개통되었고, 2000년 7월 1일에는 외레순 해협을 넘어 셸란 섬의 코펜하겐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말뫼를 잇는 외레순 다리가 개통되어, 여기에 발트해를 넘어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직접 잇는 철도·도로 루트가 완성되었다.
해상 풍력 발전의 개발을 통해 발트해는 지역 국가의 주요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에 체결된 마리엔보르 선언에 따르면 모든 EU 발트해 연안 국가는 2030년까지 19.6기가와트의 해상 풍력을 운영할 계획을 발표했다.[93]
발트해는 내해이기 때문에 해황이 온화하고, 맞은편 해안까지의 거리도 짧아 예로부터 해상 교통망이 발달하였다. 현재는 이동 시간이 짧은 비행기 이용이 많지만, 비용이 저렴하거나 항공로가 없거나, 휴양 등의 이유로 선박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역선의 입항도 많을 뿐 아니라, 발트해 주변 각국의 수도 및 주요 도시에서는 매일 실리아라인(Silja Line)이나 탈링크(Tallink) 등 해운회사가 운항하는 페리 등 대형 선박이 출항하여 인근 국가의 여러 도시를 잇는 중요한 교통 수단이 되고 있다. 발트해 크루즈를 하는 투어도 많다.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높은 복지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세금이 높고, 특히 술이나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도 고세율이다. 그러나 국제 항로라면 선상에서는 면세가 되기 때문에, 저렴한 물건을 찾아 사람들이 국제 항로에 승선하여 선상 쇼핑몰에서 술이나 설탕, 육류 등을 사들이는 쇼핑 크루즈가 성행하고 있다.[121] 이것은 북유럽 국가들이 모두 유럽 연합에 가입한 21세기에도 EU 관세 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올란드 제도에 기항함으로써 면세 조건을 충족하는[122] 등의 방법으로 계속되고 있다.
발트해 남쪽 해안과 북쪽 해안을 잇는 연락선도 많이 있으며, 특히 섬이 많은 덴마크 국내를 잇는 것, 독일·덴마크·스웨덴 각국을 잇는 것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차량 운송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승객은 열차에 탑승한 채로 발트해를 건널 수 있다.
덴마크와 독일 사이의 페마른 벨트 고정 링크 건설은 2029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4차선 고속도로와 2개의 철로를 운행하는 3개의 터널로 구성된다. 또한, 페어멀른 벨트 해협을 지나 독일의 페어멀른 섬과 덴마크의 롤란 섬을 잇는 페어멀른 벨트 터널 건설이 현재 진행 중이며, 이것이 완성되면 함부르크와 코펜하겐 사이가 더욱 단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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