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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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대 한국어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용된 한국어의 형태를 의미한다. 음운 변화로 유성음 'ㅸ, ㅿ, ㆁ'이 소멸하고 구개음화가 나타났으며, 모음 'ㆍ'가 'ㅏ'로 합류되었다. 표기법은 중세 한국어의 표음주의를 따랐지만, 된소리 표기가 혼란스러웠고 어간과 어미의 경계 표기 방식에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문법적으로는 체언 어간의 'ㅎ' 탈락, 주격 조사 '-가'의 등장, 속격 '-ㅅ'의 사이시옷화, 처격의 혼동, 여격과 호격의 변화 등이 나타났다. 용언 활용에서는 'ㅸ, ㅿ' 소멸에 따른 불규칙 용언 형성, 의도법 소멸, 경어법 변화, 시제 및 상의 변화, 의지·추측형 '-겠-'의 형성, 동명사형 '-ㅁ'의 정착 등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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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한국어 | |
|---|---|
| 개요 | |
| 이름 | 근세 조선어 |
| 원어 이름 | 근대 국어 (近代 國語) |
| 로마자 표기 | Geundae Gugeo |
| 사용 민족 | 조선민족 |
| 사용 지역 | 한반도 (조선, 대한제국) |
| 언어 계통 | 한국어족 |
| 문자 | 훈민정음 (→한글)·한자 |
| 소멸 시기 | 19세기 |
| 선행 언어 | 중세 한국어 |
| 후행 언어 | 현대 한국어 |
![]() | |
| 언어 변화 | |
| 시작 | 아래아의 소실과 단모음화 |
| 종료 | 개화기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
| 어순 | 주어·목적어·서술어 (S·O·V 형식) |
2. 음운
근대 한국어 시기에 나타난 음운 변화는 현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1. 자음
중세 한국어에 존재했던 유성음 'ㅸ'(ㅸ|β한국어), 'ㅿ'(ㅿ|z한국어), 'ㆁ'(ㆁ|ŋ한국어)은 17세기에 소멸하거나 다른 음으로 변화했다. 'ㅸ'은 ㅸ|w한국어로 변화했고, 'ㅿ'과 'ㆁ'은 그 음가를 잃었다. 중세 한국어에서 'ㄹㅇ'(ㄹㅇ|lɦ한국어)이란 소리 연속은 근대 한국어에서 'ㄹㄹ'(ㄹㄹ|ll한국어)로 변화되었다.- 놀애 > 놀래
초성 합용 병서는 17세기 초에 혼란이 보이기 시작하며 이때쯤에 초성의 복합 자음이 소멸되어 된소리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 한국어 시기에 특징적인 음운 변화로 구개음화가 있다. 설음('ㄷ' 등), 아음('ㄱ' 등) 직후에 모음 ㅣ|i한국어 또는 반모음 ㅣ|j한국어가 오면 'ㅈ' 등 경구개음이 되는 현상이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나 18세기에 일반화된다.
- 디새 > 지새 (현대어 '기와')
근대 한국어에서는 치음의 구개음화도 일어난다. 치음 'ㅅ, ㅈ' 등은 중세 한국어에서 비구개음 ㅅ|s한국어, ㅈ|ts한국어였으나 18세기에 모음 ㅣ|i한국어 또는 반모음 ㅣ|j한국어 직전에서 구개음화되어 ㅅ|ɕ한국어, ㅈ|tɕ한국어로 발음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 다른 모음 앞에서도 구개음화되었다.
단어 첫머리에서 모음 ㅣ|i한국어 또는 반모음 ㅣ|j한국어에 앞선 'ㄴ'이 탈락되는 현상(즉 두음 법칙)은 18세기 후반에 나타난다.
2. 2. 모음
모음 'ㆍ'(아래아)는 16세기에 제2 음절 이후에서 음가를 잃어 'ㅡ'로 합류되었고, 제1 음절의 'ㆍ'는 17세기에 들어 음가를 잃기 시작하여 18세기 후반에 'ㅏ'로 완전히 합류되었다고 추정된다.'ㅐ, ㅔ'와 같은 모음들은 중세 한국어에서 이중 모음 , 와 같이 발음되었는데, 이와 같은 이중 모음들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현대 한국어처럼 단모음화되었다.
3. 표기법
근대 한국어의 표기법은 중세 한국어의 표음주의적 표기법을 따랐으나, 통일된 맞춤법이 없어 다양한 표기가 나타나는 등 통일성이 부족했다.
3. 1. 거센소리, 된소리 표기
중세 한국어의 표음주의적 표기법을 답습한 근대 한국어 표기법은 성문화된 맞춤법이 없었기 때문에 통일성이 없고 다양한 표기가 나타났다.거센소리 표기에는 'ᄸ'와 같이 거센소리 자모 왼쪽에 'ㅅ'을 덧붙이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코로'는 'ᄸᅩᄒᆞ로|코로한국어'로 표기되었다.
된소리 표기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ㅺ, ㅼ, ㅽ, ㅾ'과 같이 왼쪽에 'ㅅ'(된시옷)을 덧붙인 ㅅ계 합용 병서, 'ㅲ, ㅳ, ㅄ, ㅶ'과 같이 'ㅂ'을 덧붙인 ㅂ계 합용 병서가 일반적이었으나, 현대 맞춤법과 동일한 'ㄲ, ㄸ, ㅃ, ㅆ, ㅉ'(각자 병서)도 나타났다. 중세 한국어에서 복합 자음을 표기한 세 글자의 합용 병서 'ㅴ, ㅵ'도 근대 한국어에서 볼 수 있으나, 이들은 표기대로 발음한 것이 아니라 단지 된소리 /ㄲ/, /ㄸ/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ㅴ, ㅵ'과 같은 표기는 회고주의적인 표기법이라 할 수 있다. /ㅆ/ 소리의 표기는 'ᄥ'이나 'ᄴ'과 같이 특이한 표기도 있었다.
3. 2. 어간과 어미의 경계에 관한 표기
중세 한국어에서는 ‘모미’(몸이)와 같이 어간과 어미를 구분하지 않는 연철(連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근대 한국어에서는 연철 이외에 ‘몸이’처럼 어간과 어미를 구분하는 분철(分綴)이나 ‘깁퍼’(깊어)처럼 받침과 초성 자음을 이중으로 적는 중철(重綴)도 있어 다양한 표기법이 채택되었다.4. 문법
근대 한국어 문법은 중세 한국어 문법 체계를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나 현대 한국어 문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체언의 곡용과 용언의 활용, 경어법, 시제 및 상, 의지 및 추측 표현, 동명사형 등에서 여러 변화가 있었다.
4. 1. 곡용
근대 한국어 시기에 체언의 곡용(명사, 대명사, 수사가 문장에서 다른 단어와 맺는 문법적 관계)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중세 한국어에서 어말에 ‘ㅎ’을 가졌던 체언(ㅎ 곡용 체언)은 전기 근대 한국어까지 그 어형을 유지했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끝소리 ‘ㅎ’이 탈락되었다. 어말 ‘ㅎ’의 일부는 현대 한국어에서 ‘ㅇ’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격조사에서는 주격 조사 '-가', 속격 조사 '-ㅅ', 처격 조사, 여격 조사, 호격 조사 등에서 변화가 있었다.4. 1. 1. 체언 어간의 교체
중세 한국어에서 어말에 ‘ㅎ’을 가졌던 체언(ㅎ 곡용 체언)은 전기 근대 한국어까지 그 어형을 유지했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끝소리 ‘ㅎ’이 탈락되었다. 어말 ‘ㅎ’의 일부는 현대 한국어에서 ‘ㅇ’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ᄯᅡᇂ|한국어 > |땅한국어
- 집웋|한국어 > |지붕한국어
4. 1. 2. 곡용 어미
근대 한국어 시기에는 격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주격 조사: 주격 조사 '-가'가 17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는 처음에는 'ㅐ', 'ㅔ', 'ㅚ', 'ㅟ', 'ㅢ' 뒤에는 결합하지 못하고,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뒤에만 결합했다.
- 속격 조사: 중세 한국어에 특징적이었던 속격 조사 '-ㅅ'은 근대 한국어에서 속격으로서의 구체적인 기능을 잃고 현대 한국어와 같이 합성 명사를 만드는 사이시옷으로 정착되었다.
- 처격 조사: 중세 한국어에서 상보적으로 분포했던 처격 조사 '-애/-에/-예'와 '-ᄋᆡ한국어/의한국어'가 근대 한국어에 이르러 혼동을 일으켰다. 모음조화에 의한 구분에도 혼동이 생겨 19세기에는 처격 조사가 '-에'로 통합되는 경향을 보였다.
- 여격 조사: 중세 한국어에서는 여격 조사의 형태가 다양했으나, 근대 한국어에서는 비존경형 '-ᄋᆡ한국어게/-의한국어게', 존경형 '-ᄭᅴ한국어'로 통합되었다.
- 호격 조사: 중세 한국어 호격 조사 중 존경형 '-하'는 근대 한국어에서 소멸하고 '-아/-야'만 남았다.
4. 2. 활용
근대 한국어에서는 용언 활용, 경어법, 시제 및 상, 의지 및 추측 표현, 동명사형 등에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 한국어에서 현대 한국어로 이어지는 중요한 과정이다.4. 2. 1. 용언 활용의 교체
근대 한국어에서 'ㅸ'[β], 'ㅿ'[z]가 사라졌기 때문에 중세 한국어에서 어간 말에 받침 'ㅸ'을 가졌던 용언은 소리가 [w]로 바뀌고, 받침 'ㅿ'을 가졌던 용언은 'ㅿ'이 완전히 탈락되었다. 이렇게 해서 현대 한국어의 ㅂ불규칙 용언, ㅅ불규칙 용언이 근대 한국어 시기에 형성되었다.중세 한국어에 있었던 이른바 ‘의도법’(-오-/-우-)은 근대 한국어에서 소멸되었다.
4. 2. 2. 경어법
용언 활용에서 존대법, 대우법과 같은 경어법에 현저한 변화가 있었다. 존대법 중 존경 선어말어미 '-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겸양 선어말어미는 뒤에 오는 어미류와 융합된 결과 하나의 어미처럼 구실하여 겸양의 뜻을 잃고 전체로서 공손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중세 한국어의 공손법 선어말어미 '-ᅌᅵ-'도 다른 어미류와 융합되어 고유한 뜻을 잃었다.- -ᄉᆞᆸᄂᆞᅌᅵ다한국어(겸양+현재+공손+어미) > -ᄉᆞᆸᄂᆡ다한국어 > -ᄉᆞᆸ늬다한국어 > -습니다
4. 2. 3. 시제, 상
현재를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 '-ㄴ-'이 종결형 어미 '-다' 앞에서 나타난다. 현대 한국어의 종결형 '-ㄴ다'는 여기에 소급된다.현대 한국어의 과거형 '-았-/-었-'은 중세 한국어의 '-아잇-/-어잇-~-앳-/-엣-~-앗-/-엇-'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중세 한국어에서 완료를 나타냈던 이 형태는 근대 한국어에서 과거를 나타내게 되었다.
시상 선어말어미 중 '-거-, -더-'는 중세 한국어에서 존경 선어말어미 '-시-' 앞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근대 한국어에서는 '-시-' 뒤에 와서 '-시거-, -시더-'와 같은 순서로 나타난다. 이 순서는 현대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4. 2. 4. 의지, 추측형
의지, 추측을 나타내는 '-겠-'은 근대 한국어 시기에 형성된 형식인데, 그 기원에 관해서는 뚜렷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연결형 '-게' 또는 선어말어미 '-거-' 뒤에 동사 '잇-'이 온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했지만, 문헌 자료에 의한 논증이 빈약하다. 최근에는 '-게' 뒤에 'ᄒᆞ얏|하얏한국어'이 오고 그것이 '-게얏-'으로 축약되어서 형성되었다는 설이 제창되고 있다.4. 2. 5. 동명사형
근대 한국어의 동명사형(체언형)은 현대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ㅁ'이다. 중기 한국어에 존재했던 '-옴/-움'은 근대 한국어 시기에 들어 소실되었다. 그에 반해, 중기 한국어에서는 드물었던 '-기'가 근대 한국어가 되면서 많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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