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카와 쓰네타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깃카와 쓰네타케는 깃카와 쓰네모토의 장남으로, 어릴 적 이름은 기쿠카와 요시노스케이다. 186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으나 모리 다카치카의 명령으로 인해 공식적인 승계는 1868년 12월 28일에 이루어졌다. 1869년 서임되었고, 보신 전쟁에서 공적을 세워 영세 5000석을 받았으며, 같은 해 판적봉환으로 지번사가 되었다. 1870년 조슈번의 탈대 소동 진압에 힘썼으며, 1871년 폐번치현으로 면관되어 도쿄로 이주했다. 이후 구 번사들을 위해 의제당을 창설하여 자립을 도왔고, 1884년 남작, 1891년 자작으로 승작했다. 1909년 사망했으며, 묘소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막말 이와쿠니번 사람 - 하세가와 요시미치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 대장, 조선 주둔군 사령관, 참모총장을 역임하고 제2대 조선 총독으로 3·1 운동 시 무단 통치를 시행했으며, 백작 작위를 받고 사망 후 아오야마 묘지에 안장되었다. - 이와쿠니번주 - 깃카와 히로요시
깃카와 히로요시는 에도 시대 초기의 이와쿠니 영주로, 영지 내 간척 사업과 영찰 발행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긴타이쿄를 가교한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 이와쿠니번주 - 깃카와 히로이에
깃카와 히로이에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동하며 깃카와 가문을 계승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이와쿠니 번의 초대 영주가 되어 이와쿠니 개발에 힘쓰다 사망했다. - 이와쿠니 깃카와가 - 이와쿠니성
에도 시대 초 깃카와 히로이에가 축조했으나 일국일성령으로 폐성된 이와쿠니성은 1962년 천수각이 복원되었고, 긴타이 다리와 함께 이와쿠니시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자 일본 100대 명성 중 하나이다. - 이와쿠니 깃카와가 - 깃카와 히로요시
깃카와 히로요시는 에도 시대 초기의 이와쿠니 영주로, 영지 내 간척 사업과 영찰 발행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긴타이쿄를 가교한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깃카와 쓰네타케 | |
---|---|
기본 정보 | |
씨명 | 깃카와씨 |
이름 | 깃카와 쓰네타케 |
개명 | 기쿠카와 요시노스케, 깃카와 쓰네타케 |
![]() | |
묘소 | 야마구치현이와쿠니시 요코야마의 동천사 산 묘지 |
생몰 | |
출생 | 안세이 2년 8월 26일 (1855년10월 6일) |
사망 | 메이지 42년 (1909년) 6월 4일 |
관위 | |
관위 | 정사위・스루가노카미, 증종2위 |
가계 | |
부모 | 아버지: 깃카와 쓰네마사 어머니: 이노우에 엔지 딸 |
형제 | 쓰네타케, 시게요시 등 |
배우자 | 모리 모토즈미 다섯째 딸 이소코, 쓰쓰미 이사오 딸 마쓰코, 가토 야스아키 딸 나오코, 센게 다카토모 딸 기사코 |
자녀 | 요시코, 모토미쓰 |
정치 | |
시대 | 메이지 시대 |
주군 | 메이지 천황 |
번 | 스와오이와쿠니번 번주 |
직책 | 깃카와 자작가 당주 (1891년 ~ 1909년) 깃카와 남작가 당주 (1884년 ~ 1891년) 아키 깃카와가 당주 (1867년 ~ 1909년) |
전임자 | 깃카와 쓰네마사 |
후임자 | 깃카와 모토미쓰 |
기타 |
2. 약력
초대 번주 기카와 쓰네모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기쿠카와 요시노스케'''이다. 게이오 3년(186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이었으나, 모리 다카치카의 명령으로 그 죽음이 은폐되어 정식으로 상속을 받은 것은 메이지 원년(1868년) 12월 28일이다. 메이지 2년(1869년) 보신 전쟁의 동북 전쟁에서 공을 세워 영세 5000석을 받았다. 같은 해 판적봉환으로 지번사가 되었다.
메이지 3년(1870년) 본가인 조슈 번에서 탈대 소동이 일어나자, 그 진압에 힘썼다. 메이지 4년(1871년) 폐번치현으로 면관되어 도쿄로 이주했다. 이후 구 번사들을 위해 의제당을 창설하여 그들의 자립을 도왔다. 메이지 17년(1884년) 남작을 수작, 메이지 24년(1891년) 4월 23일 자작으로 승작한다[1].
메이지 42년(1909년) 6월 4일에 사망했다. 향년 55세. 묘소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요코야마의 도센지 산 묘지이다.
2. 1. 가독 상속
1867년(게이오 3년), 아버지 깃카와 쓰네모토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받았으나, 모리 다카치카의 명령으로 사망 사실이 은폐되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상속받은 것은 1868년(메이지 원년) 12월 28일이다.[1]2. 2. 메이지 시대
1869년(메이지 2년) 1월, 서임되었다.[1] 같은 해 6월, 보신 전쟁 중 동북 전쟁에서 공을 세워 영세 5000석을 하사받았다.[1] 판적봉환으로 이와쿠니 번 지번사가 되었다.[1]1870년(메이지 3년), 본가인 조슈 번에서 일어난 탈대 소동 진압에 힘썼다.[1] 1871년(메이지 4년), 폐번치현으로 면관된 후 도쿄로 이주했다.[1] 이후 구 번사들을 위해 의제당을 창설하여 그들의 자립을 지원했다.[1]
1884년(메이지 17년), 남작 작위를 받았고, 1891년(메이지 24년) 4월 23일, 자작으로 승작되었다.[1]
2. 3. 사망
吉川経健|깃카와 쓰네타케일본어는 1909년 6월 4일에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묘소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요코야마의 도센지 산 묘지에 있다.[1]3. 영전
4. 계보
깃카와 쓰네타케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 아버지: 깃카와 쓰네모토 (1829년 - 1867년)
- 어머니: 이노우에 엔지의 딸
- 정실: 이소코 - 모리 모토즈미의 다섯째 딸
- 계실: 마쓰코 - 쓰쓰미 이사오의 딸
- 계실: 나오코 - 가토 야스아키의 딸
- 계실: 키사코 (1867년 출생) - 센게 다카토요의 딸, 센게 다카토미의 여동생[5]
- 생모 불명의 자녀
- * 딸: 요시코
- 양자
- * 아들: 깃카와 모토미쓰 (1894년 - 1953년)
자세한 가족 관계는 하위 섹션인 '가족 관계'에 상세히 나와있다.
4. 1.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비고 |
---|---|---|
아버지 | 깃카와 쓰네모토 | 1829년 - 1867년 |
어머니 | 이노우에 엔지의 딸 | |
정실 | 이소코 | 모리 모토즈미의 다섯째 딸 |
계실 | 마쓰코 | 쓰쓰미 이사오의 딸 |
계실 | 나오코 | 가토 야스아키의 딸 |
계실 | 키사코 | 센게 다카토요의 딸, 센게 다카토미의 여동생[5] |
생모 불명의 딸 | 요시코 | 깃카와 모토미쓰의 정실 |
양자 | 깃카와 모토미쓰 | 1894년 - 1953년, 깃카와 시게요시의 장남 |
참조
[1]
간행물
官報 第2342号
1891-04-24
[2]
간행물
官報 第1351号、叙任及辞令
1887-12-28
[3]
간행물
官報 第1351号、彙報 - 官庁事項 - 褒章 - 黄綬褒章下賜
1887-12-28
[4]
간행물
官報 第1943号 叙任及辞令
1889-12-18
[5]
서적
人事興信録 初版
https://dl.ndl.go.jp[...]
1903-0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