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이도 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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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카이도 레이치(仲井戸 麗市)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 1950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71년 듀오 Furuido로 데뷔하여 "사나에 짱" 등의 곡을 발표했으며, 1979년 RC 서세션에 합류하여 "아메아가리의 요조라니" 등의 히트곡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솔로 활동과 더불어 Chabo Band, Reiran 등의 밴드 활동을 병행하며, 애니메이션 《Serial Experiments Lain》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하기도 했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등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받았으며, 예명 "레이치"는 도노반의 패밀리 네임에서 따왔다. 그는 앨범, 싱글, 저서 발매와 방송 출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2015년에는 데뷔 45주년 기념 라이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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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이도 레이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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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가토 히데아키 (加藤秀明) |
별칭 | 차보 (Chabo) |
출생일 | 1950년 10월 9일 |
출생지 | 도쿄도 신주쿠구 |
국적 | 일본 |
장르 | 록, 블루스, R&B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
악기 | 기타, 보컬 |
활동 기간 | 1969년–현재 |
레이블 | 도시바 EMI |
관련 활동 | RC 석세션 기요시로 이마와노 후루이도 레이란 |
웹사이트 | up-down.com |
학력 | |
출신 학교 | 도호 고등학교 졸업 |
기타 정보 | |
배우자 | 오쿠보 히사코 (사진작가) |
2. 인물
나카이도 레이치는 1950년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2] 신주쿠에서 성장했으며, 그의 집안은 인쇄업을 운영했다. 직원의 "쿠보 씨"가 점심시간에 기타와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기타에 흥미를 느껴 시작하게 되었다. 신주쿠의 찻집에서 열린 "글린카 만돌린 클럽"에서 클래식 기타를 3년간 배웠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Furuido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멤버 교체 후에는 가나자키 요시타로와 듀오로 활동하며 1971년에 데뷔했다.[2] Furuido의 대표곡인 "사나에 짱"은 나카이도가 유치원 시절 첫사랑을 추억하며 작곡한 곡이다.[2] 이 듀오의 또 다른 곡 "난토카 나레"는 만화 ''아카기''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테마로 사용되었다.
Furuido는 1979년에 해체되었고, 나카이도는 그 해에 하렌 켄치를 대신하여 RC 서세션에 합류, 1990년까지 활동하며 "아메아가리의 요조라니"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성공의 정점을 누렸다. Furuido는 이후 "전설적인" 포크 듀오로 묘사되었다.[3] 2009년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사망할 때까지 RC 서세션의 파트너였던 그와 가끔 공연을 했지만, 밴드는 재결합하지 않았다.
1991년부터 나카이도는 Chabo Band, 츠치야 코헤이와의 듀오 Reiran 활동과 더불어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문필가로도 활동하며, 자신의 앨범 라이너 노트에 긴 글을 직접 쓰기도 한다.
나카이도는 비틀즈, 롤링 스톤스, 블루스, 소울 등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그의 기타 연주와 보컬 스타일에 반영되었다. 특히, 10대 초반에 일렉트릭 기타와 블루스, 소울의 위대한 뮤지션들에게 깊이 몰두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과 병행하여 포에트리 리딩(시의 낭독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나카이도는 애니메이션 ''Serial Experiments Lain''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RC 서세션의 "토오이 사케비" (멀리서의 외침)는 이 시리즈의 엔딩 테마로 사용되었다.
예명 "레이치"는 그가 존경하는 포크 싱어 도노반의 패밀리 네임에서 따왔다. 아내는 사진가 오오쿠보 히사코이다.
2. 1. 초기 생애
나카이도는 1950년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2]고등학교 재학 중 Furuido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멤버 교체 후, Furuido는 그와 가나자키 요시타로로 구성된 듀오가 되었다. 그들은 1971년에 음반 데뷔를 했다. 그들의 가장 유명한 곡인 ''Furuido no Sekai''의 11번째 트랙인 "사나에 짱"은 나카이도가 작곡했다. 이 곡은 유치원 시절 그의 첫사랑 사나에에 대한 노래이다.[2] 그들의 곡 "난토카 나레"는 앨범의 일곱 번째 트랙으로, 만화 ''아카기''의 애니메이션 각색판 오프닝 테마로 사용되었다.
Furuido는 1979년에 해체되었고, 나카이도는 그 해에 하렌 켄치를 대신하여 RC 서세션에 합류했다. Furuido는 이후 "전설적인" 포크 듀오로 묘사되었다.[3] 그는 1990년에 공연을 중단할 때까지 RC 서세션과 함께 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그룹은 "아메아가리의 요조라니"와 같은 주목할 만한 곡을 발표했고 성공의 정점을 누렸다.
1991년 이후, 나카이도는 자신의 Chabo Band와 츠치야 코헤이와 함께 한 듀오 Reiran으로 활동하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009년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사망할 때까지 RC 서세션의 파트너 이마와노 키요시로와 가끔 공연을 했지만, 밴드는 재결합하지 않았다.
나카이도는 애니메이션 ''Serial Experiments Lain''의 많은 음악을 작곡했으며, 이는 결국 사운드트랙으로 발매되었다. RC 서세션의 곡 "토오이 사케비" (멀리서의 외침)는 이 시리즈의 엔딩 테마로 사용되었다.
2. 2. 음악적 영향
나카이도는 비틀즈, 롤링 스톤스, 블루스, 소울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그의 기타 연주와 보컬 스타일에 반영되었다.그는 고등학교 시절 Furuido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멤버 교체 후 가나자키 요시타로와 듀오로 활동하며 1971년 음반 데뷔를 했다.[2] Furuido의 대표곡인 "사나에 짱"은 나카이도가 유치원 시절 첫사랑을 추억하며 작곡한 노래이다.[2] 또 다른 곡 "난토카 나레"는 만화 ''아카기'' 애니메이션 오프닝 테마로 사용되었다.
1979년 Furuido 해체 후, 나카이도는 하렌 켄치를 대신하여 RC 서세션에 합류, 1990년까지 활동하며 "아메아가리의 요조라니"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Furuido는 이후 "전설적인" 포크 듀오로 평가받았다.[3]
1991년부터는 Chabo Band, 츠치야 코헤이와의 듀오 Reiran 활동과 더불어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이마와노 키요시로 사망 전까지 RC 서세션 파트너였던 그와 가끔 공연을 했지만, 밴드는 재결합하지 않았다.
나카이도는 애니메이션 ''Serial Experiments Lain''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RC 서세션의 "토오이 사케비" (멀리서의 외침)는 이 시리즈의 엔딩 테마로 사용되었다.
2. 3. 예명
나카이도의 예명 '레이치'는 도노반에서 유래했다. 아내는 사진작가 오오쿠보 히사코이다.3. 경력
나카이도 레이치는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폭넓은 경력을 쌓아왔다.
1968년 국립시의 도호 고등학교 3학년 때, 오쿠쓰 미쓰히로와 "후루이도"를 결성하여 팝 음악의 블루스와 리버풀 사운드 커버를 연주했다.
1969년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디자이너 학원에 진학하며 카나자키 요시타로를 만나 카나자키 요시타로&후루이도로 활동을 시작, 팝 음악 커버와 함께 처음으로 오리지널 곡을 제작했다.
1970년 이즈미야 시게루, RC 서세션, 피피&콧토 등과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했다.
1971년, 이즈미야 시게루의 소개로 엘렉 레코드에서 데뷔한 이즈미야의 지원을 받아 후루이도도 엘렉에 소속되었으며 (해원대의 나카무타 토시오 등과도 친분을 쌓았다). 이즈미야의 1st 앨범 『이즈미야 시게루 등장』에서 요시다 요시코와 함께 리드 기타를 맡았고, 『노래의 시장 제1집』으로 데뷔했다. 데뷔 전 4인조였던 후루이도는 이 시점부터 나카이도와 카나자키 2인조로 활동하게 되었다. 1972년, 듀오명을 "후루이도"로 정식 변경하고 『후루이도의 세계』를 발표, 수록곡 "사나에 짱"이 히트했다. 하지만 무거운 블루스를 지향했던 나카이도의 의도와 달리, "사나에 짱"은 가벼운 포크송으로 여겨졌고, 나카이도의 외모와 함께 후루이도에 "귀엽다", "여성 팬에게 인기 있다"는 이미지가 따라붙으며 여성 팬이 증가했다. 후지 TV 생방송 프로그램 『립・영!』에서 "사나에 짱" 연주를 요구받자 나카이도는 "나는 이런 노래는 못 부르겠다"며 즉흥적으로 스튜디오에서 나가 프로그램 출연 금지 조치를 받기도 했다.
1978년부터 RC 서세션의 스테이지에 서포트 멤버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1979년 『라스트 스테이지』를 마지막으로 후루이도는 해산했다.
1979년, 1977년 하렌 겐치 탈퇴 후 공석이 된 리드 기타리스트로 RC 서세션에 정식 가입, 이마와노 키요시로와 함께 1980년대 RC 서세션의 약진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주목받았다. 그는 RC 서세션에서 기타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 편곡에도 참여하며 밴드의 음악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기타 연주는 RC 서세션의 음악에 독특한 색깔을 더했으며, 이마와노 키요시로의 보컬과 조화를 이루어 RC 서세션만의 개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2년 『록큰롤 올림픽』에 "차보&우메즈 카즈토키 혼 섹션"으로 출연했다.
1985년 첫 솔로 앨범 『THE 나카이도 레이치 BOOK』을 발매했다.
1988년 구면인 이즈미야의 백 밴드 LOSER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다.
1990년 두 번째 솔로 앨범 『그림』을 발매하고 STILL ALIVE & WELL 투어를 실시했다.
1991년 RC 서세션 무기한 활동 휴지 이후 THE STREET SLIDERS의 츠치야 코헤이와 함께 레이란을 결성, 통기타 연주 등의 솔로 활동과 병행하며 활동을 계속했다. 자신의 사무소 "7th Mother/세븐스 마더"를 설립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츠치야 코헤이와 함께 레이란(麗蘭)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레이란은 블루스, 록,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1996년 CHABO BAND를 결성하여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했다. CHABO BAND는 나카이도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무대였다. 그는 CHABO BAND 활동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며 폭넓은 음악 팬층을 확보했다.
2007년 12월 8일 『Dream Power 존 레논 슈퍼 라이브 2007』에 이마와노 키요시로+나카이도 레이치 명의로 출연, "마더", "아 하드 데이즈 나이트", "이매진"을 연주했다.
2008년 2월 10일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이마와노 키요시로 완전 부활제』에 참가했다. 같은 해 3월, 요코하마시코호쿠구 주차장에서 애용하는 기타를 포함한 음악 장비 9점을 실은 차량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7월에는 후지 록 페스티벌에 "이마와노 키요시로 & NICE MIDDLE with NEW BLUE DAY HORNS plus 나카이도 레이치"로 출연 예정이었으나 이마와노의 암 재발로 인해 취소되었고, 나카이도는 자신의 공식 사이트에 이마와노에게 http://www.up-down.com/020chabo/02510to-chabo/chabosanne.html 훌륭한 메시지를 남겼다.
2009년 5월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사망하자 그의 마지막을 지켜봤으며, 친족・근친자만의 밀장에서는 발인 시 관 위에 장식된 애용하는 기타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팬들도 참석한 아오야마 장례식장에서의 장례식에서 완전 부활제 멤버들이 "비가 내린 후의 밤하늘에"를 연주할 때 나카이도는 참가하지 않았다. 나카이도는 이마와노 키요시로와의 협업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두 사람은 음악적 동지로서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마와노 키요시로의 앨범에 참여하거나, 함께 합동 공연을 펼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했다.
2012년 8월 the day를 결성하여 새로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the day는 나카이도의 음악적 경륜이 녹아있는 밴드로서, 그의 음악적 깊이를 더해주었다.
2015년부터 BS 재팬 『온 더 록!』의 프로그램 MC를 반년에 걸쳐 맡아 유카와 레이코, 카르멘 마키 등과 함께 출연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데뷔 45주년 기념 라이브 『MY NAME IS CHABO』를 시부야 공회당에서 개최했다.
3. 1. 초기 활동 (1960년대)
1968년, 고등학교 시절에 나카이도는 오쿠쓰 미쓰히로와 함께 "후루이도"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이들은 주로 팝 음악과 블루스 곡들을 커버하며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3. 2. 후루이도 활동 (1970년대)
1971년 이즈미야 시게루의 소개로 엘렉 레코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이즈미야는 엘렉의 간판스타였으며, 그의 지원은 후루이도가 데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데뷔 앨범은 이듬해 발매되었고, 수록곡 중 하나인 "사나에 짱"이 라디오를 통해 전파를 타면서 히트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나에 짱"은 NHK를 비롯한 일부 방송국에서 가사 내용 때문에 방송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3. 3. RC 서세션 활동 (1979년 ~ 1990년)
1979년, 후루이도가 해산된 후 RC 서세션에 합류했다. 이마와노 키요시로와 함께 RC 서세션의 멤버로서 활동하며 1980년대 RC 서세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나카이도는 RC 서세션에서 기타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 편곡에도 참여하며 밴드의 음악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기타 연주는 RC 서세션의 음악에 독특한 색깔을 더했으며, 이마와노 키요시로의 보컬과 조화를 이루어 RC 서세션만의 개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RC 서세션은 당시 일본의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카이도의 활약은 RC 서세션의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3. 4. 솔로 활동 및 기타 활동 (1991년 이후)
1991년 RC 서세션 활동 중단 이후, 나카이도는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츠치야 코헤이와 함께 레이란(麗蘭)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레이란은 블루스, 록,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1993년에는 CHABO BAND를 결성하여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했다. CHABO BAND는 나카이도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무대였다. 그는 CHABO BAND 활동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며 폭넓은 음악 팬층을 확보했다.
나카이도는 이마와노 키요시로와의 협업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두 사람은 음악적 동지로서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마와노 키요시로의 앨범에 참여하거나, 함께 합동 공연을 펼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했다.
2012년에는 the day를 결성하여 새로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the day는 나카이도의 음악적 경륜이 녹아있는 밴드로서, 그의 음악적 깊이를 더해주었다.
3. 5. 최근 활동 (2015년 이후)
2015년부터 BS 재팬의 음악 프로그램인 '온 더 록!'의 MC를 맡고 있다.2016년에는 데뷔 45주년을 기념하여 라이브 공연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