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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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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틀즈는 1960년대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구성된 4인조 록 밴드이다. 1950년대 로큰롤을 기반으로 머지비트 장르를 개척했으며, 이후 다양한 팝 음악을 시도하며 음악적 혁신을 이뤘다. 1960년대 중반 '비틀마니아'를 일으키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앨범 시대를 열고 뮤직비디오, 패션 등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1970년 해체 이후에도 멤버들의 개별 활동과 다양한 형태로 음악적 유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2023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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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64년의 비틀즈; 상단: 존 레논, 폴 매카트니, 하단: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1964년의 비틀즈; 시계 방향으로 위쪽 왼쪽부터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이름비틀즈
원어 이름The Beatles
다른 이름쿼리맨
조니 & 무도그스
실버 비틀즈
결성 지역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장르

비트
사이키델릭
록큰롤
팝 록
머지비트
아트 록
활동 기간1960년–1970년
레이블폴리도르
팔로폰
톨리
비-제이
캐피틀
스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애틀코
애플
스핀오프쿼리맨
공식 웹사이트thebeatles.com
유튜브 채널The Beatles
유튜브 채널 활동 시작2005년
유튜브 채널 장르음악
유튜브 채널 구독자841만 명
유튜브 채널 조회수71억 6769만 6352회
유튜브 채널 통계 업데이트2024년 8월 4일
로고 설명1963년 아이버 아비터가 디자인한 비틀즈의 "Drop-T" 로고
구성원
이전 구성원존 레논 (보컬, 기타)
폴 매카트니 (보컬, 베이스)
조지 해리슨 (기타, 보컬)
링고 스타 (드럼, 보컬)
(초기 멤버는 구성원 섹션 참고)
공동 작업자조지 마틴
브라이언 엡스타인
음반 목록
음반음반 목록
싱글싱글 목록
노래녹음한 노래 목록

2. 역사

1957년 존 레논스키플 밴드 "쿼리멘"을 결성하면서 비틀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밴드 이름을 여러 차례 변경하고 멤버 교체를 거친 후, 1960년 8월에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초기 멤버로는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베이스)와 피트 베스트(드럼)가 있었으나, 서트클리프는 1961년에 밴드를 탈퇴하여 1962년에 사망했고, 베스트는 1962년에 해고되어 링고 스타로 교체되었다.[154]

1961년 11월, 비틀즈는 브라이언 앱스타인을 만났고, 1962년 1월에 그는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다.[14] 1962년 4월, 서트클리프가 뇌출혈로 사망했다.[16] 데카 레코드는 비틀즈를 거절했지만,[18] 조지 마틴 프로듀서는 비틀즈를 EMI팔로폰 레이블에 영입했다.[16] 1962년 6월 6일, EMI 녹음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 세션이 있었다.[19]

1962년 10월 5일, 싱글 '러브 미 두'로 데뷔하였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는 비틀마니아와 투어 시대로, 1963년 2월 11일 데뷔 음반 《Please Please Me》를 녹음, 3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 발매된 비틀즈의 11장의 연속 1위 앨범 중 첫 번째 앨범이다.[90] 1963년 11월 22일, LP 《With the Beatles》를 발매하여 27만 장의 사전 주문을 기록했다.[93]

1964년 2월 7일, 비틀즈는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3,000여 명의 환영을 받았다.[298] 이틀 후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7,3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기록했다.[298] 1964년 미국 투어 기간 동안, 비틀즈는 당시 미국의 인종 차별에 직면했다.[13][14] 1965년1966년 미국 투어에서 비틀즈는 공연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14][15]

1966년부터 1970년까지는 스튜디오 시대로, 1967년 5월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표했다.[25] 1968년에는 ''비틀즈''(화이트 앨범)를 녹음했다. 1969년 9월 26일에는 《Abbey Road》가 발매되었다. 1970년 5월 8일, 《Let It Be》가 발매되었다.

1970년 4월 10일, 폴 매카트니는 밴드에서 탈퇴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1970년 12월 31일, 비틀즈 계약 파트너십 해산 소송을 제기했다. 해체 이후, 1980년 존 레논이 암살당하고, 2001년 조지 해리슨이 사망하면서 더 이상의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2. 1. 1956–1963: 결성

1956년 존 레논리버풀의 쿼리 뱅크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스키플 그룹 쿼리멘을 결성했다.[295] 1957년 폴 매카트니리듬 기타 연주자로 합류했고,[295] 1958년에는 매카트니의 친구 조지 해리슨리드 기타 연주자로 영입되었다.[4] 1959년 레논의 친구들이 그룹을 떠나고, 레논은 리버풀 예술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5]

"조니 앤드 더 문독스(Johnny and the Moondog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세 명의 기타리스트는[5] 드러머를 찾을 수 있을 때마다 록 앤 롤을 연주했다.[5] 1960년 레논의 미술학교 친구 스튜어트 서틀리프가 베이스 기타 연주자로 밴드에 합류했다. 그는 버디 홀리와 크리켓츠를 기념하여 밴드 이름을 "비틀스(Beatals)"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146] 그들은 5월까지 이 이름을 사용하다가 "실버 비틀스(the Silver Beetles)"가 되었고, 조니 젠틀의 백킹 그룹으로 스코틀랜드 투어를 다녀왔다. 7월 초에는 "실버 비틀스(the Silver Beatles)"로 이름을 바꾸었고, 8월 중순에는 단순히 "더 비틀스(the Beatles)"가 되었다.[147]

앨런 윌리엄스는 비틀즈에게 함부르크에서의 레지던시를 주선했다. 함부르크에서 그들은 1960년 8월 중순 드러머 피트 베스트를 고용했다. 5인조가 된 밴드는 함부르크로 향했고, 클럽 주인 브루노 코슈미더와 계약을 맺었다. 비틀즈는 인드라 클럽과 카이저켈러에서 공연했다. 계약 위반으로 경쟁 클럽인 탑 텐 클럽에서 공연한 사실이 알려지자, 코슈미더는 해리슨을 미성년자라고 신고하여 1960년 11월 말 해리슨은 추방되었다. 맥카트니와 베스트도 방화 혐의로 체포되어 추방되었다. 레논은 12월 초 리버풀로 돌아왔고, 서틀리프는 아스트리드 키르히허와 함께 함부르크에 남았다.

다음 2년 동안 비틀즈는 함부르크에서 여러 차례 레지던시 생활을 했다. 1961년, 두 번째 함부르크 공연 중 키르히허는 서틀리프의 머리를 "엑시"(실존주의) 스타일로 잘랐는데, 이후 다른 비틀즈 멤버들도 이 스타일을 채택했다. 서틀리프는 그해 초 밴드를 떠나 미술 공부를 재개하기로 결정했고, 맥카트니가 베이스를 맡았다. 프로듀서 버트 켐퍼트는 4인조가 된 그룹과 1962년 6월까지 계약을 맺었고, 토니 셰리던의 백업 밴드로 사용하여 폴리도르 레코드에서 녹음을 했다. "토니 셰리던 & 더 비트 브라더스"로 표기된 싱글 "마이 보니"는 1961년 6월에 녹음되어 ''무직마르크트'' 차트에서 32위에 올랐다.

1961년 11월, 비틀즈는 브라이언 앱스타인을 만났다. 1962년 1월,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다.[14] 1962년 4월, 서틀리프가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6] 데카 레코드는 비틀즈를 거절했지만,[18] 조지 마틴 프로듀서는 비틀즈를 EMI팔로폰 레이블에 영입했다.[16]

EMI 스튜디오(현재 애비 로드 스튜디오, 2007년 사진) 정문


1962년 6월 6일, EMI 녹음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 세션이 있었다.[19] 마틴은 피트 베스트의 드럼 연주에 불만을 제기했고,[20] 비틀즈는 8월 중순에 그를 링고 스타로 교체했다.[19] 9월 4일 세션에서 스타가 드럼을 연주한 "러브 미 두"가 녹음되었지만, 마틴은 앤디 화이트를 고용하여 "러브 미 두", "플리즈 플리즈 미", "P.S. 아이 러브 유"를 녹음했다.[19]

1962년 10월 초에 발매된 "러브 미 두"는 ''레코드 리테일러'' 차트에서 17위에 올랐다.[22] 1962년 12월, 비틀즈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함부르크 레지던시를 마쳤다.[27] 1963년까지 존 레논폴 매카트니작곡 파트너십을 맺었다.[29]

비틀즈 멤버
이름프로필담당재적 기간
해산 당시 멤버
존 레논
(John Lennon)
1940년 10월 9일 출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보컬, 리듬 기타, 리드 기타, 키보드, 하모니카, 베이스1960년 - 1969년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출생보컬, 베이스, 리듬 기타, 리드 기타, 키보드, 드럼1960년 - 1970년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년 2월 25일 출생[151]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리드 기타, 보컬, 리듬 기타, 시타르, 키보드, 베이스1960년 - 1970년
링고 스타
(Ringo Starr)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출생드럼, 퍼커션, 보컬1962년 - 1970년
초기 멤버
피트 베스트
(Pete Best)
마드라스 관구 마드라스 출생드럼, 보컬1960년 - 1962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Stuart Sutcliffe)
1940년 6월 23일 출생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베이스, 보컬1960년 - 1961년
채스 뉴비
(Chas Newby)
1941년 6월 18일 출생
잉글랜드 블랙풀
베이스1960년
노먼 채프먼
(Norman Chapman)
1937년 출생 - 1995년 7월(58세 사망)[152]드럼1960년
토미 무어
(Tommy Moore)
1931년 9월 12일 출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드럼1960년


2. 1. 1. 쿼리멘과 그룹명 변천

1956년 존 레논리버풀 쿼리 뱅크 스쿨의 학우 몇 명과 함께 스키플 그룹을 결성했다. 처음에는 더 블랙잭스(the Blackjacks)라고 불렀으나, 다른 현지 그룹이 같은 이름을 쓰고 있음을 알고 쿼리멘(the Quarryme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295] 1957년 폴 매카트니가 레논과 만나 쿼리멘에서 리듬 기타를 맡게 되었다.[295] 1958년에는 매카트니의 친구 조지 해리슨이 밴드를 구경하러 왔다가 레논에게 오디션을 보았고, 레논은 해리슨의 실력에 감탄했지만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설득 끝에 해리슨은 리버풀 버스 2층에서 기악곡 〈Raunchy〉의 리드 기타 파트를 연주하여 쿼리멘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영입되었다.[4]

1959년 레논의 쿼리 뱅크 친구들이 쿼리멘을 떠나고 레논은 리버풀 예술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5] 세 명의 기타리스트는 자신들을 조니 앤 더 문독스(Johnny and the Moondogs)라고 칭하며 드러머를 구할 수 있을 때마다 로큰롤을 연주했다.[5] 1960년 레논의 예술대학 친구 스튜어트 섯클리프가 그림을 판 돈으로 베이스 기타를 사서 그룹에 들어왔다. 스튜어트는 밴드 이름을 버디 홀리와 더 크리케츠를 따라 비탈스(Beatals)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146] 이들은 이 이름을 1960년 5월까지 쓰다가 더 실버 비틀스(the Silver Beetles)라는 이름으로 조니 젠틀의 배킹 그룹으로 스코틀랜드 투어를 떠났다. 1960년 7월 초 다시 더 실버 비틀스(the Silver Beatle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가 1960년 8월 중순 비틀즈(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정착하였다.[147]

2. 1. 2. 초기 활동과 영국에서의 인기

1962년 1월, 몇 달 동안 비틀즈에게 구애를 한 끝에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다.[14] 엡스타인은 그해 초부터 중반까지 비틀즈를 베르트 켐페르트 프로덕션과의 계약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결국 함부르크에서 마지막 녹음 세션을 갖는 조건으로 한 달 일찍 계약을 종료하는 협상을 성사시켰다.[15] 1962년 4월, 비틀즈가 독일에 돌아왔을 때, 슬픔에 잠긴 아스트리드 키르히허가 공항에서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전날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16] 엡스타인은 음반 계약을 위해 음반사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영국 음반 계약을 확보하기 위해 엡스타인은 토니 셰리던의 백킹 녹음을 더 하는 대신 폴리도르와의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는 협상을 했다.[17] 신년 첫날 오디션 후, 데카 레코드는 "기타 그룹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엡스타인 씨"라고 말하며 비틀즈를 거절했다.[18] 그러나 석 달 후,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비틀즈를 EMI팔로폰 레이블에 영입했다.[16]

마틴이 비틀즈와 함께한 첫 녹음 세션은 런던의 EMI 녹음 스튜디오에서 1962년 6월 6일에 열렸다.[19] 마틴은 즉시 엡스타인에게 피트 베스트의 드럼 연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그의 자리에 세션 드러머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20] 이미 베스트의 해고를 고려하고 있던[21] 비틀즈는 8월 중순에 그를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스를 떠나 비틀즈에 합류한 링고 스타로 교체했다.[19] 1962년 9월 4일 EMI에서 진행된 세션에서 스타가 드럼을 연주한 〈Love Me Do〉 녹음이 이루어졌지만, 만족하지 못한 마틴은 일주일 후 밴드의 세 번째 세션을 위해 드러머 앤디 화이트를 고용했고, 이 세션에서 〈Love Me Do〉, 〈Please Please Me〉, 〈P.S. I Love You〉 녹음이 이루어졌다.[19]

마틴은 처음에 밴드의 첫 번째 싱글로 스타 버전의 〈Love Me Do〉를 선택했지만, 이후 재발매에서는 스타가 탬버린을 연주한 화이트 버전이 사용되었다.[19] 1962년 10월 초에 발매된 〈Love Me Do〉는 ''레코드 리테일러'' 차트에서 17위에 올랐다.[22] 그들의 텔레비전 데뷔는 그달 말 지역 뉴스 프로그램 ''피플 앤 플레이시스''에서 라이브 공연으로 이루어졌다.[23] 마틴이 〈Please Please Me〉를 더 빠른 속도로 재녹음할 것을 제안한 후,[24] 1962년 11월 말 스튜디오 세션에서 그 녹음이 이루어졌고,[25] 마틴은 "여러분은 방금 첫 번째 1위곡을 만들었습니다"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26]

1962년 12월, 비틀즈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함부르크 레지던시를 마쳤다.[27] 1963년까지 그들은 스타를 포함한 네 명의 밴드 멤버 모두가 제한적인 보컬 범위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 그의 입지를 인정하기 위해 앨범에 보컬을 기여하기로 합의했다.[28] 존 레논폴 매카트니작곡 파트너십을 맺었고, 밴드의 성공이 커짐에 따라 그들의 주도적인 협업은 조지 해리슨리드 보컬 기회를 제한했다.[29] 비틀즈의 상업적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엡스타인은 그들에게 공연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도록 격려했다.[30] 레논은 그가 "봐, 정말 더 큰 곳에 들어가고 싶다면, 바뀌어야 해 – 무대에서 먹는 것을 멈추고, 욕설을 멈추고, 담배를 끊고…"라고 말한 것을 회상했다.[18]

2. 1. 3. EMI와의 첫 녹음

1962년 10월 데뷔 당시 비틀즈는 기타 2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1961년 기타 3대, 베이스, 드럼 편성으로 진행된 두 번째 함부르크 순회 공연 종료 후, 베이스 담당이었던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탈퇴하고, 기타 담당이었던 폴 매카트니가 베이스로 전향하면서 확립된 것이다. 데뷔 직전인 1962년 8월에는 드러머가 피트 베스트에서 링고 스타로 교체되었고, 이 구성은 해산 시기까지 이어졌다. 처음 두 장의 음반은 2트랙 레코더로만 녹음되었으며, 원칙적으로 이 구성으로 한 번에 녹음을 진행했다. 세 번째 음반인 하드 데이즈 나이트부터 4트랙이 도입되어 멀티 레코딩이 가능해졌지만, 바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다섯 번째 음반 헬프! 녹음부터 "드럼·베이스·리듬 기타", "리드 기타", "보컬" 순으로 녹음하는 경우가 늘었다.[155]

2. 2. 1963–1966: 비틀마니아와 투어 시대

1962년 12월 함부르크 공연 이후 처음으로, 1963년 10월에 비틀즈는 5일간의 스웨덴 투어를 떠났다. 영국으로 돌아온 10월 31일, 히스로 공항에는 폭우 속에서도 수백 명의 팬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들을 맞이했다. 약 50~100명의 기자와 사진작가, BBC 대표도 공항 환영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는 앞으로 100건이 넘는 유사한 행사 중 첫 번째였다.[92] 다음 날, 비틀즈는 9개월 만에 네 번째 영국 투어를 시작했으며, 이 투어는 6주간 예정되었다.[127] 1963년 11월 중순, 비틀마니아가 심화됨에 따라 경찰은 플리머스에서 열린 콘서트 전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고압 살수기를 사용했다.[184]

1963년 2월 11일, 비틀즈는 데뷔 음반 《Please Please Me》를 위해 단 한 번의 스튜디오 세션에서 10곡을 녹음했다. 여기에는 이미 싱글로 발표된 4곡이 포함되었다. 원래 캐번 클럽에서 라이브로 음반을 녹음하려 했으나, 건물 상태가 부적합하여 "애비 로드에서 단 한 번의 마라톤 세션"으로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라이브 음반을 흉내 내기로 결정했다.[147] 〈Love Me Do〉의 미지근한 성공 이후, 싱글 〈Please Please Me〉는 앨범보다 두 달 앞선 1963년 1월에 발매되어, 레코드 리테일러 차트를 제외한 모든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88]

올뮤직스티븐 토마스 얼와인은 "비틀즈가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 서둘러 하루 만에 《Please Please Me》를 만들었다"라고 회상하며, "발매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앨범은 그 강렬한 기원 때문에 여전히 신선하게 들립니다."라고 썼다.[296] 존 레논은 당시 작곡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폴 매카트니와 함께 "단지 에벌리 브라더스 식으로, 버디 홀리 식으로, 그 이상의 생각 없이 그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팝송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사는 거의 무관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129]

1963년 3월에 발매된 《Please Please Me》는 영국에서 발매된 비틀즈의 11장의 연속 1위 앨범 중 첫 번째 앨범이다.[90] 4월에 발매된 세 번째 싱글 〈From Me to You〉는 이후 6년간 18장의 싱글 중 17장이 1위에 오르는 기록의 시작점이 되었다.[89] 8월에 발매된 네 번째 싱글 〈She Loves You〉는 4주 만에 75만 장을 판매하며 영국에서 가장 빠른 판매량을 기록했다.[159] 이 싱글은 비틀즈의 첫 백만 장 판매 싱글이 되었으며, 1978년까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레코드로 남았다.

이러한 성공은 언론의 주목을 증가시켰고, 비틀즈는 당시 팝 음악가들의 기대를 거스르는 경솔하고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반응하여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166] 밴드는 상반기에 영국을 세 번 순회했다. 2월에 시작된 4주간의 투어(비틀즈의 첫 전국 투어)는 3월과 5월-6월의 3주간 투어에 앞서 진행되었다.[90] 그들의 인기가 확산됨에 따라 그룹에 대한 열광적인 찬사가 이어졌고, 언론은 이를 "비틀마니아"라고 칭했다. 2월 공연에서 비틀즈는 미국 가수 토미 로와 크리스 몬테즈를 압도했고, "관객의 요구"에 따라 최고 출연자로 자리매김했는데, 이는 미국 출신 아티스트와 투어를 하는 동안 영국 아티스트가 이전에 달성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88] 5월-6월 로이 오비슨과의 투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90]

《Please Please Me》는 30주 동안 레코드 리테일러 차트에서 정상을 유지했지만, 후속 작품인 《With the Beatles》에 자리를 내주었다.[90] EMI는 11월 22일 27만 장의 사전 주문을 기록하며 이 LP를 발매했고, 일주일 만에 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93] 7월부터 10월 사이에 녹음된 《With the Beatles》는 이전 작품보다 스튜디오 제작 기법을 더 잘 활용했다.[187] 이 앨범은 40주 동안 차트에 머물며 21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스티븐 토마스 얼와인은 이 LP를 "최고 수준의 속편, 원작보다 나은 작품"이라고 묘사했다.[297]

당시 표준 관행과는 반대로, EMI는 싱글의 판매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당 곡을 제외하고 〈I Want to Hold Your Hand〉 싱글 발매에 앞서 앨범을 발매했다.[187] 이 앨범은 《타임스》의 음악 평론가 윌리엄 맨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는 레논과 매카트니가 "1963년 가장 뛰어난 영국 작곡가"라고 말했다.[187] 이 신문은 만이 음악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공하는 일련의 기사를 발표하여 음악에 대한 존중을 더했다. 《With the Beatles》는 영국 차트 역사상 두 번째로 백만 장 판매를 기록한 앨범이 되었으며, 이는 이전에는 1958년 《사우스 퍼시픽》 사운드트랙에서만 달성했던 수치이다. 이 앨범의 앨범 속지를 작성하면서 밴드의 홍보 담당자였던 토니 배로는 최고 수준의 "멋진 4인조"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언론은 이를 "팹 포(Fab Four)"로 널리 사용했다.

2. 2. 1. 《Please Please Me》, 《With the Beatles》

EMI의 미국 자회사인 캐피틀 레코드는 비틀즈의 첫 세 싱글을 포함한 음악 발매를 거부하면서 미국 진출을 막았다. 1963년, 미국의 독립 음반사인 비제이 레코드와 협상하여 일부 곡을 발표했지만, 경영진 개혁과 로열티 미지급 문제로 계약이 무효화되었다.[298] 이후 스완 레코드에서 싱글 〈She Loves You〉를 발표했지만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298]

1964년 2월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비틀즈


브라운 메그스에게 〈I Want to Hold Your Hand〉 데모를 건넨 후, 40000USD 규모의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1963년 12월 중순부터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298] 워싱턴 DC의 라디오 방송국 WWDC에서 처음 송출된 후, 1963년 12월 26일 발매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백만 장 이상 판매되며 1964년 1월 중순 1위를 차지했다.[298] 이후 비제이와 캐피틀에서 각각 《Introducing... The Beatles》와 《Meet the Beatles!》를 발표하고, 스완에서는 〈She Loves You〉를 다시 발매했다.[298]

1964년 2월 《에드 설리번 쇼》에서 공연하는 비틀즈


1964년 2월 7일, 비틀즈는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3,000여 명의 환영을 받았다.[298] 이틀 후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7,3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 인구의 34%에 해당하며,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 수였다.[298] 다음 날 워싱턴 콜리시엄에서 첫 미국 콘서트를 열었고, 카네기 홀에서 2회 공연을 했다.[298] 이후 플로리다에서 《에드 설리번 쇼》에 다시 출연한 후, 1964년 2월 22일 영국으로 돌아왔다.[298]

2. 2. 2. 첫 방미와 브리티시 인베이전

1963년 내내 캐피톨 레코드의 비틀즈에 대한 무관심은 계속되었고, 경쟁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는 자사 영화 부문을 통해 비틀즈와 3편의 영화 제작 계약을 제안했다. 이는 주로 미국 시장에서 사운드트랙의 상업적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1964년 3월부터 4월까지 6주 동안 비틀즈는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어 하드 데이즈 나이트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뮤지컬 코미디 장르로, 7월 런던, 8월 뉴욕에서 각각 개봉되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비틀즈를 마르크스 형제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북미 시장을 위해 비틀즈의 노래와 조지 마틴의 오케스트라 악보를 결합한 완전한 사운드트랙 음반을 발매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룹의 세 번째 스튜디오 음반인 어 하드 데이즈 나이트가 1면에는 영화 수록곡을, 2면에는 다른 신곡들을 담아 발매되었다.[47] 얼와인에 따르면, 이 음반은 비틀즈가 "밴드로서 진정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초기 두 음반에 있던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영향들이 밝고 즐겁고 독창적인 사운드로 합쳐졌고, 울리는 기타와 매력적인 멜로디로 가득 차 있었다고 평가했다.[12] 여기서 "울리는 기타" 사운드는 주로 조지 해리슨이 사용한 12현 리켄배커 전기 기타(제조사로부터 받은 시제품)에서 나온 것이었고, 이 기타는 이 음반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286]

2. 2. 3. 《A Hard Day's Night》

1964년 네덜란드 TV에서 공연하는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존 레논
1964년 네덜란드 TV에서 공연하는 매카트니, 해리슨, 레논


1964년 6월과 7월, 비틀즈는 국제 순회공연을 펼쳐 덴마크, 네덜란드, 홍콩,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27일 동안 37회의 공연을 가졌다.[303] 8월과 9월에는 미국으로 돌아와 23개 도시에서 30회 공연을 했다.[304] 이 투어는 다시 한번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켜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각 도시에서 30분 공연에 1만 명에서 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303]

8월, 기자 알 아로노위츠는 비틀즈와 밥 딜런의 만남을 주선했다.[304] 뉴욕 호텔에서 비틀즈를 방문한 딜런은 그들에게 마리화나를 소개했다.[305] 이 만남은 음악적, 문화적으로 중요했는데, 이전까지 두 음악가의 팬들은 서로 다른 하위문화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딜런의 팬들은 예술적, 지적 경향과 사회적 이상주의를 가진 대학생들이었던 반면, 비틀즈의 팬들은 십대 소녀들로 상업화된 대중문화에 몰두해 있었다. 많은 포크 음악계 사람들은 비틀즈를 이상주의자가 아닌 우상숭배자로 여겼다.[304]

이 만남 이후 6개월 만에 존 레논은 딜런의 콧소리와 내성적인 보컬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6개월 후 딜런은 일렉트릭 악기를 사용하고 모드 패션을 입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포크와 록 팬들 사이의 구분은 거의 사라졌고, 비틀즈 팬들은 견해가 성숙해지고 딜런의 팬들은 새로운 청년 문화를 받아들였다.[304]

1964년 미국 투어 기간 동안, 비틀즈는 당시 미국의 인종 차별에 직면했다.[13][14] 9월 11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게이터 볼 공연이 인종차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비틀즈는 통합되지 않으면 공연을 거부했다.[13][14] 레논은 "우리는 인종차별적인 관객에게 공연한 적이 없으며, 지금부터 시작할 생각도 없습니다...차라리 출연료를 잃겠습니다."라고 말했다.[13] 시 당국은 양보하여 통합된 공연을 허용했다.[13] 비틀즈는 잭슨빌의 백인 전용 호텔 조지 워싱턴 예약도 취소했다.[14] 이후 1965년과 1966년 미국 투어에서 비틀즈는 공연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14][15]

2. 2. 4. 1964년 세계 투어, 밥 딜런과의 만남, 민권운동 참여

1964년, 비틀즈는 세계적인 투어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상업적 압박과 창작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이러한 갈등은 네 번째 앨범 《비틀즈 포 세일》에 잘 나타나 있다. 원래는 이전 앨범 《A Hard Day's Night》처럼 오리지널 곡만으로 채우려 했으나, 곡이 부족하고 투어 일정 때문에 작곡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6곡의 커버 곡을 수록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존 레논조지 해리슨LSD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적,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306] 특히 해리슨은 사이키델릭 마약 경험을 통해 명상힌두교에 심취하게 되었고, 이는 훗날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307][308] 폴 매카트니는 처음에는 LSD 복용을 꺼렸으나, 1966년에 시도한 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1965년 6월, 비틀즈는 대영제국훈장(MBE)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주로 참전 용사나 사회 지도자에게 수여되던 훈장이었기 때문에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보수적인 MBE 수훈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훈장을 반납하기도 했다.

2. 2. 5. 《Beatles for Sale》, 《Help!》, 《Rubber Soul》

Beatles for Sale영어은 비틀즈의 네 번째 정규 음반으로, 전 세계적인 성공에 따른 상업적 압박과 창작적 야망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26] 1964년 8월부터 10월 사이에 녹음된 이 음반[27]은 이전의 《어 하드 데이즈 나이트》처럼 오리지널 곡만 수록하려 했으나, 이전 앨범에서 거의 모든 곡을 소진했고, 계속되는 해외 순회 공연으로 작곡 활동이 어려워지자 존 레논은 "곡 수급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인정했다.[28] 결국,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의 방대한 레퍼토리에서 6곡의 커버 곡이 선택되었다. 12월 초에 발매된 이 앨범의 8곡의 오리지널 작품들은 레논-매카트니 작곡 파트너십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29]

1965년 초, 레논, 조지 해리슨과 그들의 아내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해리슨의 치과의사인 존 라일리는 그들의 커피에 LSD를 몰래 넣었다.[16] 레논은 그 경험을 "정말 무서웠지만, 환상적이었다. 한두 달 동안 꽤나 충격을 받았다."라고 묘사했다.[30] 그와 해리슨은 그 후로 마약을 정기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링고 스타는 적어도 한 번은 그들과 함께했다. 해리슨의 환각제 사용은 그가 명상과 힌두교로 나아가는 길을 격려했다. 그는 "저에게는 마치 번개와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LSD를 했을 때, 제 안에 있던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열렸고, 많은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배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것들을 드러내는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요기와 히말라야에 대한 생각들과 라비 샹카르의 음악을 모두 갖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17][18] 폴 매카트니는 처음에는 시도하기를 꺼렸지만, 결국 1966년 말에 LSD를 사용했다.[31] 그는 잡지 인터뷰에서 "제 눈을 뜨게 했고", "저를 더 낫고, 더 정직하며, 더 관용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며 LSD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비틀즈 멤버가 되었다.[32]

헬프! (영화) 미국 예고편 (뒷줄부터) 해리슨, 매카트니, 레논 그리고 (대부분 가려진) 스타


1965년 7월에는 비틀즈의 두 번째 영화인 《헬프!》가 개봉되었는데, 역시 리처드 레스터가 감독했다. "주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끊임없이 풍자한 작품"[33]으로 묘사된 이 영화는 평론가들과 밴드 모두에게 엇갈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매카트니는 "《헬프!》는 훌륭했지만 우리 영화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일종의 특별 출연자였죠. 재미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 아이디어로서는 약간 잘못된 것이었어요."라고 말했다.[34] 사운드트랙은 대부분의 곡에서 작곡과 리드 보컬을 맡은 레논이 주도했는데, 두 개의 싱글인 "헬프!"와 "티켓 투 라이드"도 포함되어 있다.[35]

비틀즈의 다섯 번째 정규 음반인 《헬프!》는 1면에 사운드트랙 곡들을, 2면에는 같은 세션에서 나온 추가 곡들을 담아 《어 하드 데이즈 나이트》를 반영했다.[36] 이 앨범에는 "액트 내추럴리"와 "디지, 미스 리지" 두 곡의 커버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리지널 음악이 수록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렛 잇 비》의 리버풀 민요 "매기 메이"의 짧은 연주까지 밴드가 앨범에 커버곡을 포함시킨 마지막 경우였다.[37] 밴드는 《헬프!》에서 보컬 오버더빙을 확장하고, 팝 발라드 "예스터데이"에 현악 사중주를 포함하는 등 일부 편곡에 클래식 악기를 통합했다.[38] 매카트니가 작곡하고 노래했으며[39] 다른 비틀즈 멤버는 녹음에 참여하지 않았다.[40] "예스터데이"는 지금까지 작곡된 어떤 노래보다 많은 커버 버전을 만들어냈다.[19] 《헬프!》를 통해 비틀즈는 최초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오른 록 그룹이 되었다.[20]

1965년 8월 기자 회견에서 비틀즈. 뉴욕의 셰이 스타디움 공연 직후 미네소타주에서 열린 기자 회견


1965년 10월 중순, 비틀즈는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앨범을 만들 때 다른 주요 약속 없이 장기간 작업한 것은 처음이었다.[41] 조지 마틴에 따르면, 그때까지 "우리는 싱글 곡들의 모음과 같은 앨범을 만들어왔다. 이제 우리는 앨범을 독립적인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42] 12월에 발매된 《러버 소울》은 비평가들로부터 밴드 음악의 성숙도와 복잡성에서 중대한 발전으로 극찬을 받았다.[24] 그들의 주제적 범위는 로맨스와 철학의 더 깊은 측면을 받아들이면서 확장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NEMS 임원인 피터 브라운이 밴드 멤버들의 "이제는 습관적인 마리화나 사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43] 레논은 《러버 소울》을 "대마 앨범"이라고 언급했고[44] 스타는 "대마초는 우리의 많은 변화, 특히 작곡가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르게 연주했습니다."라고 말했다.[45] 《헬프!》의 플루트와 현악기 사용에 이어, "노르웨이안 우드"에서 해리슨이 시타르를 도입한 것은 대중 음악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선 또 다른 발전을 의미했다. 가사가 더욱 예술적으로 되면서 팬들은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46]

《러버 소울》의 일부 노래는 레논과 매카트니의 공동 작곡의 결과였지만,[47] 이 앨범에는 각자의 독특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고,[48] 그들은 공식적으로 계속해서 공동 크레딧을 사용했다. 각자가 나중에 주도적인 작곡가라고 주장했던 "인 마이 라이프"는 레논-매카트니 전체 작품 목록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진다.[49] 해리슨은 《러버 소울》을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라고 했고,[50] 스타는 그것을 "이탈의 앨범"이라고 불렀다.[51] 매카트니는 "우리는 귀여운 시대를 보냈고, 이제는 확장할 때"라고 말했다.[52] 그러나 녹음 엔지니어인 노먼 스미스는 나중에 스튜디오 세션에서 그룹 내 갈등의 징후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존과 폴 사이의 충돌이 명백해지고 있었다"고 적었고, "폴의 관점에서 볼 때, 조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53]

2. 2. 6. 논란과 마지막 투어, 《Revolver》

존 레논은 1957년에 스키플 밴드 "쿼리맨"을 결성했다. 이후 밴드 이름을 여러 번 바꾸었고, 비틀즈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까지 멤버 교체가 잦았다. 비틀즈로 활동한 멤버는 총 6명이다.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는 1960년 1월에 합류하여 베이스를 담당했으나, 1961년 함부르크 순회 공연 후 밴드를 탈퇴했고 1962년 4월 10일 2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베스트는 1960년 8월 첫 함부르크 순회 공연 직전에 드럼 담당으로 합류했지만, 1962년 8월 16일에 해고되었다. 링고 스타는 1962년 8월 18일에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즈"에서 비틀즈로 합류했다.[154]

비틀즈의 자작곡은 모두 멤버들이 작사, 작곡했으며, "레논=매카트니" 명의로 발표된 곡이 가장 많다. 비틀즈 곡 213곡 중 144곡이 이 명의로 발표되었다. 그 외에도 "매카트니=레논" 명의의 8곡, "존 레논 앤드 폴 매카트니" 명의의 13곡[169], 조지 해리슨의 22곡, 링고 스타의 2곡, 레논=매카트니와 스타의 공동 작품 1곡, 전원 공동 작품 2곡이 있다. 미발표곡집 『비틀즈 안솔로지』에는 레논과 해리슨, 매카트니와 해리슨의 공동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2. 3. 1966–1970: 스튜디오 시대

비틀즈는 투어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1966년 11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녹음을 시작하면서부터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315] 엔지니어 제프 에머릭에 따르면 이 앨범의 제작에는 총 700시간이 소모되었다고 한다.[316] 에머릭은 비틀즈가 "《Sgt. Pepper》의 모든 것은 달라야만 했다"고 고집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금관악기의 벨 부분에 마이크를 바로 얹어놓았고, 헤드폰을 마이크로폰으로 삼아 바이올린에 붙였답니다. 우리는 거대한 원시발진기를 이용하여 악기와 보컬의 속도를 달리하였고, 테이프를 조각조각내어 거꾸로 붙이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붙이거나 했어요."[312]A Day in the Life〉의 녹음에서는 40인조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었다.[312]

이 세션에서는 1967년 2월에 발표된 앨범에 속하지 않는 더블 A사이드 싱글 〈Strawberry Fields Forever〉/〈Penny Lane〉을 먼저 제작했으며,[313] 《Sgt. Pepper》는 1967년 5월에 발표되었다.[25] 비교적 원시적인 4트랙 레코딩 시스템을 사용하여 창조해낸 이 앨범의 복잡함에 당대의 아티스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317] 음악 평론가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이 앨범을 호평했다.[24]

《Sgt. Pepper》가 발표되고 나서 언더그라운드 및 주류 언론에서는 비틀즈를 청년문화의 리더로서 포장했으며, "라이프스타일의 혁명가"라고도 칭했다.[157] 이 앨범은 전곡의 가사가 팝/록 앨범에 수록된 최초의 앨범인데, 이 가사는 뒷 커버에 쓰여 있었다.[236][96] 앨범의 수록곡은 비평적 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318] 비틀즈가 공들인 커버 역시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319] 팝 아티스트 피터 블레이크와 잰 하워스가 디자인한 이 콜라주는 비틀즈를 타이틀 트랙과 동명의 가상의 밴드로 분장해놓고[312] 여러 유명인들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연출해냈다.[320] 비틀즈가 기른 덥수룩한 콧수염은 히피 문화에 대한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며,[236] 문화역사학자 조너선 해리스는 이들의 "밝은 컬러로 패러디된 군복"은 의도적인 "반독재 및 반체제적" 표시라고 설명했다.[321]

《Sgt. Pepper》는 23주간 연이어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1968년 2월 다시금 4주간 1위를 달성하였다.[317] 발표 3개월만에 250만 장이 팔려나갔으며,[147] 《Sgt. Pepper》의 초기판매기록은 비틀즈의 어느 앨범과 견주어도 넘어서지 못하는 기록이다.[322] 이 앨범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며 여러 판매기록을 경신하고 있다.[318] 2003년 롤링 스톤은 《Sgt. Pepper》를 역대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다.[314]

이후의 내용은 《Magical Mystery Tour》, 《Yellow Submarine》, 인도에서의 수행, 애플 코어와 화이트 앨범, 《Abbey Road》, 《Let It Be》, 해산 섹션을 참조하라.

2. 3. 1.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즈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완성하고 몇 주 뒤, 두 편의 영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하나는 1시간짜리 TV 영화인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였고, 다른 하나는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옐로우 서브마린이었다.[29] 1967년 4월 말, 비틀즈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의 음악 녹음을 시작했지만, 《옐로우 서브마린》의 곡 녹음에 집중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잠시 중단되었다.[30]

같은 해 6월 25일, 비틀즈는 최초의 라이브 글로벌 TV 연결 방송인 우리의 세계에서 약 3억 5천만 명의 시청자에게 곧 발매될 싱글 "All You Need Is Love"를 공연했다. 이 노래는 일주일 후 사랑의 여름에 발매되어 꽃의 힘 운동의 찬가로 채택되었다. 이 시기 비틀즈의 환각제 사용은 정점에 달했다. 7월과 8월, 비틀즈는 그리스 해안의 섬에 공동체를 설립하는 방안을 일주일간 조사하는 등 유토피아적 이념과 관련된 관심사를 추구했다.[29]

1967년 8월 24일, 비틀즈는 런던에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만났고, 다음 날 그의 초월 명상 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 뱅거로 떠났다. 8월 27일, 비틀즈는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검시관은 그의 사인을 우발적인 카르비톨 과다 복용으로 판정했지만, 자살이라는 소문도 널리 퍼졌다. 엡스타인의 죽음은 비틀즈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방향을 잃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존 레논은 "우리는 무너졌다. 그때 우리가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웠다. '이제 우리는 끝장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조지 해리슨의 당시 아내 패티 보이드는 "폴과 조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치 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9월, 비틀즈는 회의를 열고 폴 매카트니의 제안에 따라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1967년 12월 초,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의 사운드트랙이 영국에서 6곡이 수록된 더블 확장 플레이(EP) 형태로 발매되었다. 이는 영국 최초의 더블 EP였다. 이 음반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30] 비틀즈의 의도에 따라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속편이 아닌 영화 사운드트랙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포장되었다. 미국에서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와 동일한 제목의 LP 음반으로 발매되었는데, 여기에는 비틀즈의 최근 싱글 5곡이 추가로 수록되었다. 이 음반은 발매 3주 만에 캐피톨 레코드 LP 사상 최고 초기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이후 비틀즈의 정규 음반 목록에 포함된 유일한 캐피톨 컴필레이션 앨범이 되었다.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영화는 1967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TV로 방영되어 약 1,50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주로 폴 매카트니가 감독한 이 영화는 비틀즈에게 첫 비평적 실패를 안겨주었다.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명백한 쓰레기"라고 혹평했고, 데일리 메일은 "엄청난 자만심"이라고 비난했으며, 가디언은 "관객의 추함과 따뜻함, 어리석음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 도덕극"이라고 묘사했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는 이 영화를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양의 원본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시청률은 높았지만, 언론의 혹평으로 인해 미국 TV 방송국들은 이 영화의 방영에 관심을 잃었다.

비틀즈는 《옐로우 서브마린》에는 비교적 적게 관여했다. 이 영화에는 비틀즈 멤버들의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며, 짧은 실사 장면에만 비틀즈가 직접 출연했다. 1968년 7월에 개봉한 《옐로우 서브마린》은 음악, 유머, 혁신적인 비주얼 스타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영화에는 11곡의 사운드트랙이 사용되었는데, 그중 4곡은 영화를 위해 새로 녹음된 곡이었다. 7개월 후 발매된 사운드트랙 LP에는 이 4곡 외에 이미 《Revolver》에 수록되었던 타이틀곡, 싱글과 미국판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LP에 수록되었던 "All You Need Is Love", 그리고 조지 마틴이 작곡한 7곡의 연주곡이 포함되었다.

2. 3. 2. 《Magical Mystery Tour》, 《Yellow Submarine》

1968년 2월, 비틀즈는 인도의 리시케시에 있는 마하리시 마헤쉬 요기의 아슈람에서 3개월간 명상 "가이드 코스"를 받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인도에서의 시간은 밴드가 가장 많은 곡을 만든 시기 중 하나였으며, 다음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을 포함한 수많은 곡들이 만들어졌다.[319] 그러나 스타는 음식을 먹지 못해 10일 만에 떠났고, 맥카트니는 결국 지루함을 느껴 한 달 후 떠났다.[320] 레논과 해리슨은 매직 알렉스라는 전자 기술자가 마하리시가 그들을 조종하려 한다고 말했을 때 창작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321] 알렉스가 마하리시가 여성 참석자들에게 성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주장하자, 레논은 설득되어 코스 시작 두 달 만에 갑자기 떠났고, 확신하지 못한 해리슨과 그룹의 나머지 수행원들을 데리고 갔다.[320] 분노한 레논은 "마하리시"라는 제목의 신랄한 노래를 썼지만, 잠재적인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섹시 세이디"로 제목을 바꿨다. 맥카트니는 "우리는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더 많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321]

5월, 레논과 맥카트니는 비틀즈의 새로운 사업인 애플 코퍼스(Apple Corps)를 공개 발표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322] 애플 코퍼스는 몇 달 전 세금 효율적인 사업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처음 설립되었지만, 밴드는 레코드 유통, 평화 운동, 교육을 포함한 다른 사업으로 회사를 확장하고자 했다.[323] 맥카트니는 애플을 "서구 공산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다.[323] 이 기업은 비틀즈 수행원들의 대부분이 재능과 경험에 관계없이 일자리를 얻은 일련의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해 재정적으로 그룹을 고갈시켰다. 수많은 자회사 중에는 매직 알렉스가 이끄는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애플 일렉트로닉스(Apple Electronics)와 런던에 단명한 애플 부티크(Apple Boutique)를 연 애플 리테일링이 있었다. 해리슨은 나중에 "기본적으로 혼돈이었습니다... 존과 폴은 그 아이디어에 휩쓸려 수백만 달러를 날렸고, 링고와 저는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323]

비틀즈의 1968년 자체 제목 앨범,


1968년 5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그룹은 "화이트 앨범"으로 널리 알려진 더블 LP인 ''비틀즈''를 녹음했다. 이 기간 동안 멤버들 간의 관계는 악화되어, 스타는 2주 동안 그만두었고, 밴드 동료들은 맥카트니가 드럼을 대신 연주하면서 "소련으로 돌아가다"와 "디어 프루던스"를 트리오로 녹음했다. 레논은 맥카트니와의 협업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맥카트니의 "옵-라-디, 옵-라-다"를 "할머니 음악 쓰레기"라고 비웃었다. 레논이 그룹의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요코 오노를 세션에 데려오면서 긴장은 더욱 악화되었다. 맥카트니는 이 앨범을 "만들기 즐거운 앨범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와 레논은 이 세션을 밴드 해체의 시작으로 여겼다.

이 앨범에서 밴드는 더 넓은 범위의 음악 스타일을 시도했으며, 각 음악을 선택한 장르에 충실하게 유지함으로써 한 곡에 여러 음악 스타일을 통합하는 최근의 전통을 깨뜨렸다.[31] 세션 중에 그룹은 8트랙 테이프 콘솔로 업그레이드되어 트랙을 조각조각 겹치기가 더 쉬워졌고, 멤버들은 종종 서로 독립적으로 녹음하여 통일된 그룹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솔로 녹음의 모음으로서의 평판을 얻었다. 더블 앨범을 설명하면서 레논은 "모든 트랙은 개별 트랙입니다. 비틀즈 음악은 없습니다. [그것은] 존과 밴드, 폴과 밴드, 조지와 밴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세션에서는 비틀즈의 가장 긴 노래인 "헤이 주드"도 제작되었는데, 8월에 "레볼루션"과 함께 비앨범 싱글로 발매되었다.

11월에 발매된 화이트 앨범은 EMI가 계속해서 녹음을 소유했지만, 밴드의 첫 번째 애플 레코드(Apple Records) 앨범 발매였다. 이 레코드는 200만 장 이상의 사전 주문을 받았고,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미국에서 거의 400만 장이 판매되었으며, 그 트랙들은 미국 라디오 방송국의 재생 목록을 장악했다. 그 가사 내용은 반문화에 의해 많은 분석의 초점이 되었다.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은 앨범의 내용에 대해 크게 혼란스러워했고, ''세인트 페퍼''만큼의 비평적 글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2. 3. 3. 인도에서의 수행, 애플 코어와 화이트 앨범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은 《Let It Be》였지만, 대부분 《Abbey Road》 이전에 녹음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카트니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새로운 곡들을 모아 연습한 다음, 처음으로 라이브 관객 앞에서 공연을 녹음하고 영화로 제작하자"고 제안했다.[319] 원래는 《비틀즈 앳 워크》라는 1시간짜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위한 것이었지만, 1969년 1월부터 시작된 스튜디오 작업에서 많은 부분이 나왔고, 그중 수많은 시간이 감독 마이클 린드세이호그에 의해 필름으로 담겼다.[319][320] 마틴은 이 프로젝트가 "결코 행복한 녹음 경험이 아니었다. 비틀즈의 관계가 최악이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319] 레논은 대부분 즉흥적인 세션을 "지옥…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경험이라고 묘사했고, 해리슨은 "인생 최악의 순간"이라고 했다.[321]

맥카트니와 레논에게 짜증이 난 해리슨은 5일 동안 녹음을 거부했다. 돌아온 후 그는 "라이브 공연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버리고" 대신 TV 특집을 위해 녹음된 곡들을 사용하여 《겟 백》이라는 제목의 새 음반을 완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20] 그는 또한 세션이 시작된 트위크넘 영화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을 중단하고 새로 완공된 애플 스튜디오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밴드 멤버들은 동의했고, TV 제작을 위해 촬영된 영상을 장편 영화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320]

1971년 미국의 음악가 빌리 프레스턴
미국의 소울 음악가 빌리 프레스턴 (1971년 사진)은 《겟 백》 세션 동안 잠시 동안 5번째 비틀즈로 여겨졌다.


밴드 내 긴장을 완화하고 라이브 사운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해리슨은 키보디스트 빌리 프레스턴을 마지막 9일간의 세션에 참여하도록 초청했다.[320] 프레스턴은 〈Get Back〉 싱글에서 레이블 크레딧을 받았는데, 공식 비틀즈 음반에서 그러한 인정을 받은 유일한 뮤지션이다.[322] 리허설 후, 밴드는 바다 위의 배, 정신병원, 리비아 사막, 콜로세움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거부하며 콘서트를 촬영할 장소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319] 결국 그들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은 1969년 1월 30일 런던 새빌 로 3번지 애플 코어 건물 옥상에서 촬영되었다.[320] 5주 후, 루이손이 《Get Back》의 "무명 프로듀서"로 묘사한 엔지니어 글린 존스는 밴드가 "프로젝트 전체를 거의 손에서 놓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음반 제작을 시작했다.[320]

루프톱 콘서트가 열렸던 새빌 로 3번지 애플 코어 사옥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사업을 관리하지 않게 되면서 필요성이 명확해진 재정 고문 임명 문제로 밴드 멤버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발생했다. 레논, 해리슨, 스타는 롤링 스톤스샘 쿡을 관리했던 앨런 클라인을 지지했고,[323] 맥카트니는 1969년 3월 12일 결혼한 린다 이스트먼의 아버지와 오빠인 리와 존 이스트먼을 원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클라인과 이스트먼은 모두 임시로 임명되었다. 클라인은 비틀즈의 사업 관리자로, 이스트먼은 변호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더 큰 갈등이 계속되었고 재정적 기회가 사라졌다.[323] 1969년 5월 8일 클라인은 이스트먼이 비틀즈의 변호사직에서 해임된 후 밴드의 단독 매니저로 임명되었다. 맥카트니는 클라인과의 매니지먼트 계약에 서명을 거부했지만 다른 비틀즈 멤버들의 반대로 압도되었다.

마틴은 《Get Back》 세션이 "비참한 경험"이었고 "모두에게 끝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맥카트니가 자신에게 다른 음반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Abbey Road》의 주요 녹음 세션은 1969년 7월 2일에 시작되었다. 마틴이 제안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음악" 형식을 거부한 레논은 자신과 맥카트니의 곡이 음반의 각 면을 차지하기를 원했다. 결국 각자 작곡한 곡들이 1면에, 2면은 주로 메들리로 구성된 형식은 맥카트니가 제안한 타협안이었다. 에머릭은 스튜디오의 진공관 기반 믹싱 콘솔이 트랜지스터식 콘솔로 교체되면서 펀치감 있는 사운드가 줄어들어 그룹이 얇은 음색과 임팩트 부족에 실망하고 이전 음반에 비해 "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1969년 7월 4일 비틀즈 멤버 중 최초의 솔로 싱글인 레논의 〈Give Peace a Chance〉가 플라스틱 오노 밴드 명의로 발매되었다. 1969년 8월 20일 〈I Want You (She's So Heavy)〉의 완성과 믹싱은 네 명의 비틀즈가 같은 스튜디오에 함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1969년 9월 8일 스타가 병원에 있는 동안 다른 밴드 멤버들은 새 음반 녹음에 대해 논의했다. 그들은 레논-매카트니 명의를 끝내고 레논, 맥카트니, 해리슨 각각 4곡씩, 스타 2곡, 그리고 크리스마스 즈음 발매할 리드 싱글을 갖는 등 작곡 방식을 다르게 할 것을 고려했다.[321] 1969년 9월 20일 레논은 나머지 멤버들에게 탈퇴를 발표했지만, 다가오는 음반의 판매를 저해하지 않기 위해 공개 발표를 보류하기로 합의했다.

1969년 9월 26일에 발매된 《Abbey Road》는 3개월 만에 400만달러 장이 팔렸고, 영국 차트에서 총 17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 곡인 발라드 〈Something〉이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이는 비틀즈의 A면에 실린 유일한 해리슨 작곡 곡이다. 《Abbey Road》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메들리는 일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운터버거는 이를 "그룹을 위한 적절한 마지막 노래"로 간주하며, "어떤 록 음반에서도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하모니 중 일부"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322] 음악학자이자 작가인 이언 맥도널드는 메들리가 제공하는 "통일성과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을 "불규칙하고 종종 공허하다"라고 평가했다. 마틴은 이 음반을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 음반으로 꼽았지만, 레논은 "능숙하지만 활기가 없다"고 말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Get Back》 음반을 위해 해리슨의 마지막 곡인 〈I Me Mine〉이 1970년 1월 3일에 녹음되었다. 당시 덴마크에 있던 레논은 참여하지 않았다. 1970년 3월에 존스가 《Let It Be》로 개명된 프로젝트에서 작업한 것을 거부한 클라인은 세션 테이프를 최근 레논의 솔로 싱글 〈Instant Karma!〉을 제작한 미국 프로듀서 필 스펙터에게 넘겼다. 스펙터는 음악을 리믹싱하는 것 외에도 "라이브"로 의도되었던 여러 녹음을 편집하고, 이어 붙이고, 오버더빙했다. 맥카트니는 프로듀서의 접근 방식에 불만을 느꼈고, 특히 14명의 합창단과 36명의 악기 연주자를 포함한 호화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이 사용된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특히 불만을 표했다. 맥카트니가 곡의 변경을 되돌릴 것을 요구했지만 무시되었고, 그는 첫 번째 자작 솔로 음반 발매 1주일 전인 1970년 4월 10일에 밴드에서 탈퇴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1970년 5월 8일 《Let It Be》가 발매되었다. 이 음반의 싱글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비틀즈의 마지막 곡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미국에서는 발매되었지만 영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그달 말 《렛 잇 비》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고, 1970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평론가 페넬로페 질리엣은 이 영화를 "매우 나쁜 영화이자 감동적인 영화… 이 안심이 되고 기하학적으로 완벽하며, 한때 불멸의 형제 자매 가족의 해체에 관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여러 평론가들은 영화 속 일부 공연이 음반 트랙보다 더 좋다고 말했다. 운터버거는 《Let It Be》를 "비틀즈 음반 중 유일하게 부정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평가를 받은 음반"으로 묘사하며, "전반적으로 과소평가되었다"고 말했고, 〈I've Got a Feeling〉과 〈Dig a Pony〉의 훌륭한 하드록 순간들"과 〈Let It Be〉, 〈Get Back〉, 그리고 존과 폴이 함께 하모니를 이룬 "포크풍의 〈Two of Us〉"를 칭찬했다.[323]

맥카트니는 1970년 12월 31일 비틀즈 계약 파트너십 해산 소송을 제기했다. 해체 후에도 오랫동안 법적 분쟁이 계속되었고, 1974년 12월 29일 레논이 플로리다주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내는 동안 파트너십을 종료하는 서류에 서명하면서 해산이 공식화되었다.

2. 3. 4. 《Abbey Road》, 《Let It Be》, 해산

1980년 존 레논은 뉴욕의 집 근처에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정신병자에게 암살당해 세상을 떠났다. 1995년 시작된 《비틀즈 앤솔로지》 기획에 맞춰 존 레논이 1977년 녹음한 미완성곡 〈Free As A Bird〉의 데모 테이프에 남은 세 멤버가 연주와 코러스를 덧입혀 비틀즈의 신곡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유일한 재결성이 되었으며, 다음 해 레논의 솔로 곡인 〈Real Love〉도 1996년에 같은 형식으로 제작하여 비틀즈 버전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2001년 조지 해리슨이 폐암으로 사망해서 더 이상의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2000년에는 영국 및 미국에서 음악 차트 1위를 한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1》을 발매, 1주일 만에 360만 장을 판매하여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3000만 장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3년에는 《Let It Be》 음반을 리믹스하고 보너스 디스크 〈Fly on the Wall〉을 추가한 《Let It Be... Naked》를 발매했다.

2006년에는 《태양의 서커스》 배경곡으로 사용된 악곡을 모은 《LOVE》를 발매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비틀즈 자신이 출연하지 않은 매체의 배경 음악으로 비틀즈의 원곡이 사용된 최초의 사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지 마틴과 그의 아들 가일스 마틴이 공동 제작했다.

2. 4. 1970–현재: 해체 이후

레논, 매카트니, 해리슨, 스타는 1970년에 모두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이들의 솔로 음반에는 다른 멤버 한 명 이상이 참여하기도 했다.[35][36] 스타의 《링고》(1973)는 네 명의 전 비틀즈 멤버 모두가 작곡과 연주에 참여한 유일한 앨범이었다. 1971년 8월, 해리슨은 뉴욕에서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를 개최했다.[38][39] 1974년 미발매 재즈 세션(《A Toot and a Snore in '74》)을 제외하고 레논과 매카트니는 다시는 함께 녹음하지 않았다.[154]

1973년, 애플 레코드에서 더블 LP 세트 《1962–1966》과 《1967–1970》가 발매되었다. Red Album영어, Blue Album영어으로 알려진 이 앨범들은 미국에서 멀티 플래티넘 인증을, 영국에서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1976년부터 1982년 사이에 EMI/캐피톨은 《록 앤 롤 뮤직》을 시작으로 많은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할리우드 볼에서의 비틀즈》(1977)는 그룹의 1964년과 1965년 미국 투어 중 두 공연을 담은 콘서트 녹음이었다.

1974년 4월, 런던에서 뮤지컬 《존, 폴, 조지, 링고 ... 그리고 버트》가 개막했다. 여기에는 레논-매카트니 작곡 11곡과 해리슨의 "히어 컴스 더 선"이 포함되었다. 해리슨은 자신의 노래 사용 방식에 불만을 품고 사용 허가를 철회했다. 같은 해 후반에는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길 위의 서전트 페퍼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가 개막했다.[37] 《이 모든 것과 2차 세계 대전》(1976)은 뉴스릴 영상과 여러 연주자들이 부른 비틀즈 노래 커버를 결합한 영화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비틀매니아》는 1977년에 개막하여 인기를 얻었다. 1979년, 밴드는 제작자들을 고소하여 수백만 달러의 손해 배상을 받았다. 《서전트 페퍼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1978)는 상업적, 예술적으로 실패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비틀즈 재결합 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사업가들이 비틀즈에게 재결합 콘서트 제안을 했다. 프로모터 빌 사전트는 1974년 비틀즈에게 1000만달러를 제안했고, 1976년에는 5000만달러까지 제안 금액을 인상했다.[151][152][153] 1976년 4월 24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방송 중 제작자 로른 마이클스는 비틀즈에게 3000USD를 제안하며 재결합을 제안했다. 레논과 매카트니는 NBC 스튜디오 근처 레논의 아파트에서 이 방송을 보고 있었고, 스튜디오에 가서 마이클스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생각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80년 12월 8일, 레넌이 뉴욕 자택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200][201] 1981년, 해리슨은 레넌 추모곡 "모두가 지나간 날들"을 발표했는데, 스타가 드럼을 연주했고, 매카트니가 코러스로 참여했다.[202]

1987년, 비틀즈의 작품이 CD로 발매되었다.[224] 같은 해, "레논-매카트니"가 미국의 ""에 선정되었다.[225]

1995년, 《비틀즈 앤솔로지 (The Beatles Anthology)》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컴필레이션 음반 《비틀즈 앤솔로지 1 (The Beatles Anthology 1)》이 발매되었다. 이 음반에는 존 레논의 미발표 데모 음원을 바탕으로 제작된 신곡 "프리 애즈 어 버드 (Free as a Bird)" 등이 수록되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226][227] 1996년에는 《비틀즈 앤솔로지 2 (The Beatles Anthology 2)》, 《비틀즈 앤솔로지 3 (The Beatles Anthology 3)》이 발매되었다.

1999년, 애니메이션 영화 《옐로우 서브마린》의 DVD가 재발매되었고, 영화에 사용된 음악에 리믹스 등을 가미한 앨범 《옐로우 서브마린 송트랙 (Yellow Submarine Songtrack)》이 발매되었다. 2000년, 《비틀즈 앤솔로지》 책 버전이 출판되었고, 베스트 앨범 《비틀즈 1》이 발매되어 전 세계 34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1년 11월 29일, 해리슨이 뇌종양과 폐암으로 사망했다. 2003년, 앨범 《렛 잇 비...네이키드》가 발매되었다.

2006년, 리믹스 앨범 《러브》가 발매되었다. 2007년, 영국에서 비틀즈의 앨범 재킷 그림을 사용한 우표가 발매되었다.[228]

2009년, 영국판 오리지널 앨범 등이 새롭게 리마스터링된 스테레오 음원으로 발매되었다. CD 박스 《비틀즈 박스》와 《비틀즈 모노 박스》도 발매되었다.[229][230] 《비틀즈 USB 박스》도 발매되었다.[231][232]

2010년, 작품의 아이튠즈(iTunes) 디지털 배포가 시작되었다. 2011년, 비틀즈 앤솔로지 리마스터 버전이 배포되었다. 2013년, 온 에어 – 라이브 앳 더 BBC Vol.2가 발매되었다. 2014년, 비틀즈 미국 방문 50주년 기념 공연이 개최되었고, 맥카트니와 스타가 함께 연주했다.[233]

2015년, 리믹스된 비틀즈 1이 뮤직 비디오 DVD 및 블루레이와 함께 재발매되었다.[234]

2016년, 비틀즈의 음악을 프로듀스했던 마틴이 사망했다. 모라(mora)에서 모든 앨범의 리마스터 버전 등이 배포되었다.

2017년,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50주년 기념 박스 세트가 발매되었다.[235]

2018년, 《비틀즈》 50주년 기념 박스 세트가 발매되었다.[236]

2019년, 《애비 로드》 50주년 기념 박스 세트가 발매되었다. 2020년, 영국 음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237]

2021년, 《렛 이트 비》 스페셜 에디션이 발매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틀즈: 겟 백》이 디즈니+에서 공개되었다.[238]

2022년, 라이브 앨범 《Get Back (The Rooftop Performance)》이 공개되었다.[239] 《ザ・ビートルズ: Get Back (Rooftop Performance)》이 IMAX 극장에서 상영되었다.[240][241]

2023년, "비틀즈의 마지막 신곡"으로 "나우 앤드 젠"이 발매되었다. 베스트 앨범 《비틀즈 1962년~1966년》, 《비틀즈 1967년~1970년》 2장이 2023년 에디션으로 재발매되었다.[242][243] "나우 앤드 젠"은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244]

3. 구성원

존 레논1957년에 스키플 밴드 "쿼리맨"을 결성했다. 그 후 밴드 이름을 조니 앤 더 문독스, 롱 존 앤 실버 비틀즈, 실버 비틀즈 등으로 바꾸었고, 비틀즈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까지 여러 멤버가 교체되었다.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멤버는 총 6명이다. 그중 2명은 1962년 10월 5일 싱글 '러브 미 두'로 데뷔하기 전에 탈퇴했다.[154]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밴드의 주요 곡들을 작곡했으며, 초창기에는 작곡면에서 큰 활약은 없었던 조지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에서 큰 공헌을 했다. 비틀즈 멤버들은 악보를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악상이 떠오르면 기타로 주 선율이나 리프를 데모 테이프에 녹음한 뒤, 멤버들이 연주하며 다듬어 완성하는 방식으로 곡을 만들었다.

'''주요 멤버'''



'''초기 멤버'''

  • 피트 베스트 – 드럼, 보컬 (1960–1962)
  • 스튜어트 섯클리프 – 베이스 기타, 보컬 (1960–1961)
  • 채스 뉴비 – 베이스 기타 (1960)
  • 노먼 채프먼 – 드럼 (1960)
  • 토미 무어 – 드럼 (1960)


'''투어에서 함께한 음악가'''

해산 당시 멤버
이름프로필담당재적 기간
존 레논
(John Lennon)
1940년 10월 9일 - 사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보컬, 리듬 기타, 리드 기타, 키보드, 하모니카, 베이스1960년 - 1969년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
출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보컬, 베이스, 리듬 기타, 리드 기타, 키보드, 드럼1960년 - 1970년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년 2월 25일[151] - 사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리드 기타, 보컬, 리듬 기타, 시타르, 키보드, 베이스1960년 - 1970년
링고 스타
(Ringo Starr)
출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드럼, 타악기, 보컬1962년 - 1970년



초기 멤버
이름프로필담당재적 기간
피트 베스트
(Pete Best)
출생
마드라스 관구 마드라스
드럼, 보컬1960년 - 1962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Stuart Sutcliffe)
1940년 6월 23일 - 사망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베이스, 보컬1960년 - 1961년
Chas Newby영어
(Chas Newby)
1941년 6월 18일 - 사망
잉글랜드 블랙풀
베이스1960년
Norman Chapman영어
(Norman Chapman)
1937년 - 1995년 7월(58세 사망)[152]드럼1960년
Tommy Moore (musician)영어
(Tommy Moore)
1931년 9월 12일 - 사망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드럼1960년



투어 당시 멤버
이름프로필담당재적 기간
Jimmie Nicol영어
(Jimmie Nicol)
출생
잉글랜드 런던
드럼1964년



멤버 4명 중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왼손잡이이다. 맥카트니는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말했다.[167][168]

4. 음악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비비 킹, 버디 홀리, 에벌리 브라더스, 리틀 리처드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존 레논은 엘비스를, 조지 해리슨은 척 베리를 높게 평가했다. 밥 딜런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는데, 딜런은 비틀즈에게 마리화나를 처음 소개해주기도 했다.

초기에는 모타운 음악의 영향도 받아 배럿 스트롱의 〈Money (That's Wat I Want)〉나 마블릿츠의 〈Please Mr. Postman〉을 커버하기도 했다. 이후 밥 딜런,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스, 비치 보이스 등 동시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비치 보이스의 앨범 ''펫 사운즈''는 비틀즈의 ''세인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라비 샹카르는 조지 해리슨의 음악적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스키플 그룹으로 시작한 비틀즈는 1950년대 로큰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머시비트 장르를 개척했으며, 이후 다양한 팝 음악을 포괄하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4. 1. 작곡 방식

이언 매커널드는 폴 매카트니를 "타고난 멜로디스트 – 조화와는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멜로디를 창조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의 멜로디 라인은 주로 "수직적"으로 특징지어지며, 넓고 협화하는 간격을 사용하여 그의 "외향적인 에너지와 낙관주의"를 표현한다. 반대로, 존 레논의 "앉아 있는 듯한, 반어적인 성격"은 최소한의 불협화음 간격과 반복적인 멜로디를 특징으로 하는 "수평적인" 접근 방식에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관심을 끌기 위해 화음 반주에 의존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자인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멜로디를 말의 리듬과 운율에 가깝게 유지했으며, 눈에 띄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멜로디를 만드는 대신 블루지한 색조와 조화로 가사에 색을 입혔다."라고 평가했다. 매커널드는 조지 해리슨의 리드 기타 연주를 레논과 매카트니의 파트를 지원하는 데 "개성 있는 라인과 질감 있는 색채"가 하는 역할에 대해 칭찬하며, 링고 스타를 "현대 팝/록 드러밍의 아버지"로 묘사한다.

월터 에버렛은 저서 "뮤지션으로서의 비틀즈"(The Beatles as Musicians)에서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대조적인 작곡 동기와 접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매카트니는 즐겁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위법 및 다른 기교적 측면에 대한 감각을 지닌 집중적인 음악적 재능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고 할 수 있으며, 그는 보편적으로 동의된 공통 언어를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반대로, 레논의 성숙한 음악은 대체로 무의식적이고, 탐구적이지만, 훈련되지 않은 예술적 감수성의 대담한 산물로 가장 잘 이해된다."

조지 마틴의 프로듀서로서의 긴밀한 참여는 그를 비공식적으로 "다섯 번째 비틀즈"라는 칭호의 주요 후보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고전 음악 교육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했고, 고울드에 따르면 진보하는 작곡가들에게 "비공식적인 음악 교사" 역할을 했다. 마틴은 회의적인 매카트니에게 "Yesterday"의 편곡에 현악 사중주 반주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여, 비틀즈에게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고전 악기의 색채의 세계"를 소개했다. 그들의 창작 개발은 특정 녹음에 "바로크적인 무언가"를 추가하는 등 마틴의 제안에 대한 실험 의지에 의해서도 촉진되었다. 마틴은 녹음을 위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작곡하는 것 외에도, 피아노, 오르간, 관악기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녹음에 참여하기도 했다.

레논과 매카트니와의 협업을 위해 마틴은 그들의 서로 다른 작곡 및 녹음 접근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맥도널드는 "[그는] 전통적으로 명료한 매카트니와 더 자연스럽게 작업했지만, 레논의 직관적인 접근 방식에 맞추는 과제는 일반적으로 그를 더 독창적인 편곡으로 이끌었으며, 그중 "비틀즈의 노래, 미스터 카이트를 위한 이익!"가 뛰어난 예입니다."라고 말한다.

해리슨은 마틴의 안정적인 역할에 대해 "우리가 그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그가 진지한 사람이고 우리가 미치광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우리의 광기를 해석해 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중 특정 날에 약간 아방가르드적이었고, 그는 엔지니어와 테이프를 통해 그것을 전달해 줄 앵커 역할을 했습니다."라고 묘사했다.

비틀즈는 녹음된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기술을 혁신적으로 활용하여 마틴과 그의 녹음 엔지니어들에게 실험을 촉구했다. 우연한 사건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우연한 기타 피드백, 공명하는 유리병, 거꾸로 로드된 테이프가 역재생되는 것 등 어떤 것이든 그들의 음악에 통합될 수 있었다. 새로운 녹음마다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마틴의 편곡 능력과 EMI 직원 엔지니어인 노먼 스미스, 켄 타운젠드, 제프 에메릭의 스튜디오 전문 지식과 결합하여 ''러버 소울''부터, 특히 ''리볼버'' 이후의 그들의 레코드에 크게 기여했다.

음향 효과와 같은 혁신적인 스튜디오 기법, 비정형 마이크 배치, 테이프 루프, 더블 트래킹, 가변 속도 녹음과 함께 비틀즈는 당시 록 음악에서는 비정형적인 악기를 노래에 추가했다. 여기에는 현악기와 금관악기 앙상블뿐만 아니라 "Norwegian Wood"의 시타르와 "Strawberry Fields Forever"의 스와만달과 같은 인도 악기가 포함된다. 그들은 또한 멜로트론과 같은 새로운 전자 악기를 사용했는데, 매카트니는 이 악기를 사용하여 "Strawberry Fields Forever" 인트로에 플루트 음색을 제공했다. 그리고 클라비올린은 "베이비, 유어 어 리치 맨"에서 특이한 오보에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전자 키보드였다.

비틀즈의 레퍼토리는 자작곡과 기존 록·팝스곡 커버곡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활동 기간 중 영국에서 발매된 22장의 싱글은 모두 멤버들의 자작곡이다. 척 베리 등 자작곡을 직접 연주하는 록 뮤지션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1962년경 음악 산업계의 주류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프로듀서와 저작권 업체, 작곡가의 연계(틴 팬 알리 방식)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조지 마틴도 그 관습을 비틀즈에게 전수했다. 비틀즈 이전에 수많은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한 밴드 "클리프 리처드 & 섀도즈" 등도 대부분 외부 작곡가의 작품이었고, 빌리 퓨리 등 당시 인기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비틀즈도 처음에는 마틴의 제안으로 외부 작곡가의 "하우 두 유 두 잇"을 데뷔 싱글로 할 예정이었지만, 멤버들은 자작곡 싱글 발매를 고집했고, 결과적으로 같은 날 녹음된 자작곡 "러브 미 두"로 데뷔했다. 자작곡 직접 연주는 이후 영국의 음악 산업계에 점차 퍼져나가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비틀즈보다 조금 늦게 데뷔한 롤링 스톤스이며, 키스 리처즈믹 재거가 기존 곡 우선에서 자작곡 직접 연주로 방향을 바꾼 것은 비틀즈 멤버들로부터 작곡에 대해 직접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254]

4. 2. 영향

비틀즈는 음악 산업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저작권 분쟁으로 온라인 음악 서비스 계약이 늦어졌지만, 2010년 아이튠즈를 통해 주요 앨범들이 공식 제공되기 시작했다.[59] 2012년에는 EMI 음반 사업 부문이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 매각되었고, 유럽 연합의 반독점 규제로 인해 파롤폰을 포함한 자산이 분할되었다. 비틀즈의 음반 카탈로그는 캐피톨 레코드가 관리하게 되었고,[60] 같은 해 모든 오리지널 앨범이 바이닐로 재발매되었다.[61]

2013년에는 BBC 녹음곡 모음집 ''On Air – Live at the BBC Volume 2''가 발매되었고,[62] 아이튠즈에 추가 녹음곡들이 공개되었다.[63] 2014년 제5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가 함께 공연했으며,[64] 다음 날 비틀즈 헌정 특집 방송이 녹화되었다.[65][66] 2015년에는 스포티파이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 카탈로그가 제공되기 시작했다.[67]

2016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The Beatles: Eight Days a Week''가 개봉되어 투어 시절을 조명했다.[68] 이 영화는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비틀즈 앳 더 할리우드 볼(The Beatles at the Hollywood Bowl)''의 리마스터 버전도 함께 발매되었다.[69][70] 2017년에는 시리우스XM 라디오에서 비틀즈 전용 채널이 개설되었고,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50주년 기념 에디션이 발매되었다.[71] 2018년과 2019년에는 ''The Beatles''[72]와 ''Abbey Road''[73]의 기념 에디션이 각각 발매되었다. 2019년 ''애비 로드''는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복귀하며 최장 기간 1위 기록을 경신했다.[74]

비틀즈는 초기에 엘비스 프레슬리, 칼 퍼킨스, 리틀 리처드, 척 베리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90] 특히 존 레논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조지 해리슨은 척 베리를 높게 평가했다.[91] 버디 홀리, 에디 코크란, 로이 오비슨 등도 초기 영향으로 꼽힌다.[92] 이후 밥 딜런,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스, 비치 보이스 등 동시대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받았으며,[93][94] 라비 샹카르는 해리슨의 음악적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로버트 그린필드는 비틀즈를 파블로 피카소에 비유하며 "대중음악의 형태로는 그 누구도 그들보다 혁명적이고, 창의적이며, 독특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55] 필립 라킨은 그들의 작품을 "전쟁 이후 대중음악의 최초의 발전"이라고 묘사했다.[98] 1964년 미국 상륙은 앨범 시대의 시작으로 여겨지며,[99] LP 판매가 급증하여 싱글 판매를 능가하게 되었다.[100]

비틀즈는 영국 침공을 촉발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현상이 되었다.[101][102] 그들의 음악적 혁신과 상업적 성공은 전 세계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103] 많은 아티스트들이 비틀즈의 영향을 인정했다.[104] 라디오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고,[104] 앨범과 뮤직 비디오 제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시아 스타디움 공연은 콘서트 사업의 "중대한 돌파구"로 평가받는다.[104] 그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104]

비틀즈는 1960년대 반문화의 아이콘으로서 사회문화적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104] 세계 비틀즈의 날은 매년 6월 25일에 열리며,[106] 1967년 ''우리의 세계'' 프로그램에서 "사랑이 필요한 것은 전부야"를 공연한 것을 기념한다.[107]

비틀즈는 대영 제국 훈장 회원 칭호를 받았고,[104] 아카데미 최우수 주제가상을 수상했다.[104] 그래미상과 아이버 노벨로 상을 다수 수상했으며,[104]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42]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밴드로서[109]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앨범이 가장 많으며,[112] 빌보드 핫 100에서 최다 1위 히트곡을 기록했다.[116] 미국 레코딩 산업 협회 인증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117] ''타임''지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포함되었다.[118]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고,[119] 유네스코 주관 세계 비틀즈의 날이 제정되었다.[120][121] 영국 우표 시리즈와 미국 우정청 우표에도 등장했다.[122][123] ''롤링 스톤''은 그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선정했다.[124]

비틀즈의 초기에는 아이돌 그룹으로 인식되었지만, 제리 리 루이스비치 보이스칼 윌슨브라이언 윌슨 등 선배 뮤지션들이 그들의 재능을 인정했다.[252] 특히 비치 보이스의 앨범 ''펫 사운즈''는 비틀즈의 ''세인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에 큰 영향을 주었다.[253] 톰 페티, 잭슨 브라운, U2보노, 오지 오스본,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후배 뮤지션들도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252] 1967년 발매된 ''세인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는 대중음악을 변혁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253]

비틀즈는 자작곡 중심의 활동을 통해 음악 산업계의 관행을 변화시켰다.[254] 롤링 스톤스키스 리처즈믹 재거도 비틀즈의 조언을 받아 자작곡 중심으로 활동 방향을 바꾸었다.[254] 비틀즈의 등장은 영국 음악 산업의 중심을 런던에서 지방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으며,[252] 미국 진출은 영국 침공으로 이어져 미국 음악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256]

5. 음반 목록

비틀즈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 13장의 정규 음반과 1장의 컴필레이션 음반(패스트 마스터스)을 발매했다.[251] 1988년에 발매된 패스트 마스터스는 영국에서 발매된 비정규 음반 싱글 및 EP 트랙을 모은 것이다.

비틀즈 음반 목록
발매일음반명
1963년플리즈 플리즈 미
1963년위드 더 비틀즈
1964년어 하드 데이즈 나이트
1964년비틀즈 포 세일
1965년헬프!
1965년러버 소울
1966년레볼버
1967년세인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1967년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1968년더 비틀즈 ("화이트 앨범")
1969년옐로우 서브마린
1969년애비 로드
1970년렛 잇 비
1988년패스트 마스터스 (컴필레이션)



2021년, 피터 잭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비틀즈: 겟 백이 디즈니+에서 공개되었고,[75] 렛 잇 비 음반의 슈퍼 디럭스 에디션이 발매되었다.[77] 2022년에는 비틀즈의 옥상 공연 오디오를 담은 ''겟 백 (옥상 공연)'' 음반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되었다.[78]

2023년, 돌리 파튼의 앨범 ''록스타''에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가 참여한 "렛 잇 비"가 수록되었고,[79][80]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리볼버'' 스페셜 에디션이 발매되었다.[81] 같은 해, 존 레논의 목소리를 추출하여 제작한 "마지막 비틀즈 레코드"인 "나우 앤 덴"이 발매되어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했다.[83][84][87]

2024년에는 피터 잭슨 감독이 디지털 복원한 1970년 영화 ''렛 잇 비''가 디즈니+에서 공개되었다.[89]

5. 1. 영국 발매 LP


  • 플리즈 플리즈 미 (1963)
  • 위드 더 비틀즈 (1963)
  • 어 하드 데이즈 나이트 (1964)
  • 비틀즈 포 세일 (1964)
  • 헬프! (1965)
  • 러버 소울 (1965)
  • 레볼버 (1966)
  • 세인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1967)
  •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1967)
  • 더 비틀즈 ("화이트 앨범")(1968)
  • 옐로우 서브마린 (1969)
  • 애비 로드 (1969)
  • 렛 잇 비 (1970)
  • 패스트 마스터스 (1988, 컴필레이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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