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누규는 후한 말, 조조 휘하에서 활동한 인물로, 젊은 시절 탈옥한 경험이 있으며, 형주 자사 유표에게 의탁하기도 했다. 조조를 섬기면서는 군사 고문으로 활약하며, 동관 전투에서 얼음 요새를 제안하는 등 군사적 조언을 했다. 그러나 조조에게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누자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조조에게 얼음성을 쌓을 것을 진언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누규는 난양 군(南陽郡)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도망자를 숨겨준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탈옥하여 변장하고 도망쳤다. 190년대 초, 추종자들을 모아 형주의 자사 유표에게 합류하여 사대부들을 모집하는 것을 도왔다.[1] 이후 조조를 섬기며 여러 전투에서 참모 역할을 수행했지만, 조조에게 불경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1][2]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누자백(婁子伯)'''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도호(道號)는 '''몽매거사(夢梅道士)'''이며 사예(司隸) 경조윤(京兆尹) 출신으로,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3] 외모는 학과 같고, 자태는 소나무와 같아 범상치 않은 인물로 묘사되었다.
[1]
서적
Wu Shu annotation in Sanguozhi, vol.12
2. 생애
누규와 그의 가족은 수년에 걸쳐 많은 재산을 모았다. 조조는 "누자백은 나보다 부유할지 모르지만, 나만큼 권력은 없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1]
2. 1. 초기 생애와 군벌 활동
초평(初平) 연간에 형주 북쪽 경계에서 군사를 모아 할거했으나, 왕충에게 토벌되고 조조를 섬겼다.[1] 조조는 누규를 대장으로 삼았으나 군을 통솔시키지는 않았고, 회의에서 늘 함께 의논하였다.[1]
어린 시절 수만 명의 병사와 천 마리의 말을 얻어 후세에 이름을 떨치겠다는 뜻을 품었으나,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이후 망명자를 숨겨 사형당할 뻔했으나, 탈주하여 변장한 덕분에 도망칠 수 있었다.[2]
난양 군(南陽郡)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도망자를 숨겨준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감옥에서 탈출하여 변장을 하고 간수를 속여 도망쳤다. 190년대 초, 추종자들을 모아 형주의 자사 유표에게 합류했다. 형주에서 사대부들을 모집하는 것을 도왔고, 관중 지역의 기근을 피해 형주로 온 왕충을 만나 유표와 함께 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왕충은 누규를 공격하고 그의 추종자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조조에게 합류했다.[1]
초평 연간에 형주 북쪽 변경에서 무리를 모아 군웅 중 한 명으로 할거했다. 유표와 연합하여 식량을 구하러 쳐들어온 장제를 물리쳤으나, 왕충에게 격파당했다. 그 후 누규는 유표의 곁을 떠나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2]
2. 2. 조조의 참모
초평 연간에 형주 북쪽 변경에서 무리를 모아 군웅 중 한 명으로 할거했다. 유표와 연합하여 식량을 구하러 쳐들어온 장제를 물리쳤으나, 누규의 밑에 서는 것을 원치 않은 왕충에게 격파당했다.[1] 그 후 누규는 유표의 곁을 떠나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
조조는 누규를 대장으로 삼았지만 군을 통솔하게 하지 않고, 회의에서 항상 논쟁하게 했다. 하북 평정 후에는 조조를 따라 기주에 머물렀다.[2] 208년,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형주를 공격했을 때, 당시 자사였던 유총 (유표의 아들)은 항복하고 자신의 부 (권위를 상징하는 부절)를 조조에게 넘겨주었다. 조조의 다른 고문들은 유총이 항복하는 척하는 것이라고 의심했을 때, 누규는 유총이 그의 ''부''를 넘겼기 때문에 진심으로 항복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조조가 유총의 항복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211년, 동관 전투에서 누규는 조조에게 자신의 군대에게 물과 모래를 섞어 혼합물을 방어벽과 구조물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도록 조언했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물과 모래 혼합물은 밤새 얼어붙어 조조 군의 즉석 요새가 되었다.
『삼국지』 위서 「무제기」 주 『조만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건안 16년 (211년), 조조가 위수에서 마초와 싸울 때, 지질이 나빠 보루를 쌓을 수 없었다. 누규가 "지금은 기후가 추우니, 물을 뿌리면 하룻밤 만에 보루가 만들어질 것입니다"라고 진언했기에, 조조는 이에 따라 보루를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시기는 윤8월이었고, 배송지도 사실일 리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2. 3. 위수 전투와 얼음성
211년, 조조가 위수 전투(渭水)에서 마초와 싸울 때, 지질이 나빠 요새를 지을 수 없었다. 이때 누규는 "지금은 기후가 추운 때이니, 물을 끼얹으면 한번에 요새를 지을 수 있습니다"라고 진언하였다. 조조는 이 말을 따라 요새를 지었다.[1] 그러나 실제로는 윤8월이었으며, 배송지 또한 사실일 리가 없다고 부정하였다. 동관 전투에서도 누규는 조조에게 물과 모래를 섞어 방어벽과 구조물을 건설하도록 조언했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물과 모래 혼합물은 밤새 얼어붙어 조조 군의 즉석 요새가 되었다.[1]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누규는 누자백으로 등장하며, 위수 전투에서 조조가 빈객을 대하는 태도로 맞이하자, 마초에 대항하기 위해 얼음 성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조조는 기뻐하며 선물을 하려 했지만, 누규는 그것을 일절 받지 않고 떠난다.[3]
2. 4. 죽음
누규는 습수와 함께 조조와 그의 아들(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았다. 습수는 "아버지와 아들(들) 모두 정말 행복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누규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을 계속 쳐다보십니까?"라고 말했다. 습수는 나중에 누규의 말을 조조에게 비밀리에 보고했다. 조조는 누규가 그에게 무례함을 보였다고 생각하여 처형하라고 명령했다.[1]
어느 날, 조조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했을 때, 누규도 이에 따랐는데, 누규는 "이 집(조씨)의 부자(父子)가 오늘과 같은 즐거움을 맛본 적이 있을까" [2] 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조조는 이 말을 자신에 대한 비방으로 판단하여, 누규를 처형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위수 전투에 등장하며, 조조가 빈객을 대하는 태도로 맞이하자 얼음성을 쌓을 것을 진언하였다. 조조는 기뻐하며 선물을 준비하였으나, 누규는 받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3]
참조
[2]
문서
[3]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