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연인들 (1981년 영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뉴욕의 연인들》은 1981년에 개봉한 영화로, 뉴욕을 배경으로 여러 커플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다. 중년의 사립 탐정 존 루소, 젊은 탐정 찰스 럿리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다. 오드리 헵번은 영국 재벌의 아내 안젤라 니오테 역을, 벤 가자라가 존 루소 역을 맡았다. 영화는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와 웨스 앤더슨 등에게 재평가받았다. 1980년 영화 촬영 후, 출연 배우 도로시 스트래튼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더욱 주목받았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영화 - 리버 피닉스의 콜 잇 러브
《콜 잇 러브》는 컨트리 음악 가수를 꿈꾸는 미란다 프레스리가 내슈빌에서 겪는 사랑과 음악적 갈등을 그린 영화이며, 리버 피닉스, 사만다 마티스 등이 출연했다. -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영화 - 마지막 쇼
《마지막 쇼》는 1984년 영화 《라스트 픽처 쇼》의 속편으로, 파산 위기에 놓인 석유 회사를 운영하는 듀안 잭슨과 주변 인물들의 갈등, 소니의 실종, 옛 연인의 귀향 등을 통해 텍사스 아나린 마을의 변화를 그린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영화이다. - 1981년 영화 - 갈리폴리 (1981년 영화)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갈리폴리》는 1차 세계 대전 중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한 두 오스트레일리아 병사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잔혹함과 호주 국가 정체성 형성을 묘사하며 흥행과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역사적 정확성 논란도 있다. - 1981년 영화 - 이블 데드
샘 레이미 감독의 1981년작 초자연 공포 영화 《이블 데드》는 대학생 애쉬 윌리엄스와 친구들이 외딴 오두막에서 악령이 깃든 책을 발견하며 겪는 끔찍한 사건을 그린 저예산 독립 영화로, 고어 연출과 독창적인 촬영 기법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다양한 파생 작품을 낳았으며 폭력성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 킹콩 (2005년 영화)
피터 잭슨 감독의 2005년 영화 《킹콩》은 1933년 대공황 시대, 영화감독 칼 덴험이 스컬 아일랜드에서 거대 유인원 킹콩을 만나 뉴욕으로 데려오는 과정과 비극적 최후를 그린 리메이크 작품으로, 나오미 왓츠, 잭 블랙,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하고 앤디 서키스가 킹콩을 연기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 디 인터뷰
2014년 개봉한 정치 풍자 코미디 영화 《디 인터뷰》는 김정은 인터뷰를 성사시킨 토크쇼 진행자와 프로듀서가 CIA의 암살 지령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로, 북한의 반발, 해킹 사건, 테러 위협 속에 논란과 화제 속에 개봉하여 평범한 평을 받았다.
뉴욕의 연인들 (1981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제목 | 뉴욕의 연인들 |
원제 | They All Laughed |
영어 | They All Laughed |
일본어 | ニューヨークの恋人たち |
영화 정보 | |
감독 | 피터 보그다노비치 |
각본 | 피터 보그다노비치 |
제작 | 조지 모포겐, 브레인 노박 |
출연 | 오드리 헵번, 벤 가자라, 존 리터, 도로시 스트래튼 |
촬영 | 로비 뮐러 |
편집 | 스콧 빅레이, 윌리엄 칼루스 |
음악 | (정보 없음) |
제작 및 배급 | |
제작사 | 타임=라이프 프로덕션 |
배급사 | 문 픽처스 |
개봉 정보 | |
개봉일 | 1981년 9월 2일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1981년 11월 20일 (뉴욕), 1981년 12월 18일 (로스앤젤레스), 일본 미개봉 |
상영 시간 | 115분 |
언어 | 영어 |
예산 및 흥행 | |
제작비 | 8,600,000 달러 |
흥행 수입 | (정보 없음) |
배급 수입 | (정보 없음) |
스태프 | |
촬영 감독 | 로비 뮐러 |
편집자 | 윌리엄 C. 카루스, 스콧 빅레이 |
추가 정보 | |
장르 | 코미디, 멜로/로맨스 |
2. 줄거리
뉴욕에 있는 사립 탐정 회사 오디세이 탐정 사무소에는 중년의 바람둥이 존 루소, 히피 기질이 있는 아서 브로드스키, 신경질적인 찰스 럿리지가 근무하고 있다. 존은 영국 재벌 부인 안젤라 니오테스를 미행하다 택시 운전사 데보라 윌슨과 사랑에 빠진다. 찰스는 돌로레스 마틴에게 반해 그녀를 쫓아다니고, 아서는 이들의 사랑을 돕는다.[7]
존은 데보라와, 찰스는 돌로레스와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아서는 존이 전 여자친구 크리스티 밀러에게서 벗어나도록 돕고, 찰스가 돌로레스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돌로레스는 남편과 헤어지고 호세와 도망갈 계획이었다.[7]
존은 데보라와의 관계를 걱정하지만, 크리스티는 찰스와 관계를 시작하며 복수하려 한다. 찰스는 돌로레스에게 푹 빠져 크리스티를 거부한다. 존과 아서는 안젤라와 아들을 미행하고, 존은 안젤라에게 정체를 밝힌다. 안젤라는 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둘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싹튼다. 데보라는 존의 아파트에서 존, 안젤라와 마주치지만, 존이 두 여자에게 동시에 끌리는 것을 개의치 않아 한다. 돌로레스는 찰스에게 키스하려 하고, 크리스티는 호세에게 끌린다고 고백한다. 찰스는 돌로레스를 따라가 키스를 받고 도망친다.[7]
찰스는 돌로레스의 아파트 밖에서 밤을 새우고, 법원에 따라간다. 크리스티는 돌로레스와 호세가 판사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크리스티는 다른 인물들을 콘서트에 초대하고, 데보라와 안젤라는 대화를 나눈다. 안젤라는 존에게 남편과 유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며, 데보라가 그의 마음을 달래줄 것이라고 한다. 콘서트에서 찰스는 돌로레스와 재회하고, 돌로레스는 이혼을 위해 법원에 갔었다고 말한다. 찰스는 청혼하고, 그녀는 받아들인다. 크리스티는 약혼자 호세를 소개한다. 찰스와 돌로레스, 크리스티와 호세는 이중 결혼식을 올린다. 존은 안젤라를 배웅하고, 택시에서 기다리는 데보라에게 돌아간다.[7]
3. 등장인물
배우 역할 비고 오드리 헵번 안젤라 니오테스 [1] 벤 가자라 존 루소 [2] 패티 한센 데보라 "샘" 윌슨 [7] 존 리터 찰스 럿리지 [8] 도로시 스트래튼 돌로레스 마틴 블레인 노박 아서 브로드스키 린다 맥이완 에이미 레스터 조지 모르포겐 레온 레온도폴로스 콜린 캠프 크리스티 밀러 션 헵번 페러 호세 오드리 헵번의 아들
3. 1. 주요 인물
3. 2. 조연
4. 제작 과정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은 벤 가자라와 로맨스, 불륜,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4] 이 영화는 타임사(Time Inc.)의 영화 제작 부서에서 자금을 지원했다.[2] 보그다노비치는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독립 영화가 아닌 스튜디오 시스템의 옛 영화 제작 방식처럼 장르 뒤에 숨기고 싶어했다.[4] 그래서 사립 탐정 장르를 선택했지만, 실제 탐정에 대한 조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3][4]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의 이야기는 실제 그녀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4] 헵번은 당시 남편의 외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들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4] 각본의 초고는 멜랑콜리한 분위기였으나, 보그다노비치가 도로시 스트래튼과 사랑에 빠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스트래튼이 단 한 장면의 작은 역할이었지만, 보그다노비치가 그녀의 이야기를 부풀리기 위해 각본을 전면적으로 다시 썼다.
1980년대 초에 제작된 《뉴욕의 연인들》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였다.[7] 20세기 폭스가 완성본에 불만을 나타내, 보그다노비치 감독이 판권을 되사들여 "문 픽처스"라는 회사에서 배급했다.[7] 또한, 영화에 출연했던 보그다노비치의 연인 도로시 스트래튼이 촬영 후 남편에게 살해당했다.[7]
오드리 헵번은 톱으로 크레딧되었지만, 실제로는 조연에 가까웠다.[7] 일본에서는 극장 개봉되지 않고 비디오 출시만 되었는데, 《로마의 휴일》 이후 헵번 영화로서는 유일하게 일본 미개봉 작품이다.
헵번이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달 먼저 촬영을 마치자, 그녀를 위한 송별 파티가 열렸다. 헵번은 스트라튼을 귀여워했지만, 스트라튼은 헵번을 두려워하여 작별 인사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보그다노비치는 『뉴욕의 연인들』이 헵번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고 느껴, 헵번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엔딩에서 그녀의 모든 숏의 몽타주를 사용했다.
4. 1. 기획 및 각본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은 벤 가자라와 로맨스, 불륜,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4] 그는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독립 영화가 아닌 스튜디오 시스템의 옛 영화 제작 방식처럼 장르 뒤에 숨기고 싶어했다. 그래서 사립 탐정 장르를 선택했지만, 실제 탐정에 대한 조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3][4]오드리 헵번의 이야기는 실제 그녀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4] 헵번은 당시 남편의 외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들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4] 헵번을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많은 설득이 필요했는데, 아들 루카가 로마의 학교에 다니고 있어 오랫동안 아들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헵번이 출연한 것은 숀 페러(헵번의 장남)를 보그다노비치의 현장 어시스턴트로 고용하겠다는 제안 덕분이었다. 숀은 어시스턴트뿐만 아니라 조연인 호세 역으로도 영화에 출연했다.
초기 각본은 멜랑콜리한 분위기였으나, 보그다노비치가 도로시 스트래튼과 사랑에 빠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단 한 장면의 작은 역할이었던 스트래튼의 이야기를 부풀리기 위해 각본을 전면적으로 다시 썼기 때문이다.
보그다노비치는 영화 속 컨트리 음악 사용에 대해, 초고에서는 크리스티(극중 배역)가 재즈 가수여서 재즈 스탠더드를 불렀지만, 뉴욕에서 컨트리 음악이 짧게 유행했기 때문에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라스트 픽쳐 쇼에서 컨트리 음악에 빠졌으며, "One Day Since Yesterday"라는 문구는 도로시가 카드에 쓴 말에서 따왔다고 밝혔다.[4]
4. 2. 캐스팅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전작 《세인트 잭》에서 벤 가자라를 주연으로 기용한 인연이 있었다.[4] 보그다노비치가 오드리 헵번과 함께 영화를 만들 기회는 가자라가 《화려한 상속》 촬영 중 헵번과 사랑에 빠지면서 찾아왔다. 가자라는 보그다노비치에게 헵번의 외로움, 연약함, 성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보그다노비치는 이를 바탕으로 가자라와 헵번을 위한 《뉴욕의 연인들》 각본을 쓰기로 결심했다.[4]그러나 헵번은 아들 루카의 학교 문제와 오랜 촬영 기간 때문에 출연을 망설였다.[4] 보그다노비치는 헵번의 장남인 숀 페러를 현장 어시스턴트로 고용하고, 조연(호세 역)으로 출연시키면서 헵번의 마음을 돌렸다.[4]
도로시 스트래튼은 원래 단 한 장면의 작은 역할이었지만, 1979년 11월 보그다노비치가 스트래튼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확대되어 해피엔딩으로 각본이 전면 수정되었다.[4]
가자라와 헵번의 짧은 로맨스는 가자라가 《인천!》에 출연하면서 끝났다. 그 때문에 《뉴욕의 연인들》 촬영 무렵에는 헵번과 가자라 사이에 긴장 관계가 생겼다고 한다.[4] 그러나 헵번도 《뉴욕의 연인들》 제작 중에 마지막 파트너가 되는 로버트 워더스를 만났다.[4]
4. 3. 촬영
이 영화는 1980년 봄과 여름에 뉴욕시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3]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종종 장면을 쓰고 촬영 직전에 배우들에게 주어 영화에 신선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3]모든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지 않고, 맨해튼의 실제 가게, 거리, 호텔, 레스토랑에서 촬영되어 사실감을 높였다.[8] 5번가 촬영 시에는 몰래 촬영 방식을 사용하여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진행했다.[8] 스타들과 제작진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3~4명의 스태프와 몇 명의 엑스트라를 세워두고 카메라를 찾지 못하도록 했다.[8] 오드리 헵번을 비롯한 스타들은 5번가에 있는 가게 안에서 대기하다가 차례가 되면 불려나가 촬영을 하고, 끝나면 가게로 돌아가는 방식을 사용했다.[8]
4. 4. 음악
컨트리 음악이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보그다노비치에 따르면, 초고에서는 크리스티의 캐릭터가 재즈 가수여서 재즈 스탠더드를 불렀지만, 뉴욕에서 컨트리 음악이 아주 잠깐 유행하면서 변경되었다고 한다.[4] 그는 "나는 컨트리 음악을 좋아한다. 『라스트 픽쳐 쇼』에서 컨트리 음악에 빠졌다. 사실 컨트리 노래를 두 곡 썼다. 'One Day Since Yesterday'라는 문구는 도로시가 나에게 카드에 쓴 말이었다. 나는 그 문구를 좋아했다."라고 말했다.[4]5. 주제
이 영화는 플롯과 실제 생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많은 힌트를 제공하며,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 제작자들의 규율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화의 흥미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다.[7] 헵번의 아들이 호세 역을 맡았지만, 영화 속 그녀의 아들 역할은 글렌 스카펠리가 연기했다. 보그다노비치에 따르면, 헵번과 가자라는 촬영 전에 불륜 관계를 맺었지만, 촬영이 시작될 무렵에는 흐지부지되었고, 가자라의 진행 중인 이혼으로 인해 더 이상의 접촉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가자라와 헵번이 영화 "그들은 모두 웃었다"에서 화면상에서 좋은 케미를 보이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보그다노비치의 실제 딸들은 존 루소의 딸들을 연기하며, 아서(중요한 장면에서 루소의 아들인 척)와 함께 안젤라 니오테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투입된다. 더 암묵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로맨스를 주로 돕는 역할을 하는 아서는 영화의 각본가 중 한 명인 블레인 노바크가 연기한다. 도로시 스트래튼의 캐릭터를 쫓는 찰스는 보그다노비치의 트레이드마크인 큰 플라스틱 프레임 안경을 착용하는데, 이는 아마도 보그다노비치의 초기 죄책감과 스트래튼에 대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을 언급한 것일 것이다.
사실, 숨겨진 사랑이 드러나는 주제는 영화 전체에 만연해 있다. 심지어 루소와 택시 운전사의 관계는—아마도 모든 커플들 중에서 가장 비밀스럽지 않고 가장 공정하며, 루소가 나이가 들고 그의 성적 능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될 정도로—가명 하에 이루어진다(루소는 모호한 이유로 데보라를 "샘"이라고 부른다). 숨겨진 욕망의 주제는 사운드트랙에서도 나타나는데, 로이 애커프, 조니 캐시, 웨일론 제닝스, 로드니 크로우웰의 컨트리 음악뿐만 아니라 캠프의 음악과 맨해튼의 스카이라인(크레딧 시퀀스는 맨해튼으로의 여행을 따라가며, 특히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을 도로시 스트래튼의 크레딧이 나타날 때 집중적으로 보여준다)의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동명의 조지 거슈윈과 아이라 거슈윈의 노래 "그들은 모두 웃었다"가 함께 사용된다.
6. 개봉 및 평가
영화 개봉 전, 타임은 영화 제작 부서를 폐쇄했다. 북미 배급권을 갖고 있던 20세기 폭스는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영화의 시장성을 시험했지만, 결과에 실망하여 영화 개봉을 중단했다.[2] 보그다노비치는 직접 영화를 배급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매니저는 나중에 감독이 500만달러를 썼지만, 티켓 판매액은 100만달러 미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1985년 감독이 파산을 선언하는 원인이 되었다.[5] 보그다노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악몽이었어요. 도로시가 살해당했고, 저는 미쳐버렸죠. 폭스로부터 영화를 다시 사들이기로 결정했는데, 스스로 배급하면서 돈을 다 날렸어요. 정신 나간 짓이었죠. 불행하게도 아무도 저를 말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대로 배급되지 못했어요. 스스로 배급하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는 베벌리힐스의 뮤직홀에서 15주 동안 상영했어요. 엄청난 성공이었죠. 웨스트우드에 좋은 극장을 얻어서 모든 기록을 깼는데, 파라마운트가 ''레즈''를 상영하기 위해 영화를 바로 내렸어요.[4]
1980년대 초에 제작된 영화 《뉴욕의 연인들》은 배급과 관련하여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였다.[7] 우선 배급 예정이었던 20세기 폭스가 완성본에 불만을 나타내,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판권을 되사들여 "문 픽처스"라는 회사에서 배급하게 되었다.[7]
쿠엔틴 타란티노와 웨스 앤더슨 등은 2002년에 이 영화를 칭찬했다.[6] 이 영화는 1995년 1월 31일에 VHS로 출시되었고, HBO 홈 비디오는 2006년 10월 17일에 DVD(25주년 기념판)로 출시했다. 2024년 3월에는 Max에서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아직 극장 개봉되지 않았고, 비디오 출시만 되었다. 《로마의 휴일》 이후 오드리 헵번 영화로서는 유일하게 일본 미개봉 작품이 되었다.
7. 도로시 스트래튼 살인 사건
도로시 스트래튼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별거 중이던 남편 폴 스나이더에게 살해당했다.[7] 스트래튼은 촬영 중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불륜 관계를 맺었고, 격분한 스나이더는 총으로 스트래튼을 위협하고 머리에 총을 쏜 후 자살했다. 스나이더는 사립 탐정을 고용해 스트래튼을 미행하기도 했다.
보그다노비치는 "우리의 씁쓸한 로맨틱 코미디는 두 번 다시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오드리 헵번의 멜랑콜리한 이야기가 도로시의 행복한 이야기와 대조될 예정이었는데, 누구에게나 거의 견딜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영화의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7] 스트래튼의 죽음으로 인해 영화는 병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는 높이 평가받았지만 미국에서는 비평도 좋지 않았다. 보그다노비치는 상영 계약을 맺지 못해 500만 달러를 잃었고, 1985년에는 파산했다.
오드리 헵번의 아들 숀 페러는 스트래튼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밴쿠버에서 18시간 동안 차를 몰아 로스앤젤레스의 보그다노비치를 위로했다. 보그다노비치는 "그야말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헵번도 사건 직후 보그다노비치를 찾아갔다.
8. 의의 및 영향
《뉴욕의 연인들》은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은 마지막 극장 개봉작이었다.[7] (이후 헵번은 텔레비전 영화 《사랑의 도둑들》에 출연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올웨이즈》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도로시 스트래튼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스트래튼은 영화 개봉 전에 별거 중이던 남편이자 매니저인 폴 스나이더에게 살해당했다.[7] 촬영 중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불륜 관계를 시작한 스트래튼은 스나이더가 고용한 사립 탐정에게 미행당했다. 이후 스트래튼은 보그다노비치와 동거하며 이혼 소송을 계획했으나, 스나이더는 아내와 제자를 잃었다는 생각에 그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밥 포시의 1983년 영화 《스타 80》과 텔레비전 영화 《플레이보이 모델 살인사건》(1981)에 묘사되었다.
《천국의 문》, 《크루징》, 《원 프롬 더 하트》와 함께 《뉴욕의 연인들》은 뉴 할리우드 시대의 종말과 1970년대 감독 중심의 스튜디오 영화 제작 방식의 종말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네 영화의 실패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감독에게 영화 제작 자금 통제권을 주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하지만 2002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웨스 앤더슨 등이 이 영화를 칭찬하며 재평가 움직임이 일어났다.[6] 이 영화는 컬트 영화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극장 개봉되지 않고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는데, 이는 《로마의 휴일》 이후 오드리 헵번 영화 중 유일한 일본 미개봉 작품이다.[7]
9. 수상 내역
영화제 | 상 | 후보 | 결과 |
---|---|---|---|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 알리탈리아 여우주연상 | 패티 한센 | 수상 |
황금사자상 | 피터 보그다노비치 | 후보 |
참조
[1]
뉴스
MOVIES: Bogdanovich: '70s' golden boy regains his screen sheen
Chicago Tribune
1982-01-17
[2]
웹사이트
Detail view of Movies Page – THEY ALL LAUGHED (1981)
http://www.afi.com/m[...]
2016-09-22
[3]
Indiewire
Peter Bogdanovich & Noah Baumbach Talk 'They All Laughed' At Brooklyn's BAMCinematek
http://blogs.indiewi[...]
Indiewire
2011-07-09
[4]
뉴스
QA with Peter Bogdanovich: They All Laughed
http://www.sheilaoma[...]
2012-09-23
[5]
뉴스
BOGDANOVICH'S BANKRUPT MEMORIAL: BANKRUPT MEMORIAL
Los Angeles Times
1985-12-19
[6]
뉴스
The Sight & Sound Top Ten Poll: 2002
http://www.bfi.org.u[...]
British Film Institute
[7]
서적
スクリーンの妖精 オードリー・ヘップバーン
シンコー・ミュージック
1997-06-13
[8]
서적
オードリー・ヘプバーン 映画に燃えた華麗な人生
近代映画社
1986-03-1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