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카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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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콜라 카비보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다. 그는 1935년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 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위를 받았으며, 약한 상호작용과 쿼크의 약한 붕괴에 대한 연구로 현대 물리학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쿼크의 혼합 각도인 카비보 각도를 도입하여 쿼크의 세대 간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카비보-코바야시-마스카와 행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여러 학술 기관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이탈리아 국립 핵물리학 연구소 회장, 교황청 과학원 회장을 지냈다. 1989년 J. J. 사쿠라이상, 1991년 유럽 물리 학회 고에너지 및 입자물리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0년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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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카비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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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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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니콜라 카비보 |
출생일 | 1935년 4월 10일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일 | 2010년 8월 16일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국적 | 이탈리아 |
배우자 | 파올라 이안돌로 (1962년 결혼) |
자녀 | 1명 |
학문 분야 | |
분야 | 입자물리학 |
모교 |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 |
지도교수 | 브루노 투셰크 |
학문적 조언자 | 에두아르도 아말디 |
주목할 만한 제자 | 조르조 파리시 |
알려진 업적 | 카비보 앙각 |
직장 | 이탈리아 국립 핵물리 연구소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
수상 | |
수상 내역 | 사쿠라이 상 (1989년) 마테우치 메달 (2002년) 포메란추크 상 (2009년) P.A.M. 디랙 메달 (2010년)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 (2011년, 사후) |
2. 생애
니콜라 카비보는 로마 출신으로, 1958년 로마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국립 핵물리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62년부터 CERN과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1965년부터 라퀼라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고, 1966년부터 1982년까지 모교인 로마 대학교 교수로, 1982년부터 2000년까지는 로마의 토르 베르가타 대학교에서, 2000년부터 다시 로마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63년, 카비보는 W 보손과 쿼크의 약한 상호작용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1973년에는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가 3행 3열 행렬을 도입하여, 이는 카비보-고바야시-마스카와 행렬로 불리게 되었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INFN(이탈리아 국립 핵물리학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고, 1993년부터 교황청 과학원 회장을 역임했다.
카비보가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고바야시·마스카와와 공동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탈리아 국내 등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2010년8월 16일, 카비보는 로마 시내의 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니콜라 카비보는 1935년 4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칠리아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마누엘레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1] 그는 어릴 때부터 수학, 물리학,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직접 라디오를 만들기도 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초등학교 교육은 중단 없이 진행되었으며, 이후 토르콰토 타소 고등학교에 다녔다.[2] 거기서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교과서가 카비보가 과학 연구를 추구하는 데 불을 지폈다.전쟁이 끝난 후 카비보는 미국 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을 읽고 빌리기 위해 종종 주이탈리아 미국 대사관 도서관을 찾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테오도어 드라이저, 허먼 멜빌이었지만 과학 소설과 북극 탐험에 관한 책들도 즐겨 읽었다.[1]
카비보는 1952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하여 1958년 물리학 학위를 받았다.[3] 그의 학위 논문은 약한 상호작용과 뮤온 붕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브루노 투셰크의 지도하에 프란체스코 칼로제로 및 파올로 기도니와 함께 진행되었다.[2]
2. 2. 경력
졸업 후, 카비보는 국립 핵물리학 연구소(INFN) 로마 지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60년, 프라스카티 국립 연구소에 채용되어 그곳에 배치된 최초의 이론 물리학자가 되었다.[2][3]1963년, CERN에서 일하면서 기묘 입자의 약한 붕괴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고, 이것은 카비보 유니버설리티(Cabibbo universality)로 알려지게 되었다. 1965년부터 라퀼라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1966년부터 1982년까지 로마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토르 베르가타 대학교에서 재직한 후, 2000년부터 다시 로마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INFN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그 기간 동안 그란 사소 국립 연구소가 개관되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이탈리아 에너지 기관인 ENEA의 회장이었으며, 199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교황청 과학원의 회장이었다.[4] 2004년, 카비보는 CERN에서 객원 교수로 1년을 보냈으며, NA48/2 협력에 참여했다.
1963년, W 보손과 쿼크의 약한 상호작용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1973년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 (둘 다 2008년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3행 3열 행렬을 도입했는데, 이는 카비보-고바야시-마스카와 행렬로 불린다.
2010년8월 16일, 로마 시내의 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했다.
2. 3. 개인사 및 사망
1962년, 카비보는 살레르노 대학교와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미국 문학 교수를 역임한 파올라 이안돌로와 결혼했다.[2][12] 부부는 1966년에 태어난 아들 안드레아를 두었는데, 그는 분자 생물학자이다.[1] 카비보는 2010년 8월 16일, 호흡 부전으로 입원한 후 75세의 나이로 로마의 파테베네프라텔리 병원에서 사망했다.[13] 그는 수년 동안 종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1]3. 연구 업적
1963년, 니콜라 카비보는 W 보손과 쿼크의 약한 상호작용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1973년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3행 3열 행렬을 도입하여 카비보의 이론을 확장했는데, 이를 카비보-코바야시-마스카와 행렬이라고 부른다.[6][7][8]
카비보는 약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업과 다운 쿼크 사이, 전자와 전자 중성미자 사이, 뮤온과 뮤온 중성미자 사이의 전이 확률이 유사하고, 기묘도가 변하는 전이는 기묘도가 변하지 않는 전이의 1/4과 같은 진폭을 가진다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혼합 각도 ''θ''C (카비보 각도)를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5] 현대 측정에 따르면 ''θ''C = 13.04°이다.
쿼크의 세 번째 세대가 발견되기 전, 카비보의 연구는 마코토 코바야시와 마스카와 도시히데에 의해 카비보-코바야시-마스카와 행렬로 확장되었다.
2008년, 고바야시와 마스카와는 이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을 공동 수상했지만, 일부 물리학자들은 카비보의 기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씁쓸한 감정을 표현했다.[9]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카비보가 공동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카비보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APE 100과 APE 1000 실험을 통해 현대 물리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9] 또한, 조르다노 브루노의 명예 회복을 지지하며,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교회의 사과를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는 모델로 제시했다.[10]
3. 1. 카비보 각과 약한 상호작용
카비보의 약력에 대한 주요 연구는 두 가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에서 시작되었다.- 업과 다운 쿼크 사이, 전자와 전자 중성미자 사이, 뮤온과 뮤온 중성미자 사이의 전이는 발생할 가능성이 유사했다(유사한 확률 진폭).
- 기묘도가 변하는 전이는 기묘도가 변하지 않는 전이의 1/4과 같은 진폭을 가졌다.
카비보는 머레이 겔만과 모리스 레비의 뒤를 이어, 다양한 세대의 입자들 사이의 약력 결합 상수 결합 강도의 유사성을 포함하는 약한 보편성을 가정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두 번째 문제를 혼합 각도 ''θ''C(현재[5] 카비보 각도라고 불림)를 다운 쿼크와 스트레인지 쿼크 사이에 도입하여 해결했다. 현대 측정에 따르면 ''θ''C = 13.04°이다.
쿼크의 세 번째 세대가 발견되기 전에, 이 연구는 마코토 코바야시와 마스카와 도시히데에 의해 카비보-코바야시-마스카와 행렬로 확장되었다.
3. 2. 카비보-코바야시-마스카와 행렬
쿼크의 세 번째 세대가 발견되기 전, 카비보의 연구는 마코토 코바야시와 마스카와 도시히데에 의해 카비보-코바야시-마스카와 행렬로 확장되었다.[6][7][8] 1963년 W 보손과 쿼크의 약한 상호작용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으며, 1973년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3행 3열 행렬을 도입하여 이를 카비보-고바야시-마스카와 행렬이라 부른다.
2008년, 코바야시와 마스카와는 이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일부 물리학자들은 노벨상 위원회가 카비보의 중요한 기여에 대해 보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씁쓸한 감정을 느꼈으며,[9] 이탈리아 국내 등에서는 카비보가 고바야시·마스카와와 동시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상에 대한 반응을 묻자 카비보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와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몹시 언짢아했다고 한다.
3. 3. 기타 연구
카비보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여 APE 100과 APE 1000 실험을 통해 현대 물리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수행했다.[9]카비보는 처형된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명예 회복 시도를 지지하며,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사과를 교회가 저지른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는 가능한 모델로 인용했다.[10]
4. 수상 내역
참조
[1]
백과사전
Cabibbo, Nicola
https://www.treccani[...]
Istituto della Enciclopedia Italiana Treccani
2024-10-16
[2]
백과사전
Cabibbo, Nicola
https://www.treccani[...]
Istituto della Enciclopedia Italiana Treccani
2024-10-16
[3]
웹사이트
Nicola Cabibbo nasce il 10 Aprile del 1935
https://scienzapertu[...]
Istituto Nazionale di Fisica Nucleare
2024-10-18
[4]
학술지
Obituary: Nicola Cabibbo (1935–2010)
[5]
학술지
The Axial Vector Current in Beta Decay
[6]
학술지
与2008年诺贝尔物理奖失之交臂的物理学家
http://psroc.phys.nt[...]
2013-10-0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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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Nobel snubs key researcher
https://www.newscien[...]
2009-11-06
[8]
웹사이트
Overlooked for the Nobel: Nicola Cabibbo
https://physicsworld[...]
2021-08-08
[9]
웹사이트
Nobel, l'amarezza dei fisici italiani
http://www.corriere.[...]
Corriere della Sera
2009-11-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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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scientifique évoque la réhabilitation d'un théologien brûlé pour hérésie
http://www.la-cr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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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Franklin Medal in 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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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lin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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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Nicola Cabibbo
https://archivisapie[...]
Sapienza University of Rome
2024-10-16
[13]
뉴스
Morto il fisico Cabibbo Gli fu negato il Nobel
http://www.corriere.[...]
2010-08-16
[14]
웹사이트
「ノーベル賞盗まれた」イタリア学会が物理学賞に異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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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ttp://sankei.jp.msn.com/world/europe/081009/erp0810091131003-n1.htm - 2008年10月10日 01:09 - ウェブ魚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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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기사
Addio a Nicola Cabibbo che meritava il Nobel
http://www.repubblic[...]
La Repubb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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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10-08-19
[19]
뉴스
伊 저명 물리학자 카비보 타계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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