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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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양 장씨는 같은 본관을 사용하지만 계보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선단양은 장순익을 시조로, 후단양은 장무용을 시조로 한다. 단양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지명으로, 삼국 시대에 신라 영토가 되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단산현으로, 조선 시대에는 단양군으로 불렸다. 주요 인물로는 장온, 장충범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했다. 1985년에는 30,521명, 2000년에는 33,295명, 2015년에는 44,334명으로 인구가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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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장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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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장씨 | |
성씨 | 단양 장씨 丹陽張氏 |
한자 표기 | 丹陽張氏 |
국가 | 한국 |
관향 | 충청북도 단양군 |
시조 | 장순익(張順翼), 장무용(張戊用) |
년도 | 2015 |
인구 | 44,334명 |
주요 인물 | 장온 장충범 장호리 장우성 장광근 장옥주 장익제 |
2. 역사
단양 장씨(丹陽張氏)는 본관(本貫)이 같으면서도 계보(系譜)를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1]
2. 1. 시조 및 계통
단양 장씨(丹陽張氏)는 같은 본관(本貫)이면서도 계보(系譜)를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선단양(先丹陽)으로 불리는 계통은 '''장순익'''(張順翼)을 시조로 모시는데, 그는 인동 장씨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증손인 장지현(張之賢)의 셋째 아들로 고려(高麗)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단양(丹陽)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
후단양(後丹陽)으로 불리는 계통은 '''장무용'''(張戊用)을 시조로 모시는데, 그는 장정필의 14세손으로 결성부원군(結城府院君)에 봉해졌던 결성 장씨 장사(張楒)의 둘째 아들이다.
2. 2. 본관의 유래
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지명이다.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 일대였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奈提郡 : 堤川)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1318년(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군(郡)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1979년에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3. 주요 인물
- 장온: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3등에 오르고 단양군에 봉해졌다.[1]
- 장충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 장호리: 독립운동가이다.
- 장우성: 현대 화가이다.
- 장광근: 국회의원을 지냈다.
- 장옥주: 제5대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냈다.
- 장현성: 배우이다.
- 장지현: 축구 해설가이다.
- 장현진: 카레이서이다.
- 장하나: 국회의원을 지냈다.
3. 1. 고려
'''장순익'''(張順翼)을 시조로 하는 계통은 선단양(先丹陽)으로 불린다. 장순익은 인동 장씨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증손인 장지현(張之賢)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시대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단양(丹陽)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장무용'''(張戊用)을 시조로 하는 계통은 후단양(後丹陽)으로 불린다. 장무용은 장정필의 14세손으로 결성부원군(結城府院君)에 봉해졌던 결성 장씨 장사(張楒)의 둘째 아들이다.
3. 2. 조선
- 장온 : 아버지는 교동현감(喬桐縣監) 장계손(張季孫)이다. 1470년(성종 1)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注簿)가 되었다. 이후 오위도총부도사 겸 내금위장(五衛都摠府都事兼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올랐고 이어 단양군(丹陽君)으로 봉해졌다.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사옹원판관(行司饔院判官), 호조참판을 지냈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여주군 홍천면 신근 2리에 있고, 사당과 신도비도 함께 있다. 아들 장국정(張國禎)은 1528년(중종 23)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25위로 합격하였다.[1]
- 장충범(張忠範, ? ∼ 1597년)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장언구의 아들로, 음보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忠州)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당하고 향리(鄕里)인 삼생리에 와서 치료하였다. 그 후 1597년(선조 30)에 창의현 생극면 생리 구진터에서 왜병과 싸우다 전사했다. 그 공으로 1605년(선조 38)에 임금의 명으로 공신임을 인정하는 문서가 하사되고, 1857년(철종 8)에 증이조참판선무원종군(贈吏曹參判宣武原從軍)의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려졌다. 또 1971년 생극면 생리에 임난공신장충범장군기념비(壬亂功臣張忠範將軍記念碑)가 건립되었다.
3. 3. 현대
4. 과거 급제자
단양 장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1]
5. 인구
연도 | 가구 수 | 인구 수 |
---|---|---|
1985년 | 7,365가구 | 30,521명 |
2000년 | 10,541가구 | 33,295명 |
2015년 | 44,33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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