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도
1. 개요
드릴도는 1732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조제프니콜라 드릴이 개발한 온도 눈금이다. 끓는 물의 온도를 0도로, 온도가 낮아질수록 수은의 수축을 측정하여 눈금을 매겼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기온 측정에 적합하도록 고안되었다. 1738년 요지아스 바이트브레히트에 의해 재보정되었으며, 섭씨 눈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쳤다. 드릴도와 섭씨 간의 변환 공식이 존재하며, 여러 온도 단위를 비교하는 표가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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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및 자연에 관한 -
한파
한파는 북극 또는 남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며, 북극진동과 남극진동의 기압 차이에 따라 빈도가 달라지고, 가축과 야생 동물 피해, 수도관 동파, 인명 피해 등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
과학 및 자연에 관한 -
동지점
동지는 태양 황경이 270°인 시점으로 북반구에서 낮이 가장 짧고, 여러 문화권에서 축제와 풍습이 행해지며, 한국에서는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는 천문학적으로 중요한 날이다. -
과학 및 자연에 관한 -
단층
단층은 지각 변동으로 암석이 끊어져 어긋난 구조로, 전단력에 의해 형성되며, 지진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되고 다양한 자연재해와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며, ESR, OSL 연대측정법 등으로 연구된다. -
과학 및 자연에 관한 -
곤드와나
곤드와나는 고생대와 중생대에 존재했던 초대륙으로, 현재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남극,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포함했으며, 판게아 분열 이후 서곤드와나와 동곤드와나로 나뉘어 각 대륙이 이동하면서 생물 지리학적 분포 패턴에도 영향을 미쳤다. -
사용하지 않는 단위 -
척관법
척관법은 동아시아에서 길이, 면적, 부피, 질량 등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던 전통적인 단위계이며, 일본과 한국에서는 미터법으로 대체되었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
사용하지 않는 단위 -
측정 단위
측정 단위는 물리량의 크기를 나타내는 표준으로, 초기에는 인체 치수나 자연 현상을 기준으로 발전했으나 국제단위계(SI)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단위의 통일과 정확한 사용은 안전과 효율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2. 역사
조제프니콜라 드릴은 1725년 표트르 1세의 초청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활동했다. 1732년, 그는 수은을 이용한 온도계를 제작하고 자신만의 온도 눈금인 드릴도를 고안했다. 이 눈금은 물의 끓는점을 0도로 설정하고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눈금 값이 증가하는 방식이었다. 1738년 요시아스 바이트브레히트는 드릴 온도계를 물의 어는점을 150도로 추가하여 재보정했으며, 이는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섭씨 눈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드릴 온도계는 러시아에서 약 100년 동안 사용되었다.
2.1. 드릴 눈금의 발명
1725년, 조제프니콜라 드릴은 표트르 대제의 초청을 받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천문대를 설립하기 위해 러시아로 향했다. 1732년, 드릴은 작동 유체로 수은을 사용하는 온도계를 만들었다. 그는 물이 끓는 온도를 고정된 0도로 정하고, 온도가 낮아질수록 수은이 수축하는 정도를 십만분의 일 단위로 측정하여 눈금을 설정했다. 이 드릴 온도계는 보통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기온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도록 2400개 또는 2700개의 눈금을 가졌다.
1738년, 요시아스 바이트브레히트(Josias Weitbrecht, 1702–1747)는 드릴의 온도계를 두 개의 고정점을 이용하여 재보정했다. 그는 물의 끓는점을 0도로 유지하고, 물의 어는점을 150도로 추가했다. 바이트브레히트는 이렇게 보정된 온도계를 안데르스 셀시우스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에게 보냈다. 섭씨 눈금 역시 처음에는 드릴 눈금처럼 물의 끓는점을 0도, 어는점을 100도로 정했으나, 셀시우스가 사망한 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와 온도계 제작자 다니엘 엑스트룀(Daniel Ekström)의 주도로 현재와 같이 눈금이 반대로 바뀌었다.
드릴의 온도계는 러시아에서 약 100년 동안 사용되었다. 사용자 중 한 명인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연구 과정에서 눈금을 거꾸로 사용하여 물의 어는점을 0 °D, 끓는점을 150 °D로 사용하기도 했다.
2.2. 드릴 눈금의 재보정 및 섭씨 눈금으로의 전환
1738년 요지아스 바이트브레히트(Josias Weitbrecht, 1702–1747)는 드릴 온도계를 두 개의 고정점을 이용하여 재보정했다. 그는 물의 끓는점을 0도로 유지하고, 물의 어는점을 150도로 새롭게 설정했다. 바이트브레히트는 이렇게 보정된 온도계를 안데르스 셀시우스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에게 보냈다.
셀시우스가 처음 제안한 섭씨 눈금은 드릴 눈금과 유사하게 물의 끓는점을 0도, 어는점을 100도로 정했다. 이는 현재 사용되는 섭씨 눈금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셀시우스가 사망한 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와 당시 셀시우스가 사용하던 온도계를 주로 제작했던 스웨덴의 실험 기구 제작자 다니엘 에크스트룀(Daniel Ekström)의 주도로 눈금이 현재와 같이 바뀌었다.
2.3. 드릴 눈금의 사용과 쇠퇴
드릴 온도계는 러시아에서 거의 100년 동안 사용되었다. 1738년, 요시아스 바이트브레히트(Josias Weitbrecht, 1702–1747)는 드릴 온도계를 물의 끓는점을 0도로, 물의 어는점을 150도로 하는 두 개의 고정점을 사용하여 재보정했다. 그는 이 보정된 온도계를 안데르스 셀시우스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에게 보냈다.
드릴 눈금을 사용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하일 로모노소프가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과정에서 기존의 드릴 눈금을 반대로 적용하여, 물의 어는점을 0 °D로, 끓는점을 150 °D로 설정하여 사용했다.
3. 온도 단위 사이의 환산
(내용 없음)
3.1. 여러 온도 단위 비교
드릴도(°De)와 섭씨(°C)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
:
| 켈빈(K) | 섭씨(°C) | 화씨(°F) | 랭킨(°Ra) | 들릴(°D) | 뉴턴(°N) | 레오뮈르(°Ré) | 뢰머(°Rø) | |
|---|---|---|---|---|---|---|---|---|
| 절대 영도 | 0 | -273.15°C | 약 -273.1°C | 0 °Ra | 559.725 °D | −90.14 °N | −218.52 °Ré | −135.90 °Rø |
| 지구 표면의 최저 기온 (※1) | 183,950 | -89.2°C | 약 -89.2°C | 331.11 °Ra | 283.8 °D | −29.436 °N | −71.36 °Ré | −39.33 °Rø |
| 파렌하이트의 얼음 혼합물 | 255,370 | -17.78°C | 약 -17.8°C | 459.67 °Ra | 176.67 °D | −5.87 °N | −14.22 °Ré | −1.83 °Rø |
| 물의 녹는점 (표준 상태 하) | 273,150 | 0°C | 약 0.0°C | 491.67 °Ra | 150 °D | 0 °N | 0 °Ré | 7.5 °Rø |
| 지구 표면의 평균 기온 | 288,000 | 15°C | 약 15.0°C | 518.67 °Ra | 127.5 °D | 4.95 °N | 12 °Ré | 15.375 °Rø |
| 인간의 평균 체온 | 309,950 | 36.8°C | 약 36.8°C | 557.91 °Ra | 94.8 °D | 12.144 °N | 29.44 °Ré | 26.82 °Rø |
| 지구 표면의 최고 기온 (※2) | 329,850 | 56.7°C | 약 56.7°C | 593.73 °Ra | 64.95 °D | 18.711 °N | 45.36 °Ré | 37.268 °Rø |
| 물의 끓는점 (표준 상태 하) | 373,150 | 100°C | 약 100.0°C | 671.67 °Ra | 0 °D | 33 °N | 80 °Ré | 60 °Rø |
| 티타늄의 녹는점 | 1,941,000 | 1668°C | 약 1667.8°C | 3494 °Ra | −2352 °D | 550 °N | 1334 °Ré | 883 °Rø |
| 태양의 표면 온도 | 5,800,000 | 5526°C | 약 5526.7°C | 10440 °Ra | −8140 °D | 1823 °N | 4421 °Ré | 2909 °Rø |
* ※1: 남극 보스토크 기지, 1983년 7월 21일
* ※2: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1913년 7월 10일
3.2. 드릴도와 섭씨의 관계
드릴도(De)와 섭씨(℃)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