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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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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맹염은 제갈량에 의해 촉한에서 등용된 인물로, 호보감, 보한장군을 역임했다. 제갈량의 남정 이후 맹획, 찬습과 함께 등용되었으며, 제갈량의 북벌에 참여하여 무공수 동쪽 기슭을 점거했다. 위의 사마의가 공격해오자, 제갈량의 지원을 받아 위기를 넘겼다. 그의 행적은 제갈량집, 화양국지, 수경주 등에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건흥 3년(225년), 제갈량은 익주 남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남정을 일으켰다. 이때 현지의 재능과 덕이 뛰어난 자들을 발탁했는데, 맹염은 맹획, 찬습과 함께 촉한에 등용되었다.[1] 이후 보한장군까지 승진했다.[1]

2. 1. 촉한 등용

제갈량건녕 지역의 재능과 덕이 뛰어난 인물들을 발탁했는데, 맹염은 맹획, 찬습과 함께 촉한에 등용되었다.[1]

이후 맹염은 호보감에 임명되어 오장원의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선발대로서 무공수(위수의 지류) 동쪽 기슭을 점거했다. 사마의는 맹염이 진을 친 지 20일 만에 위수가 불어난 틈을 타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공격해 왔다. 제갈량은 강 건너편에서 화살을 쏘아 맹염을 지원하는 동시에, 대나무 다리(《태평어람》에서는 수레 다리)를 놓아 맹염을 구원하려 했다. 위군은 다리가 완성되기 전에 맹염의 진영을 함락하지 못했고, 다리가 거의 완성되자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로써 촉군은 무공수 동쪽 기슭을 점거하는 데 성공했다.[2]

맹염은 이후 보한장군까지 승진했다.[1]

2. 2. 제갈량의 북벌 활약

제갈량의 북벌 당시, 호보감(虎步監) 맹염은 제갈량의 명령으로 선발대가 되어 무공수(武功水)의 동쪽 기슭에 진을 쳤다. 사마의위수가 범람한 틈을 타 기병 1만을 이끌고 맹염을 치니, 제갈량은 대나무를 짜 다리를 놓고 무공수 쪽으로 화살을 쐈다.[2] 사마의는 다리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달아났다.[2]

맹염은 오장원의 전투에 참전하여 선발대로서 무공수(위수의 지류)의 동쪽 기슭을 점거했다. 이를 본 사마의는, 맹염이 점거한 지 20일 만에 위수가 불어난 틈을 타 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맹염의 진영을 공격했다. 제갈량은 강 건너에서 화살을 쏘아 맹염을 지원했고, 동시에 대나무 다리(태평어람에서는 수레 다리)를 만들어 맹염을 구원하려 했다. 위는 다리가 완성되기 전에 맹염의 진영을 함락시키지 못했고, 다리가 거의 완성되자 군대를 철수했다. 이로 인해 촉은 무공수 동쪽 기슭 점거에 성공했다.[2]

2. 3. 관직

제갈량에 의해 건녕 사람 찬습, 맹획과 함께 관리로 임용되었다.[1] 제갈량의 북벌 당시 호보감(虎步監)이었던 맹염은 제갈량의 명령으로 선발대가 되어 무공수(武功水)의 동쪽 기슭에 진을 쳤다. 사마의위수가 범람한 틈을 타 기병 1만을 이끌고 맹염을 공격하자, 제갈량은 대나무를 짜 다리를 놓고 무공수 쪽으로 화살을 쏘았다. 사마의는 다리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달아났다.[2] 이후 맹염은 보한장군(輔漢將軍)까지 승진했다.[1]

3. 출전

참조

[1] 서적 華陽国志
[2] 서적 水経注及び太平御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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