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스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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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스(Mase)는 미국의 래퍼이자 목사로, 본명은 메이슨 듀렐 베다(Mason Durrell Betha)이다. 1996년 숀 콤즈(Sean Combs)가 이끄는 배드 보이 레코드(Bad Boy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997년 데뷔 앨범 "Harlem World"를 발매하여 4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두 번째 앨범 "Double Up"을 발매했으나,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고 목사로 활동했다. 2004년 앨범 "Welcome Back"으로 복귀했으며, 50 Cent가 이끄는 G-Unit에 합류하기도 했다. 2009년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으며, 2010년 배드 보이 레코드와 계약을 해지한 후 2012년에 재계약했다. 2013년에는 앨범 "Now We Even"을 발표할 예정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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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스 (가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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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메이슨 듀렐 베사 |
다른 이름 | 머더 메이스 |
출생일 | 1977년 8월 27일 |
출생지 |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 |
출신지 | 미국, 뉴욕, 뉴욕 시 |
장르 | 힙합 |
직업 | 래퍼 송라이터 |
활동 기간 | 1993년–현재 |
과거 멤버 | 칠드런 오브 더 콘 할렘 월드 |
레이블 | 리치피쉬 웨스트사이드 배드 보이 아리스타 유니버설 애틀랜틱 |
2. 어린 시절
메이슨 듀렐 베다는 1975년 8월 27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P. K. 베다와 메이슨 베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정일보다 거의 두 달 일찍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었으며, 쌍둥이 여동생인 스타슨을 포함해 두 명의 형제와 세 명의 자매와 함께 성장했다. 메이스가 세 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떠났고, 1980년(5세)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뉴욕주 할렘으로 이주하여 메이스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서 태어나 5세 때 할렘으로 이주했다. 15세 무렵 농구팀 동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랩을 시작했으며, '머더 메이스'라는 이름으로 Children of the Corn이라는 그룹에서 잠시 활동했다.
십 대 초반 할렘 거리에서 문제에 휘말리기 시작하자, 13살 때 어머니는 그를 다시 잭슨빌의 친척 집으로 보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15살에 할렘으로 돌아온 후, 그는 농구 선수로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1993년 시즌 맨해튼 과학 및 수학 센터 고등학교 농구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다. 당시 팀에는 훗날 래퍼 캠'론으로 알려지게 되는 캐머런 자일스도 함께 뛰었다. 이 무렵 메이스는 농구팀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랩을 하기도 했다. 메이스는 전미 농구 협회(NBA)에 진출하려는 꿈을 가졌지만, 낮은 학업 성적 때문에 디비전 I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대신 뉴욕 주립 대학교 퍼체스에 진학했지만, NBA 선수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고는 음악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곡을 쓰고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으며, 지역 나이트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결국 메이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 경력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3. 음악 경력
1996년 숀 "퍼프 대디" 콤스에게 발탁되어 배드 보이 레코드와 계약하고, 112의 싱글 "Only You" 리믹스에 참여하며 데뷔했다. 이후 노토리어스 B.I.G., 브라이언 맥나이트, 버스타 라임스 등 여러 아티스트의 곡에 피처링하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였다.
1997년 발매한 첫 솔로 앨범 ''Harlem World''는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기록하고 4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큰 성공을 거두며 배드 보이 레코드의 주요 아티스트로 부상했다. 1999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Double Up'' 역시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성공을 이어갔다.
그러나 같은 해, 메이스는 돌연 음악계 은퇴를 선언하고 목사의 길을 걷겠다고 발표했다. 5년간의 공백 끝에 2004년, 세 번째 앨범 ''Welcome Back''으로 복귀하여 다시 한번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이후 50 센트가 이끄는 G-Unit에 합류했으나 별다른 활동 없이 탈퇴했고, 2008년경 다시 목회 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 영감을 받아 다시 음악 활동 재개를 선언하고, 드레이크의 "Best I Ever Had" 리믹스 등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복귀를 시도하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3. 1. 1993-1997: Children of the Corn과 배드 보이 레코드
메이스는 할렘으로 돌아온 후, 어린 시절 친구인 캠'론과 함께 취미로 랩을 시작했다. 이들은 '''머다 메이스'''(Murda Mase)와 킬라 캠(Killa Cam)이라는 이름으로 Children of the Corn("corn"은 "corner"의 약자)이라는 그룹을 잠시 결성했다. 이 그룹에는 할렘 출신 래퍼 빅 엘, 허브 맥그러프, 식스 피가 디가(Six Figga Digga), 블러드쉐드(Bloodshed) 등이 속해 있었다.[8][9] 데몬 대시가 잠시 그룹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Children of the Corn은 이후 해산되었고, 메이스는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을 모색했다.
1996년, 메이스의 누나 스타슨(Stason)은 그를 노토리어스 B.I.G.의 로드 매니저였던 커다 러브(Cudda Love)에게 소개했다. 커다 러브는 당시 20세였던 메이스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랩 컨벤션에 데려갔는데, 이곳에는 저메인 듀프리와 숀 "퍼프 대디" 콤스도 참석하고 있었다. 메이스는 하드 록 카페에서 퍼프 대디 앞에서 랩을 선보였고, 그의 랩 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퍼프 대디는 그 자리에서 메이스에게 배드 보이 레코드와의 계약을 제안했다. 메이스는 25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배드 보이 레코드에 합류했다.[10]
배드 보이 레코드와 계약한 지 일주일 만에, 메이스는 자신의 예명을 '머다 메이스'에서 상업성을 고려하여 '메이스'로 줄였다. 그는 112의 히트 싱글 "Only You" 리믹스 뮤직비디오에 노토리어스 B.I.G.와 함께 출연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퍼프 대디의 "Can't Nobody Hold Me Down"과 "Been Around the World", 노토리어스 B.I.G.의 "Mo' Money, Mo' Problems" 등 배드 보이 소속 아티스트들의 여러 히트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빠르게 인지도를 쌓았다. 특히 "Mo' Money, Mo' Problems"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기록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브라이언 맥나이트, 주니어 마피아, 버스타 라임스 등의 곡 작업에 참여했다.
1997년, 메이스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인 "Harlem World"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제이 지, DMX, 릴 킴 등 당대 최고의 래퍼들이 참여했으며, 발매 첫 주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데뷔하고 4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메이스를 힙합계의 새로운 스타로 만들었다. 이 성공으로 메이스는 배드 보이 레코드의 핵심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3. 2. 1997-1998: ''Harlem World''
1997년 퍼프 대디는 메이스의 랩 실력을 눈여겨보고 그를 베드 보이 레코드로 영입했다. 같은 해 메이스는 솔로 데뷔 앨범 ''Harlem World''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제이 지, DMX, 릴 킴 등이 참여했으며, 발매 첫 주 미국에서 27만 장 이상 판매되며 ''빌보드'' 팝 및 R&B LP 차트에서 1위로 데뷔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11] 이 앨범은 미국에서 총 400만 장 이상 판매되어 4×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Harlem World'' 앨범에서는 "Feel So Good"과 "Lookin' at Me" 같은 히트 싱글이 나왔는데, 두 곡 모두 랩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싱글 "What You Want"는 랩 및 R&B 빌보드 차트에서 3위를 기록했다.[4] 1997년 동안 메이스는 퍼프 대디, 머라이어 캐리의 "Honey", 브라이언 맥나이트의 "You Should Be Mine (Don't Waste Your Time)", 브랜디의 "Top of the World" 등 여러 아티스트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1998년, 메이스는 자신의 음반 레이블인 올 아웃 레코드(All Out Records)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 스테이슨(Stason)이 포함된 그룹 할렘 월드를 So So Def Recordings 산하 레이블과 계약시켰다. 또한 메이스는 할렘 월드 멤버 블린키 블링크와 함께 블랙스트리트와 Mýa가 부른 노래 "Take Me There"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이 곡은 애니메이션 영화 ''러그래츠''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었다.
3. 3. 1999: ''Double Up''과 은퇴
메이스의 두 번째 앨범인 ''Double Up''은 1999년 배드 보이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 첫 주에 107,000장이 판매되어 미국 톱 200 차트 11위에 올랐다. ''Double Up''에서 메이스의 가사는 이전보다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12]
같은 해 4월 20일, 메이스는 펑크마스터 플렉스와의 핫 97 라디오 인터뷰 도중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남은 생을 목사로 살아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자신이 "사람들, 친구들, 아이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그를 따르기 위해 음악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13] 그는 이제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가 되었으며, 랩은 현실이 아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불행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같은 해 8월 19일, 메이스는 클라크 애틀랜타 대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며 학업을 시작했다. 그는 캠퍼스 밖에서 거주하며 통학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래퍼로서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학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14]
3. 4. 2004: 복귀와 ''Welcome Back''
1999년 은퇴 후 5년 동안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메이스는 2004년 여름, 앨범 ''Welcome Back''[13]으로 음악계에 복귀했다. 이 앨범은 2004년 8월 24일 배드 보이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고,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 배급을 맡았다. ''Welcome Back''은 발매 첫 주 미국에서 188,000장이 판매되며 빌보드 앨범 차트 4위로 데뷔했으며, 최종적으로 RIAA로부터 골드 인증을 받고 미국 내 총 559,000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13]
이 앨범은 메이스의 새로운 기독교적 삶과 이전보다 "더 깨끗한" 이미지를 반영했다. 그는 첫 싱글 "Welcome Back"(''Welcome Back Kotter'' 주제가를 샘플링함)에서 자신을 "깨끗해진 배드 보이"라고 칭했다.[13]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엇갈린 반응을 얻었으며, 앨범은 그의 이전 작품인 ''Harlem World''만큼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싱글 "Welcome Back"과 "Breathe, Stretch, Shake"는 BET와 MTV에서 상당한 라디오 및 뮤직 비디오 방송 횟수를 기록했다. 특히 "Breathe, Stretch, Shake"는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28위에 올랐으며, 두 싱글 모두 RIAA로부터 골드 인증을 받았다.
2000년대 중반, 메이스는 뉴욕의 힙합 그룹 G-Unit과 함께 투어 및 녹음 활동을 했다.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50 센트와 함께 잡지 표지, 무대, 뮤직 비디오 등에 등장하며 활동했다. 그는 G-Unit과의 활동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른 부류의 청중에게 다가가 그들 역시 자신처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며,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내가 한때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G-Unit에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G-Unit 소속으로 DJ Whoo Kid의 믹스테이프 시리즈인 ''Crucified 4 The Hood: 10 Years of Hate''를 발매했으나, 정규 앨범은 발표하지 못하고 결국 그룹을 떠났다.
3. 5. 2000년대 중반: G-Unit 합류
2004년 앨범 "Welcome Back"으로 음악계에 복귀한 후, 메이스는 50 센트가 이끄는 G-Unit에 합류했다. G-Unit Records와 계약했지만, 소속 기간 동안 정식 앨범을 발매하지는 못하고 결국 그룹을 탈퇴했다. 이후 2008년 1월에는 다시 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6. 2009: 두 번째 복귀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처럼, 메이스는 R&B 아티스트들의 리믹스에 참여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2009년 6월 초, 그는 The Inc. Records와 계약한 해리 오의 곡 "Uptown Boy" 마지막 부분에 참여했으며, 이 곡에는 론 브라운즈도 함께했다. 몇 주 뒤에는 드레이크의 히트곡 "Best I Ever Had"의 스트리트 리믹스 버전에 참여했다. 메이스는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자신의 복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는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 Power 105.1에 출연하여 DJ 셀프와 함께 복귀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그해 여름 동안 매주 금요일 DJ 셀프의 쇼를 통해 새로운 노래나 피처링 곡을 공개하기로 했다.
메이스가 참여한 첫 번째 신곡은 7월 10일에 공개된 "Get It"으로, 빅 란이 프로듀싱하고 캠'론이 참여한 이 곡의 첫 벌스를 맡았다. 이후 7월 17일에는 론 브라운즈가 프로듀싱한 "Thinkin' 'Bout You"를 발표했고, 7월 24일에는 테이라 마리와 칸예 웨스트의 곡 "Diamonds" 스트리트 리믹스에 참여했다. 7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복귀 후 두 번째 솔로곡인 "Shut the City Down"을 공개했다. 이 곡에서 그는 주로 자신의 래퍼로서의 유산과 전성기 이후 랩 음악 산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배트맨 스타일의 새로운 로고를 언급하며 자신을 힙합계의 슈퍼히어로에 비유하기도 했다. 8월 21일에는 다가올 믹스테이프 "I Bleed Money"의 예고편 격인 "Radio"라는 곡을 발표했다. 9월 11일에는 론 브라운즈의 "Gimme 20 Dollars" 리믹스에 참여했는데, 이는 복귀 후 론 브라운즈와의 세 번째 협업이자, 과거 결별했던 짐 존스와의 첫 번째 협업이었다.
2009년 10월, 메이스는 Diddy-Dirty Money와 함께 라디오 방송국 V-103에서 진행된 라이브 인터뷰에 예고 없이 등장했다. 그는 Bad Boy 레이블과의 계약 해지를 위한 서류를 가져왔다고 밝혔고, 인터뷰 도중 디디에게 직접 서류를 건넸다. 디디는 그 서류에 서명하며 "[메이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15]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서류는 레이블과의 계약 자체를 완전히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음악 작업(피처링 등)을 허용하는 내용이었다.[15]
3. 7. 2010-현재: ''Now We Even''
2010년, 디디는 메이스에게 모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배드 보이와의 1년 계약 해지를 제안했다. 메이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랩에서 완전히 은퇴하기로 결정했으나, 1년 후 다시 배드 보이와 계약을 맺었다.
2012년 4월 17일, 릭 로스의 마이바흐 뮤직 관련 비디오 제작사 Spiff TV Films는 메이스가 로스, 프렌치 몬타나, 오마리온, 리코 러브와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이 사진은 1999년 목사가 되기 위해 은퇴하고 2007년에 다시 음악계를 떠났던 메이스가 세 번째로 복귀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사진 공개 일주일 후, DJ 펑크마스터 플렉스는 자신의 라디오 쇼에서 웨일의 "Slight Work" 리믹스를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이 리믹스에는 메이스가 참여했다.
리믹스 공개 후 라디오 인터뷰에서 메이스는 워너 브라더스 산하의 마이바흐 뮤직과 계약할 가능성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프렌치 몬타나가 자신의 세 번째 컴백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메이스는 몬타나의 배드 보이 데뷔 앨범 ''Excuse My French''에서 A&R 역할을 맡았으며, 몬타나의 곡 "Everything's a Go" 리믹스에도 참여했다. 몬타나는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팀에서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9월, 메이스는 칸예 웨스트의 컴필레이션 앨범 ''Cruel Summer''의 수록곡 "Higher"에 The-Dream, Pusha T, Cocaine 80s와 함께 참여했다.
2012년 12월, 메이스는 더 이상 배드 보이와 계약 상태가 아니며, 당분간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16] 그는 MTV와의 인터뷰에서 계약을 고려할 레이블은 칸예 웨스트의 GOOD Music이나 드레이크의 OVO Sound 뿐이라고 언급했다.[17][18] 2013년 10월 18일, 메이스는 자신의 다음 앨범 제목이 ''Now We Even''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또한 앨범에 Jay-Z, 디디, 비욘세, 드레이크, 2 Chainz, 로린 힐, 미크 밀, 페이벌러스, 아리아나 그란데, Dipset, 에릭 벨린저, 씰, CeeLo Green 등이 게스트로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19]
2017년 11월 24일, 메이스는 친구였으나 라이벌 관계가 된 캠론을 겨냥한 디스 트랙 "The Oracle"을 발매했다. 이는 캠론이 자신의 믹스테이프 ''The Program''에서 메이스를 비난하는 가사를 쓴 것에 대한 응답이었다.[20]
4. 음반 목록
(내용 없음)
4. 1. 정규 앨범
연도 | 제목 | 앨범 상세 | 차트 최고 순위 | 인증 | |||||||||
---|---|---|---|---|---|---|---|---|---|---|---|---|---|
US [24] | AUS [25] | CAN [26] | FRA [27] | GER [28] | NLD [29] | NZ [30] | SWI [31] | UK [32] | |||||
1997 | 'Harlem World' | align=left| | 1 | — | 1 | — | — | 59 | 20 | — | 53 | ||
1999 | 'Double Up' | align=left| | 11 | 35 | 17 | — | 43 | 82 | — | — | 47 | ||
2004 | 'Welcome Back' | align=left| | 4 | 68 | 10 | 165 | 71 | — | 29 | 65 | 68 | ||
"—"는 미발매 또는 차트 진입 실패를 의미한다. |
5. 출연 작품
게스트/출연자
시즌 4: 에피소드 1
게스트/출연자
시즌 27: 에피소드 11
게스트
시즌 2: 에피소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