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미주류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사신으로, 백제가 왜와 통교하려 할 때 탁순국에 파견되었다. 그는 구저, 막고와 함께 백제 왕의 명을 받아 왜에 조공하려 했으나, 신라에 의해 조공품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백제의 관료 - 막고
막고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 사신으로, 백제의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지만 역사적 실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 백제의 관료 - 구저 (백제)
구저는 백제 근초고왕 시대에 일본과의 외교 활동에 참여한 인물로, 367년과 372년에 걸쳐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백제의 대외 관계 강화에 기여했다. - 4세기 한국 사람 - 장수왕
장수왕은 광개토왕의 맏아들로 즉위 후 연호를 사용하고 광개토대왕릉비 등을 건립하여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평양으로 천도하여 남진 정책을 추진하고 백제를 공격하여 한반도 중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다가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세기 한국 사람 - 전지왕
전지왕은 백제의 제18대 국왕으로, 아신왕의 장남이었으나 왕위 계승 과정에서 내분을 겪고 왜의 지원을 받아 즉위하여 해씨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강화에 힘썼으며 왜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 일본에 거주한 한국인 - 막고
막고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 사신으로, 백제의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지만 역사적 실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 일본에 거주한 한국인 - 지석영
지석영은 조선 후기의 의학자이자 개화 사상가로, 종두법 도입에 기여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의 업적이 식민지배 정당화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며, 《우두신설》 등의 저서를 통해 의학 지식을 전파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미주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미주류 |
원어명 | 미주류 |
로마자 표기 | Miju-ryu |
직위 정보 | |
직책 | 백제의 관리 |
군주 | 백제 근초고왕 |
군주 칭호 | 국왕 |
개인 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미상 |
사망지 | 미상 |
매장지 | 미상 |
국적 | 백제 |
성별 | 남성 |
부모 | 미상 |
군사 정보 | |
계급 | 미상 |
근무 | 미상 |
참전 | 미상 |
2. 생애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백제의 사신으로서 탁순국(卓淳國)에 도착해 "백제 왕이 동쪽에 왜(일본)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듣고 우리를 보내 통교하도록 하였다. 가는 길을 찾다가 이곳에 이르렀으니 길을 가르쳐 달라"고 전했다.[1]
이후 왜에서도 사신을 보내자 백제 근초고왕은 크게 기뻐하며 오색 비단 각 1필과 각궁(角弓), 철정(鐵鋌) 40매를 예물로 주고 창고를 열어 여러 가지 진기한 보물을 보여주며, 왜와 통교하고 싶었으나 길을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1]
다음 해 4월, 근초고왕의 명에 따라 왜에 파견되었지만, 도중에 신라인에게 억류되어 선물을 일부 빼앗기게 되자 왜 왕은 크게 노했다고 한다.[1]
2. 1. 일본과의 외교 활동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의 사신 미주류는 탁순국(卓淳國,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에 도착하여 "백제 왕이 동쪽에 왜(일본)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듣고 우리를 보내 통교하도록 하였다. 가는 길을 찾다가 이곳에 이르렀으니 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1] 이는 백제가 왜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을 보여준다.이후 왜에서도 사신을 보내자 백제 근초고왕은 크게 기뻐하며 오색 비단 각 1필, 각궁(角弓), 철정(鐵鋌) 40매를 예물로 주고 창고를 열어 여러 가지 진기한 보물을 보여주며, 왜와 통교하고 싶었으나 길을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1] 이는 당시 백제가 왜에 비해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음 해 4월, 근초고왕의 명에 따라 미주류는 왜에 파견되었지만, 도중에 신라인에게 억류되어 선물을 일부 빼앗기게 되었다. 이에 왜 왕은 크게 노했다고 한다.[1] 이는 당시 백제, 왜, 신라 간의 복잡한 국제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2. 2. 백제의 대왜 외교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기 위해 왜와 화친을 맺고자 했다.[1] 근초고왕 21년(병인년, 366년) 왜의 사마숙네가 탁순국에 파견되었을 때, 탁순국 왕은 구저, 미주류, 막고 등 백제 사신들이 왜로 가는 길을 묻고 왜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다.[1]사마숙네는 백제에 사신을 보내 근초고왕을 위로했고, 근초고왕은 왜에 사신을 후대하고 오색 비단 각 1필, 각궁(角弓), 철정(鐵鋌) 40매를 예물로 보냈다.[1] 또한 보물 창고를 열어 진귀한 물건들을 보여주며 왜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다.[1]
이듬해 백제는 구저 등을 왜에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는데, 이 과정에서 신라가 백제의 조공품을 훼손한 사실이 밝혀져 왜가 신라를 질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