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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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출신의 정부 행정관이자 육군 기술 장교로,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그는 1991년부터 1999년까지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138대 총독을 역임했으며, 마카오의 마지막 포르투갈 총독이었다. 총독 재임 기간 동안 마카오 반환 행사에서 포르투갈 국기를 가슴에 안은 모습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또한 벨기에 주재 NATO 국가 군사 대표, 아조레스 자치 지역 공화국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퇴임 후에는 포르투갈 골프 협회 고위 멤버로 활동했다. 그는 여러 훈장을 받았으며, 마리아 레오노르 드 안드라다 소아르스 드 알버가리아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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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직책 | 제138대 마카오 총독 |
| 임기 시작 | 1992년 4월 24일 |
| 임기 종료 | 1999년 12월 19일 |
| 대통령 | 마리오 소아레스 조르즈 삼파이우 |
| 총리 | 아니발 안토니우 카바쿠 실바 안토니우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구테레스 |
| 이전 총독 | 카를루스 멜란시아 |
| 이후 직책 | 에드문드 호 하우와 (마카오 행정장관) |
| 출생일 | 1939년 8월 16일 |
| 출생지 | 라고아, 포르투갈 |
| 국적 | 포르투갈 |
| 정당 | 무소속 |
| 배우자 | 마리아 레오노르 드 안드라다 소아레스 드 알베르가리아 |
| 자녀 | 3명 |
| 직업 | 군인 |
| 중국어 이름 | 웨이치리 |
| 중국어 (번체) | 韋奇立 |
| 중국어 (간체) | 韦奇立 |
| 광둥어 (예일) | wai4 kei4 laap6 |
| 중국어 (병음) | Wéi Qílì |
| 훈장 | |
| 기타 직책 | |
| 임기 시작 | 2006년 4월 24일 |
| 임기 종료 | 2016년 3월 14일 |
| 이전 총장 | 루이 드 알라르카오 |
| 이후 총장 | 자이메 가마 |
| 대통령 | 아니발 카바쿠 실바 |
| 아소르스 담당 장관 | |
| 임기 시작 | 1986년 7월 12일 |
| 임기 종료 | 1992년 4월 19일 |
| 총리 | 아니발 카바쿠 실바 |
| 이전 장관 | 토마스 조르제 다 콘세이상 실바 |
| 이후 장관 | 마리오 페르난도 데 캄포스 핀투 |
| 육군 참모총장 | |
| 임기 시작 | 1976년 7월 14일 |
| 임기 종료 | 1978년 4월 3일 |
| 이전 총장 | 안토니우 라말류 이에아느스 |
| 이후 총장 | 페드루 고메스 카르도주 |
2. 배경 및 학위
그는 주앙 다 실바 비에이라(1913년 11월 9일 라고아 또는 파루 출생)와 그의 아내 마리아 비에이라 로차의 아들이며, 안드레 드 소자 비에이라와 그의 아내 테레사 데 제수스 다 실바의 손자이다.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후, 1991년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138번째 총독으로 임명되어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양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이양식 때 깃발을 가슴에 댄 장면은 큰 화제가 되었다.[1] 그의 퇴임은 포르투갈 제국의 사실상 몰락과 아시아에서 유럽 열강들의 식민 시대 종식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출신의 정부 행정관이자 포르투갈 육군 소속의 군 기술 장교이다. 육군학교 과정을 수료했으며, 리스본 대학교의 Instituto Superior Técnico(고등 기술 연구소)에서 토목 공학 학사를 받았다. 또한 육군 참모 일반 및 보충 과정, 포르투갈군 지휘 및 통솔 고등 과정, 국방 과정을 수료했다.
3. 경력
총독이 되기 전, 비에이라는 마카오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마카오 독립 영토 사령부의 참모장을,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마카오 정부의 공공 사업 및 통신 부차관을 역임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육군 공병 부대장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육군 참모장을 역임하며 혁명 평의회(Conselho da Revolução)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는 포르투갈 정치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4월의 선장 중 한 명으로, 폭넓은 공직 경력을 쌓았다. 포르투갈 육군 공병 부대 명예 부대장으로도 임명되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벨기에에 있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최고 연합군 사령부 유럽에서 국가 군사 대표로 활동했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그리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각각 Instituto de Altos Estudos Militares (군사 고등 연구소)의 교수 및 부소장을 역임했다.[1]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아조레스 자치 지역의 공화국 장관을 지냈다.[1]
1992년 4월 24일부터[1] 1999년 12월 19일까지 제138대 마카오 총독을 역임했으며, 마카오의 마지막 포르투갈 총독이었다. 마카오 반환 행사에서 포르투갈 국기를 접어 가슴에 안은 채, 포르투갈 국기를 내려놓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환 이후,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골프 협회(Associação Portuguesa de Golfe)의 고위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 사람의 이름을 딴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카오의 또 다른 전 총독인 안토니우 로페스 도스 산토스 장군은 2000년부터 2009년 사망할 때까지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의 회장을 역임했다.[4]
3. 1. 군 경력
비에이라는 마카오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등 총독이 되기 전 여러 직무를 수행했다.[1]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마카오 독립 영토 사령부의 참모장을,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마카오 정부의 공공 사업 및 통신 부차관을 역임했다.[1]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육군 공병 부대장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육군 참모장을 역임하여 혁명 평의회(Conselho da Revolução)의 구성원이 되었다.[1] 그는 포르투갈 정치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4월의 선장 중 한 명이었으며, 광범위한 공직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1] 또한 포르투갈 육군 공병 부대 명예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1]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벨기에에 있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최고 연합군 사령부 유럽에서 국가 군사 대표로 활동했다.[1] 1983년부터 1984년까지, 그리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각각 Instituto de Altos Estudos Militares (군사 고등 연구소)의 교수 및 부소장을 역임했다.[1]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아조레스 자치 지역의 공화국 장관을 지냈다.[1]
1992년 4월 24일[1]부터 1999년 12월 19일까지 제138대 마카오 총독을 역임했으며, 1999년 식민지 중국 반환 직전까지 마카오의 마지막 포르투갈 총독이었다.[1] 그는 (마카오) 반환 행사에서 포르투갈 국기를 접어 가슴에 안은 채, 포르투갈 국기를 내려놓는 모습으로 유명해졌다.
반환 이후,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골프 협회(Associação Portuguesa de Golfe)의 고위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4] 그는 반환 전에 중국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 사람의 이름을 딴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4]
3. 2. 정치 경력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후, 1991년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138번째 총독으로 임명되어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양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이양식 때 깃발을 가슴에 댄 장면은 큰 화제가 되었다.[1] 그의 퇴임은 포르투갈 제국의 사실상 몰락과 아시아에서 유럽 열강들의 식민 시대 종식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총독이 되기 전, 비에이라는 마카오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마카오 독립 영토 사령부의 참모장을,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마카오 정부의 공공 사업 및 통신 부차관을 역임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육군 공병 부대장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육군 참모장을 역임하며 혁명 평의회(Conselho da Revolução)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는 포르투갈 정치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4월의 선장 중 한 명으로, 폭넓은 공직 경력을 쌓았다. 포르투갈 육군 공병 부대 명예 부대장으로도 임명되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벨기에에 있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최고 연합군 사령부 유럽에서 국가 군사 대표로 활동했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그리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각각 Instituto de Altos Estudos Militares (군사 고등 연구소)의 교수 및 부소장을 역임했다.[1]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아조레스 자치 지역의 공화국 장관을 지냈다.[1]
1992년 4월 24일부터[1] 1999년 12월 19일까지 제138대 마카오 총독을 역임했으며, 마카오의 마지막 포르투갈 총독이었다. 마카오 반환 행사에서 포르투갈 국기를 접어 가슴에 안은 채, 포르투갈 국기를 내려놓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환 이후,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골프 협회(Associação Portuguesa de Golfe)의 고위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 사람의 이름을 딴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카오의 또 다른 전 총독인 안토니우 로페스 도스 산토스 장군은 2000년부터 2009년 사망할 때까지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의 회장을 역임했다.[4]
3. 3. 마카오 총독 시절과 이후
바스쿠 조아큄 로샤 비에이라는 1991년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138번째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양될 때까지 총독을 지냈다.[1] 이양식 때 깃발을 가슴에 댄 장면은 화제가 되었다.[1]
그가 물러난 뒤, 포르투갈 제국은 사실상 몰락했다고 간주되며, 또한 아시아에서 유럽 열강들의 식민시대가 사실상 종식되었음을 의미했다.
총독이 되기 전, 비에이라는 마카오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마카오 독립 영토 사령부의 참모장을,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마카오 정부의 공공 사업 및 통신 부차관을 역임했다.[1] 이후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육군 공병 부대장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육군 참모장을 역임했고, 혁명 평의회(Conselho da Revolução)의 구성원이 되었다.[1] 그는 포르투갈 정치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4월의 선장 중 한 명이었다.[1]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벨기에에 있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최고 연합군 사령부 유럽에서 국가 군사 대표로 활동했으며, 1983년부터 1984년까지, 그리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각각 Instituto de Altos Estudos Militares (군사 고등 연구소)의 교수 및 부소장을 역임했다.[1]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아조레스 자치 지역의 공화국 장관을 지냈다.[1]
1992년 4월 24일[1]부터 1999년 12월 19일까지 제138대 마카오 총독을 역임했으며, 1999년 식민지 중국 반환 직전까지 마카오의 마지막 포르투갈 총독이었다. 그는 (마카오) 반환 행사에서 포르투갈 국기를 접어 가슴에 안은 채, 포르투갈 국기를 내려놓는 모습으로 유명해졌다.
반환 이후, 비에이라는 포르투갈 골프 협회(Associação Portuguesa de Golfe)의 고위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반환 전에 중국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 사람의 이름을 딴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카오의 또 다른 전 총독인 안토니우 로페스 도스 산토스 장군은 2000년부터 2009년 사망할 때까지 조르제 알바레스 재단의 회장을 역임했다.[4]
4. 훈장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는 국내외에서 수많은 훈장을 수여받았다.[5][7] 포르투갈의 탑과 칼 훈장 대십자 훈장,[5] 엔히크 공 훈장 금장,[6] 그리스도 훈장 대십자 훈장,[5] 엔히크 공 훈장 대십자 훈장,[5] 아비스 훈장 지휘관 훈장[5]을 비롯하여 금·은 공로 훈장, 1등 및 3등 군공 훈장, 금·은 모범 행위 훈장을 받았다. 또한, 일본의 성스러운 보물 훈장 대십자 훈장, 브라질의 히우 브랑쿠 훈장 대십자 훈장,[7]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 훈장 그랜드 오피서 훈장, 프랑스의 공로 훈장 지휘관 훈장,[7] 미국의 공로 훈장 지휘관 훈장[7]을 수여받았다.
5. 개인사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는 1976년 11월 20일 리스본의 알칸타라에서 마리아 레오노르 드 안드라다 소아르스 드 알버가리아와 결혼했다.[1] 그녀는 1949년 4월 18일 리스본 출생으로, 리스본 대학교에서 고대 로마 고전문헌학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1] 마리아 레오노르는 3대 토르 드 몬코르보 자작(이전에는 남작)인 조앙 조제 카브랄 소아르스 드 알버가리아(''드 모라이스''와 ''사르멘토''의 문장 소유)의 딸이며, 비스콘데 드 모라이스 사르멘토 칭호의 대표자이다.[1] 또한, 그녀는 전 왕국 백작과 가문의 백작 부인 가문의 마리아 훌리아 펠렌 드 캄푸스 드 안드라다와 결혼한 기계 공학 기계 기사의 딸이다. [1]
바스코 조아큄 로차 비에이라는 마리아 레오노르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다.[1]
참조
[1]
서적
Governadores de Macau
https://archive.org/[...]
Livros do Oriente
2013
[2]
문서
Decreto n.º 20/86, de 11 de Julho
http://dre.pt/pdf1s/[...]
[3]
문서
Decreto n.º 20/91, de 19 de Abril
http://dre.pt/pdf1s/[...]
[4]
뉴스
Former Governor Lopes dos Santos dies
http://archive.macau[...]
Macau Daily Times
2009-08-03
[5]
웹사이트
ENTIDADES NACIONAIS AGRACIADAS COM ORDENS PORTUGUESAS
https://www.ordens.p[...]
2023
[6]
웹사이트
ENTIDADES NACIONAIS AGRACIADAS COM ORDENS PORTUGUESAS
https://www.ordens.p[...]
[7]
웹사이트
Macau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confers 2021 Honorary Doctorate Degree upon 8 Outstanding Individuals
https://www.must.edu[...]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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