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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베르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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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텐베르크가는 헤센 대공 루이 3세의 동생 알렉산더가 귀천상혼으로 율리아 하우케와 결혼하면서 시작된 가문이다. 율리아가 헤센 대공으로부터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 칭호를 받았고, 이후 이 명칭은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 없이 자녀들에게 주어졌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장남 루이 알렉산더는 영국으로 귀화하여 마운트배튼으로 성을 개명했으며, 밀포드 헤이븐 후작이 되었다. 바텐베르크가는 불가리아의 군주, 스페인과 스웨덴의 왕비, 영국 왕실의 일부 구성원과 관련되어 있으며, 유럽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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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베르크가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가문 정보
가문 이름바텐베르크 가문
원어 이름Haus Battenberg (독일어)
바텐베르크-마운트배튼 가문의 문장
바텐베르크-마운트배튼 가문의 문장
가문 유형옛 독일 귀족 가문
출신 국가헤센 대공국
모가문헤센 가문의 헤센-다름슈타트 분가
관련 가문윈저 왕조
분가마운트배튼 가문
저명한 구성원밀포드헤이븐 후작 루이스 알렉산더
불가리아 공 알렉산더르 1세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스
스페인 왕비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스웨덴 왕비 루이세
창시율리아 하우케 (추정)
설립 연도1851년
현재 가주조지 마운트배튼

2. 역사

헤센 대공 루트비히 3세의 동생 알렉산더 대공자가 율리아 테레사 하우케귀천상혼을 하면서, 율리아가 루트비히 3세로부터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Gräfin von Battenbergde, 후에 후작 부인) 칭호를 받은 것이 바텐베르크 가문의 시작이다. '바텐베르크'라는 이름은 헤센 대공의 저택 중 하나가 있던 바텐베르크에서 유래했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아이들에게는 바텐베르크 후작(부인) 칭호가 주어졌지만,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장남 루트비히 알렉산더는 영국으로 귀화하여 루이스 알렉산더 바텐버그라고 칭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 반독일 감정이 심해지자, 성을 영어식인 '''마운트배튼'''(Mountbatten영어)으로 바꾸었다. 루이스 알렉산더는 밀포드 헤이븐 후작에 임명되었고, 이 작위는 그의 자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2. 1. 기원

헤센의 루트비히 2세 대공과 바덴의 빌헬미네의 셋째 아들인 알렉산더 공(1823–1888)은 아우구스트 폰 세나르클렌스-그란시 남작이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소문이 있었다.[1] 알렉산더 공의 배우자인 율리아 폰 하우케(1825–1895)는 모리츠 폰 하우케 백작의 딸이었는데, 그녀의 신분은 알렉산더 공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헤센 대공국의 왕위 계승 자격을 얻기에 너무 낮았다.

이러한 이유로, 헤센의 루트비히 3세는 그녀와 부부의 후손들을 위해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Gräfin von Battenbergde)이라는 칭호를 만들었다. 1858년, 헤센의 바텐베르크 시를 지칭하는 이 칭호는 공작 지위로 격상되었다. 바텐베르크에 해당하는 공국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칭호는 헤센 대공국의 귀족 지위에서 비주권적인 것이었다. 이전의 바텐베르크 백작 가문은 14세기에 절멸되었다.[2]

1858년 이후, 이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전하(Durchlauchtde)의 지위를 가진 공(Prinzde) 또는 공주(Prinzessinde)라는 칭호를 사용했다.[3] 따라서 바텐베르크는 왕위 계승권이 없는 헤센 대공 가문의 비정통 방계 가문의 이름이 되었다.[4]

헤센 대공 루트비히 3세의 동생 알렉산더 대공자가 율리아 테레사 하우케귀천상혼을 했을 때, 율리아가 루트비히 3세로부터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Gräfin von Battenbergde, 후에 후작 부인)의 칭호를 받은 것이 시작이다. "바텐베르크"라는 이름은 바텐베르크 (에데르)에서 유래했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아이들에게는 바텐베르크 후작(부인)의 칭호가 주어졌지만,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장남 루트비히 알렉산더는 영국으로 귀화하여, 영어식 발음으로 루이스 알렉산더 바텐버그라고 칭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의 반독 감정 때문에, 영어식으로 '''마운트배튼'''(Mountbatten영어)으로 성을 개명했다.

2. 2. 분가 및 개명

헤센의 루트비히 2세 대공과 바덴의 빌헬미네의 셋째 아들인 알렉산더 공(1823–1888)은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어머니의 시종이었던 아우구스트 폰 세나르클렌스-그란시 남작이라는 소문이 있었다.[1] 알렉산더 공의 배우자인 율리아 폰 하우케(1825–1895)는 백작 신분으로, 모리츠 폰 하우케 백작의 딸이었다. 모리츠 폰 하우케 백작은 폴란드 귀족 출신으로 독일 조상을 두었으며 러시아 제국군에서 장군으로 복무한 후 콩그레스 폴란드의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폰 하우케 백작의 지위는 알렉산더 공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헤센 대공국의 왕위 계승 자격을 얻기에 낮았다. 이 때문에 헤센의 루트비히 3세는 그녀와 후손들을 위해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Gräfin von Battenbergde)이라는 칭호를 만들었다. 1858년, 헤센의 바텐베르크 시를 지칭하는 이 칭호는 공작 지위로 격상되었다. 바텐베르크에 해당하는 공국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칭호는 헤센 대공국의 귀족 지위에서 비주권적인 것이었다. 이전의 바텐베르크 백작 가문은 14세기에 절멸되었다.[2]

1858년 이후, 이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전하(Durchlauchtde)의 지위를 가진 공(Prinzde) 또는 공주(Prinzessinde)라는 칭호를 사용했다.[3] 따라서 바텐베르크는 왕위 계승권이 없는 헤센 대공 가문의 비정통 방계 가문의 이름이 되었다.[4]

헤센 대공 루트비히 3세의 동생 알렉산더 대공자가 율리아 테레사 하우케귀천상혼을 했을 때, 율리아가 루트비히 3세로부터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Gräfin von Battenbergde, 후에 후작 부인)의 칭호를 받은 것이 시작이다. "바텐베르크"라는 이름은 헤센 대공의 저택 중 하나가 있던 바텐베르크 (에데르)에서 유래했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아이들에게는 바텐베르크 후작(부인)의 칭호가 주어졌지만,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장남 루트비히 알렉산더는 영국으로 귀화하여, 영어식 발음으로 루이스 알렉산더 바텐버그라고 칭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의 반독 감정 때문에, 영어식으로 '''마운트배튼'''(Mountbatten영어)으로 성을 개명했다. 루이스 알렉산더는 밀포드 헤이븐 후작에 서임되었고, 밀포드 헤이븐 후작위는 그의 자손에 의해 습작되고 있다.

3. 주요 인물

바텐베르크 가문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바텐베르크 공녀 율리아(1825–1895): 헤센-라인 공자 알렉산더와 결혼했다.
  • 바텐베르크 공녀 마리(1852–1923): 에르바흐-쇤베르크 공자와 결혼했다.
  •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1854–1921): 밀포드 헤이븐 후작. 헤센-라인 공녀 빅토리아와 결혼했다.
  • 바텐베르크 공자 알렉산더(1857–1893): 불가리아 공국의 통치 공이었으나, 퇴위 후 하르테나우 백작이 되었다.
  • 바텐베르크 공자 헨리(1858–1896):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다.
  • 바텐베르크 공자 프란시스 조셉(1861–1924): 몬테네그로의 안나 공주와 결혼했다.[5]


알렉산더와 율리아 부부의 아들 중 알렉산더 폰 바텐베르크 공자는 불가리아 공국의 군주가 되었으나 1886년 퇴위했다. 다른 아들 헨리 폰 바텐베르크 공자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과 결혼했고, 그들의 딸 빅토리아 유제니아 폰 바텐베르크는 스페인의 여왕 배우자가 되었다.

장남 루이 폰 바텐베르크 공자는 영국 해군의 제1 해군 경이 되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의 반독일 감정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성을 마운트배튼으로 영국식화했다. 루이 공자를 포함한 부부의 네 아들과 손자 중 한 명은 헤센의 작위를 포기하고 조지 5세에게서 귀족 작위를 받았다.

바텐베르크 가문은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없었지만, 손자 세대에 왕족 또는 왕족비를 배출하여 현존하는 왕실에도 그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3. 1. 헤센-바텐베르크 가문

헤센의 루트비히 2세 대공과 바덴의 빌헬미네의 셋째 아들 알렉산더 공(1823–1888)은 율리아 폰 하우케(1825–1895)와 귀천상혼을 하였다.[1] 율리아는 모리츠 폰 하우케 백작의 딸로, 폴란드 귀족 출신이자 독일계 조상을 두었으며 러시아 제국군에서 장군으로 복무한 후 콩그레스 폴란드의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율리아 폰 하우케 백작의 지위는 알렉산더 공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헤센 대공국의 왕위 계승 자격을 얻기에 낮았다. 이 때문에 그녀의 시동생 헤센의 루트비히 3세는 그녀와 후손들을 위해 바텐베르크 백작 부인(Gräfin von Battenbergde)이라는 칭호를 만들었다. 1858년, 헤센의 바텐베르크 시를 따서 만든 이 칭호는 공작 지위로 격상되었다. 바텐베르크에 해당하는 공국은 없었으며, 이 칭호는 헤센 대공국의 귀족 지위에서 비주권적인 것이었다. 이전의 바텐베르크 백작 가문은 14세기에 절멸되었다.[2]

1858년 이후, 이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전하(Durchlauchtde)의 지위를 가진 공(Prinzde) 또는 공주(Prinzessinde)라는 칭호를 사용했다.[3] 따라서 바텐베르크는 왕위 계승권이 없는 헤센 대공 가문의 비정통 방계 가문의 이름이 되었다.[4]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장남 루트비히 알렉산더는 영국으로 귀화하여 루이스 알렉산더 바텐버그라고 칭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의 반독 감정 때문에 영어식으로 '''마운트배튼'''(Mountbatten영어)으로 성을 개명했다. 루이스 알렉산더는 밀포드 헤이븐 후작에 서임되었고, 이 작위는 그의 자손에 의해 습작되고 있다.

3. 2. 마운트배튼 가문 (영국)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는 1917년 작위를 포기하고 밀포드 헤이븐 후작으로 봉해졌다. 그는 헤센 대공 루이 4세와 영국의 앨리스 공주의 딸인 헤센-라인 공녀 빅토리아와 결혼했다.[5] 그의 자녀들은 다음과 같다.

  • 바텐베르크 공녀 앨리스: 1903년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결혼했다.[5]
  • 바텐베르크 공녀 루이즈: 1917년 작위를 포기하고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이 되었으며, 1923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결혼했다.[5]
  • 바텐베르크 공자 조지: 1917년 작위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차하위 작위인 메디나 백작을 물려받았으며, 이후 제2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이 되었다.[5]
  •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 1917년 작위를 포기하고 로드 루이 마운트배튼이 되었으며, 이후 버마 백작 마운트배튼으로 봉해졌다.[5]


바텐베르크 공자 헨리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막내딸인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다. 그의 자녀들은 다음과 같다.

  • 바텐베르크 공자 알렉산더: 1917년 작위를 포기하고 카리스브룩 후작으로 봉해졌다.[5]
  • 바텐베르크 공녀 빅토리아 유제니아: 1906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와 결혼했다.[5]
  • 바텐베르크 공자 레오폴드: 1917년 작위를 포기하고 로드 레오폴드 마운트배튼이 되었다.[5]
  • 바텐베르크 공자 모리스[5]


알렉산더 폰 바텐베르크 공자는 1879년 불가리아 공국의 군주가 되었으나, 1886년 퇴위했다.[5]

헨리 폰 바텐베르크 공자는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고, 그들의 딸 빅토리아 유제니아 폰 바텐베르크는 스페인의 여왕 배우자가 되었다. 그녀의 삼촌 에드워드 7세는 그녀의 작위를 전하로 격상시켰다.[5]

루이 폰 바텐베르크 공자는 영국 해군의 제1 해군 경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에서 만연했던 반독일 감정 때문에 그와 그의 자녀들 및 조카들(헨리 공자와 베아트리스 공주의 아들들)은 마운트배튼으로 영국식화했다.[5]

조지 5세는 헤센의 작위를 포기한 루이 공자와 헨리 공자의 장남 알렉산더 공자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했다. 루이 공자는 초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 알렉산더 공자는 카리스브룩 후작이 되었다.[5]

루이 공자의 차녀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결혼하여 스웨덴의 여왕 배우자가 되었다. 그의 막내 아들 루이스 마운트배튼은 마지막 인도 총독이 되었다. 루이 공자의 장녀 앨리스 폰 바텐베르크 공주는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결혼했고, 그들의 아들 필립 공 (에든버러 공작)은 그리스 작위를 포기하고 외할아버지와 삼촌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사용하여 영국 왕위 계승자 엘리자베스 2세와 결혼했다. 바텐베르크라는 이름은 영국식화된 형태로 현재 영국 왕실의 일부 구성원의 개인 성(마운트배튼-윈저)의 일부이다.[5]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없었지만, 손자 세대에 왕족 또는 왕족비를 배출하여 현존하는 왕실에도 그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 장남 루이스 알렉산더의 계보

: 장녀 앨리스는 그리스 왕족과 결혼했고, 그의 아들 필립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왕배)이자 국왕 찰스 3세의 아버지이다.

: 차녀 루이즈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왕비이다.

; 삼남 하인리히(헨리)의 계보

: 장녀 빅토리아 유제니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왕비이다.

4. 유럽 왕실과의 관계

헤센의 방계 가문인 바텐베르크 가문은 여러 유럽 왕실과 결혼을 통해 혈연 관계를 맺었다.

출생이름배우자자녀비고
1852년바텐베르크 공녀 마리에르바흐쇤베르크 공자1871년 결혼
1854년바텐베르크 공자 루이헤센 대공 루이 4세와 영국의 앨리스 공주의 딸인 헤센-라인 공녀 빅토리아바텐베르크 공녀 앨리스, 바텐베르크 공녀 루이즈, 바텐베르크 공자 조지,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1917년 작위 포기, 밀포드 헤이븐 후작
1857년바텐베르크 공자 알렉산더하르테나우의 아센, 츠베타나 오브 하르테나우(1893–1935)1879년 불가리아 공국 통치 공, 퇴위 후 하르테나우 백작
1858년바텐베르크 공자 헨리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막내딸인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바텐베르크 공자 알렉산더, 바텐베르크 공녀 빅토리아 유제니아, 바텐베르크 공자 레오폴드, 바텐베르크 공자 모리스
1861년바텐베르크 공자 프란시스 조셉몬테네그로의 안나 공주[5]



바텐베르크 가문의 주요 인물들과 유럽 왕실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 알렉산더 폰 바텐베르크 공자: 1879년 불가리아 공국의 군주가 되었으나 1886년 퇴위했다.
  • 헨리 폰 바텐베르크 공자: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다.
  • 빅토리아 유제니아 폰 바텐베르크: 스페인알폰소 13세와 결혼하여 여왕 배우자가 되었다. 에드워드 7세는 그녀의 작위를 전하로 격상시켰다.
  • 루이 폰 바텐베르크 공자: 영국 해군의 제1 해군 경을 역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반독일 감정으로 인해 그의 가족과 함께 마운트배튼으로 성을 영국식화했다.
  • 루이즈 마운트배튼: 1923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결혼하여 1950년 스웨덴의 여왕 배우자가 되었다.
  • 루이 마운트배튼: 마지막 인도 총독을 역임했다.
  • 앨리스 폰 바텐베르크 공주: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결혼했고, 아들 필립 공 (에든버러 공작)은 엘리자베스 2세와 결혼했다.
  • 프란츠 요제프 폰 바텐베르크 공자: 몬테네그로의 안나 공주와 결혼했다.[5]


바텐베르크 가문은 헤센 대공가의 상속권은 없었지만, 손자 세대에 왕족 또는 왕족 배우자를 배출하여 현존하는 왕실에도 그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 장남 루이스 알렉산더의 계보
  • *: 장녀 앨리스는 그리스 왕족과 결혼했고, 그의 아들 필립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왕배)이자 국왕 찰스 3세의 아버지이다.
  • *: 차녀 루이즈 마운트배튼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왕비이다.
  • 차남 알렉산더의 계보
  • *: 알렉산더 자신은, 불가리아 공국이 성립되자 의회와 유럽 열강의 승인을 받아 불가리아 공 알렉산데르로 즉위했다.
  • 삼남 하인리히(헨리)의 계보
  • *: 장녀 빅토리아 유제니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왕비이다.

5. 문장

6. 가계도

바텐베르크 가문
1세대2세대3세대4세대
바텐베르크 공녀 율리아
(1825–1895)
바텐베르크 공녀 마리(1852–1923)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1854–1921)
(Louis Mountbatten|루이 마운트배튼영어)
밀포드 헤이븐 후작
바텐베르크 공녀 앨리스(1885–1969)에든버러 공작 필립 (1921-2021)
바텐베르크 공자 알렉산더(1857–1893)바텐베르크 공녀 루이즈(1889–1965)
바텐베르크 공자 헨리(1858–1896)바텐베르크 공자 조지(1892–1938)조지 마운트배튼 (1961- )
바텐베르크 공자 프란시스 조셉(1861–1924)바텐베르크 공자 루이(1900–1979)
헤센-라인 공자 알렉산더
(1823-1888)
바텐베르크 공자 알렉산더(1886–1960)


참조

[1] 서적 Alice: Princess Andrew of Greece 2000
[2] 서적 Europe: A History 1997
[3] 서적 Burke's Royal Families of the World 1977
[4] 서적 Political Lives 2001
[5] 간행물 The Annual Register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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