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코부르크고타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작센코부르크고타가는 19세기 초 에른스트 1세에 의해 설립된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가문이다. 이 가문은 에른스트 1세의 후손들이 공작위를 계승했으며, 1893년 에른스트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한 후 알프레트와 카를 에두아르트가 공작위를 이었다. 현재는 안드레아스가 가문의 수장이며, 1918년 공국 폐지 이후 왕자 칭호를 사용한다. 또한 작센코부르크고타가는 영국, 벨기에, 포르투갈, 불가리아의 왕가를 배출했으며, 영국 왕가는 윈저 왕가로, 벨기에 왕가는 현재까지 작센코부르크고타가를 유지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작센코부르크고타가 - 에른스트 1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은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의 장남으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초대 공작이 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 건설 사업 추진, 경제적, 교육적 발전에 기여했고, 그의 아들들은 각각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과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배우자가 되었다. - 작센코부르크고타가 - 에른스트 2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2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은 1844년부터 1893년까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공작으로서 자유주의 개혁을 지지하고 여러 전쟁에서 프로이센을 지지했으며 유럽 왕가들과 인척 관계를 맺었으나 말년에는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은 아마추어 작곡가였다. - 불가리아의 귀족 가문 - 바텐베르크가
바텐베르크가는 헤센 대공가의 방계 가문으로, 귀천상혼으로 인해 왕위 계승권을 얻지 못한 알렉산더 공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칭호에서 유래되었으며, 유럽 왕가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넓혔고,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부가 성을 마운트배튼으로 바꾸기도 했다. - 불가리아의 귀족 가문 - 아센가
아센 가문은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초까지 발칸 반도와 동유럽에서 활약한 귀족 가문으로 불가리아 제2제국 건국과 지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유럽 각지로 세력을 확장했고, 그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 독일의 귀족 가문 - 에스테가
에스테 가문은 11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귀족 가문으로, 이탈리아와 독일 두 분파로 나뉘어 북부 이탈리아 지역을 지배하며 예술을 후원했고, 독일 분파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영국 왕실과 연관을 맺었으며, 혼인을 통해 오스트리아-에스테 가문이 형성되어 유럽 정치사에 영향을 미치고 건축물과 예술품 등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 독일의 귀족 가문 - 글뤽스부르크 왕조
글뤽스부르크 왕조는 올덴부르크 왕가의 방계 가문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스 왕위를 계승했으며 유럽 왕실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현재 올덴부르크 왕가의 수장이기도 하다.
작센코부르크고타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국가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벨기에 왕국 포르투갈 왕국 불가리아 왕국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
민족 | 독일인 |
모계 | 베틴 가문 |
창립 | 1826년 |
해체 | 1918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
창시자 | 에른스트 1세 |
현재 수장 | 안드레아스 (공식), 리처드 (계통) |
통치 | |
작위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1826년–1918년) 벨기에인의 왕 (1831년–1920년)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스의 왕 (1837년–1910년) 영국 군주의 배우자 (1840년-1861년) 불가리아 공 (1887년–1908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1901년–1917년) 인도 황제 (1901년–1917년) 불가리아 차르 (1908년–1946년) 멕시코 황후 (1864-1867) |
분가 | |
분가 | 윈저 (영국)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가문 브라간사-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 (포르투갈; 1932년 절멸) 불가리아 왕가 벨기에 왕가 에핑호벤 (사생) |
2.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은 1826년부터 1918년까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을 통치한 베틴 가 에르네스틴계의 분가이다.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초대 공작은 에른스트 1세였다. 그의 동생 레오폴는 1831년 벨기에의 국왕이 되어 현재 벨기에 왕가의 시조가 되었다. 에른스트 1세의 차남 앨버트는 1840년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하여, 1917년부터 윈저 왕가로 불리는 영국 왕가의 선조가 되었다.[4]
1826년, 에른스트 1세는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의 고타를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의 잘펠트와 교환하여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었다. 1844년 에른스트 1세가 사망한 후, 장남 에른스트 2세가 공작위를 계승했다. 1893년 에른스트 2세가 사망하자, 공작위는 앨버트 공의 후손들에게 넘어갔다. 알프레트를 거쳐 카를 에두아르트가 공작위를 계승했으나, 1918년 독일 혁명으로 공국이 해체되면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작위는 폐지되었다.
1826년, 에른스트 1세의 동생 페르디난트는 헝가리 귀족 코하리가의 마리아 안토니아와 결혼하여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를 창설했다. 이 가문은 로마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으며, 포르투갈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의 왕가를 배출했다.
1837년 페르디난트의 장남 페르난두 2세는 포르투갈의 마리아 2세와 결혼하여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 왕가를 열었다. 이 왕가는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붕괴될 때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했다.[4]
1887년 페르디난트의 손자 페르디난트 1세는 불가리아의 공작이 되었고, 1908년에는 차르를 칭하며 삭스코부르고츠키 왕가를 세웠다. 이 왕가는 1946년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수립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했다. 마지막 차르 시메온 2세는 1946년 폐위되었으나,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불가리아의 총리를 역임했다.[6]
2010년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 본가가 단절되자, 시메온 2세가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2015년 누나 마리야 루이자에게 수장 자리를 넘겨주면서, 현재 삭스코부르고츠키가는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의 유일한 남계 후손으로 남게 되었다.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각국어 표기는 다음과 같다.
- 작센코부르크고타|Sachsen-Coburg und Gothade
- 작센코부르크고타|Saxe-Coburg and Gotha영어
- 작센코부르크에고타|Saxe-Cobourg et Gotha프랑스어
- 작센코부르크언고타|Saksen-Coburg en Gothanl
- 사스-코부르그에고타|Szász-Coburg-Gothahu
- 작센코부르구에고타|Saxe-Coburgo-Gotapt
- 삭스코부르크고트스키|Saks-Koburg-Gotskibg
2. 1.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1825년,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에르네스틴계 동족들은 그의 영지를 분배했다. 프리드리히 4세의 조카 루이제의 남편이었던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 에른스트 1세는 잘펠트를 대신하여 고타를 획득하고 칭호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1826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은 다른 영방과 격리된 두 공국의 동군 연합으로 시작되었다.1844년 에른스트 1세가 사망하자 장남 에른스트 2세가 공위를 계승했다. 1893년 에른스트 2세가 자녀 없이 사망하자, 공위 계승권은 동생 앨버트와 영국 여왕 빅토리아 (어머니는 에른스트 1세의 여동생 빅토리아)의 장남인 영국 황태자 앨버트 에드워드 (후의 에드워드 7세)에게 넘어갔지만, 앨버트 에드워드는 차남 에든버러 공작알프레트에게 계승권을 양도했다.
알프레트는 1900년에 사망했지만, 유일한 아들 알프레트는 전년에 자살했다. 코넛 공작아서 (앨버트의 셋째 아들)와 그의 아들 아서가 사퇴했기 때문에, 올바니 공작찰스 에드워드 (앨버트의 넷째 아들 레오폴드의 유일한 아들)가 공위를 계승했다(독일 이름 카를 에두아르트).
카를 에두아르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 육군의 장군으로 군무에 종사했기 때문에, 1919년에 칭호 박탈법에 의거하여 올바니 공작위를 박탈당했다. 또한, 1919년에는 영국 왕족으로서의 신분도 카를 에두아르트와 그 자손으로부터 박탈되었다. 한편, 1918년 11월 18일에 독일 혁명으로 카를 에두아르트는 공국에서 추방되었고, 코부르크와 고타는 별개의 주가 되었으며, 1920년에는 바이에른주와 튀링겐주에 편입되어 소멸되었다.
에른스트 1세에게는 페르디난트, 레오폴트의 두 동생이 있었다. 레오폴트는 1831년에 초대 벨기에 국왕으로 즉위했고(레오폴트 1세), 현재 벨기에 왕가의 조상이 되었다. 페르디난트는 헝가리의 명문 귀족의 마리아 안토니아와 결혼하여 동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고, 그 장남 페르디난드는 1836년에 포르투갈 여왕마리아 2세와 결혼했고, 1910년에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포르투갈 왕가로 이어졌다. 페르난도 2세의 차남 아우구스트의 막내 아들 페르디난트는 1887년에 알렉산더 1세를 대신하여 불가리아 공이 되었고, 1908년부터는 국왕(차르)을 칭했다. 불가리아 왕가는 페르디난트 1세의 자손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공화국으로 이행하는 1946년까지 이어졌다. 한편, 영국 왕가는 에드워드 7세의 자손에 의해 존속하고 있다.
2. 1. 1. 역대 공작
# 에른스트 1세 (1826년 - 1844년)# 에른스트 2세 (1844년 - 1893년)
# 알프레트 (1893년 - 1900년, 에든버러 공작 겸임)
# 카를 에두아르트 (1900년 - 1918년, 올버니 공작 겸임)
2. 2.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방계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는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 프란치스의 차남 작센코부르크고타의 페르디난트 공자와 헝가리의 명문 귀족 코하리 가문House of Koháry영어의 마리아 안토니아와의 결혼으로 창설되었다.[4] 페르디난트의 후손들은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다.페르디난트와 마리아 안토니아의 차남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아우구스트 공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코하리 가문 영지를 상속받았다. 아우구스트의 막내 아들이 불가리아의 페르디난트 1세가 되면서, 불가리아의 통치 가문이 되었다.
페르디난트의 장남 페르난두 2세의 후손인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 왕가는 포르투갈을 통치했으나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단절되었다. 페르디난트의 삼남 레오폴트는 귀천상혼을 했고, 그의 후손은 단절되었다. 페르디난트의 차남 아우구스트의 가계는, 장남 필리프의 장남이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단절되었고, 차남 루트비히 아우구스트의 가계로 이어졌으나 2010년 요하네스가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단절되었다. 루트비히 아우구스트의 남계 후손은 있으나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이 박탈되었다.
2. 2. 1. 포르투갈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 왕가
작센코부르크고타가의 분가인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 왕가는 에른스트 1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남동생 페르디난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후손으로, 헝가리계 귀족 가문인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설립되었다. 1837년 페르난두 2세를 시작으로 마누엘 2세까지 통치하였으나,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포르투갈 왕국과 함께 왕가가 추방되었고, 마누엘 2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해 단절되었다.[4]이 왕가는 페르디난트 공의 장남인 페르난두 2세가 마리아 2세 여왕과 결혼하면서 시작되었다.
- 페르난두 2세 (1837년~1853년)
- 페드루 5세 (1853년~1861년)
- 루이스 1세 (1861년~1889년)
- 카를루스 1세 (1889년~1908년)
- 마누엘 2세 (1908년~1910년)
2. 2. 2. 불가리아 삭스코부르고츠키 왕가
불가리아 왕국을 통치한 삭스코부르고츠키 왕가는 작센코부르크고타가의 분가로서, 불가리아의 차르를 배출해왔다. 이 가문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페르디난트 공자가 헝가리계 귀족 가문인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설립되었다.
마지막 차르인 시메온 2세는 소련의 압력으로 강제 퇴위되었으나, 훗날 불가리아가 독립했을 때 고국으로 돌아와 총리가 되었다. 그는 2001년 불가리아 총선에서 시메온 삭스코부르크고츠키라는 이름으로 불가리아 총리에 당선되었다.[6] 시메온은 "삭스코부르그고츠키"(Сакскобургготски)로도 알려져 있다.[7][8][9]
1918년 보리스 3세 즉위 이후 이 왕가는 불가리아 정교회에 속한다.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 본가가 2010년에 단절되자, 삭스코부르고츠키가의 수장이자 불가리아의 마지막 차르였던 시메온 삭스코부르고츠키가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2015년, 그는 누나인 불가리아 공주 마리야 루이자에게 수장 자리를 넘기면서 가문명만 유지할 뿐 작센코부르크고타가의 분가로서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현재 삭스코부르고츠키가는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가의 유일한 남계 후손이다.
3. 유럽 각국의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유럽 여러 왕가와 혈연을 맺거나 직접 통치하며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영국: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와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으로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가 작센코부르크고타 성을 사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반독일 감정으로 인해 윈저 왕가로 개명했다.
- 벨기에: 레오폴 1세를 시작으로 현재 국왕 알베르 2세까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가 통치하고 있다.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설립자 에른스트 1세의 후손들이 공국을 통치했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의 차남 알프레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을 거쳐, 카를 에두아르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까지 이어졌다.
-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가문: 에른스트 1세의 동생 페르디난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후손으로, 헝가리계 귀족 가문인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하여 설립되었다. 현재는 불가리아의 마지막 차르였던 시메온 삭스코부르고츠키가 가문의 수장이다.
3. 1. 영국 색스코버그고타 왕가 (현 윈저 왕가)
영국 왕가는 빅토리아 여왕과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버트 공의 장남인 에드워드 7세에 의해 시작되었다.[16] 에드워드 7세와 그의 아들 조지 5세는 작센코부르크고타가 출신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내 반독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조지 5세는 1917년 왕가의 이름을 윈저 왕가로 바꾸었다.[16]
3. 1. 1. 역대 군주
재위 기간 | 이름 |
---|---|
1826년~1844년 | 에른스트 2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
1844년~1893년 | 에른스트 2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
1893년~1900년 | 알프레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
1900년~1918년 | 카를 에두아르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
3. 2. 벨기에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벨기에의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는 1831년 벨기에의 독립과 함께 레오폴 1세가 즉위하면서 시작되었다. 레오폴 1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으로, 앨버트 공과 빅토리아 여왕의 만남을 주선하여 영국에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가 성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알베르 1세는 1920년에 왕조명을 벨기에 왕조로 개명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1920년 또는 1921년에 가문의 칭호가 비공식적으로 "벨기에의"로 변경되었고, 작센의 문장은 벨기에 왕실 문장에서 제거되었다.[10][11] 2017년 이후 필리프 국왕과 그의 가족을 제외한 레오폴 1세의 후손들은 다시 "작센코부르크고타" 칭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작센의 문장이 다시 사용되었다.[15]
3. 2. 1. 역대 군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 벨기에 |
---|---|
4. 가계도
코부르크-잘펠트 공작
코부르크-잘펠트 공작
코부르크-고타 공작
켄트 공작 부인
벨기에 국왕
코부르크-고타 공작
영국 왕실 배우자
벨기에 국왕
플랑드르 백작
멕시코 황후
독일 황제
영국 국왕
코부르크-고타 공작
코넛 공작
올버니 공작
브라반트 공작
벨기에 국왕
클래런스 공작
영국 국왕
파이프 공작 부인
코부르크-고타 공세자
애슬론 백작 부인
코부르크-고타 공작
벨기에 국왕
플랑드르 백작
이탈리아 왕 비
코부르크-고타 공세자
베스테르보텐 공작 부인
공위 요구자
룩셈부르크 대공 비
벨기에 국왕
벨기에 국왕
공위 요구자
벨기에 국왕
오스트리아에스테 대공 비
벨기에 왕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