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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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는 다키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현재 루마니아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이다. '사르미제게투사'라는 명칭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하며, 요새, 주거 지역, 성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레비스타 왕 시기에 수도가 이전되었고, 데케발루스 왕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는 오러슈티에 산맥에 위치한 6개의 다키아 요새로 구성된 방어 체계의 중심지였으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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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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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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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다키아 수도 사르미세게투사 사르미제게투사 사르미세게투자 사르마게제 사르마테그테 세르미제게투사 자르미제게투사 자르미제게투사 자르미제게투자 제르미제게트하우스 그리스어: Ζαρμιζεγεθούσα (Zarmizegethoúsa) |
위치 | 그라디슈테아데문테, 후네도아라주, 루마니아 |
해발 고도 | 1030m |
유형 | 수도 고대 유적 |
건축 양식 | 다키아 건축 양식 |
사용 재료 | 석재 |
건설 시기 | 기원전 1세기 ~ 서기 1세기 |
폐허 시기 | 서기 2세기 |
점유 민족 | 다키아인 |
사건 | 다키아 전쟁 사르미제게투사 전투 |
발굴 | A. 루수 A. 시온 에우젠 이아로슬라브스키 H. G. 자이버트 이오안 안드리토이우 이오안 글로다리우 슈테판 페렌치 젤루 플로레아 가브리엘라 게오르기우 다리우스 시마 아드리아나 페스카루 루수 릴리아나 다나 수치우 |
상태 | 부분적으로 재건됨 |
지정 | 세계 문화 유산 (1999년) 역사 기념물 (HD-I-s-A-03190)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2. 어원
'사르미제게투사'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5]
학설 | 어원 분석 | 출처 |
---|---|---|
‘산 꼭대기에 말뚝 울타리로 만든 성채’ | 루수 (Russu, 1944, p. 376-399) | |
‘따뜻한 강의 도시’ | 반 덴 게인 (Van Den Gheyn, 1885, p. 176) | |
‘세상을 비추는 궁전’ | 토마셰크 (Tomaschek, 1883, p. 410) | |
'말을 탄 궁수들이 만나는 중심지' | ||
'SARMIS.E[T].GETUSA REGIA' | 사르마티아와 게타에/게트족의 수도/왕궁 (다키아인과 게타에족은 상호 교환 가능한 용어, GETUS 뒤의 -A는 소유격을 나타내는 라틴어) |
역사 기록에서 다키아 수도 이름의 철자는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 자르미게투사, 사르미제게투사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 서기 2세기)
- 제르미제게투사 (디오 카시우스, 서기 2-3세기)
- 사르마제게 (익명의 라벤나 지리학자, 서기 700년경)
- 사르마테그테 (타불라 페우틴게리아나, 13세기)
- 자르미제게투사 및 사르미제게투사 (비문에서)
- 사르게티아 (근처 강 이름)

3. 구획
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는 크게 성채, 거주 지역, 성소 구역으로 나뉜다.[4]
- 성채: 거대한 석제 블록(무루스 다키쿠스)으로 만든 사각형 요새가 약 30000m2 면적의 다섯 곳에 지어졌다.
- 거주 지역: 민간인들은 페첼레 알베처럼 성채 아래 인위적인 단(段) 위에 지어진 취락에 거주했다.[4] 도자기 파이프 수로관은 귀족들의 주거지로 흐르는 물을 공급했다.[4]
- 성소: 원형 및 직사각형의 다키아 성소들 중에 가장 중요하고 컸던 이곳에는 다수의 직사각형 신전들과, 이 신전들을 떠받치던, 여전히 볼 수 있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기둥의 기초 부분들이 있었다.[4]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정체를 알 수 없는 건축물은 커다란 원형 성소인데, D자 모양의 목제 기둥이 목제 원형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바깥은 높이가 낮은 연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목조 구조물의 배치는 잉글랜드 스톤헨지의 거석 기념물과 일부 유사성을 지닌다. '안산암 태양'이라 불리는 유물은 해시계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데, 다키아 문화가 그리스와 접촉하여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기에, 이 해시계는 기하학과 천문학에서 그리스 학문에 대한 다키아 문화가 노출된 결과였을지 모른다.
4. 역사
역사 기록은 다키아 수도의 이름 철자에 상당한 변동이 있음을 보여준다.[5]
기록 | 내용 |
---|---|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 (서기 2세기) | 자르미게투사, 사르미제게투사 |
디오 카시우스 (서기 2-3세기) | 제르미제게투사 |
익명의 라벤나 지리학자 (서기 700년경) | 사르마제게 |
타불라 페우틴게리아나 (13세기) | 사르마테그테 |
비문 | 자르미제게투사 및 사르미제게투사 |
근처 강 이름 | 사르게티아 |
무르스 다키쿠스라고 불리는 돌로 만들어진 사각형 요새는 약 30000m2 영역 안에 5개의 대지로 구축되었으며, 사르미제게투사에는 다키아인의 성소가 되는 유명한 "원형 달력 성소"도 설치되어 있었다.
일반 다키아인들은 요새 주변의 산기슭에 거주했고, 상류 계급 다키아인의 거주 지역에는 도기(陶器)로 된 수도관을 갖춘 수도망이 정비되어 있었다. 고고학적 증거는 다키아인 사회가 고도의 생활 수준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르미제게투사는 처음으로 다키아를 통일한 부레비스타에 의해 건설되었다.
101년부터 로마 제국 황제 트라야누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다키아 왕 데케발루스의 다키아군 사이에 다키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106년 제2차 침공으로 사르미제게투사는 함락되었고, 다키아 전토가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사르미제게투사에는 구도(舊都)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식민시 '''콜로니아 울피아 트라이아나 아우구스타 다키카 사르미제게투사'''(Colonia Ulpia Traiana Augusta Dacica Sarmizegetusala)가 건설되어 로마 군단이 주둔했다.
1999년 유네스코는 사르미제게투사를 포함한 6개의 요새군을 "오라슈티에 산맥의 다키아인 요새"로 세계 유산에 등록했다.
4. 1. 로마 이전 시대
부레비스타는 그의 재위 말년에 게타이-다키아인들의 수도를 아르게다바에서 사르미제게투사로 이전했다.[1][2] 최소 150년간 다키아 수도 역할을 한 사르미제게투사는 데케발루스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고고학적 발견물들은 다키아의 신 잘목시스와 잘목시스의 고위 사제들이 이 당시 다키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지녔음을 보여준다.[3] 또한 다키아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과학적 발전 및 그리스와 로마의 기술적, 과학적 지식들을 성공적으로 수용했음을 밝혀냈다.이곳에선 특히 2개의 주목할 만한 발견물들이 나왔다.
- 의료 용품: 메스, 핀셋, 경석 가루, 약조제를 위한 작은 그릇이 들어 있는, 철제 손잡이가 달린 테두리가 놋쇠로 된 목제 상자[4]
- 커다란 꽃병: 약 60.96cm 높이에 약 104.14cm 너비이며, 로마 문자로 DECEBAL PER SCORILO, 즉 ‘데케발루스, 스코릴루스의 아들’ (참조: 라틴어 ''puer'')이라 쓰여 있는 비문이 있다.[4]
성소 북쪽의 대장간들은 금속세공에 대한 다키아인들의 기술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기도 한다. 미터 길이의 부젓가락, 망치, 모루 등 도구들이 발견물에 포함되며, 이 물건들은 전차낫, 원형낫, 괭이, 갈퀴, 픽, 낫, 칼, 보습, 목수들의 장비 등[5]과 더불어 단도, 다키아의 굽은 언월도, 창촉, 방패 등의 무기들 같은 금속 유물 약 400개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5]
4. 2. 로마 시대
101년부터 106년까지 벌어진 다키아 전쟁 동안, 사르미제게투사는 로마 제국 군대의 공격을 받았다. 102년 제1차 다키아 전쟁에서 성벽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다키아인들이 재건하였다.[6] 106년 제2차 다키아 전쟁에서 사르미제게투사는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파괴되었으며, 주민들은 강제 이주되었다.로마 정복자들은 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에 군사 주둔지를 설치했다. 이후, 로마 다키아의 수도는 파괴된 다키아 수도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세워졌으며, 콜로니아 울피아 트라야나 아우구스타 다키카 사르미제게투사라고 명명되었다.
4. 3. 방어 체제
사르미제게투사 레기아는 오러슈티에 산맥에 위치한 6개의 다키아 요새들로 구성된 방어 체계의 중심지였다. 이 요새들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무르스 다키쿠스라고 불리는 돌로 만들어진 사각형 요새는 약 30,000제곱미터의 영역 안에 5개의 대지가 구축되었으며, 사르미제게투사에는 다키아인의 성소가 되는 유명한 "원형 달력 성소"도 설치되어 있었다.[2]
일반 다키아인들은 요새 주변의 산기슭 부분에 거주했다. 상류 계급 다키아인의 거주 지역에는 도기(陶器)로 된 수도관에 의한 수도망이 정비되어 있었다. 유적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증거로부터, 다키아인의 사회는 고도의 생활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시사된다.[2]
참조
[1]
웹사이트
Ptolémée et la toponymie de la Dacie (II-V)
https://www.academia[...]
2014-01-09
[2]
웹사이트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Monuments in Romania, Hunedoara County
http://www.inmi.ro/l[...]
www.inmi.ro
2012-10-18
[3]
문서
2005
[4]
서적
Rural Settlement. Relating buildings, landscape, and people in the European Iron Age
https://www.sideston[...]
Sidestone Press
2019-11-27
[5]
서적
Ptolemy's maps of northern Europe: a reconstruction of the prototypes
H. Hagerup
1917
[6]
간행물
Conquest strategy and political discourse: new evidence for the conquest of Dacia from LiDAR analysis at Sarmizegetusa Regia
https://www.cambridg[...]
2017
[7]
문서
2005
[8]
서적
Ptolemy's maps of northern Europe: a reconstruction of the prototypes
H. Hagerup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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