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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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은 1701년에 제작된 관음보살상과 복장유물이다. 관음보살상과 용왕, 선재동자가 함께 조각된 삼존 형식은 드문 사례이며, 제작 시기와 조각가가 명확히 밝혀져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복장유물로는 불서, 후령통, 다라니 등이 있으며, 특히 임진왜란 이후 간행된 불서들은 조선 후기 불교 신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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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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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국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416 |
지정일 | 2017년 8월 10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29 (돈암동) 흥천사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
수량 | 3구 |
2. 지정 사유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은 1701년에 제작된 것으로, 제작 시기와 조각가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1] 원래 전라북도 임실 사자산 적조암에서 제작되었으나, 이후 흥천사로 옮겨졌다.[1]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은 1701년에 제작되었으며, 조각 승려 법잠, 계초, 진열, 성인, 수오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조성발원문을 통해 밝혀져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원래 전라북도 임실 사자산 적조암에 봉안되었던 관세음보살상이 흥천사로 옮겨진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말기 왕실 관련 사찰로 지방 문화재가 이안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1]
이 불상은 중앙의 관음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하는 삼존 형식인데, 이러한 형식은 수월관음도에서는 종종 보이지만, 조각상으로는 매우 드물다.[1]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1655년, 조각승 혜희),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삼존불감(경남유형문화재 제575호), 운흥사 목조불감(1670년) 정도만이 알려져 있어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1]
복장유물은 후령통, 주서와 묵서 다라니 등 총 9건(63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1] 이 유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간행된 불서들로, 비교적 많은 현전본이 남아있어 일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1]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과 복장유물은 제작 시기가 명확하고, 그 예가 드문 관음·용왕·선재동자의 삼존상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므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1]
3. 세부 내용
복장유물로는 묘법연화경 2종을 비롯하여 대불정수능엄신주다라니, 다라니, 보협진언 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17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불교 신앙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1]
3. 1.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은 중앙에 관음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하고 있는 삼존 형식이다.[1] 중앙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화려한 보관을 쓴 조선 후기의 보살상으로, 양손을 비롯해 보관까지 손상된 곳 없이 잘 남아있다. 보관은 5개의 화염문과 좌우로 매달린 관대(冠帶), 중앙의 화불(化佛)까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안정된 신체 비례를 지녔으며, 방형의 얼굴은 신체에 비해 작은 편이며,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미간 사이에는 얼굴 크기에 비례해 큰 백호가 있다. 보살의 머리카락은 귀를 타고 내려와 어깨 위로 늘어졌으며,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고, 왼손 손바닥 위에는 정병이 놓여 있다. 가사가 넓게 벌어져 가슴이 많이 드러나 있고, 왼쪽 어깨 뒤로 넘어간 옷자락은 넓고 길게 늘어져 그 끝은 엉덩이 아래로 들어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1]
관음보살상의 왼쪽에 용왕, 오른쪽에 선재동자가 서 있는 형태는 수월관음도에서 종종 보이며, 특히 의겸이 그린 1730년 운흥사 수월관음도(쌍계사성보박물관), 1901년 연화사 수월관음도 등이 있다. 조각으로는 1655년에 혜희가 만든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17세기 중반 경남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삼존불감(경남유형문화재 제575호), 1670년 운흥사 목조불감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용왕상과 선재동자상이 좌우 협시로 조성된 관음보살상은 그 예가 드물어 매우 귀중한 사례이다.[1]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1년이라는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가가 확인된다. 원래 전라북도 임실 사자산 적조암에서 제작한 것을 흥천사로 옮긴 것이다. 수월관음도에 용왕과 선재동자를 협시로 한 삼존 형식이 종종 보이지만, 조각의 경우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1655년, 조각승 혜희),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삼존불감(경남유형문화재 제575호), 운흥사 목조불감(1670년)을 제외하면 그 예가 많지 않아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1]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수조각승은 법잠(法岑)이며, 계초(戒楚), 진열(振悅), 성인(性印), 수오(守吾)가 공동 제작하였다. 법잠은 다른 작품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지만, 1688년 완주 대원사 명부전 시왕상 조성에 참여한 도잠(道岑)이 계초, 진열과 함께 작업한 기록이 있어 법잠과 도잠은 선후배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도잠은 1659년 고흥 금탑사 지장보살상 조성에도 참여하여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활동한 계초, 진열보다 연배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
3. 2. 복장유물
관음보살좌상 복장에서는 후령통, 붉은 비단에 싸인 주서(朱書) 및 묵서(墨書) 다라니, 불서 등 총 9건 633점이 발견되었다.[1]
불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2종으로, 분책된 낱장 상태로 발견되었다. 2종의 간략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1]
구분 | 상세 정보 |
---|---|
대자본 계통 | 1634년 전라도 순창 복천사본 1책 (권1) |
갑인자 계통 | 1665년 경상도 안음 영각사본 1책 (권1, 2, 5, 6, 7) |
1665년 간행본은 권7 말미에 간기가 있어 경상도 안음 영각사(靈覺寺)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종은 간기가 없으나, 조사 결과 1634년 전라도 순창 복천사(福泉寺)에서 간행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2종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복장이 조성된 1701년 사이에 간행된 것이다.[1]
이 외에도 대불정수능엄신주다라니(大佛頂首楞嚴神呪陀羅尼), 주서와 묵서 다라니, 보협진언(寶篋眞言)이 함께 발견되었다.[1]
복장에서 수습된 불서들은 임진왜란 이후 간행된 것으로, 현전본이 여러 부수 남아있어 별도로 지정 관리할 가치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다른 복장유물과 함께 일괄 지정되었다.[1]
4. 유사 사례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처럼 용왕과 선재동자를 양옆에 배치한 삼존 형식은 수월관음도에는 자주 등장하지만, 조각상으로는 드문 예이다. 이러한 형식의 조각상으로는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1655년, 조각승 혜희),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삼존불감(경남유형문화재 제575호), 운흥사 목조불감(1670년) 등이 있어,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5. 의의 및 평가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은 조성 시기가 명확하고, 관음, 용왕, 선재동자로 구성된 삼존상이라는 희귀한 도상을 통해 조선 후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1]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1년(강희 40년)이라는 정확한 제작 시기, 조각승 법잠(法岑)을 비롯한 5명의 조각가, 원래 봉안 장소(전라북도 임실 사자산 적조암) 등을 확인할 수 있다.[1] 이는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용왕과 선재동자를 협시로 둔 삼존상은 수월관음도에는 종종 나타나지만, 조각상으로는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1655년, 조각승 혜희),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삼존불감(경남유형문화재 제575호), 운흥사 목조불감(1670년) 등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높다.[1]
복장유물로는 후령통, 다라니 등 총 9건 633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조선 후기 불교 신앙 및 문화를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1] 수습된 불서들은 임진왜란 이후 간행된 것으로, 현전본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 일괄 지정하여 관리한다.[1]
이러한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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