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소서원부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소서원부인은 고려 태조의 후궁으로, 황해북도 서흥 출신이다. 그녀의 아버지 김행파는 태조에게 김씨 성을 하사받았으며, 태조가 평양에 행차했을 때 자신의 두 딸을 하룻밤씩 태조를 모시게 했다. 이후 두 딸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고, 태조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서경에 대서원과 소서원을 지어 자매가 살도록 했다. 소서원부인의 언니는 대서원부인이다. 소서원부인의 생몰년이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흥군 출신 - 이회창
    이회창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판사, 최연소 대법관,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자유선진당을 창당하여 활동하며 강경한 보수주의적 정치 성향으로 알려졌다.
  • 서흥군 출신 - 이협
    이협은 중앙일보 기자와 김대중 전 대통령 공보비서 출신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과 평화민주당 정책실장을 거쳐 제13대부터 16대까지 전북 이리시 및 익산시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고려의 비구니 - 신비 염씨
    신비 염씨는 고려 공민왕의 후궁으로, 공민왕 시해 후 비구니가 되었으며, 1372년 후궁 강간 명령을 거부했다.
  • 고려의 비구니 - 혜비 이씨
    혜비 이씨는 고려 공민왕의 후궁으로, 노국대장공주 사후 후비에 책봉되었으나 공민왕의 강간 시도에 저항했으며, 공민왕 사후 여승이 되어 정업원에 머물다 고려 멸망 후 혜화궁주로 조선 초까지 생존했고, 아버지는 이제현이다.
  • 고려 태조의 후궁 - 서전원부인
    서전원부인은 고려 태조의 후비 중 한 명으로, 《고려사》에 출신 기록이 없어 태조의 왕비 중 유일하게 성씨와 가계, 출신지를 알 수 없으며, 태조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 고려 태조의 후궁 - 해량원부인
    고려 태조의 마지막 왕비인 해량원부인은 해평 출신 대광 선필의 딸로, 자세한 생애와 능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자녀는 없었다.
소서원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칭호소서원부인
본관동주 김씨 (결혼 후 씨)
시대고려
출생지황해북도 서흥군
사망지황해북도 서흥군
배우자태조
아버지김행파
종교불교
가계
아버지김행파
남편태조
이전대서원부인
이후서전원부인

2. 생애

소서원부인은 황해북도 서흥 출신으로, 아버지는 대광 김행파이다.[3] 김행파는 을 잘 쏴서 태조로부터 김씨 성을 하사받은 인물로, 922년(태조 5년)부터 태조의 명으로 서경에 살게 되었다.[4] 태조의 제19비 대서원부인은 그녀의 언니이다.

어느 날 태조가 서경에 행차하였을 때, 김행파는 사냥 무리들과 함께 태조를 알현하고 자신의 집에 오기를 청하였다. 태조가 김행파의 집으로 오자, 김행파는 자신의 두 딸에게 각각 하룻밤씩 태조를 모시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후 태조는 김행파의 집을 다시 찾지 않았고, 이에 김행파의 두 딸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태조는 두 자매를 불쌍히 여겨 불러보고는 "너희가 이미 출가하였으므로,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서경에 명령을 내려 성 안에 대서원(大西院)과 소서원(小西院)의 두 절을 만들고 각각 밭과 노비를 두어 자매가 살게 하였다. 그리하여 대서원에 살던 언니를 대서원부인, 소서원에 살던 동생을 소서원부인이라고 하였다.[5] 이러한 태조와 김씨 자매의 혼인은 지방 세력가의 요청에 의한 혼인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기도 한다.[3]

소서원부인의 생몰년이나 능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며, 자녀는 없었다. 는 '''소서원부인'''(小西院夫人)이다.

2. 1. 출신 배경

2. 2. 태조와의 만남

2. 3. 출가와 태조의 배려

황해북도 서흥 출신으로, 아버지는 대광 김행파이다.[3] 김행파는 을 잘 쏴서 태조로부터 김씨 성을 하사받은 인물로,[5] 922년(태조 5년)부터 태조의 명으로 서경에 살게 되었다.[4]

태조가 서경에 행차하였을 때, 김행파는 자신의 집으로 태조를 초대했다. 김행파는 자신의 두 딸에게 각각 하룻밤씩 태조를 모시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후 태조는 김행파의 집을 다시 찾지 않았고, 이때문에 김행파의 두 딸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태조는 두 자매를 불쌍히 여겨 서경에 대서원(大西院)과 소서원(小西院)을 짓고, 각각 밭과 노비를 주어 살게 하였다.[5] 이러한 태조와 김씨 자매의 혼인은, 태조의 혼인 중에는 지방 세력가의 요청에 의한 혼인도 있었음을 보여준다.[3]

2. 4. 혼인의 의미

3. 가족 관계

아버지 김행파(金行波, 생몰년 미상)와 언니 대서원부인(大西院夫人, 생몰년 미상)이 있다. 남편은 고려 제1대 왕 태조(太祖, 877~943, 재위: 918~943)이다.

4. 평가

4. 1. 긍정적 평가

4. 2. 비판적 시각

5. 기타

참조

[1] 웹사이트 http://www.surname.i[...] 2021-10-04
[2] 웹사이트 http://db.history.go[...] 2021-05-17
[3] 웹인용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소서원부인〉항목 http://people.aks.ac[...] 2012-06-18
[4] 웹인용 《고려사절요》권1 http://db.itkc.or.kr[...] 2018-08-31
[5] 서적 《고려사》권88〈열전〉권1 - 소서원부인 김씨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