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후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손수는 후한 시대의 인물로, 남편 양기가 권력을 잡으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150년 양성군에 봉해졌으며, 손씨 일족에게 벼슬을 내리고, 미녀 우통기를 질투하여 해를 가하는 등 권력을 남용했다. 또한 패션 리더로서 다양한 유행을 창시했으나, 남편 양기의 몰락과 함께 자결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59년 사망 - 양기
양기는 후한 시대 순제, 충제, 질제, 환제 4대에 걸쳐 권력을 휘두른 권신으로, 여동생이 황후가 되면서 외척으로서 권력을 잡고 황제 옹립에 관여하며 횡포를 부렸으나, 환제에 의해 몰락하여 자결한 인물이다. - 159년 사망 - 조등
조등은 후한의 환관으로 안제부터 환제까지 다섯 황제를 섬기며 고위 관직을 역임했고, 순제의 신임을 얻어 환제 옹립에 기여했으며, 청렴하고 아량 있는 성품과 인재 발탁 능력으로 당대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사후 증손자 조비에 의해 고황제로 추존되어 묘소가 보호받고 있다. - 한나라 사람 - 하묘
후한 말기 하진의 이복 형제인 하묘는 도살업에 종사하다가 여동생이 황후가 되면서 등용되어 관직을 역임했지만, 환관 문제로 하진과 대립하다가 하진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동탁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었다. - 한나라 사람 - 최원 (후한)
최원은 후한 시대의 학자이자 서예가로, 수학, 천문학, 역학에 능통했으며, 《주역》 연구와 역법 개정 주장으로 이름을 알렸고, 《좌우명》과 《초서세》 등의 저서를 남겼다.
손수 (후한) |
---|
2. 생애
손수는 남편인 양기가 권력을 잡으면서 그 아내로서 자신과 그 일족도 권세를 떨쳤지만, 환제에 의해 양기가 숙청되었을 때 연좌되어 숙청되었다.
손수는 숙부 양기가 데려온 딸 등맹녀의 미모를 보고, 맹녀의 성을 고쳐 양녀로 삼았다. 등맹녀는 훗날 환제의 두 번째 황후가 된다(후에 폐위되었다).
2. 1. 권세와 사치
150년 조정에서는 손수를 양성군(襄城君)으로 봉했으며, 양책에서 거두는 조세를 손수가 받게 했다. 또 장공주(長公主)와 비슷한 예우를 받았다. 양기와 손수 부부는 사치를 부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각각 소유한 집을 마주보게 지었으며, 서로 자신의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몰두하였다. 또 부부가 수레를 타고 거리에 나가서 멋대로 흥겹게 놀았다.손수는 양기를 움직여 손씨 집안 사람 십여 명에게 시중(侍中), 교위(校尉) 등의 각종 벼슬을 내리게 했다. 양기의 아버지 양상이 순제에게 바쳤던 미녀 우통기(友通期)가 잘못을 저질러 궐에서 쫓겨난 후 양기와 간통하자, 손수는 양기가 없는 틈을 타 우통기의 머리를 깎고 얼굴에 상처를 입힌 다음 마구 때렸다. 놀란 양기가 손수의 어머니에게 통사정하여 겨우 그쳤으나, 자신이 낳은 아들 양윤(梁胤)에게 우통기를 죽이게 하고 우(友)씨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손수의 외삼촌 양기(梁紀)는 아내가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등맹녀(鄧猛)을 키우고 있었는데, 159년 등맹녀의 미모를 눈여겨본 손수는 등맹녀의 성을 양(梁)씨로 바꾸게 하고 환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남편 양기로 하여금 등맹녀의 생모 선(宣)을 죽이게 했는데, 암살에 실패하여 선이 궁중으로 달려가 환제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화가 난 환제는 환관들과 모의하여 군사들을 동원해 양기의 집을 포위했다. 절망에 빠진 손수는 남편과 함께 자살했다.
2. 2. 권력 남용과 질투
150년 조정에서는 손수를 양성군(襄城君)으로 봉했으며, 양책에서 거두는 조세를 손수가 받게 했다. 또 장공주(長公主)와 비슷한 예우를 받았다. 양기와 손수 부부는 사치부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각각 소유한 집을 마주보게 지었으며, 서로 자신의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몰두하였다. 또 부부가 수레를 타고 거리에 나가서 멋대로 흥겹게 놀았다.손수는 양기를 움직여 손씨 집안의 사람 십여 명에게 시중(侍中), 교위(校尉) 등의 각종 벼슬을 내리게 했다. 양기의 아버지 양상이 순제에게 바쳤던 미녀 우통기(友通期)가 잘못을 저질러 궐에서 쫓겨난 후 양기와 간통하자, 손수는 양기가 없는 틈을 타 우통기의 머리를 깎고 얼굴에 상처를 입힌 다음 마구 때렸다. 놀란 양기가 손수의 어머니에게 통사정하여 겨우 그쳤으나, 자신이 낳은 아들 양윤(梁胤)에게 우통기를 죽이게 하고 우(友)씨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손수는 질투심이 많은 성격이었으며, 남편인 양기는 공처가로 알려져 있었다. 양기의 아버지인 양상은 친구 통기를 순제에게 헌상했다. 그러나 통기가 순제의 뜻에 거스르자 양상의 곁으로 보내졌다. 양상이 죽은 후, 양기는 통기와 밀통하여 백옥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손수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통기를 살해했다. 양기는 손수 또한 자신의 사생아를 죽일까 걱정하여 그 아이를 어두운 방에 숨겨두었다. 백옥은 15세가 되어서야 양기 부부가 죽은 뒤에 세상에 나왔다.
159년 손수의 외삼촌 양기(梁紀)는 아내가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등맹(鄧猛)을 키우고 있었는데, 등맹의 미모를 눈여겨본 손수는 등맹의 성을 양(梁)씨로 바꾸게 하고 환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남편 양기로 하여금 등맹의 생모 선(宣)을 죽이게 했는데, 암살에 실패하여 선이 궁중으로 달려가 환제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화가 난 환제는 환관들과 모의하여 군사들을 동원해 양기의 집을 포위했다. 절망에 빠진 손수는 남편과 함께 자살했다.
2. 3. 등맹녀(鄧猛女)와의 관계
손수는 양기를 움직여 손씨 집안 사람 십여 명에게 시중(侍中), 교위(校尉) 등의 각종 벼슬을 내리게 했다. 양기의 아버지 양상이 순제에게 바쳤던 미녀 우통기(友通期)가 잘못을 저질러 궐에서 쫓겨난 후 양기와 간통하자, 손수는 양기가 없는 틈을 타 우통기의 머리를 깎고 얼굴에 상처를 입힌 다음 마구 때렸다. 놀란 양기가 손수의 어머니에게 통사정하여 겨우 그쳤으나, 자신이 낳은 아들 양윤(梁胤)에게 우통기를 죽이게 하고 우(友)씨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켰다.159년 손수의 외삼촌 양기(梁紀)는 아내가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등맹녀를 키우고 있었는데, 손수는 등맹녀의 미모를 눈여겨보고 등맹녀의 성을 양(梁)씨로 바꾸게 하고 환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남편 양기로 하여금 등맹녀의 생모 선(宣)을 죽이게 했는데, 암살에 실패하여 선이 궁중으로 달려가 환제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2. 4. 몰락과 죽음
150년 조정에서는 손수를 양성군(襄城君)으로 봉했으며, 양책(陽翟)에서 거두는 조세를 손수가 받게 했다. 또 장공주(長公主)와 비슷한 예우를 받았다. 양기와 손수 부부는 사치부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각각 소유한 집을 마주보게 지었으며, 서로 자신의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몰두하였다. 또 부부가 수레를 타고 거리에 나가서 멋대로 흥겹게 놀았다.손수는 양기를 움직여 손씨 집안의 사람 십여 명에게 시중(侍中), 교위(校尉) 등의 각종 벼슬을 내리게 했다. 양기의 아버지 양상이 순제에게 바쳤던 미녀 우통기(友通期)가 잘못을 저질러 궐에서 쫓겨난 후 양기와 간통하자, 손수는 양기가 없는 틈을 타 우통기의 머리를 깎고 얼굴에 상처를 입힌 다음 마구 때렸다. 놀란 양기가 손수의 어머니에게 통사정하여 겨우 그쳤으나, 자신이 낳은 아들 양윤(梁胤)에게 우통기를 죽이게 하고 우(友)씨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손수의 외삼촌 양기(梁紀)는 아내가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등맹(鄧猛)을 키우고 있었는데, 159년 등맹의 미모를 눈여겨본 손수는 등맹의 성을 양(梁)씨로 바꾸게 하고 환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남편 양기로 하여금 등맹의 생모 선(宣)을 죽이게 했는데, 암살에 실패하여 선이 궁중으로 달려가 환제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화가 난 환제는 환관들과 모의하여 군사들을 동원해 양기의 집을 포위했다. 절망에 빠진 손수는 남편과 함께 자살했다.
3. 유행 창안
손수는 몸치장에 관심이 많아 자신만의 독특한 치장 방법과 호화로운 도구들을 개발했다. 이것들은 한나라의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어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이 되었다.
손수는 미녀였으며, 당시 여성들의 패션 리더로서 수많은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세상의 여성들이 앞다투어 그 패션을 모방했다고 한다. 그녀가 고안한 패션은 '수미(愁眉)'(수심을 담은 눈썹), '제장(啼粧)'(울어서 붉어진 눈매), '타마계(堕馬髻)'(좌우 비대칭의 머리 모양), '절요보(折腰歩)'(허리를 굽힌 듯한 걸음걸이), '우치소(齲齒笑)'(충치의 고통을 참으며 짓는 웃음) 등으로 불렸는데, 양심적인 사람들은 이를 좋지 않은 징조로 여기고 불길하다고 여겨, 양기의 몰락과 관련지었다.
3. 1. 화장법
손수는 몸치장에 관심이 많아 자신만의 독특한 치장 방법과 호화로운 도구들을 개발했다. 이것들은 한나라의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어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이 되었다.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수미(愁眉): 근심에 잠긴 것처럼 보이게 위해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화장법
- 제장(啼粧): 눈 밑을 하얗게 칠해 울고 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법
- 타마계(墯馬髻): 머리를 살짝 기울게 하여 여자의 몸가짐이 다소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
- 절요보(切要步): 허리를 꺾고 흔들면서 걷는 방법
- 우치소(齲歯笑): 이가 아픈 것처럼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방법
손수는 미녀였으며, 당시 여성들의 패션 리더로서 수많은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세상의 여성들이 앞다투어 그 패션을 모방했다고 한다. 그녀가 고안한 패션은 '우치소(齲齒笑)'(충치의 고통을 참으며 짓는 웃음), '수미(愁眉)'(수심을 담은 눈썹), '제장(啼粧)'(울어서 붉어진 눈매), '타마계(堕馬髻)'(좌우 비대칭의 머리 모양), '절요보(折腰歩)'(허리를 굽힌 듯한 걸음걸이) 등으로 불렸는데, 양심적인 사람들은 이를 좋지 않은 징조로 여기고 불길하다고 여겨, 양기의 몰락과 관련지었다.
3. 2. 치장 도구
손수는 몸치장에 관심이 많아 자신만의 독특한 치장 방법과 호화로운 도구들을 개발했다. 이것들은 한나라의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어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이 되었다.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번호 | 이름 |
---|---|
1 | 평상병차(平上輧車) |
2 | 비책(埤幘) |
3 | 협관(狹冠) |
4 | 절상건(折上巾) |
5 | 옹신선(擁身扇) |
6 | 호미단의(狐尾單衣)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