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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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칠리아 백국은 1071년 로베르 기스카르가 동생 로제 보소에게 시칠리아 섬을 백작령으로 하사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제는 기스카르의 지배 하에 미정복지를 차지하며 백국을 통치했고, 1091년 시칠리아 정복이 완료되었다. 로제 1세는 1096년부터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의 대백작" 칭호를 사용했으며, 로제 2세가 1112년 팔레르모를 수도로 정했다. 1127년 기욤이 사망한 후, 로제 2세는 본토 공국을 상속받았고, 1130년 교황 아나클레토 2세의 승인으로 모든 영지를 통합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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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백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일반 명칭 | 시칠리아 |
정부 형태 | 군주제 |
수도 | 팔레르모 |
공용어 | 라틴어 비잔티움 그리스어 |
기타 언어 | 이탈리아 로망스어 노르만어 히브리어 시칠리아 아랍어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공식) 그리스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
오늘날 국가 | 이탈리아 몰타 |
역사 | |
시작 연도 | 1071년 |
종료 연도 | 1130년 |
이전 국가 | 무슬림 시칠리아 |
계승 국가 | 시칠리아 왕국 |
지도 | |
![]() | |
통치자 | |
초대 백작 | 루지에로 1세 (1071년–1101년) |
2대 백작 | 시모네 (1101년–1105년) |
3대 백작 | 루지에로 2세 (1105년–1130년) |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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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로베르 기스카르는 1071년 그의 동생 로제 보소를 위해 시칠리아 백국을 세웠다. 기스카르 자신은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로부터 시칠리아의 무슬림을 정복하라는 격려와 함께 시칠리아 공작(dux Siciliae)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061년 최초의 노르만 정복(메시나)이 이루어졌고, 1071년 토호국의 수도이자 미래 백국의 수도가 될 팔레르모 함락 후, 기스카르는 로제에게 백작 칭호를 수여하고 팔레르모의 절반, 메시나, 발데모네를 제외한 시칠리아 섬 전체에 대한 관할권을 주었다. 로제는 기스카르 아래에서 미정복지를 포함하는 백국을 통치했다. 1091년 2월 노토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 정복이 완료되었다. 몰타 정복은 그보다 늦게 시작되어, 1127년에 아랍인들의 행정력이 축출되면서 완료되었다.[4]
로베르 기스카르는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 공국의 후계자 문제로 로제와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085년 로베르토가 사망한 후, 루제리오 1세는 새로운 공작 루제리오 보르사로부터 칼라브리아의 모든 성들에 대한 권한을 얻었다.[5] 루제리오 1세의 정부 소재지는 칼라브리아 도시 밀레토였다.[6] 아고스티노 인베게스와 마테오 카메라에 따르면, 루제리오 1세는 1096년부터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의 대백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7] 루제리오 1세 사후 주요 변화는 수도를 이전한 것이었다. 루지에로 2세가 어머니 아델라이드 델 바스토의 섭정 후에 백작으로 임명된 1112년 팔레르모가 수도가 되었다.[8] 이러한 변화와 함께 시칠리아는 중앙 정부에 의해 통치되었고, 칼라브리아 지역은 지방 행정 단위가 되었다. 루지에로 2세와 기욤 2세 통치 시기에는 각각 로제와 로베르의 사촌 관계인 두 노르만 대공국 간의 분쟁이 발생했다. 교황 갈리스토 2세의 중재와 1121년 아리아노의 주르댕이 일으킨 반란 진압을 돕는 대가로, 자식이 없던 기욤은 루지에로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그의 모든 영토를 넘겨주었다.
1127년 기욤이 사망하자 루지에로는 본토의 공국을 상속받았다. 3년 뒤인 1130년, 팔레르모에서 대립 교황 아나클레토 2세의 승인을 받아 그의 모든 영지를 통합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2. 1. 시칠리아 정복
로베르 기스카르는 1071년에 그의 동생 로제 보소를 위해 시칠리아 백국을 세웠다. 기스카르는 1059년에 교황 니콜라오 2세로부터 시칠리아의 무슬림을 정복하라는 격려와 함께 시칠리아 공작(dux Siciliae)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061년, 최초로 노르만이 메시나를 영구적으로 정복하였다. 1071년에는 토호국의 수도이자 미래 백국의 수도가 될 팔레르모를 함락했다. 그 후 기스카르는 로제에게 백작 칭호를 주고, 팔레르모의 절반, 메시나, 발데모네를 제외한 시칠리아 섬 전체에 대한 관할권을 주었다. 로제는 기스카르 아래에서 미정복지를 포함하는 백국을 통치했다. 1091년 2월 노토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 정복이 완료되었다. 몰타 정복은 그보다 늦게 시작되어, 1127년에 아랍인들의 행정력이 축출되면서 완료되었다.2. 2. 백국 통치와 시칠리아 왕국으로의 발전
로베르 기스카르는 1071년에 그의 동생 로제 보소를 위해 시칠리아 백국을 세웠다. 기스카르는 1059년에 교황 니콜라오 2세로부터 시칠리아 공작(dux Siciliae)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시칠리아의 무슬림들을 정복하라는 격려의 의미였다. 1061년에 최초로 노르만이 메시나를 영구적으로 정복했고, 1071년에는 토호국의 수도이자 미래 백국의 수도가 될 팔레르모를 함락했다. 그 후 기스카르는 로제에게 백작 칭호를 주고, 팔레르모의 절반, 메시나, 발데모네를 제외한 시칠리아 섬 전체에 대한 관할권을 주었다. 로제는 기스카르의 지휘 아래 아직 정복되지 않은 지역을 포함하는 백국을 통치했다. 1091년 2월 노토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 정복이 완료되었다. 몰타 정복은 그보다 늦게 시작되어 1127년에 아랍인들의 행정력이 축출되면서 완료되었다.[4]로베르 기스카르는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 공국의 후계자 문제로 로제와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085년 로베르토가 사망한 후, 루제리오 1세는 새로운 공작 루제리오 보르사로부터 칼라브리아의 모든 성들에 대한 권한을 얻었다.[5] 루제리오 1세의 정부 소재지는 칼라브리아 도시 밀레토였다.[6] 아고스티노 인베게스와 마테오 카메라에 따르면, 루제리오 1세는 1096년부터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의 대백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7] 루제리오 1세 사후 주요 변화는 수도를 이전한 것이었다. 루지에로 2세가 어머니 아델라이드 델 바스토의 섭정 후에 백작으로 임명된 1112년 팔레르모가 수도가 되었다.[8] 이러한 변화와 함께 시칠리아는 중앙 정부에 의해 통치되었고, 칼라브리아 지역은 지방 행정 단위가 되었다. 루지에로 2세와 기욤 2세 통치 시기에는 각각 로제와 로베르의 사촌 관계인 두 노르만 대공국 간의 분쟁이 발생했다. 교황 갈리스토 2세의 중재와 1121년 아리아노의 주르댕이 일으킨 반란 진압을 돕는 대가로, 자식이 없던 기욤은 루지에로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그의 모든 영토를 넘겨주었다.
1127년 기욤이 사망하자 루지에로는 본토의 공국을 상속받았다. 3년 뒤인 1130년, 팔레르모에서 대립 교황 아나클레토 2세의 승인을 받아 그의 모든 영지를 통합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3. 역대 백작
1071–1101
탕크레드 드 오트빌과 프레디센다의 아들
에렘부르가 드 모르탱(1077년, 자녀 8명)
아델라이드 델 바스토(1087년, 자녀 4명)
밀레토
70세
1101–1105
시칠리아의 로제 1세와 아델라이드 델 바스토의 아들
밀레토
12세
1105–1130

밀레토
시칠리아의 로제 1세와 아델라이드 델 바스토의 아들
시빌 드 부르고뉴(1149년, 자녀 2명)
베아트리스 드 레텔(1151년, 자녀 1명)
팔레르모
5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