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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라리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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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탈라리쿠스는 서고트족 출신으로, 테오도리크 대왕의 외손자이자 에우타리쿠스와 아마라스훈타의 아들이다. 523년 아버지의 급사로 7세의 나이에 왕위 계승자가 되었고, 10세에 정식 국왕이 되었으나 섭정인 어머니의 영향 아래 통치했다. 그의 치세 동안 동고트 왕국은 게피드족을 격퇴하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궁정 내 정치적 갈등이 있었으며, 534년 1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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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라리쿠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루푸스 겐나디우스 프로부스 오레스테스의 집정관 이단화의 세부 묘사. 기원 530년경
루푸스 겐나디우스 프로부스 오레스테스의 집정관 이단화의 세부 묘사. 왼쪽은 아탈라리크, 오른쪽은 아마라스운타, 기원 530년경
이름아탈라리크
로마자 표기Athallarikeu
통치 정보
작위동고트 왕
재위 기간526년 - 534년
이전 통치자테오도리크 대왕
계승자아마라스운타
섭정아마라스운타
생애
출생기원 516년경
사망534년 10월 2일
가족
아버지에우타리크
어머니아마라스운타
왕조
왕가아말리 가

2. 생애

아탈라리쿠스는 서고트족 출신으로 아말 가문의 혈통인 에우타리쿠스와 테오도리크 대왕의 딸 아마라스훈타의 아들이다. 523년 에우타리쿠스가 급사하자 7세의 나이로 왕위 계승자가 되었고, 10세에 정식으로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 때문에 어머니 아마라스훈타가 섭정을 하며 정치를 장악했다. 그의 치세 동안 동고트 왕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궁정 내에서는 아마라스훈타와 그 반대파 간의 정치적 투쟁이 있었다. 아탈라리쿠스는 로마식 교육을 받았으나, 반대파의 규탄으로 고트족 특유의 생활을 하게 되었고, 534년 18세의 나이로 병사했다.[1]

2. 1. 왕위 계승

아탈라리쿠스는 서고트족 출신으로 아말 가문의 혈통인 에우타리쿠스와, 대왕 테오도리크의 딸 아마라스훈타의 아들이다. 아탈라리쿠스의 아버지 에우타리쿠스는 테오도리크 대왕이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이는 동로마 제국에서도 승인되었다. 그러나 에우타리쿠스가 523년에 급사했기 때문에 아탈라리쿠스는 겨우 7세의 나이로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원래라면 아버지의 사후 왕위 계승은 테오도리크의 조카 테오다하드에게 넘어갈 예정이었으나, 그는 테오도리크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아탈라리쿠스가 테오도리크의 직접적인 후계자가 되었다.[1]

아탈라리쿠스는 10세에 정식으로 국왕이 되었으나, 어린 나이 때문에 정치는 섭정이 된 어머니가 장악했다.[1]

2. 2. 치세

아탈라리쿠스는 서고트족 출신으로 아말 가문의 혈통인 에우타리쿠스와, 테오도리크 대왕의 딸 아마라스훈타의 아들이다. 아탈라리쿠스의 아버지 에우타리쿠스는 테오도리크 대왕이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이는 동로마 제국에서도 승인되었다. 그러나 에우타리쿠스가 523년에 급사했기 때문에 아탈라리쿠스는 겨우 7세의 나이로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원래 아버지 사후 왕위 계승은 테오도리크의 조카 테오다하드에게 넘어갈 예정이었으나, 그는 테오도리크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아탈라리쿠스가 테오도리크의 직접적인 후계자가 되었다.[1]

534년, 아탈라리쿠스는 18세의 나이로 병사했다.[1]

2. 2. 1. 동고트 왕국의 안정

아탈라리쿠스는 10세에 정식으로 국왕이 되었으나, 어린 나이 때문에 정치는 섭정이 된 어머니가 장악했다. 그의 치세 동안 동고트 왕국이 와해되는 일은 없었고, 530년에는 판노니아에 침입한 게피드족을, 훗날 동고트 왕국의 왕이 되는 장군 비티기스가 격퇴하는 등, 군대의 결속은 굳건했고 효과적으로 기능했다.[1] 그러나 궁정에서는 어머니 아마라스훈타와 그 반대파에 의한 정치적인 투쟁이 벌어졌고, 아마라스훈타는 반대파와의 줄다리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1] 아탈라리쿠스는 어머니에 의해 로마식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반 아마라스훈타 파에 의해 이것이 규탄되었고, 아탈라리쿠스는 고트족 특유의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1] 그리고 이것이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전해진다.[1]

2. 2. 2. 궁정 내 갈등

아탈라리쿠스는 10세에 정식으로 국왕이 되었으나, 어린 나이 때문에 정치는 섭정이 된 어머니 아마라스훈타가 장악했다. 그의 치세 동안 동고트 왕국이 와해되는 일은 없었고, 530년에는 판노니아에 침입한 게피드족을 훗날 동고트 왕국의 왕이 되는 장군 비티기스가 격퇴하는 등, 군대의 결속은 굳건했고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궁정에서는 어머니 아마라스훈타와 그 반대파 간의 정치적인 투쟁이 벌어졌고, 아마라스훈타는 반대파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아탈라리쿠스는 어머니에 의해 로마식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반 아마라스훈타 파는 이를 규탄했고, 아탈라리쿠스는 고트족 특유의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전해진다.

참조

[1] 웹사이트 Rufus Gennadius Probus Orestes https://collections.[...]
[2] 서적 Amalasuntha http://www.oxfordref[...] Oxford University Press 2005-01-01
[3] 문서 Vitello 39
[4] 문서 Vitello 187
[5] 논문 "Nourished at the Breast of Rome": The Queens of Ostrogothic Italy and the Education of the Roman Elite Rheinisches Museum für Philologie 2006
[6] 문서 Vitello 97
[7] 문서 Vitello 100
[8] 문서 Vitello 97-98
[9] 문서 Vitello 119
[10] 문서 Athalaric's Health and the Ostrogothic Character 1995
[11] 웹사이트 "[monnaie : Ostrogoths (Or, 10 nummi)]" https://catalogue.bn[...]
[12] 문서 Vitello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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