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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 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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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리시아 레트는 미국의 배우이자 초상화가로, 1915년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태어나 2014년 사망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인디아 윌키스 역을 맡았으며, 영화 출연 이전부터 스케치와 초상화에 재능을 보였다. 찰스턴 지역의 미국 군인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루이스 에밀 덴펠드 제독과 에스테린 P. 워커 사제의 초상화, 알렉산드라 리플리의 초상화 등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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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 레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 속의 알리시아 레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에서의 레트
출생일1915년 2월 1일
출생지미국조지아주서배너
사망일2014년 1월 3일
사망지미국사우스캐롤라이나주찰스턴
직업배우, 초상화가
활동 기간1937년–1941년
친척로버트 반웰 레트 (증조부)

2. 생애

2. 1. 초기 생애

알리시아 레트는 1915년 2월 1일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는 에드먼드 M. 레트, 어머니는 이자벨 머독이다. 어머니 이자벨은 영국 리버풀 출신 이민자였다. 아버지 에드먼드는 서배너에서 기술자로 일했으며, 미국 육군 장교였다.[1] 그녀의 할아버지는 남북 전쟁의 대부분 기간 동안 제1사우스캐롤라이나 포병 연대 사령관이었던 알프레드 무어 레트 대령이었고, 그녀의 증조부는 알프레드 레트의 아버지인 로버트 반웰 레트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버지의 사망 후, 알리시아와 그녀의 어머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으로 이사했다. 레트는 찰스턴에서 연극 배우가 되었다. 1939년 신문 기사는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처스의 보도 자료를 인용하여 레트 버틀러의 이름이 마거릿 미첼에 의해 선택된 이유가 "가장 초창기 식민지 시대부터 레트 가문은 일반적으로 남부에서,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과 그 주변 지역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1] 알리시아 레트는 찰스턴의 멤밍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1]

2. 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1936년, 《모병관》 공연 중에 레트는 할리우드 감독 조지 큐커에게 발탁되었고, 큐커는 그녀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마거릿 미첼의 소설에 대한 영화 판권을 구매한 후,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을 배우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전에 재능 스카우트 케이 브라운은 그녀를 영화에 출연할 유망한 남부 미녀로 추천했었다.

레트는 멜라니 해밀턴 역을 오디션 봤지만, 그 역할은 대신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에게 돌아갔다. 1937년 3월, 큐커는 레트에게 애슐리 윌크스의 여동생인 인디아 윌크스 역을 제안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성공 이후, 레트는 1941년 할리우드를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가 영화 제작에서 은퇴했는데, 적절한 배역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레트는 이후 배우 지망생들을 위한 발음 코치와 찰스턴의 WTMA 방송국 라디오 아나운서가 되었다.

2. 3. 초상화가로서의 활동

알리시아 레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하기 전부터 스케치 화가이자 초상화가로서 재능을 보였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 중에 동료 배우들의 스케치와 그림을 그렸다. 곧, 레트는 찰스턴 지역의 미국 군인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레트의 작품으로는 루이스 에밀 덴펠드/루이스 에밀 덴펠드영어 제독의 초상화와 에스테린 P. 워커(Estellene P. Walker) 사제의 초상화가 있으며, 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레트는 나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 스칼렛을 집필하는 알렉산드라 리플리의 초상화를 리플리가 19세 때 의뢰받았다.

특히 주목받은 초상화로는 샬롯 브라운 리드 미망인이 의뢰한 클라우디우스 머레이 리드 경의 초상화와 윌리엄 해리슨 스캐버러 작 《미러 자매》의 복원이 있다. 이 초상화들은 클라우디우스 머레이 리드 주니어 저택에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삽화가로 활동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인디언》(''South Carolina Indians'', 1965년, 베스 코지, 레일라 더비 저) 등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2. 3. 1. 주목할 만한 작품

레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이전부터 스케치나 초상화 등 회화에 재능을 보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중에도, 공동 출연자의 모습을 스케치하거나 드로잉했다.. 곧 레트는 찰스턴 인근의 미국 군인의 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레트의 작품으로는 루이스 에밀 덴펠드/루이스 에밀 덴펠드영어 제독의 초상화와 에스테린 P. 워커(Estellene P. Walker) 사제의 초상화가 있으며, 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레트는 나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 스칼렛을 집필하는 알렉산드라 리플리의 초상화를 리플리가 19세 때 의뢰받았다.

특히 주목받은 초상화로는 샬롯 브라운 리드 미망인이 의뢰한 클라우디우스 머레이 리드 경의 초상화와 윌리엄 해리슨 스캐버러 작 《미러 자매》의 복원이 있다. 이 초상화들은 클라우디우스 머레이 리드 주니어 저택에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삽화가로 활동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인디언》(''South Carolina Indians'', 1965년, 베스 코지, 레일라 더비 저) 등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2. 3. 2. 삽화 작업

레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이전부터 스케치나 초상화 등 회화에 재능을 보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중에도, 공동 출연자의 모습을 스케치하거나 드로잉했다.. 곧 레트는 찰스턴 인근의 미국 군인의 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레트의 작품으로는 루이스 에밀 덴펠드/루이스 에밀 덴펠드영어 제독의 초상화와 에스테린 P. 워커(Estellene P. Walker) 사제의 초상화가 있으며, 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레트는 나중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 스칼렛을 집필하는 알렉산드라 리플리의 초상화를 리플리가 19세 때 의뢰받았다.

특히 주목받은 초상화로는 샬롯 브라운 리드 미망인이 의뢰한 클라우디우스 머레이 리드 경의 초상화와 윌리엄 해리슨 스캐버러 작 《미러 자매》의 복원이 있다. 이 초상화들은 클라우디우스 머레이 리드 주니어 저택에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삽화가로 활동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인디언》(''South Carolina Indians'', 1965년, 베스 코지, 레일라 더비 저) 등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2. 4. 사망

알리시아 레트는 2014년 1월 3일, 향년 98세의 나이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비숍 개즈덴 성공회 은퇴 커뮤니티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2][4][5] 레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생존한 배우 중 최고령자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보다 17개월 더 나이가 많았다.[3] 2013년 시점에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배우들 중 최고령이었다. 레트의 사망으로 멜라니 역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1916년 7월 1일 출생)가 생존 배우 중 최고령이 되었다.[6]

3. 영화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인디아 윌키스 역을 맡았다.

연도제목배역비고
1939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디아 윌키스 - 존 윌키스의 딸


참조

[1] 뉴스 Alicia Rhett Has Noted Family Line https://www.newspape[...] 1939-04-16
[2] 간행물 Necrology for 2014 2015-Spring
[3] 뉴스 Alicia Rhett, oldest living actor from ''Gone With the Wind'', dies at 98 in South Carolina http://www.startribu[...] 2014-01-03
[4] 웹사이트 Alicia Rhett, oldest living actor from 'Gone With the Wind', dies at 98 in South Carolina http://www.startribu[...] Star Tribune 2014-01-04
[5] 웹사이트 アリシア・レットさん死去 映画「風と共に去りぬ」出演 https://web.archive.[...] msn産経ニュース 2014-01-04
[6] 문서 『風と共に去りぬ』の主要キャストのうちレットが死去した時点で存命であった人物としてデ・ハヴィランドのほかに、メイベル・メリーウェザー役のメアリー・アンダーソン ([[:en:Mary Anderson (actress, born 1918)|en:Mary Anderson]]、[[1918年]][[4月3日]]生まれ)、ボー・ウィルクス役のミッキー・カーン ([[:en:Mickey Kuhn]]、[[1932年]][[9月21日]]生まれ) がいたが、2014年[[4月6日]]にアンダーソンが、[[2020年]][[7月25日]]にデ・ハヴィランドが、[[2022年]][[11月20日]]にカーンが死去し、主要な出演者は2022年までに全員が死去した形となった。なお、ボニー役のカミー・キング([[:en:Cammie King]])は主要な出演者で最年少([[1934年]][[8月5日]]生まれ)であったが、レット存命中の[[2010年]][[9月1日]]に死去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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