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오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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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겔라 오로스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태어난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그녀는 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임신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헝가리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했다. 성인이 된 후 교사로 활동하며, 60세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증언을 시작했다. 오로스는 전직 나치 친위대 경비병 오스카 그뢰닝과 라인홀트 해닝을 상대로 증언했으며, 유엔의 에브라힘 라이시 초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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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오로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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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이름 | 앙겔라 베인 |
다른 이름 | 앙겔라 오로스-리히트 앙겔라 폴가르 |
출생일 | 1944년 12월 21일 |
출생 장소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독일 점령 폴란드 |
국적 | 헝가리-캐나다 |
시민권 | 캐나다 |
직업 | 교사 공개 연설가 |
활동 기간 | 2004년-현재 |
알려진 이유 |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생존자를 옹호하고 나치에 반대함 |
배우자 | 율리우스 오로스 (1965년 결혼) |
부모 | 아버지: 아브라함 (티보르) 베인 어머니: 베라 (베로니카) 오트보스 |
의붓아버지 | 샨도르 폴가르 |
자녀 | 2명 |
2. 유년 시절
2. 1. 부모
앙겔라 오로스-리히트의 부모는 아브라함(티보르) 베인 박사(1912년 6월 2일 출생)와 베라(베로니카) 오트보스(1920년 4월 2일 출생)로, 헝가리 출신 유대인이었다.[4][5] 1943년 3월, 아브라함이 살고 베라가 유모로 일하던 헝가리 북서부 Sárospatak에서 결혼했다.[6] 1944년 나치의 헝가리 인종 청소 동안, 유월절 다음 날 가축 수송 열차에 실려 인근의 샤토러여우이헤이 게토로 보내졌고, 5월 22일에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보내져 5월 25일에 도착했다.[6]2. 2. 강제 수용소
베라 오로스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요제프 멩겔레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으나, 멩겔레는 그녀를 비웃으며 가스실 대신 노동 수용소로 보냈다. 그녀는 손목에 죄수 번호 A6075를 문신으로 새겼다.[3]오로스는 도로 건설 대신 부엌에서 일하게 되었고, 임신 말기에 멩겔레의 의료 실험 부서로 옮겨져 자궁 경부에 독극물 주입을 받았다. 이로 인해 불임이 되었지만, 태아는 살아남았다.[8] 한 유대인 수용소 의사는 낙태를 권유했으나, 베라는 꿈에서 "하셈(신)이 당신과 함께 하신다"라는 말을 듣고 출산을 결심했다.[9]
출산 당시, 오로스는 영양실조와 의료 실험으로 인해 약 1킬로그램의 저체중아를 출산했다. 아기는 너무 약해서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고, 이는 오히려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8][10] 베라는 출산 후 몇 시간 만에 일터로 돌아가 아기를 쓰레기 더미 아래 숨기고 모유 수유를 하며 연합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약 한 달 동안 돌보았다. 그녀는 또한 해방된 날 수용소에서 태어난 죄르지 팔루디에게도 모유 수유를 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진 수용소 출생 아기 중 단 두 명이었다.[3]
2. 3. 종전 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앙겔라 오로스-리히트의 어머니는 또 다른 생존자이자 과부인 샌더 폴가르를 만났다. 샌더 폴가르는 생존한 아들 테드 볼가르를 두고 있었다.[4] 폴가르/볼가르 가족은 앙겔라의 친아버지 고향인 샤로스파탁 출신이었다. 폴가르는 베라가 앙겔라의 출생 증명서를 얻는 것을 도왔고, 둘은 결혼했다.[9][4] 그는 1957년에 사망했는데,[9] 앙겔라 오로스는 그가 전쟁 후에도 헝가리에서 공공연히 드러난 반유대주의 스트레스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11]이들 가족은 전쟁 이후 유럽의 DP 캠프에서 몇 달을 보냈다. 1945년 11월, 오로스-리히트 가족과 폴가르 가족, 총 네 명은 부다페스트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오트보스-베인의 어머니는 인쇄소 캠프에 숨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7] 앙겔라는 첫 해가 되어서야 겨우 일반적인 신생아 체중인 약 3킬로그램을 기록했다. 어머니만이 앙겔라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할머니조차도 앙겔라를 바르슈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앙겔라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앙겔라는 7살까지 다리가 너무 약해서 지탱할 수 없었고, 평생 연약하고 키가 매우 작게 남았다.[5]
앙겔라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아우슈비츠를 쓰는 것이 철자하기 어렵고, 또 훗날 앙겔라가 회상하기를, 너무 어려운 연관성을 지녔기 때문에 기록된 출생지를 바꿔달라고 어머니에게 불평했다.[1] 그러나 앙겔라의 어머니는 그것이 앙겔라의 유산이며, 앙겔라가 자라서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거절했다.[5][10]
3. 성인 시절
3. 1. 결혼, 가족, 이민
앙겔라 오로스-리히트는 교사가 되었다.[4] 그녀는 1965년에 요제프 오로스와 결혼하여 딸 케이티를 낳았다.[4] 1973년 12월, 가족은 공산주의 헝가리를 탈출했다. 이는 1966년 의붓아들 테드 볼가르를 돕기 위해 몬트리올로 이주한 어머니 베라를 방문한다는 구실이었다.[4] 오로스는 12월 11일에 토론토에 도착하여[11] 캐나다에서 가족을 키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1982년 몬트리올에서 아들을 낳아 두 자녀를 두었다.[5] 딸 곁에 있기 위해 몬트리올로 이사했으며, 2020년/As of영어 기준으로 그곳에 계속 살고 있다.[12] 코로나19 범유행 동안 그녀는 "사교적인 사람"이기에 고립감에 대해 불평했다.[12]그녀의 역사에 대한 몇몇 세부 사항은 딸 케이티가 베라와의 전화 인터뷰를 고등학교 과제로 녹음하면서 알려졌다. 케이티는 맥길 대학교에서 인간 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9] 1992년 1월 28일 베라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암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11]
3. 2. 홀로코스트 증언 활동
앙겔라 오로스는 60세가 되어서야 홀로코스트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1] 몬트리올의 일간지 《The Gazette》의 기자 제프 하인리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13]70세가 되던 2015년, 오로스는 처음으로 자신의 출생지를 방문했다. 그녀는 부모가 죄수 열차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것을 알면서 편안한 비즈니스석에 수행원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여행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회고했다.[5]
같은 해, 오로스는 "아우슈비츠의 회계원"으로 알려진 전직 무장 친위대 경비병 오스카 그뢰닝을 상대로 독일에서 증언했다. 법정에서 그녀는 다른 목소리들이 억눌린 동안 자신은 살아남았기에 침묵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6] 그뢰닝은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로스는 2015년 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1년 후, 오로스는 또 다른 전직 아우슈비츠 친위대 경비병 라인홀트 해닝을 상대로 증언하기 위해 독일을 다시 방문했다.[14] 그는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로스는 2016년 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Blockquote|text=...살해당했기에 여기에 올 수 없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대표하여.
사실, 살해당한 사람은 600만 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 자라서 아이를 낳지 못한 모든 아이들을 생각해 보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많은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의 아이들은 차례로 그들의 어머니가 받은 화학 물질의 결과로 호르몬 불균형으로 고통받는다. 나는 수학자는 아니지만 6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실제로 매우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수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author=|title=2016년 재판 증언|source=}}
그녀는 아우슈비츠 해방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15]
2022년 9월, 독일-유대인 신문 《Jüdische Allgemeine》에 기고한 그녀는 유엔이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를 뉴욕에서 초청한 것을 비판했다. "저는 때때로 유엔이 홀로코스트의 재 속에서 세워졌다고 읽습니다. 오늘날, 그 사실은 잊혀진 것 같습니다. 저는 홀로코스트의 재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1944년 12월, 저는 울 수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브라힘 라이시와 같은 사람을 초청한 유엔에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16]
3. 3. 유엔 비판
2022년 9월, 앙겔라 오로스-리히트는 독일-유대인 신문 《Jüdische Allgemeine》에 기고한 글에서 유엔이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를 뉴욕에 초청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16] 그녀는 "때때로 유엔이 홀로코스트의 재 속에서 세워졌다고 읽습니다. 오늘날, 그 사실은 잊혀진 것 같습니다. 저는 홀로코스트의 재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1944년 12월, 저는 울 수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브라힘 라이시와 같은 사람을 초청한 유엔에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16]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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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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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Orosz R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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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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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 Fascinating Account Of Frum Woman Born In Ausch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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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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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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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in the Holocaust: A Hungarian woman's miraculous birth in the death camp of Ausch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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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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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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