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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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혜옹주는 조선 철종의 유일하게 장성한 자녀로, 1858년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영숙옹주로 봉해졌으나, 1866년 영혜옹주로 개칭되었다. 1863년 철종 사후 어머니와 함께 궁궐 밖에서 생활했으며, 1872년 박영효와 혼인했으나 3개월 만에 사망하여 후손을 얻지 못했다. 이문열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와 동명의 드라마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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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옹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작위 | 옹주 |
휘호 (시호) | 영혜옹주 (永惠翁主), 영숙옹주 (永淑翁主) |
가계 | |
아버지 | 철종 |
어머니 | 숙의 범씨 (금성 범씨) |
조부 | 전계대원군 |
배우자 | 박영효, 금릉위 |
자녀 | 없음 |
생애 | |
출생 | 1858년, 한성 종로구 |
사망 | 1872년 7월 4일 |
혼인 | |
혼인 시기 | 1872년 |
혼인 대상 | 박영효 |
2. 생애
철종은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으나 모두 요절하고, 영혜옹주만이 유일하게 장성한 자녀이다.[3]
영혜옹주는 1858년 고종의 즉위 9년째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영숙옹주(永淑翁主)로 책봉되었으나, 1866년 영혜옹주로 개칭되었다.[2]
철종이 1863년 승하한 후[2], 어머니와 함께 궁궐 밖에서 생활하였다.[2] 철종의 자녀 중 영혜옹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2]
1872년(고종 9) 4월 13일 전 도사 박원양(朴元陽)의 아들 박영효와 혼인하였으나,[3][2] 3개월만인 7월 4일에 죽어서 후손을 얻지 못하였다.[3] 고종은 박영효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정1품 종친의 예로 녹봉을 주었다.[3]
2. 1. 어린 시절
영혜옹주(永惠翁主)는 1858년 고종의 즉위 9년째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영숙옹주(永淑翁主)로 책봉되었으나, 1866년 영혜옹주로 개칭되었다.[2]철종이 1863년 승하한 후[2], 어머니와 함께 궁궐 밖에서 생활하였다.[2] 철종의 자녀 중 영혜옹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2]
2. 2. 아버지 철종의 죽음과 궁궐 밖 생활
철종은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으나 모두 요절하고, 영혜옹주만이 유일하게 장성한 자녀이다.[3]영혜옹주는 1863년 아버지 철종이 승하한 후 어머니와 함께 궁궐 밖에서 살았다.[3] 처음에는 영숙옹주(永淑翁主)에 봉해졌으며, 1866년 영혜옹주로 바뀌었다.[3] 1872년 4월 13일 전 도사 박원양(朴元陽)의 아들 박영효와 혼인하였으나,[3][2] 3개월만인 7월 4일에 죽어서 후손을 얻지 못하였다.[3] 고종은 박영효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정1품 종친의 예로 녹봉을 주었다.[3]
2. 3. 혼인과 죽음
철종은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으나 모두 요절하고, 영혜옹주만이 유일하게 장성한 자녀이다.[3] 영혜옹주는 1863년 철종이 죽은 후엔 어머니와 함께 궁궐 밖에서 살았다.[3] 처음에는 영숙옹주(永淑翁主)에 봉해졌으며, 1866년 영혜옹주로 바뀌었다.[3] 1872년(고종 9) 4월 13일 전 도사 박원양(朴元陽)의 아들 박영효와 혼인하였으나,[3][2] 3개월만인 7월 4일에 죽어서 후손을 얻지 못하였다.[3] 고종은 박영효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정1품 종친의 예로 녹봉을 주었다.[3]3. 가족 관계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조부 : 전계대원군 이광(全溪大院君 李㼅, 1785~1841)
- 조모 : 용성부대부인 용담 염씨(龍城府大夫人 龍潭 廉氏)
- * '''아버지''' : 제25대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 1831~1864, 재위 1849~1864)
- 외조부 : 통정 범원식(通政 范元植)
- * '''어머니''' : 숙의 나주 범씨(淑儀 羅州 范氏, 1838~1883)
'''시가 반남 박씨(潘南 朴氏)'''
- 조부 : 박제당(朴齊堂, 1784~1858)
- 조모 : 이집성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 1783~1818)
- * 시아버지 : 공조판서 증 영의정 정간공 박원양(工曹判書 贈 領議政 貞簡公 朴元陽, 1804~1884)
- * 시어머니 : 이달태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1802~ ?)
- ** '''남편''' : 금릉위 박영효(錦陵尉 朴泳孝, 1861~1939)
3. 1. 왕가(전주 이씨)
전계대원군 이광(1785~1841)과 용성부대부인 용담 염씨의 손녀이자, 철종과 숙의 나주 범씨(1838~1883)의 딸이다. 아버지는 제25대 철종장황제(1831~1864, 재위 1849~1864)이며, 외조부는 통정 범원식이다.시조부는 박제당(1784~1858)이며, 시조모는 이집성의 딸 연안 이씨(1783~1818)이다. 시아버지는 공조판서 증 영의정 정간공 박원양(1804~1884)이며, 시어머니는 이달태의 딸 전주 이씨(1802~ ?)이다. 남편은 금릉위 박영효(1861~1939)이다.
철종의 자녀 중 영혜옹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한 후 어머니와 함께 궁궐 밖에서 살았다.
3. 2. 시가(반남 박씨)
영혜옹주의 시가는 반남 박씨이다. 시아버지는 공조판서 증 영의정 정간공 박원양(1804~1884)이며, 시어머니는 이달태의 딸 전주 이씨(1802~ ?)이다. 남편은 금릉위 박영효(1861~1939)이다.4. 등장 작품
- 이문열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영혜옹주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1989년 KBS와 2020년 조선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 1989년 KBS와 2020년 조선방송에서 제작된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 영혜옹주가 등장한다.
4. 1. 소설
이문열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영혜옹주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1989년 KBS와 2020년 조선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4. 2. 드라마
1989년 KBS와 2020년 조선방송에서 제작된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 영혜옹주가 등장한다.5. 기타
참조
[1]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
2021-08-07
[2]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
2021-08-07
[3]
뉴스
서삼릉-예릉, 25대 철종·철인왕후
http://www.kyeongin.[...]
경인일보
200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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