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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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숙의 범씨는 금성 범씨 범원식의 딸로, 조선 철종의 후궁이다. 1838년에 태어나 궁에 들어가 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궁으로 책봉되지는 못했다. 1859년 영혜옹주를 낳았고, 1866년 신정왕후에 의해 종2품 숙의에 봉해졌다. 1863년 철종 사후 궐 밖에서 영혜옹주와 함께 살았으며, 1883년 사망하여 서대문구 홍은동에 안장되었다가 서삼릉 후궁 묘역으로 이장되었고, 서삼릉과 함께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딸 영혜옹주는 박영효에게 시집갔으나 14세에 사망했다.

숙의 범씨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숙의 범씨
로마자 표기Sukui Beomssi
한글숙의 범씨
한자淑儀 范氏
가문금성 범씨 (출생)
이씨 (혼인)
생애
출생1838년
사망1884년 1월 23일 (46세)
사망 장소한성, 조선
매장지서삼릉 경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가족 관계
아버지범원식
배우자철종
자녀영혜옹주 (딸)
양자이융준
궁중 경력
지위궁인 (宮人)
종2품 숙의 (淑儀)
임명1857년
종교한국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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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금성 범씨 범원식의 딸로, 1838년에 태어났다. 궁중에 여관(내인/나인)으로 입궁하여 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궁으로 책봉되지는 않았다. 철종의 승은을 입고도 '궁인 범씨(宮人 范氏)'로만 불렸다.

1859년, 여관 신분으로 영혜옹주를 낳았다.

고종 연간인 1866년(고종 3년) 대왕대비였던 신정왕후 조씨에 의해 종2품 숙의에 봉해졌다. 이때 그녀의 딸도 옹주에 봉해져 영숙옹주의 작호를 받았으며, 훗날 영혜옹주로 개봉되었다.

1863년(철종 14년) 철종이 사망한 후 숙의 범씨는 궐 밖에서 딸 영혜옹주와 함께 살았으며, 이때 저택을 짓는데 필요한 금액 및 생활비는 모두 호조에서 지급하였다.

1883년(고종 20년) 음력 12월 26일 4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상사에 필요한 물건은 호조로부터 지급되었으며,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녀의 묘는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 경내의 후궁 묘역으로 이장하였으며, 1970년 5월 26일에는 서삼릉과 함께 대한민국의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철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영혜옹주는 철종의 정비인 철인왕후를 비롯한 여러 비빈에게서 낳은 여러 자식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나, 박영효에게 하가한지 3개월만인 1872년(고종 9년) 음력 7월 4일 자식도 얻지 못한 채 14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로써 철종의 후계는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2.1. 출생과 입궁

금성 범씨 범원식의 딸로, 1838년에 태어났다. 궁중에 여관(내인/나인)으로 입궁하여 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궁으로 책봉되지는 않았다. 1859년, 여관 신분으로 영혜옹주를 낳았다.

고종 연간인 1866년(고종 3년) 대왕대비였던 신정왕후 조씨에 의해 종2품 숙의에 봉해졌다. 이때 그녀의 딸도 옹주에 봉해져 영숙옹주의 작호를 받았으며, 훗날 영혜옹주로 개봉되었다.

1863년(철종 14년) 철종이 사망한 후에는 궐 밖에서 딸 영혜옹주와 함께 살았으며, 이때 저택을 짓는데 필요한 금액 및 생활비는 모두 호조에서 지급하였다.

2.2. 영혜옹주 출산

금성 범씨 범원식의 딸로, 철종의 승은을 입었으나 '궁인 범씨(宮人 范氏)'로만 불렸다. 1859년, 여관 신분으로 영혜옹주를 낳았다.

고종 3년인 1866년에 신정왕후 조씨에 의해 종2품 숙의에 봉해졌다. 이때 영혜옹주도 옹주에 봉해졌다.

1863년 철종이 사망한 후 궐 밖에서 영혜옹주와 함께 살았으며, 저택 건축 및 생활비는 모두 호조에서 지급하였다.

2.3. 철종 사후

철종이 1863년(철종 14년) 사망한 후 숙의 범씨는 궐 밖에서 딸 영혜옹주와 함께 살았으며, 이때 저택을 짓는데 필요한 금액 및 생활비는 모두 호조에서 지급하였다.

1883년(고종 20년) 음력 12월 26일 4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상사에 필요한 물건은 호조로부터 지급되었으며,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녀의 묘는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 경내의 후궁 묘역으로 이장하였으며, 1970년 5월 26일에는 서삼릉과 함께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철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영혜옹주는 철종의 정비인 철인왕후를 비롯한 여러 비빈에게서 낳은 여러 자식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나, 박영효에게 하가한지 3개월만인 1872년(고종 9년) 음력 7월 4일 자식도 얻지 못한 채 14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로써 철종의 후계는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2.4. 사망과 묘소 이장

숙의 범씨는 1883년(고종 20년) 음력 12월 26일 4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상사에 필요한 물건은 호조에서 지급되었으며,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녀의 묘는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 경내의 후궁 묘역으로 이장하였으며, 1970년 5월 26일에는 서삼릉과 함께 대한민국의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3. 가족 관계

아버지 범원식(范元植)과 어머니 미상의 딸로 태어났다. 시아버지는 전계대원군(1785~1844)이다. 남편은 조선의 제25대 왕 철종(1831~1863, 재위:1849~1863)이다. 외동딸 영혜옹주(1859~1872)는 박영효에게 하가하였다.

4. 관련 작품

*1975년 TBC 드라마 《임금님의 첫사랑》에서 윤초희가 연기하였다. 1990년 MBC 드라마 《대원군》에서는 채시라가 연기하였다. 2020년 조선방송의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는 왕빈나가 연기했다.

4.1. 드라마

1975년 TBC 드라마 《임금님의 첫사랑》에서 윤초희가 숙의 범씨를 연기하였다. 1990년 MBC 드라마 《대원군》에서는 채시라가 연기하였다. 2020년 조선방송의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는 왕빈나가 숙의 범씨를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