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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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옥편은 543년 고야왕이 편찬한 원본 옥편을 지칭하며, 이후 여러 차례 개정 및 증보되었다. 원본 옥편은 1만 6,917자를 수록하였으며, 자음을 반절로 나타내고 경서 및 고주에서 인용하여 자의를 설명하는 체례를 갖는다. 원본은 중국에서는 사라지고 일본에 일부가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되어 있으며, 쿠카이가 편찬한 것으로 여겨지는 『전예만상명의』를 통해 원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1013년에는 진붕년 등에 의해 『대광익회옥편』으로 중수되었으며, 일본의 『와옥편』과 한국의 『운회옥편』 편찬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한국에서는 부수별 한자 사전을 옥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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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편 | |
---|---|
사전 정보 | |
이름 | 옥편 |
한자 표기 | 玉篇 |
로마자 표기 | Yupiān |
웨이드-자일스 표기 | Yü-p'ien |
개요 | |
종류 | 한자사전 |
특징 | 구별을 위해 부수별로 한자를 모아놓았고, 음과 뜻을 설명함 |
분류 | 총 542개의 부수로 한자를 분류함. 권9에서는 '입'으로 하는 동작에 관련된 단어들이 모여있음. |
저자 | 고야왕 |
같이 보기 | |
관련 사전 | 설문해자 용감수감 강희자전 간노자서 오경문자 구경자양 방언 자휘 정자통 광아 이아 소이아 비아 석영 |
관련 운서 | 성류 절운 광운 집운 례부운략 몽고자운 중원음운 홍무정운 청임팔음 패문운부 분운촬요 |
2. 원본 옥편
543년 고야왕(顧野王)이 편찬한 원래의 『옥편(玉篇)』을 특히 원본 옥편이라고 부른다. 수록 자수는 1만 6,917자이다. 체례는 먼저 자음을 반절(反切)로 나타내고, 경서(經書) 및 그 주석서에서 다량으로 인용하여 자의(字義)를 나타내며, 고야왕 자신의 생각을 “야왕안(野王案)”으로 덧붙이기도 한다. 이체자(異體字)가 있으면 그것을 열거하여 어느 부수에 있는지 적는다. 이는 『설문해자(說文解字)』의 극히 짧은 설명과 대조적이다.
2. 1. 현존 상태 및 연구
543년 고야왕(顧野王)이 편찬한 원래의 『옥편』을 특히 원본 옥편이라고 부른다. 원본 옥편은 중국에서는 사라지고 일본에 몇몇 남은 권들이 남아있다. 이러한 남은 권들은 국보(國寶)가 되어 있다. 현존하는 텍스트는 권 8, 9, 18, 19, 22, 24, 27의 일부이며, 표제어는 모두 합쳐 약 2,100자로 전체의 약 12%에 해당한다.쿠카이(空海)가 편찬했다고 여겨지는 『전예만상명의(篆隷萬象名義)』는 전서(篆書) 부분을 제외하고 표제어의 배열이 원본 옥편 남은 권과 일치하고, 설명 또한 옥편에서 발췌한 것이어서, 이것으로 원본 옥편의 전체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청(清)말에 일본에 남아있는 한적(漢籍)을 수집한 려서창(黎庶昌)·양수경(楊守敬) 등에 의해 출판된 『고일총서(古逸叢書)』에 원본 옥편이 포함되어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고일총서(古逸叢書)]』본은 원본의 영인본(影印本)이 아니라 모사본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중화민국(中華民國)에 들어와 나진옥(羅振玉)이 새롭게 『원본 옥편 남은 권(原本玉篇殘卷)』을 영인본으로 출판하였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에 동방문화학원(東方文化學院)에서 영인본이 출판되었다.
원본 옥편은 편찬 후 곧 소개(蕭愷) 등이 개정했고, 당대(唐代) 674년에 손강(孫強)에 의해 자수가 증보되었다고 한다. 손강본(상원본) 또한 현존하지 않으므로, 일본에 남은 권이 손강 이전의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외에도 돈황(敦煌)에서도 당사본(唐寫本) 옥편 단편(斷簡)이 발견되었다.
2. 2. 중국 내 재발견 및 간행
543년에 고야왕(顧野王)이 편찬한 원래의 『옥편(玉篇)』을 특히 원본 옥편이라고 부른다. 원본 옥편은 중국에서는 사라지고, 일본에 몇몇 남은 권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남은 권들은 국보(國寶)가 되어 있다. 현존하는 텍스트는 권 8, 9, 18, 19, 22, 24, 27의 일부이며, 표제어는 모두 합쳐 약 2,100자로 전체의 약 12%에 해당한다.쿠카이(空海)가 편찬했다고 여겨지는 『전예만상명의(篆隷萬象名義)』는, 전서(篆書) 부분을 제외하고 표제어의 배열이 원본 옥편 남은 권과 일치하고, 설명 또한 옥편에서 발췌한 것이어서, 이것으로 원본 옥편의 전체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청(清)말에 일본에 남아있는 한적(漢籍)을 수집한 려서창(黎庶昌)·양수경(楊守敬) 등에 의해 출판된 『고일총서(古逸叢書)』에 원본 옥편이 포함되어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고일총서(古逸叢書)』본은 원본의 영인본(影印本)이 아니라 모사본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중화민국(中華民國)에 들어와 나진옥(羅振玉)이 새롭게 『원본 옥편 남은 권(原本玉篇殘卷)』을 영인본으로 출판하였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에 동방문화학원(東方文化學院)에서 영인본이 출판되었다.
원본 옥편은 편찬 후 곧 소개(蕭愷) 등이 개정했다고 한다. 또한 당대(唐代)의 674년에 손강(孫強)에 의해 자수가 증보되었다고 한다. 손강본(상원본) 또한 현존하지 않으므로, 일본에 남은 권이 손강 이전의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외에도 돈황(敦煌)에서도 당사본(唐寫本) 옥편 단편(斷簡)이 발견되었다.
2. 3. 개정 및 증보
543년에 고야왕(顧野王)이 편찬한 원래의 『옥편(玉篇)』을 특히 원본 옥편이라고 부른다. 원본 옥편은 중국에서는 사라지고 일본에 몇몇 남은 권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남은 권들은 국보(國寶)가 되어 있다. 현존하는 텍스트는 권 8, 9, 18, 19, 22, 24, 27의 일부이며, 표제어는 모두 합쳐 약 2,100자로 전체의 약 12%에 해당한다.청(清)말에 일본에 남아있는 한적(漢籍)을 수집한 려서창(黎庶昌)·양수경(楊守敬) 등에 의해 출판된 『고일총서(古逸叢書)』에 원본 옥편이 포함되어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고일총서(古逸叢書)』본은 원본의 영인본(影印本)이 아니라 모사본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중화민국(中華民國)에 들어와 나진옥(羅振玉)이 새롭게 『원본 옥편 남은 권(原本玉篇殘卷)』을 영인본으로 출판하였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에 동방문화학원(東方文化學院)에서 영인본이 출판되었다.
원본 옥편은 편찬 후 곧 소개(蕭愷) 등이 개정했고, 당대(唐代)의 674년에 손강(孫強)에 의해 자수가 증보되었다. 손강본(상원본) 또한 현존하지 않으므로, 일본에 남은 권이 손강 이전의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외에도 돈황(敦煌)에서도 당사본(唐寫本) 옥편 단편(斷簡)이 발견되었다.
3.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
북송 대중상부 6년(1013년)에 진붕년 등이 『대광익회옥편』으로 다시 편찬했으나, 글자 풀이 부분과 용례는 오히려 크게 줄여 간략하게 만들었고, 글자의 뜻을 나타내는 어구만 남아 있다. 또한, 글자의 배열 순서도 원본 옥편과 다르다. 송나라 때의 『대광익회옥편』은 28,989자를 수록하고 있다.
3. 1. 현존 판본
북송 대중상부 6년(1013년)에 진붕년 등이 『대광익회옥편』으로 중수했으나, 어석(語釋) 부분과 용례는 오히려 크게 줄여 간략화되었고, 자의(字義)를 나타내는 어구만 남아 있다. 또한, 친자(親字)의 배열 순서도 원본 옥편과 다르다. 송대의 『대광익회옥편』은 28,989자를 수록하고 있다.『대광익회옥편』의 송대 판본은 적고, 일본에서는 궁내청 서릉부에 남송의 판본이 있다. 중국에서는 송대 판본을 바탕으로 한 택존당본(沢存堂本)의 영인본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
4. 후세에 미친 영향
玉篇|옥편중국어은 일본과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편찬된 와옥편(倭玉篇)이 대광익회옥편(大広益会玉篇)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무로마치 시대와 에도 시대에 걸쳐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최세진의 운회옥편 편찬에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도 부수별 한자 사전을 "옥편"이라 부른다.
4. 1. 일본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와옥편(倭玉篇)』이 『대광익회옥편(大広益会玉篇)』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무로마치 시대와 에도 시대를 거쳐 널리 사용되었으며, "와옥편(倭玉篇)"은 한자 사전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했다.4. 2. 한국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되어, 최세진의 『운회옥편』이 편찬되는 등의 영향을 미쳤다. 현재에도 한국에서는 부수별 한자 사전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옥편”(옥편())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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