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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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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신왕후는 고려 정종의 비로, 본관은 단주 한씨이며 문하시중에 추증된 한조의 딸이다. 정종이 평양공일 때 혼인하여 비에 책봉되었으며, 정종 즉위 후 연흥궁주로 불렸다. 1035년에 아들 왕형을 낳아 혜비, 정신왕비에 봉해졌으나, 이듬해 사망하여 용신왕후로 시호를 받았다. 묘는 현릉이며, 후에 정의명달희목의 시호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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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직위고려의 왕비
재위 기간1035년–1036년
배우자고려 정종 (1035년 결혼)
자녀왕형
아버지한조
출생 가문단주 한씨
종교불교
생애
출생미상
사망1036년
매장현릉 (1036년 7월)
칭호
즉위 전연흥궁주 (延興宮主)
1035년혜비 한씨 (惠妃 韓氏)
1035년–1036년정신왕비 (定信王妃)
시호
전체 시호정의명달희목용신왕후 (定懿明達禧穆容信王后)

2. 생애

본관은 단주(湍州)로, 훗날 문하시중에 추증된 한조(韓祚)의 딸이다. 당시 왕실에서 성행하던 근친혼이 아닌 왕족과 귀족 가문의 혼인이다. 그녀는 정종이 평양공이던 시절에 시집와 비(妃)에 책봉되었으며, 이후 남편이 왕위에 오르자 그 호를 연흥궁주(延興宮主)라고 하였다. 정종의 제2비인 용의왕후(容懿王后)는 그녀와 친자매간이다.[5]

1035년(정종 원년)에 아들 왕형을 낳아 혜비(惠妃)에 책봉되었으며, 이후 정신왕비(定信王妃)에 책봉되었다.[6] 그러나 다음해인 1036년(정종 2년) 7월에 사망하여 그 시호를 '''용신왕후'''(容信王后)라고 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시호가 가상되어 '''정의명달희목용신왕후'''(定懿明達禧穆容信王后)가 되었다.[2]

고려사》〈열전 후비전〉에는 그녀가 남편 정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형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열전 종실전〉편에는 아들 왕형에 대한 기록이 아예 누락되어 있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녀의 능은 '''현릉'''(玄陵)이다.

2. 1. 가계와 혼인

용신왕후는 지서경유수사 증 문하시중 한조의 딸로, 상서 형부시랑 한규의 여동생이며, 정종의 제2비 용의왕후의 언니이다.[4][2] 다른 고려 왕비들과 달리, 정종과 혈연관계가 없었으며, 귀족 가문과 왕족 가문의 결합이었다.

정종이 "평양군"이었을 때 혼인하였으며,[5] 1035년에는 아들 왕형을 낳았다. 정종 즉위 후 왕비가 되어 연흥궁주로 불렸다. 혜비 한씨, 정신왕비로도 봉해졌다. 1036년에 사망하여 현릉에 묻혔으며, 1048년(고려 문종 2년)에 시호를 받았다.[2]

2. 2. 왕비 시절과 죽음

단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조의 딸로, 왕족과 귀족 가문의 혼인이었다. 정종이 평양공이던 시절에 시집와 비(妃)에 책봉되었으며, 왕위에 오르자 연흥궁주(延興宮主)라고 하였다. 용의왕후는 그녀의 친자매이다.[5]

1035년 아들 왕형을 낳아 혜비(惠妃)에 책봉되었고, 이후 정신왕비(定信王妃)에 책봉되었다.[6] 그러나 1036년 7월에 사망하여 시호를 '''용신왕후'''(容信王后)라고 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시호가 가상되었다. 그녀의 능은 '''현릉'''(玄陵)이다.[2]

고려사》〈열전 후비전〉에는 아들 왕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열전 종실전〉에는 왕형에 대한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

2. 3. 아들 왕형에 대한 기록 논란

미래의 용신왕후는 한조(韓祚/한조한국어)[4]의 딸이자 한규(韓圭/한규한국어)[2]의 여동생으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미래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인 용의왕후의 언니이기도 했다. 다른 고려 왕비들과는 달리, 용신왕후는 정종과 처음부터 혈연관계가 없었으며, 이 결혼은 단지 귀족 가문과 왕족 가문의 결합이었다.

1035년, 용신왕후는 정종에게 왕형(王亨/왕형한국어)이라는 아들을 낳았으며,[6] 그 후 '''혜비 한씨'''(惠妃 韓氏/혜비 한씨한국어)와 '''정신왕비'''(定信王妃/정신왕비한국어)로 봉해졌다.

3. 가족 관계

아버지는 지서경유수사 증 문하시중 한조이다. 형제는 상서 형부시랑 한규이며, 여동생은 정종의 제2비 용의왕후이다.

정종과의 사이에서 장남 왕형을 낳았다.

4. 시호

1056년 10월(문종 재위 10년)에 시호 정의(定懿)가 더해졌다.[7] 1140년 4월(인종 재위 18년)에는 명달(明達)이 더해졌으며,[7] 1253년 10월(고종 재위 40년)에는 희목(禧穆)이 더해졌다.[7]

참조

[1] 서적 https://books.google[...] Sinseowon 2021-06-21
[2] 웹사이트 http://db.history.go[...] 2021-10-08
[3] 웹사이트 http://db.history.go[...] 2021-06-21
[4] 서적 韓國女性關係資料集: 中世篇(中) https://books.google[...] 1985
[5] 서적 https://books.google[...] National Culture Promotion Association 2021-06-21
[6] 서적 https://books.google[...] 2021-06-21
[7] 웹사이트 http://db.history.go[...] 2021-07-09
[8] 문서 《고려사》 권6 〈세가〉 권6 - 정종 2년 7월 경자(庚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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