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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히메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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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라히메 신사는 일본 시마네현 오키군 니시노시마정에 위치한 신사이다. 제신은 유라히메노미코토이며, 와타츠미 또는 스세리비메노미코토로도 불린다. 창건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842년 기록에 유라히메 신사가 관사에 맡겨졌다는 내용이 있다. 중세 시대부터 에도 시대 중기까지 쇠퇴했지만, 1773년 예대제가 부흥되었고, 근세 이후 오키국의 이치노미야로 칭해졌다. 유라히메 신사 앞 유라 해변은 매년 오징어가 몰려오는 것으로 유명하며, 오징어와 관련된 다양한 전승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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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히메 신사
기본 정보
유라히메 신사 배전
배전
위치시마네현 오키군 니시노시마정 우라고 922
신사 정보
제신스세리히메노미코토
사격시키나이샤 (명신대)
오키국 이치노미야
구향사
창건미상
본전가스가造 변태
예제7월 마지막 주 토요일, 일요일
신사신귀제 (11월 29일)
기타 정보
일본어 명칭유라히메진자 (由良比女神社)

2. 제신

유라히메노미코토(由良比女命)를 주신으로 모신다.

『엔키시키』 신명장에는 "유라히메 신사 명신대 원명화다수신(由良比女神社 名神大 元名和多須神)"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화다수신(和多須神)"이었으며, 제신은 와타츠미(해신) 또는 스세리비메노미코토라고도 한다. 『슈츄쇼』나 『토사 닛키』에서는 "치부리노카미(ちぶり神)"라고도 불렀다.

시마마에(島前) 지역 전승에 따르면, 옛날 유라히메노미코토가 저통(苧桶)을 타고 바다를 건널 때, 바다에 담근 손을 오징어가 잡아당겼고(물었다고도 함), 그 사과의 의미로 매년 신사 앞 해변에 오징어가 밀려오게 되었다고 한다.[4]

2. 1. 제신에 관한 다양한 설

스세리히메노 미코토를 제신으로 모시며, 지역에서는 유라히메노 오오카미라고 부른다.

『엔키시키』 신묘초에는 "유라히메 신사, 묘진대, 원래 이름은 와타스노 카미"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제신은 해동신이라고도 한다. 『슈츄쇼』나 『토사일기』에는 "치부리신"이라고 쓰여 있다.

시마마에의 전승에 따르면, 옛날 스세리히메노 미코토가 고구마 통에 타고 바다를 건널 때, 바다에 담근 손을 오징어가 잡아당겼고(물었다고도 한다), 이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매년 사찰 앞 갯가에 오징어가 밀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3. 역사

유라히메 신사의 창건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속일본후기 조와 9년(842년)조 기록에는 유라히메노미코토 (유라히메 신사), 우즈카노미코토 (나카노시마의 우즈카미코토 신사), 미즈와카스노미코토 (도고의 미즈와카스 신사) 3사가 관사에 소속되었다고 한다.

엔초 5년(927년)에 편찬된 엔키시키 신명장에는 오키국 치부군에 "유라히메 신사 명신대 원명 화다스 신(由良比女神社 名神大 元名和多須神)"이라는 기록이 있고, 명신대사로 지정되었다. 오키국 내 신명장에는 "종3위상 유라히메노다이묘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세부터 에도 시대 중기까지 쇠퇴하였다가, 안에이 2년(1773년) 시마마에 13개 마을 촌장들에 의해 예대제가 부흥되었다. 근세 이후 오키국 이치노미야를 자칭했다.

메이지 5년(1872년) 촌사로 지정되었고, 메이지 22년(1889년) 이후 신사 건물과 경내지가 정비되었다.

3. 1. 고대

창건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사에서는 『속일본후기조와 9년(842년)조에 유라히메노미코토 (유라히메 신사), 우즈카노미코토 (나카노시마의 우즈카미코토 신사), 미즈와카스노미코토 (도고의 미즈와카스 신사)의 3사가 관사에 맡겨졌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엔초 5년(927년) 성립된 『엔키시키』 신명장에는 오키국 치부군에 「유라히메 신사 명신대 원명 화다스 신(由良比女神社 名神大 元名和多須神)」이라고 기재되어, 명신대사에 포함되었다. 『오키국 내 신명장』에서는 「종3위상 유라히메노다이묘진」으로 보인다.

3. 2. 중세-근세

국사에서는 『속일본후기조와 9년 (842년)조에 유라히메노미코토 (유라히메 신사), 우즈카노미코토 (나카노시마의 우즈카미코토 신사), 미즈와카스노미코토 (도고의 미즈와카스 신사)의 3사가 관사에 속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엔초 5년 (927년)에 성립된 『엔키시키』 신명장에는 오키국 치부군에 「유라히메 신사 명신대 원명 화다스 신」이라고 기재되어, 명신대사에 포함되었다. 『오키국 내 신명장』에서는 「종3위상 유라히메노다이묘진」으로 보인다.

중세부터 에도 시대 중기까지는 쇠퇴해서 미약했었다. 안에이 2년 (1773년), 시마마에 13개 마을의 쇼야(촌장)에 의해 예대제가 부흥되었다. 근세 이후에는 오키국 이치노미야를 칭했다.

3. 3. 근대-현대

메이지 5년 (1872년)에 촌사로 지정되었다. 신사 건물은 작았지만, 메이지 22년 (1889년) 이후 건물과 경내지가 정비되었다.

4. 제사

유라히메 신사에서는 유라히메 신사 예대제를 비롯한 제사가 이루어진다.

4. 1. 유라히메 신사 예대제

이전에는 2년에 한 번, 7월 28일, 29일에 행해졌다. 현재는 홀수년(원호) 7월 마지막 토요일, 일요일 밤에 행해진다.[1][2] 2척의 대형 어선을 연결시킨 신선(神船)에 미코시(神輿)를 싣고 배 안에서 시마마에카구라를 연주하며 유라를 출발해, 우라쿄만으로 바다를 건넌다.[3] 미코시(神輿)는 동네를 행진하고 난 뒤, 궁사의 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밤에 다시 바다를 건너 우라쿄에서 신사로 환어한다. 이 왕래의 신행제는 시마마에, 시마고의 축제 중 가장 성대한 젊은이들의 미코시 메기를 볼 수 있다.[3][4]

5. 경내

5. 1. 본전

본전 (니시노미야쵸 지정 문화재)


메이지 22년 (1889년)에 건립되었다. 니켄샤(二間社) 카스가즈쿠리 변태 양식이며, 향배당파풍 구조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예전에는 「타이샤즈쿠리 변태(大社造変態)」라고 칭했으나, 현재는 「카스가즈쿠리 변태」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 이즈모에서는 이 양식을 묘진즈쿠리(明神造)라고 부른다고 한다. 니시노시마정 지정 유형 문화재이다.[1]

5. 2. 기타


  • 본전

: 메이지 22년 (1889년)에 건립되었다. 니켄샤(二間社) 카스가즈쿠리 변태, 향배당파풍 양식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전에는 타이샤즈쿠리 변태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카스가즈쿠리 변태로 여겨진다. 이즈모에서는 이 양식을 묘진즈쿠리(明神造)라고 부른다. 니시노시마정 지정 유형 문화재이다.

6. 문화재

유라히메 신사의 본전은 1982년 3월 7일에 니시노시마정 유형문화재(건축물)로 지정되었다.[5]

6. 1. 니시노시마정 지정 유형문화재

7. 전승

유라 해변 (오징어 모임 해변)


유라히메 신사 앞 유라 해변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오징어가 몰려와 "오징어 모임의 해변"(いか寄せの浜|이카요세노하마일본어)으로도 불린다. 치부촌 전승에 따르면, 본래 치부무라 오적 해변(烏賊浜)에 있던 이 신사가 유라로 옮겨진 후 오징어는 유라로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제신 유라히메는 저통(苧桶)을 타고 먼바다에서 오면서 손으로 바닷물을 헤치며 포구를 향해 오던 중, 오징어에게 손을 물리거나 잡아당겨졌다. 이에 대한 사과로 매년 가을이면 오징어 떼가 신사 정면 해변으로 몰려왔다.[6][7] 현지인들은 유라히메의 영험함이라 하며 기뻐하여, 물가에 판잣집과 오두막을 짓고 온 가족이 오징어를 건져내었다.[6][8]

원래 치부리시마 고해에 있던 유라히메 신사가 우라쿄(浦郷)로 옮겨지면서 치부리시마에 오징어가 오지 않게 되었다. 니시노시마 사람들이 치부리시마에 오징어가 몰려드는 것을 부러워해 신체(神体)를 훔쳐 우라쿄 지구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6] 이 신은 진무 천황 때 오징어를 들고 저통을 타고 신사 도리이 근처 다다미 돌에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다.[6][9]

스세리히메노미코토가 저통을 타고 우라쿄로 오다 손을 바닷물에 씻을 때 오징어가 장난치다 신의 손을 건드려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매년 10월 29일 유라히메 제삿날에는 '신의 귀가(神帰り)'라는 어좌입신사(御座入神事)를 지내는데, 오징어가 들어오는 것을 '신의 귀가' 증거로 삼는다. 이 신을 "유대명신(鯣大明神)"이라 하는 것은 오징어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6]

7. 1. 오징어와 관련된 전승



해상 도리이(오른쪽 아래)가 있는 신사 앞 유라 해변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오징어가 몰려와 "오징어 모임의 해변"(いか寄せの浜|이카요세노하마일본어)으로도 불린다. 치부촌 전승에 따르면, 본래 치부무라 오적 해변(烏賊浜)에 있던 이 신사가 유라로 옮겨진 후 오징어는 유라로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제신인 유라히메가 저통(苧桶)을 타고 먼바다에서 오는데, 손으로 바닷물을 헤치며 포구를 향해 오던 중, 오징어가 유라히메의 손을 잡아당기거나 깨물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사과로 매년 가을이면 오징어 떼가 신사 정면 해변으로 몰려왔다.[6][7] 현지인들은 유라히메의 영험함이라 하며 기뻐하여, 물가에 판잣집과 오두막을 많이 짓고 온 가족이 오징어를 건져내었다.[6][8]

원래 치부리시마 고해에 있던 유라히메 신사가 우라쿄(浦郷)로 옮겨지면서 치부리시마에 오징어가 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니시노시마 사람들이 치부리시마에 오징어가 몰려드는 것을 부러워해 신체(神体)를 훔쳐 우라쿄 지구로 옮겼다고도 한다.[6] 이 신은 진무 천황 때 오징어를 들고 저통을 타고 신사 도리이 근처 다다미 돌에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다.[6][9]

일설에는 이 신이 스세리히메노미코토이며, 저통을 타고 우라쿄로 오다 손을 바닷물에 씻을 때 오징어가 장난치다 신의 손을 건드려 혼났다고 한다. 매년 10월 29일 유라히메 제삿날에는 '신의 귀가(神帰り)'라는 어좌입신사(御座入神事)를 지내는데, 오징어가 들어오는 것을 '신의 귀가' 증거로 삼는다. 흔히 이 신을 "유대명신(鯣大明神)"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오징어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6]

7. 2. 치부리섬(知夫里島)과의 관계



해상 도리이(오른쪽 아래)가 있는 신사 앞 유라 해변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오징어가 몰려와 "오징어 모임의 해변"으로도 불린다. 치부무라 전승에 따르면, 원래 치부무라 오적 해변(烏賊浜)에 있던 유라히메 신사가 유라로 옮겨간 이후, 오징어는 유라로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제신인 유라히메가 저통(苧桶)을 타고 먼 바다에서 오면서, 손으로 바닷물을 헤치며 포구를 향해 오던 중, 오징어가 유라히메의 손을 잡아당기거나 깨물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사과로 매년 가을이면 오징어 떼가 신사 정면 해변으로 몰려오게 되었다. 현지인들은 유라히메의 영험함이라 하며 기뻐하여, 물가에 판잣집과 오두막을 짓고 온 가족이 오징어를 건져내었다.

원래 치부리섬 고해에 있던 유라히메 신사가 우라쿄(浦郷)로 옮겨지면서, 치부리섬에 오징어가 오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니시노시마 사람들이 치부리섬에 오징어가 몰려드는 것을 부러워해서 신체(神体)를 훔쳐 우라쿄 지구로 이전시켰다고도 한다. 이 신은 진무 천황 때 오징어를 들고 저통을 타고 신사 도리이 근처의 다다미 돌에 출현했다는 전설이 있다.

일설에는 이 신이 스세리히메노미코토이며, 저통을 타고 우라쿄로 오다가 손을 바닷물에 씻었을 때 오징어가 장난을 치다가 신의 손을 건드려 혼났다고 한다. 매년 10월 29일 유라히메 마츠리의 날은 '신의 귀가(神帰り)'라는 어좌입신사(御座入神事)를 지내는데, 오징어가 들어오는 것을 '신의 귀가' 증거로 삼는다. 흔히 이 신을 "유대명신(鯣大明神)"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오징어와의 관계 때문이다.[6]

7. 3. '신의 귀가(神帰り)'



해상 도리이가 있는 신사 앞 유라 해변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오징어가 몰려와 "오징어 모임의 해변"으로도 불린다. 치부무라 전승에 따르면, 원래 치부무라 오적 해변(烏賊浜)에 있던 이 신사가 유라로 옮겨진 후 오징어는 유라로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제신인 유라히메가 저통(苧桶)을 타고 먼바다에서 오면서 손으로 바닷물을 헤치며 포구를 향해 오던 중, 오징어가 유라히메의 손을 잡아당기거나 깨물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사과로 매년 가을이면 오징어 떼가 신사 정면 해변으로 몰려오게 되었다. 현지인들은 유라히메의 영험함이라며 기뻐하여, 물가에 판잣집과 오두막을 짓고 온 가족이 오징어를 건져내었다.[6][7][8]

원래 치부리시마의 고해(古海)에 있던 유라히메 신사가 우라쿄(浦郷)로 옮겨지면서 치부리시마에 오징어가 오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니시노시마 사람들이 치부리시마에 오징어가 몰려드는 것을 부러워해서 신체(神体)를 훔쳐 우라쿄 지구로 옮겼다고도 한다.[6] 이 신은 진무 천황 때 오징어를 들고 저통을 타고 신사 도리이 근처 다다미 돌에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다.[6][9]

일설에는 이 신이 스세리히메노미코토(須勢理姫命)이며, 저통을 타고 우라쿄로 오다가 손을 바닷물에 씻을 때 오징어가 장난을 치다가 신의 손을 건드려 혼났다고 한다. 매년 10월 29일 유라히메 제삿날에는 '신의 귀가(神帰り)'라는 어좌입신사(御座入神事)를 지내는데, 오징어가 들어오는 것을 '신의 귀가' 증거로 삼는다. 이 신을 "유대명신(鯣大明神)"이라고 하는 것은 오징어와의 관계 때문이다.[6]

참조

[1] 서적 隠岐 西ノ島アルバム 運河のある町 山陰中央新報社
[2] 서적 隠岐・西ノ島町 西ノ島町観光協会
[3] 서적 隠岐 川本貢功写真集 山陰中央新報社
[4] 서적 隠岐〜ふるさと案内記〜 臨川書店
[5] 웹사이트 西ノ島町指定文化財一覧 http://www.pref.shim[...] 島根県
[6] 서적 隠岐島の伝説 日本写真出版
[7] 서적 ふるさと隠岐 西ノ島 西ノ島町小中学校教員会
[8] 서적 郷土西ノ島 西ノ島町立西ノ島中学校
[9] 서적 隠岐の国 散歩 隠岐観光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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