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927년은 후당, 요, 후백제, 고려, 일본, 남한, 양오, 오월 등 여러 국가에서 연호를 사용했으며, 간지는 정해, 황기는 1587년이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후백제가 신라를 침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한 사건, 발해 왕족 대광현의 고려 투항, 마르살 전투에서 파티마 왕조의 승리 등이 있었다. 이 해에는 최승로, 송 태조 등이 태어났고, 경애왕, 신숭겸 등이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927년 | |
---|---|
사건 | |
1월 1일 | 가와치 국에서 야마토 국으로 개칭되다. |
1월 29일 | 경성왕이 김암을 보내 후백제를 정벌하게 하다. |
2월 1일 | 후백제의 견훤이 조물성을 공격하다. |
4월 | 신라에서 이찬 김효렴을 보내 후백제와 화친을 맺다. |
5월 26일 | 고려의 태조가 보성을 습격하다. |
7월 10일 | 고려의 태조가 고창 전투에서 승리하다. |
8월 1일 | 고려의 태조가 운주를 습격하다. |
8월 15일 | 고려의 태조가 해주를 순행하다. |
9월 16일 |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고울부를 공격하다. |
10월 23일 | 후백제의 견훤이 조물군을 습격하다. |
날짜 불명 | 프라하가 보헤미아 공국의 수도가 되다. 잉글랜드 왕국의 애설스탠이 스코틀랜드 왕국의 콘스탄틴 2세를 상대로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승리하다. |
탄생 | |
날짜 불명 | 아부 누아임 (1038년 사망) 길예르모 2세 데 몽카다 (1040년 사망) |
사망 | |
5월 27일 | 시메온 1세, 불가리아 제1제국의 황제 (864년 또는 865년 출생) |
7월 18일 | 후지와라노 후히토, 일본의 귀족 (659년 출생) |
날짜 불명 | 세이쇼나곤, 일본의 작가 (966년 출생) 크리소켈레스, 비잔티움 제국의 제독 오슬라프, 노섬브리아의 통치자 |
2. 연호
3. 기년
나라 | 연호(年號) | 왕(王) |
---|---|---|
후당 | 천성 2년 | 명종 2년 |
요 | 천현 2년[1] | 응천태후 2년 / 태종 원년 |
신라 | - | 경애왕 4년 / 경순왕 원년 |
고려 | 천수 10년 | 태조 10년 |
후백제 | 정개 28년[2] | 견훤 28년 |
오 | 순의 7년, 건정 원년 | - |
오월 | 보정 2년 | - |
민 | 천성 2년 (후당의 연호 사용) | - |
남한 | 백룡 3년 | - |
초 | 천성 2년 (후당의 연호 사용) | - |
형남 | 천성 2년 (후당의 연호 사용) | - |
동단국 | 감로 2년 | - |
남조 | 천응 원년 | - |
우전 | 동경 16년 | - |
일본 | 엔초 5년 | - |
4. 사건
- 마르살 전투: 파티마 왕조가 아글라브 왕조를 상대로 승리하여 시칠리아의 무슬림 통치를 확고히 했다.[1]
- 바실리오스 1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7세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5월 27일 –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차르) 시메온 1세가 34년간의 통치 끝에 프레슬라프 궁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페테르 1세는 비잔틴 제국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 평화는 페테르가 로마노스 1세의 손녀 마리아 레카페네와 결혼함으로써 확인되었다. 이 조약은 여러 조약으로 확립된 국경을 복원하여 불가리아가 마케도니아를 소유하고 있음을 인정했다.[1]
- 7월 12일 – 웨섹스 왕 애설스탄이 앵글로-색슨 헵타키의 여러 작은 왕국들을 통일하여 잉글랜드 왕국을 창건했으며, 스코틀랜드의 콘스탄틴 2세로부터 바이킹 왕들과 동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2]
- 8월 15일 – 슬라브족 사비르의 지휘하에 파티마는 시칠리아에서 와서 타란토를 점령하고 파괴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하여 운주를 점령하였다.
- 수도의 쿠마노에 있는 구마노 신사가 처음으로 지어졌다.
- 스코틀랜드의 왕 도날드 2세가 사망하고 컨스탄틴 2세가 왕위에 올랐다.
- 후백제가 신라를 침입해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왕으로 내세웠다.[1]
- 10월/11월 - 이라크 카르마트 침공이 시작된다.
- 12월 7일 - 사지의 아제르바이잔 에미르, 유수프 이븐 아비 알사지가 쿠파 근처에서 카르마트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잡힌다.[2]
4. 1. 한국
- 후백제가 신라를 침입해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왕으로 내세웠다.[1] 이는 후삼국시대의 주도권 경쟁을 심화시킨 주요 사건으로, 견훤의 군사적 역량과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견훤의 행보가 신라 왕실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고려와의 갈등을 격화시켰다고 평가한다.
- 강주에서 왕봉규가 왕건에게 투항하였다.[2]
- 공산 전투가 있었다.[3]
- 신숭겸, 전이갑, 전의갑, 김락, 김언이 전사하였다. 이들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인물들로,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의 희생을 기리며, 이들이 고려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 발해의 왕족 대광현이 왕건에게 투항하여 발해 유민들이 고려에 흡수되었다.
4. 2. 동아시아
- 엔기시키가 완성되었다.[1]
- 12월 7일 - 사지의 아제르바이잔 에미르 유수프 이븐 아비 알사지가 쿠파 근처에서 카르마트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2]
-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하여 운주를 점령하였다.[3]
- 후백제는 신라의 수도 경주를 약탈하였다. 신라 경애왕은 자결하고, 견훤은 경순왕을 왕위에 앉혔다.
- 수도의 쿠마노에 있는 구마노 신사가 처음으로 지어졌다.
4. 3. 유럽
마르살 전투에서 파티마 왕조가 아글라브 왕조를 상대로 승리하여 시칠리아의 무슬림 통치를 확고히 했다.[1]5월 27일 –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차르) 시메온 1세가 34년간의 통치 끝에 프레슬라프 궁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페테르 1세는 비잔틴 제국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 평화는 페테르가 로마노스 1세의 손녀 마리아 레카페네와 결혼함으로써 확인되었다. 이 조약은 여러 조약으로 확립된 국경을 복원하여 불가리아가 마케도니아를 소유하고 있음을 인정했다.[1]
7월 12일 – 웨섹스 왕 애설스탄이 앵글로-색슨 헵타키의 여러 작은 왕국들을 통일하여 잉글랜드 왕국을 창건했으며, 스코틀랜드의 콘스탄틴 2세로부터 바이킹 왕들과 동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2]
8월 15일 – 슬라브족 사비르의 지휘하에 파티마는 시칠리아에서 와서 타란토를 점령하고 파괴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5. 탄생
6. 사망
참조
[1]
서적
The Early Medieval Balkans
[2]
서적
The Chronology of British History
Century Ltd
[3]
서적
Crisis and Continuity at the Abbasid Court: Formal and Informal Politics in the Caliphate of al-Muqtadir (295-320/908-32)
Brill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