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 (요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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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복(요영후)은 전한 무제 때의 인물이다. 해상후에 봉해졌으나 주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아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동월 정벌에 참여하여 요영후에 봉해졌으나, 이듬해 죄를 지어 작위가 다시 박탈되었다.
한나라의 황족으로, 원삭 4년(기원전 125년) 해상후(海常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酎金) 문제로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동월(東越)[1] 정벌에 참여한 공으로 요영후(繚嫈侯)에 다시 봉해졌으나, 이는 실질적인 공적보다는 황족이라는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듬해인 기원전 109년, 다시 죄를 지어 요영후 작위마저 박탈당했다.
2. 생애
2. 1. 초기 생애 및 해상후 책봉
원삭 4년(기원전 125년), 성양군 해상현(海常縣)을 봉토로 받아 열후인 해상후(海常侯)에 봉해졌다.
원정 5년(기원전 112년), 한나라 조정에 주금(酎金)을 법도에 맞지 않게 헌납하였다는 죄목으로 작위가 박탈되었다.
2. 2. 주금 사건과 작위 박탈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을 법도에 맞지 않게 헌납한 죄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해상후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에는 한열 휘하의 교위로서 동월(東越)[1] 정벌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요영후(繚嫈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뚜렷한 공을 세우지 못했음에도 황실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작위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듬해 다시 죄를 지어 요영후 작위마저 박탈당했다.
2. 3. 동월 정벌과 요영후 책봉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한열 휘하의 교위로서 동월(東越)[1] 정벌에 종군한 공로로 요영후(繚嫈侯)에 봉해졌다. 사실 유복은 이렇다할 공을 세우지 않았는데, 황실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작위를 얻은 것이다.
이듬해인 기원전 109년, 죄를 지어 다시 작위가 박탈되었다.
2. 4. 작위 재박탈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한열 휘하의 교위로서 동월(東越)[1] 정벌에 종군한 공로로 요영후(繚嫈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뚜렷한 공을 세우지 못했음에도 황실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작위를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듬해인 기원전 109년, 죄를 지어 요영후 작위마저 다시 박탈되었다.
3. 출전
참조
[1]
문서
한서 경무소선원성공신표에서는 남월(南越)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2]
문서
사기에서는 5월 을묘일, 한서에서는 정월 을묘일이라 한다.
[3]
문서
장량애후의 부왕은 사기에서는 강도역왕, 한서에서는 양공왕이라고 한다.
[4]
문서
한서에서는 효후, 후한서에서는 고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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