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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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열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흉노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용액후에 봉해졌으나, 주금 사건으로 작위를 잃었다. 이후 횡해장군으로 동월 정벌에 참여하여 안도후에 봉해졌으며, 유격장군으로 오원군에 주둔하기도 했다. 무고의 난 당시 강충과 함께 조사를 맡았으나, 황태자의 체포 명령을 거부하다가 살해당했다. 민후로 추증되었으며, 아들 한흥이 작위를 이었으나 무고 사건으로 처형되었고, 동생 한증이 뒤를 이어 대사마, 거기장군, 영서사에 이르렀다.

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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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한열은 전한 시대의 군인이자 관료였다.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이 발생하자, 한열은 수형도위 강충과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다. 강충은 여태자무제를 저주했다는 증거를 조작했고, 이에 여태자는 반란을 일으켰다. 여태자는 자신의 빈객을 조정의 사자로 위장시켜 강충 등을 체포하려 했으나, 한열은 이 사자가 보낸 조서가 가짜임을 의심하여 따르지 않았다. 결국 한열은 빈객에게 살해당했다.

사후 민(愍)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아들 한흥이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군사 활동

원삭 5년(기원전 124년), 흉노 정벌에 교위(校尉)로 종군하여 흉노왕을 사로잡은 공으로 용액(龍額侯)에 봉해졌다.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에 연루되어 작위를 빼앗겼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횡해장군(橫海將軍)이 되어 동월(東越) 정벌에 종군하였고 안도후(按道侯)에 봉해졌다.

태초 3년(기원전 102년), 유격장군(游擊將軍)이 되어 오원의 변방 성채에 주둔하였고 귀환 후 광록훈이 되었다.

2.2. 관료 생활과 무고의 난

원삭 5년(기원전 124년), 한열은 교위(校尉)로서 흉노 정벌에 종군하여 흉노왕을 사로잡는 공을 세워 용액(龍額侯)에 봉해졌다.

원정 5년(기원전 112년), 주금에 연루되어 작위를 빼앗겼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 횡해장군(橫海將軍)이 되어 동월(東越) 정벌에 종군하였고 안도후(按道侯)에 봉해졌다.

태초 3년(기원전 102년), 유격장군(游擊將軍)이 되어 오원의 변방 성채에 주둔하였고 귀환한 후 광록훈이 되었다.

정화 2년(기원전 91년), 수형도위 강충여태자무제를 저주하였다고 고변하였다. 이때 한열은 강충과 함께 문초를 맡았는데, 강충이 끝내 증거를 날조하기까지 하니 여태자는 반란을 일으켰다(무고의 난). 여태자는 자신의 빈객을 조정의 사자로 꾸며 강충 등을 체포하게 하였다. 한열은 사자가 건넨 조서를 가짜로 의심하여 응하지 않았고, 결국 빈객에게 맞아 죽었다. 시호를 민(愍)이라 하였고, 아들 한흥이 작위를 이었다.

2.3. 사후

정화 2년(기원전 91년), 수형도위 강충여태자무제를 저주하였다고 고변하였다. 이때 한열은 강충과 함께 문초를 맡았는데, 강충이 끝내 증거를 날조하기까지 하니 여태자는 반란을 일으켰다(무고의 난). 여태자는 자신의 빈객을 조정의 사자로 꾸며 강충 등을 체포하게 하였다. 한열은 사자가 건넨 조서를 가짜로 의심하여 응하지 않았고, 결국 빈객에게 맞아 죽었다. 시호를 민(愍)이라 하였고, 아들 한흥이 작위를 이었다. 그러나 후에 한흥도 무고 사건으로 죄가 있어 처형되었다. 후원 원년(기원전 88년), 무제는 "유격장군(한열)은 순직했으니, 그 충성에 면하여 가족은 연좌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하고, 한흥의 동생 한증을 용액후에 봉했다. 한증은 후에 대사마거기장군·영상서사에 이르렀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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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아버지한왕 신
형제한퇴당
아들한증, 한흥

한왕 신의 아들로, 형제로는 한퇴당이 있었다. 아들로는 한증과 한흥이 있었다.

4. 출전

반고의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