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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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노우에 히데오는 1924년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일본의 역사학자이다. 교토대학 문학부에서 수학했으며, 오사카공업대학, 도호쿠대학, 쇼인여자단기대학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고대 동아시아사, 특히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광의의 왜인론'을 주장하며 기존의 통설에 도전했고, 삼국사기를 중시하고 일본서기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방법론을 펼쳤다. 그의 연구는 비판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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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히데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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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井上 秀雄 (이노우에 히데오) |
출생일 | 1924년 12월 1일 |
출생지 | 일본 아이치현 |
사망일 | 2008년 10월 7일 |
사망 장소 | (정보 없음) |
국적 | 일본 |
주요 연구 분야 | 고대 조선사 한일관계사 |
학력 | |
모교 | 교토 대학 |
학위 | (정보 없음) |
경력 | |
직장 | 도호쿠 대학 쇼인여자단기대학 |
활동 기간 | (정보 없음) |
가족 | |
배우자 | (정보 없음) |
자녀 | (정보 없음) |
기타 정보 | |
웹사이트 | (정보 없음) |
2. 생애
이노우에 히데오는 1924년 아이치현에서 태어나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오사카 공업대학, 도호쿠대학 교수를 거쳐 쇼인여자단기대학 학장을 역임했다.[1]
2. 1. 출생과 학창 시절
1924년 아이치현에서 태어났다. 교토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미품 쇼에이(三品彰英)에게 사사했다. 1950년 교토대학 문학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1]2. 2. 학자로서의 경력
1962년부터 오사카 공업대학(大阪工業大学) 강사, 1963년부터 동 대학 조교수, 1973년부터 동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1] 1975년 도호쿠대학 문학부로 옮겨 교수를 역임하고, 1988년 정년퇴임과 함께 명예교수가 되었다.[1] 이후 쇼인여자단기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쇼인여자단기대학 학장을 역임했다.[1]3. 주요 연구 및 주장
이노우에 히데오는 왜를 야마토 죠테이(大和朝廷)로 보는 통설에 대해, 조선반도 남부에 있던 사람을 왜인이라고 불렀다는 등 기존 학설과는 다른 문제 제기를 했다. (「왜·왜인·왜국」동아시아 고대사 재검토 제2부 참조, 인문서원).
그는 조선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일본서기(日本書紀)』 대신,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삼국사기(三国史記)』나 중국의 관련 고전 문헌을 사료로 활용하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조선 관련 내용은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방법을 택했다. 이러한 이노우에의 연구 방식은 편향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는 이노우에 히데오의 연구가 후대에 만들어진 가공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의미 없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5]
3. 1. 광의의 왜인론
이노우에 히데오는 조선반도 남부, 중국 강남, 중국 동북부, 내몽골에 왜인이 있었다는 “광의의 왜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1993년 제2회 동아시아 심포지엄에서 “왜의 거주지는 사방으로 분산되어 있었고, 중국 왕조에 순응하는 이민족의 명칭으로 여겨졌다. ‘왜’=일본으로 일률적으로 보려고 했던 데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1]이에 대해 침인안(沈仁安)은 “사료의 근거가 부족하거나 사료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광의의 왜인론”의 근거로 삼는 『한서(漢書)』 지리지의 “낙랑 해중에 왜인이 있다. 갈라져 백여 국을 이룬다. 세조를 가지고 와서 헌견한다고 한다”라는 구절에서 “낙랑 해중”을 “변방 지역”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2] 침인안(沈仁安)에 따르면, 문장의 전후 관계에서 “해중”은 문자 그대로 “바다에 있다”는 의미이며,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며 桴을 타고 구이(九夷)로 가려고 한다는 내용과 이어진다. 즉, “낙랑 해중에 왜인이 있다”는 구절은 공자가 가려고 했던 구이가 낙랑 해중에 있는 왜인의 거주지를 암시한다는 것이다.[2]
침인안(沈仁安)은 “광의의 왜인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 “왜·왜인은 고대 일본의 고대 일본인에 대한 특정한 호칭이다.”[3]
- “동일 인물이 성인 후 다시 유아기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암시가 있는 심오한 이름을 짓는 것과 같다.”[4]
- “『산해경(山海經)』 이후부터 중국 고전 속의 왜·왜인은 시종일관 고대 일본과 고대 일본인을 가리키며, 왜·왜인의 명명은 고대 중국인의 고대 일본인에 대한 인식의 수정이다.”[4]
3. 2. 『삼국사기』 중시와 『일본서기』 비판
이노우에는 왜를 야마토 죠테이(大和朝廷)로 보는 통설에 대해, 조선반도 남부에 있던 사람을 왜인이라고 불렀다는 등의 문제 제기를 했다.[1] 그는 조선반도 남부, 중국 강남, 중국 동북부, 내몽골에 왜인이 있었다는 “광의의 왜인론”의 대표적인 학자였다.[1] 1993년 제2회 동아시아 심포지엄에서 “왜의 거주지는 사방으로 분산되어 있었고, 중국 왕조에 순응하는 이민족의 명칭으로 여겨졌다. ‘왜’=일본으로 일률적으로 보려고 했던 데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1] 그러나 침인안(沈仁安)은 “사료의 근거가 부족하거나 사료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비판했다.[2]이노우에는 조선 고대사를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아닌, 근거 문서가 현존하지 않는 『삼국사기(三国史記)』나 중국의 관련 고전에서 논하고, 『일본서기』 등의 조선 관련 기록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편향된 연구 방법을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는 “전후 일본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왜인을 근거로 왜국을 추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노우에 히데오의 『임나일본부와 왜』가 그 예다. 그러나, 그러한 왜인의 활동은 훨씬 후세에 만들어진 가공의 신라 왕들의 시대이므로, 전혀 쓸데없는 작업이다”라고 평가했다.[5]
4. 비판 및 논란
이노우에 히데오는 통설과는 다른 문제 제기를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왜'를 야마토 죠테이(大和朝廷)로 보는 통설에 대해, 조선반도 남부에 있던 사람을 왜인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노우에 히데오는 조선반도 남부, 중국 강남, 중국 동북부, 내몽골에 왜인이 있었다는 “광의의 왜인론”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1993년 제2회 동아시아 심포지엄에서 “왜의 거주지는 사방으로 분산되어 있었고, 중국 왕조에 순응하는 이민족의 명칭으로 여겨졌다. ‘왜’=일본으로 일률적으로 보려고 했던 데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1]
이노우에 히데오는 조선 고대사를 논할 때,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아닌, 현존하지 않는 문서를 근거로 한 『삼국사기(三国史記)』나 중국의 관련 고전을 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일본서기』 등의 조선 관련 기록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편향된 연구 방법에 대한 비판이 있다.
4. 1. 침인안의 비판
침인안(沈仁安)은 이노우에 히데오가 "광의의 왜인론"의 근거로 삼는 『한서(漢書)』 지리지의 "낙랑 해중에 왜인이 있다. 갈라져 백여 국을 이룬다. 세조를 가지고 와서 헌견한다고 한다"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에 문제를 제기했다.[2] 이노우에 히데오는 "낙랑 해중"을 "변방 지역"으로 해석하여 "낙랑군의 변방 지역에 왜인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침인안은 이러한 해석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2] 침인안은 "해중"은 문자 그대로 "바다에 있다"는 의미이며, 『한서』 지리지 전문에서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며 뗏목을 타고 구이(九夷)로 가려고 했던 것을 언급한 뒤, "낙랑 해중에 왜인이 있다"라는 구절이 이어지는 것은, 공자가 가려고 했던 구이가 낙랑 해중에 있는 왜인의 곳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2]침인안은 "광의의 왜인론"을 비판하며, "왜·왜인은 고대 일본의 고대 일본인에 대한 특정한 호칭"이며, "동일 인물이 성인 후 다시 유아기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암시가 있는 심오한 이름을 짓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3][4] 또한, 『산해경(山海經)』 이후 중국 고전 속의 왜·왜인은 시종일관 고대 일본과 고대 일본인을 가리키며, 왜·왜인의 명명은 고대 중국인의 고대 일본인에 대한 인식의 수정이라고 했다.[4]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는 이노우에 히데오의 연구 방법이 편향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노우에 히데오가 조선 고대사를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아닌, 근거 문서가 현존하지 않는 『삼국사기(三国史記)』나 중국의 관련 고전을 통해 논하고, 『일본서기』 등의 조선 관련 기록을 비판적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오카다 히데히로는 "전후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사기』의 왜인 기록을 근거로 왜국의 사정을 추정하는 것은,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가공의 신라 왕들의 시대 이야기이므로 쓸데없는 작업이다"라고 평가했다.[5]
4. 2. 오카다 히데히로의 비판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는 "전후 일본인 학자들이 일한 관계를 논할 때, 『삼국사기(三国史記)』의 왜인 관련 내용을 근거로 왜국을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노우에 히데오의 『임나일본부와 왜』가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인의 활동은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가공의 신라 왕들 시대의 이야기이므로, 이는 전혀 쓸데없는 작업이다"라고 평가했다.[5] 이는 이노우에 히데오가 조선 고대사를 『일본서기(日本書紀)』 대신 현존하지 않는 문서를 바탕으로 한 『삼국사기(三国史記)』나 중국 고전에서 논하고, 『일본서기』의 조선 관련 기록은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편향되었다는 비판이다.5. 저서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
고대 조선 | 일본 방송 출판 협회 (NHK북스) | 1972 |
고대 조선 | 코단샤 학술 문고 | 2004 |
임나 일본부와 왜 | 동출판 | 1973 |
신라사 기초연구 | 동출판 | 1974 |
고대조선사서설 왕자와 종교 | 동출판 영락사 | 1978 |
변동기의 동아시아와 일본 송수사로부터 일본국의 성립 | 일본서적 | 1983 |
고대 일본인의 외국관 | 학생사 | 1991 |
왜, 왜인, 왜국 동아시아 고대사 재검토 | 인문서원 | 1991 |
실증 고대 조선 | 일본 방송 출판 협회 (NHK북스) | 1992 |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 계수사 | 1993 |
6. 공저 및 번역
이노우에 히데오는 동이전,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을 번역했다.
6. 1. 공저
출판 연도 | 제목 | 출판사 | 비고 |
---|---|---|---|
1969 | 일본과 조선의 2000년 1 신화시대~근세 | 다이헤이 출판 | 우에다 마사아키 공편 |
1969 | 일조 관계사 세미나 제1 | 사쿠라후사 | 편저 |
1969 | 일본 문화의 고향 | 사쿠라후사 | 편저 |
1972 | 세미나 일본과 조선의 역사 | 동출판 | 장정통, 추정가와 공편저 |
1974 | 고대 일본과 조선의 기본 문제 | 가쿠세이샤 | 하다 타카시 공편 |
1974 | 고대 조선의 기본 문제 | 가쿠세이샤 | 하다 타카시 공편 |
1974 | 고대의 조선 | 가쿠세이샤 | 하다 타카시 공편 |
1974 | 고대의 일본과 조선 | 가쿠세이샤 | 우에다 마사아키 공편 |
1979 | 고대 일본 문화의 고향 한국의 유적을 찾아서 | 야마토 출판 | 편 |
1985 | 광개토대왕릉비 탐방기 | 일본방송출판협회 | 테라다 타카노부 공편 |
1988 | 고대의 일본과 한국 1 | 가쿠세이샤 | 공저 |
1990 | 고대의 일본과 한국 13 한국에서 본 고대 일본 | 가쿠세이샤 | 공저 |
1991 | 한국 역사 산책 | 야마카와 출판 | 공저 |
1992 | 한국, 조선을 알기 위한 55장 | 아키시쇼텐 | 정조묘 공저 |
6. 2. 번역
참조
[1]
논문
2003
[2]
논문
2003
[3]
논문
2003
[4]
논문
2003
[5]
서적
歴史とはなにか
文藝春秋
200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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