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속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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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속빈은 청나라 말기의 군인으로, 태평천국 운동 진압에 참여했다. 후난성 출신으로, 1852년 상군에 가입하여 강서성 등지에서 태평천국군과 전투를 벌였다. 1854년에는 태평천국군을 격파하고 지현으로 발탁되었으며, 무창 탈환에 기여하여 지주로 승진했다. 1856년에는 상군을 이끌고 무창을 함락시키고 참호 전술로 방어에 성공하여 절강 포정사에 임명되었다. 1858년, 구강을 포위하고 안휘에 진입했으나 삼하진 전투에서 태평천국군에 패하여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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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속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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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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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속빈 (李續賓) |
자 | 디암 (迪庵) |
시호 | 충무 (忠武) |
출생 | 1820년 |
사망 | 1858년 |
출생지 | 중국 후베이성 황안 (黃安) |
사망지 | 중국 안후이성 루저우 (廬州) |
묻힌 곳 | 중국 후베이성 홍안 (紅安) |
경력 | |
복무 | 청나라 군대 |
최종 계급 | 제독 (提督) |
주요 전투 | 삼하진 전투 (三河鎮之戰) |
가족 | |
아버지 | 이장근 (李璋鏸) |
형제자매 | 이서빈 (李續宜) |
2. 생애
이속빈은 후난성 상향현(현재의 롄위안시 하당진(荷塘鎭) 고루촌 古樓村)에서 작은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동생으로 이속의(李續宜)가 있었다. 1858년, 장강을 따라 내려와 구강을 포위하고 안휘에 진입했으나, 여주(현재의 허페이시) 근처 삼하진 전투에서 태평천국군에게 패해 전사했다.[1]
2. 1. 초기 생애
후난성 상향현(현재의 롄위안시 하당진(荷塘鎭) 고루촌 古樓村)에서 작은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속의(李續宜)가 있다.[1]2. 2. 상군 합류와 초기 활동
1852년, 스승인 나척남(羅沢南)을 따라 상군으로 발전하는 후난성 향용에 가입하고 강서성을 전전했다.[1] 1854년, 태평천국의 서정군이 창사에 육박하자 상택, 악주에서 태평천국군을 격파하고 지현(知縣)으로 발탁되었다.[1] 무창 탈환에도 성공하여 지주(知州)로 승진했다.[1]이후 다시 강서성에서 태평천국군과 싸웠지만, 태평천국군이 다시 무창을 탈환했다.[1] 1856년 12월, 상군을 이끌고 태평천국군으로부터 무창을 함락시킨 후, 물을 끼얹어 참호를 건설하는 전술로 태평천국군의 반격을 막았다.[1] 이듬해 그 공으로 절강 포정사에 임명되었다.[1]
2. 3. 태평천국과의 전투
1852년, 스승인 나척남(羅沢南)을 따라 이후 상군으로 발전하는 호남성의 향용에 가입하고 강서성을 전전했다.[1] 1854년, 태평천국의 서정군이 창사에 육박하자 상택, 악주에서 태평천국군을 격파하고 지현(知縣)으로 발탁되었다.[1] 또한 무창 탈환에 성공하여 지주(知州)로 승진했다.[1]이후 다시 강서성에서 태평천국군과 싸웠지만, 태평천국군이 다시 무창을 탈환했다.[1] 1856년 12월 상군을 이끌고 태평천국군으로부터 무창을 함락시킨 후, 물을 끼얹어 참호를 건설하는 전술로 태평천국군의 반격을 막았다.[1] 그 공으로 이듬해 절강 포정사에 임명되었다.[1]
2. 4. 무창 전투와 전술
1856년 상군을 이끌고 태평천국군으로부터 무창을 함락시키고, 물을 이용한 참호 전술로 태평천국군의 반격을 막아냈다.[1] 이 공로로 이듬해 절강 포정사에 임명되었다.[1]2. 5. 삼하 전투와 죽음
1858년, 장강을 따라 내려와 구강을 포위하고 안휘에 진입했으나, 합비 근처 삼하진에서 태평천국군에게 패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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