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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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재철은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목사이자 작가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무역 회사 홍성통상을 설립했으나, 부도와 재기를 겪은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1988년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여 10년간 목회했으며, 이후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에서 사역했다. 2005년부터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며 2018년 은퇴 후 경상도 시골 마을로 낙향했다. 그는 개혁적인 목회 철학을 실천하고, 설교와 교육을 암기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참으로 신실하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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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1949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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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학력 및 경력 | |
경력 | 홍성사 설립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 |
소속 |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KAICAM) |
기타 | |
직업 | 은퇴목사 |
2. 생애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불란서 문학을 전공했다. 유대인 종합상사에서 경험을 쌓은 후 1974년 무역회사인 홍성사를 설립했으나, 부도와 재기를 겪었다.[4] 1985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1988년 정신여고에 주님의교회를 개척하여 요한복음서를 강의했다. 최일도 목사의 밥퍼공동체에 교회 예산 대부분을 기부하는 등 사회선교에 힘썼으며, 10년 임기 후 1998년 사임했다.[4]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파송 선교사로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에서 3년간 사역했다. 귀국 후에는 기독교 서적 집필에 전념하며 작은 교회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했다. 2005년 7월부터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로 2018년 11월까지 사역했다. 2013년 암 수술을 받고 2014년 말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4]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여 불란서 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다. 토머스 칼라일, 엔도 슈사쿠, 구상, 앙드레 지드 등의 작가들을 인용할 만큼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다.[4]2. 2. 기업인 활동
1974년 무역 회사인 Hongsung Trading Co., Ltd.영어(현재 기독교 출판사인 홍성사)를 설립했다.[1] 유대인 종합상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했으나, 부도와 재기를 겪었다. 홍성사 운영 당시, 성서적 원칙에 따른 정직한 납세를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3. 목회 활동
1985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1988년 주님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10년간 목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990년 3월 20일 흰돌교회에서 열린 평양노회 132회 정기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1] 1998년 10년 임기가 끝나자 사임한 뒤 스위스 제네바 한인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2005년 7월 10일부터 한국교회연합체인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한국교회 연합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초교파적 독립교회로 설립한 [http://100church.org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양화진 묘지기 소명을 부여 받고 목회를 시작했다. 2005년 3월 23일부터 2006년 1월 24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열린 문화선교집회인 ‘2005 서울극장 사랑의 초대'에서 설교하였다. 2009년 6월 26일, 양화진 성지 관련 논쟁 중 소속 교회를 위해 예장 통합측 교단 탈퇴서를 제출, 같은 해 10월 10일 서서울노회에서 면직되었다.[1] 2018년 11월 28일 추수감사주일에 《사도행전 속으로》 마지막 설교를 마치고 은퇴했다.[5]3. 목회 방식
이재철 목사는 주님의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담임목사 임기제(10년), 헌금 무기명화, 교회 재정의 50% 이상을 외부 사회에 사용하는 등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6] 이후 제네바 한인교회에서 3년간 목회했다.[7]
100주년기념교회에서는 운영위원회와 상임위원회를 두어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들었다. 상임위원회 회의록과 예결산 내역을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회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등 개혁적인 운영 방식을 보여주었다.
성직자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세무서를 찾아가 세금을 납부한 사례는 다른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8] 그가 설립한 출판사 홍성사 역시 무자료 거래를 하지 않고 법으로 정해진 세금을 납부한다.[8]
설교와 교육은 원고 전체를 암기해서 진행하며,[9] 2013년 암 발병 이후 잠시 중단했다가 최근 다시 재개했다.[4]
3. 1. 개혁적 목회 철학
이재철 목사는 주님의교회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개혁적인 목회 철학을 실천했다. 우선, 담임목사 임기제를 10년으로 정하고, 헌금을 무기명으로 하며, 교회 재정의 50% 이상을 교회 외부의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6] 실제로 이재철 목사는 교인들과의 약속대로 10년 목회를 마치고 제네바 한인교회에서 3년간 목회하였다.[7]100주년기념교회에서는 교회 운영의 민주화를 추구했다. 운영위원회와 상임위원회를 두어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평신도들이 포함된 운영위원회는 상원, 전임 사역자들과 장로들, 봉사 팀장들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하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상임위원회 회의록과 예결산 내역은 매번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공개되며, 교회 건축을 지양하고 양화진홍보관 건물을 마포구청에 기부채납하여 임대 사용하는 등 교회 소유 건물을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이재철 목사는 성직자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의교회 목회 시절, 세무서를 찾아가 세금을 내려는 자신을 만류하는 공무원들에게 세금 납부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한 사례는 다른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8] 그가 설립한 출판사 홍성사 역시 성서 말씀대로 경영한다는 신념에 따라 무자료 거래를 하지 않고 법으로 정해진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8]
3. 2. 사회적 책임 실천
이재철 목사는 성직자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교인들에게 탈세하지 말라는 설교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세무서를 찾아가 납세 의무 실천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실천하였다. 당시 세무 공무원들이 '목사님은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만류했음에도, 이재철 목사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8]주님의교회를 세울 때, 이재철 목사는 헌금 무기명화, 교회 재정의 50% 이상을 외부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실천하여 교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6]
3. 3. 설교 및 교육 방식
이재철은 설교와 교육 원고 전체를 암기하여 진행한다[9]. 2013년 암 투병으로 인해 잠시 중단했으나, 이후 다시 암기 방식을 재개했다[4].4. 저서
-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홍성사)
- 《참으로 신실하게》(홍성사)
- 《새신자반》(홍성사)
- 《성숙자반》(홍성사)
- 《인간의 일생》(홍성사)
- 《회복의 목회》(홍성사)
- 《회복의 신앙》(홍성사)
- 《비전의 사람》(홍성사)
-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홍성사)
- 《사도행전 속으로》(홍성사)
- 《요한과 더불어》(홍성사)
- 《(이재철 목사의) 로마서》(홍성사)
- 《매듭짓기》(홍성사)
참조
[1]
뉴스
예장 통합 이재철 목사 면직 논란
http://news.kmib.co.[...]
국민일보
2016-01-08
[2]
웹사이트
https://www.fnnews.c[...]
[3]
뉴스
알고보니 아빠가 이재철…목사 아들 ‘30호가수’의 인생 비밀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1-06-01
[4]
뉴스
"[성탄 인터뷰] 이재철 목사 \"삶을 직선으로 살지 마라\""
http://www.joongang.[...]
중앙일보
2016-01-09
[5]
뉴스
퇴임 후 산골로 간 이재철 목사 “거침 없이 나를 버려달라”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1-24
[6]
서적
아름다운 세상찾기
규장
[7]
서적
참으로 신실하게
홍성사
[8]
서적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홍성사
[9]
뉴스
"[주말기획] 목사님 스타일은 교양강좌? 개콘?"
http://news.kmib.co.[...]
국민일보
201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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