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오히라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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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오히라 내각은 1978년 12월 7일부터 1979년 11월 9일까지 오히라 마사요시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일본의 내각이다. 자유민주당 소속의 각료들로 구성되었으며, 오히라 총리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전두환 정권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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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오히라 내각은 1979년 총선 후 '사십일 항쟁'을 거쳐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 하에 출범했으나, 신자유 클럽과의 연립 구성 난항, 중국과의 관계 강화 추진, 내각 불신임 결의 가결, 오히라 총리의 급사로 이토 마사요시 내각관방장관 대리 체제를 거쳐 스즈키 젠코 총리 임명까지 직무 집행 내각으로 운영되었다.
2. 내각
제1차 오히라 내각은 1978년 12월 7일에 발족했다. 각료 명단과 주요 직책은 다음과 같다.
2. 1. 국무대신
2. 1. 1. 내각총리대신
오히라 마사요시(자유민주당, 오히라 파벌)2. 1. 2. 외무대신
소노다 스나오(자유민주당, 무파벌) 1980년 서울에서 열린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1]2. 2. 내각관방부장관, 내각법제국 장관, 총리부 총무부장관
1978년 12월 8일 임명1978년 12월 12일 임명
1978년 12월 8일 임명
1978년 12월 8일 임명
1978년 12월 8일 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