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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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영철은 대한민국의 사격 선수이자 코치이다. 육군 특전사령부 중사로 복무하며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사격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국군체육부대 준위로 복무 중이던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남자 50m 소총복사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대한민국 올림픽 사상 첫 사격 부문 메달이다. 선수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하며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 사격팀 코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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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철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선수 정보 | |
이름 | 차영철 |
본명 | 차영철 |
출생일 | 1959년 7월 28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원군 |
신장 | 166cm |
체중 | 63kg |
종목 | 사격 |
세부 종목 | 소총 |
데뷔 | 알 수 없음 |
선수 활동 | 알 수 없음 |
소속팀 | 88사격단/상무→ 김포군청→ 한국통신공사 |
코치 | 알 수 없음 |
은퇴 | 2007년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메달 기록 (남자 사격) | |
올림픽 | 은메달, 1988 서울, 50m 소총복사 |
세계 선수권 대회 | 동메달, 1990 모스크바, 10m 공기소총 단체전 |
아시안 게임 | 금메달, 1986 서울, 50m 소총복사 금메달, 1986 서울, 50m 소총복사 단체전 금메달, 1990 베이징,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금메달, 1994 히로시마,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은메달, 1986 서울, 50m 스탠더드 소총 3자세 단체전 은메달, 1990 베이징, 50m 소총복사 단체전 은메달, 1998 방콕,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은메달, 2002 부산,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동메달, 1990 베이징, 50m 소총복사 동메달, 1994 히로시마, 50m 소총 입사 동메달, 1994 히로시마, 50m 소총 3자세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금메달, 1987 베이징,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금메달, 1995 자카르타,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금메달, 2000 랑카위, 50m 소총 3자세 단체전 동메달, 1991 베이징, 50m 소총복사 단체전 |
병역 정보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복무 기간 | 1978년~1989년 |
최종 계급 | 준위 |
근무 | 육군 특전사령부 국군체육부대 |
지휘 | 분대장 |
서훈 내역 | 19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 |
기타 이력 | 국가대표 국제식 사격 선수 |
외부 링크 |
2. 경력
청원군 북이면 장량리 (현재의 청주시 북이면) 출신이다.[2] 그의 아버지 차일하는 평안북도 녕변군 출신으로 6.25 전쟁 당시 혼자 남쪽으로 피난을 가서 청원군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목수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13세 연하의 김순보를 만나 결혼하여 차영철을 낳았다.[3]
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6년 서울에서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 출전하였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 복무 중이던 1988년에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 남자 50m 소총복사 종목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미로슬라프 바르가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올림픽 출전 이래 첫 사격부문 최초의 메달이다.
그 뒤 한국통신 사격 선수단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2007년 기준으로는 은퇴하여 코치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국가대표 사격팀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2. 1. 선수 시절
차영철은 청원군 북이면 장량리 (현재의 청주시 북이면) 출신이다.[2] 그의 아버지 차일하는 평안북도 녕변군 출신으로 6.25 전쟁 당시 혼자 남쪽으로 피난을 가서 청원군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목수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13세 연하의 김순보를 만나 결혼하여 차영철을 낳았다.[3]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6년 서울에서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 출전하였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 복무 중이던 1988년에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 남자 50m 소총복사 종목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미로슬라프 바르가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올림픽 출전 이래 첫 사격부문 최초의 메달이다.
그 뒤 한국통신 사격 선수단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하여 코치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국가대표 사격팀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2. 2. 코치 시절
차영철은 청원군 북이면 장량리(현재의 청주시 북이) 출신이다.[2] 그의 아버지 차일하는 평안북도 녕변군 출신으로 6.25 전쟁 당시 혼자 남쪽으로 피난을 가서 청원군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목수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13세 연하의 김순보를 만나 결혼하여 차영철을 낳았다.[3] 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으로 복무 중이던 1986년 서울에서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으로 복무 중이던 1988년에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 남자 50m 소총복사 종목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미로슬라프 바르가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올림픽 출전 사상 첫 사격 부문 메달이다. 선수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하며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 사격팀 코치를 맡았다.[2]참조
[1]
Sports-Reference
https://www.sports-r[...]
2015-05-17
[2]
뉴스
사격 銀메달 車榮哲
https://newslibrary.[...]
매일경제
1988-09-20
[3]
뉴스
"자신과의 싸움에 이겼다"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8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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