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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뉴 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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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칵뉴 대대는 에티오피아 군의 보병 대대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미국 제7보병사단과 함께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주었다. '칵뉴'는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는 뜻으로,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에서 차출된 장교와 병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칵뉴 대대는 238번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며, 121명의 사망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칵뉴 대대 병사들은 전투에서 전사한 부대원의 시신을 수습하여 미군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칵뉴 대대의 활약상은 1953년 에리트레아를 연방화하면서 카그뉴 기지로 명명되어 기려졌으며, 관련 서적이 출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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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뉴 대대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부대 정보
1953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
1953년 한국, 제7보병사단 카그뉴 대대의 에티오피아 군인들
명칭카그뉴 대대
원어 명칭ቃኘው (암하라어)
소속 국가에티오피아 제국
충성유엔
군 종류육군
부대 종류보병, 대대
규모총 6,037명
창설1951년
해체1965년
별칭없음
후원자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
모토없음
군가없음
마스코트없음
장비없음
주둔지없음
지휘 구조미국 제7보병사단
기념일없음
수훈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
전투 훈장없음
전투
참전한국 전쟁
폭찹힐 전투
지휘관
주요 지휘관케베데 게브레 대령
마모 합테볼드 대위

2. 부대의 명칭

"칵뉴"는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 또는 '격파하라'는 뜻이며,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메넬리크 2세의 참모이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아버지인 라스 마코넨이 타고 다녔던 전쟁 말의 이름이다.[11] 당시 에티오피아 제국의 군부대 명칭은 유명한 군사령관의 전쟁 말의 이름으로 지어지게 되어있다.

3. 부대의 편성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로 파병된 칵뉴 대대는 육군 소속 부대들이 지원했으며, 황실 근위대인 메할 세파리 소속 장교와 병사들도 차출되어 칵뉴 대대에 소속된 경우가 많았다.[12] 이들은 에티오피아의 산지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아 파병된 지역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이 밖에도 공군과 해군도 임시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다.

한국 전쟁 당시 칵뉴 대대의 군종 장교


유엔의 군사적 지원 요청에 따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보병대대 파견을 약속했다. 당시 에티오피아 국방군은 황실 근위대, 3개 육군 사단, 신생 공군 및 지방/영토/예비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실 근위대(케부르 자바그나)는 왕실을 보호하고 내부 안보를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제국 내 가장 정예 군대였다. 따라서 한국에 파견될 대대는 대부분 황실 근위대 장교와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이후 그들은 에티오피아 산악 지대에서 적응 훈련을 받았다.

4. 한국 전쟁에서의 활약

한국에서 활동 중인 에티오피아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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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뉴 대대는 한국 전쟁에서 미국 제7보병사단과 함께 활약하며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주었다. 전쟁 기간 동안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13]

4. 1. 칵뉴 대대의 특징

칵뉴 대대는 미국 제7보병사단과 함께 복무하며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주었다. 칵뉴 대대는 238번의 전투를 치렀고, 교전 때마다 승리하여 전투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13] 칵뉴 대대 병사들은 항복을 하지 않아 전쟁이 끝날 무렵 에티오피아 정부는 북한에 포로를 석방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칵뉴 대대는 자기 부대원의 시체를 두고 가지 않았는데, 이는 칵뉴 대대 병사들이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군 동료들에게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다.[13]

S. L. A. 마셜은 1953년 돼지 고지 전투에서 벌어진 에티오피아 정찰대의 활약을 주목할 만한 업적 중 하나로 꼽았다. "적의 완벽한 감시 아래, 에티오피아 병사 8명이 비무장 지대를 가로질러 약 731.52m를 걸어가 T-본 고지 경사면을 따라 적 참호로 진입했다. 우리가 다시 쳐다봤을 때, 8명은 10명이 되어 있었다. 정찰대는 공산군 대대의 포위망에서 2명의 중국인 포로를 끌고 나왔다..."[6]

영국의 군사 역사가 존 키건은 황실 근위대에서 차출된 에티오피아의 파병부대가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콩고에서 싸운 것보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한국에서 더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14]

칵뉴 대대 참전 용사들은 1개의 은성무공훈장과 18개의 동성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테쇼메 이르게투 중령과 하브테월드 마모 중위는 에티오피아인들이 받은 것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수훈을 받았다. 또한, 대대는 메넬리크 황제의 기사장을 받았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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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주요 참전 전투

칵뉴 대대는 제7보병사단과 함께 복무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38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13] 칵뉴 대대 병사들은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무렵 에티오피아 정부는 북한에 포로 석방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이들은 전사한 부대원의 시신을 두고 오지 않았다.[13] 이러한 칵뉴 대대의 모습은 미군 동료들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S. L. A. 마셜은 1953년 돼지 고지 전투에서 에티오피아 정찰대의 활약을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적의 완벽한 감시 아래, 에티오피아 병사 8명이 비무장 지대를 가로질러 약 731.52m를 걸어가 T-본 고지 경사면을 따라 적 참호로 진입했다. 우리가 다시 쳐다봤을 때, 8명은 10명이 되어 있었다. 정찰대는 공산군 대대의 포위망에서 2명의 중국인 포로를 끌고 나왔다..."[6]

영국의 군사 역사가 존 키건은 황실 근위대에서 차출된 에티오피아 부대가 1951년에서 1954년 사이 한국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고 평가했다.[14][7]

칵뉴 대대는 전쟁 기간 동안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13] 참전 용사들은 미국으로부터 1개의 은성무공훈장과 18개의 동성훈장을 수여받았으며,[15] 추가로 최소 9개의 은성 무공 훈장과 수십 개의 동성 무공 훈장을 받았다.[8] 테쇼메 이르게투 중령과 하브테월드 마모 소위는 에티오피아 최고 훈장인 무공 훈장을 수여받았고, "메넬리크 2세 황제 훈장"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15]

4. 3. 훈장 수여

칵뉴 대대는 미국 제7보병사단과 함께 탁월한 전투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훈장을 받았다. 참전 용사들은 미국의 은성무공훈장 1개와 동성훈장 18개를 수여받았으며, 테쇼메 이르게투 중령과 하브테월드 마모 소위는 에티오피아 최고 훈장인 무공 훈장을 수여받고 메넬리크 2세 황제 훈장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15] [8] 이 외에도 칵뉴 대대 전체는 메넬리크 황제의 기사장을 받았다.[15]

5. 전쟁 이후

1953년 미국은 새롭게 연방화된 에리트레아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면서, 한국에서 훌륭하게 복무한 장교와 사병들을 기리기 위해 기지 이름을 카그뉴 기지로 변경했다.

S.L.A. 마셜은 자신의 저서 ''돼지 고기 언덕''에서 카그뉴 부대의 활약상을 자세히 묘사했다. 마셜은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전투 교리에 대해 "바스토뉴에서 처절하게 싸운 '독수리'들처럼, 그것은 고전적인 전투였으며, 불가능해 보이는 역경 속에서 깨끗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라고 언급했다. 163명의 종군 기자들이 리틀 스위치와 같은 작전의 헤드라인 가치에 이끌렸지만, 그들은 에티오피아 부대의 똑같이 흥미롭고 비할 데 없는 업적을 간과했다.[9]

카그뉴 대대 기념비


1974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공산주의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잡자, 그들은 카그뉴 부대의 반공산주의 봉사에 대한 "당혹스러운" 기록을 지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황실 친위대 협회는 데르그 군사 정권에 의해 사단이 해체된 이후 조용히 존재해 왔으며, 카그뉴 대대뿐만 아니라 친위대의 장교와 사병들의 업적을 기념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협회는 예비역 준장 데스타 게메다(Desta Gemeda)의 지도 하에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 협회는 예비역 대령 멜레세 테세마(Melesse Tessema)가 이끌고 있다.

6. 관련 서적

그리스 언론인 키몬 스코르딜레스는 1954년에 저서 《칵뉴, 한국의 에티오피아 전사들의 이야기》에서 에티오피아 군대의 활약을 기록했다. 이는 그의 조국 군인들이 같은 전장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1] 2008년, 칵뉴 참전 용사의 아들이 이 책을 암하라어로 번역하여 세 개 대대의 장교와 사병, 그들을 파병할 선견지명을 가진 황제, 그리고 참전 용사들의 업적이 잊히지 않도록 노력한 S.L.A. 마샬과 키몬 스코르딜레스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1]

2019년, 헬리온 앤 컴퍼니는 아프리카@워 시리즈의 성공에 이어 아시아@워 시리즈의 일환으로 《황제의 부대: 한국 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 대대의 역사》를 출판하여 전 세계에 배포했다.[2]

참조

[1] 뉴스 Ethiopia: Association to Commemorate 61st of Korean War http://allafrica.com[...] 2012-04-25
[2] 웹사이트 Korean War Educator: Topics - National Archives Records - RIP 103 http://www.koreanwar[...]
[3] 서적 The Emperor's Own : The History of the Ethiopian Imperial Bodyguard Battalion in the Korean War 2019-10-19
[4] 서적 Fire and Ice: The Korean War, 1950–1953 https://archive.org/[...]
[5] 서적 To Acknowledge a War: The Korean War in American Memory
[6] 서적 Pork Chop Hill : the American fighting man in action Korea, Spring, 1953 Battery Press 1986
[7] 서적 World armies Macmillan 1979
[8] 서적 The Emperor's own : The History of the Ethiopian Imperial Bodyguard Battalion in the Korean War 2019-10-19
[9] 서적 Pork Chop Hill : the American fighting man in action Korea, Spring, 1953 Battery Press 1986
[10] URL http://allafrica.com[...]
[11] 서적 To Acknowledge a War: The Korean War in American Memory
[12] 서적 Fire and Ice: The Korean War, 1950–1953
[13] 서적 Fire and Ice: The Korean War, 1950–1953
[14] 서적 World Armies
[15] URL http://find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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