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돔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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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칸돔베는 19세기 초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문화에서 유래된 음악과 춤의 한 형태이다. 남아메리카, 특히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서 발전했으며, 쿠바의 손, 브라질의 마라카투 등과 관련이 있다. 칸돔베는 3개의 탐보릴 드럼으로 연주되며, 콤파르사라고 불리는 그룹이 공연한다. 우루과이에서는 칸돔베 비트라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하기도 했으며,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칸돔베는 우루과이 카니발 기간에 라스 야마다스라는 퍼레이드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여지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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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돔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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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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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특징 | |
문화적 기원 | 반투족 |
악기 | 칸돔베 드럼 |
하위 장르 | 칸돔베 비트 칸돔베 재즈 |
관련 주제 | 칸돔블레 |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 |
등재 명칭 | 칸돔베와 그 사회 문화적 공간: 공동체 활동 |
국가 | 우루과이 |
ID | 00182 |
지역 | LAC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
등재 연도 | 2009년 |
세션 | 제4차 |
목록 | 대표 목록 |
2. 역사
칸돔베는 17세기와 18세기 앙골라를 비롯한 콩고 왕국 등지에서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남아메리카로 전해졌다. 이들은 브라질, 쿠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지에 정착하면서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칸돔베를 발전시켰다.
19세기 중반 이후, 라틴 아메리카 흑인 사회 젊은이들 사이에서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이 유행하면서 칸돔베는 쇠퇴하기 시작했다.[2] 그러나 1860년대와 187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류층은 흑인 분장을 하고 카니발 행렬에 참여하며 칸돔베를 모방하기도 했다.
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들은 매주 일요일과 특별한 휴일(새해 전야, 크리스마스, 성 발타사르, 묵주 성모, 성 베니토)에 칸돔베 춤을 추며 전통을 이어갔다. 이들은 북을 데우기 위해 불을 피우고 칸돔베 음악을 연주했으며, 이는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 팔레르모와 같은 특정 지역에서 밤에 주로 이루어졌다. 칸돔베 행렬에는 노예 시절 백인 주인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이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조롱하고 자유를 향한 반항 정신과 아프리카 기원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1913년에는 칸돔베의 영향을 받은 '탱고'라는 새로운 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883년에는 춤 학자 벤투라 린치가 칸돔베가 밀롱가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1580년경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흑인 노예 인구가 존재했지만, 혼혈과 백인 인구 증가, 구조적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 인구는 점차 줄어들었다.[8][9]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통치 시기에는 칸돔베 공연이 장려되기도 했으나, 이후 유럽 문화 중심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사적인 영역에서 유지하게 되었다.[10]
칸돔베는 탱고, 밀롱가와 함께 아프리카 기원을 공유하는 음악적 삼부작을 형성한다.[11]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는 칸돔베가 팝 음악, 보사노바 등과 결합하여 칸돔베 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2. 1. 기원
칸돔베의 씨앗은 오늘날의 앙골라에서 유래되었으며, 17세기와 18세기에 콩고 왕국, 안지콰, 뇽, 꽝 등지에서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 주로 포르투갈 노예 상인에 의해 남아메리카로 전해졌다. 칸돔베의 동일한 문화적 전달자들은 브라질(특히 살바도르 데 바이아 지역), 쿠바,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를 포함한 리오데라플라타를 식민지화했다. 이러한 지역에서의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은 공통된 기원에서 갈라져 나와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들어냈다.



"칸돔베"라는 단어는 "흑인과 관련된"을 의미하는 콩고어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과 그 후손들로 구성된 춤 단체를 지칭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점차 춤 스타일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고, 우루과이에서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13] 우루과이에서 "칸돔베"는 여러 아프리카 춤 전통을 복잡한 안무로 융합시켰다. 동작은 역동적이며, 스텝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14]
칸돔베는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쿠바의 손, 툼바, 브라질의 마라카투, 콩가다스와 같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다른 음악과 관련이 있다. 이 양식은 19세기 초에 발전했으며, 특히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위협으로 간주되어 1808년에는 엘리트 계층이 칸돔베의 음악과 춤을 금지하도록 요구했다. 칸돔베의 기원은 남아메리카의 흑인 노예 시대, 콩고 왕의 행진 의식에서 유래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조지 레이드 앤드루스(George Reid Andrews)는 라틴 아메리카 흑인 사회(Afro–Latin Americans)의 역사가에 따르면, 젊은 흑인들이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을 추기 위해 ''칸돔베''를 버리기 시작했다.[2]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따라 다른 우루과이인들도 이들의 발걸음과 동작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와 1870년대의 상류층 포르테뇨스들은 스스로를 로스 네그로스(Los Negros)라고 부르며 흑인 분장을 하고 매년 카니발 행렬의 일부를 형성했다.
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들은 매주 일요일과 새해 전야, 크리스마스, 성 발타사르, 묵주 성모, 성 베니토와 같은 특별한 휴일에 칸돔베 춤을 조직했다. 그들은 북을 데우기 위해 불을 피우고 칸돔베 음악을 연주했는데, 특히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와 팔레르모와 같은 특정 지역에서 밤에 이루어졌다. 행렬의 전형적인 인물들은 옛 몬테비데오 도시의 노예 시절 백인 주인을 상징한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조롱하는 동시에 자유를 향한 반항 정신이자 아프리카 기원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1913년, "비에호 탕게로"(Viejo Tanguero, "늙은 탱고 춤꾼")라고만 알려진 익명의 춤 역사가가 ''칸돔베''의 아이디어를 담은 ''탱고''라고 불리는 춤이 1877년에 만들어졌다고 썼다. 이 춤은 나중에 "소프트 탱고"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이 만들었다.[6][3][4][5]
1883년에 춤 학자이자 민속학자인 벤투라 린치(Ventura Lynch)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댄서들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춤 공연장을 자주 찾았던 것으로 보이는 ''콤파드리토스''("거친 남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린치는 "밀롱가는 도시의 ''콤파드리토스''만이 춤을 추는데, 그들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장소에서 추는 춤을 조롱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었다"고 썼다.[6] 린치의 보고서는 로버트 패리스 톰슨(Robert Farris Thompson)에 의해 그의 저서 ''탱고: 사랑의 예술''에서 도시 ''콤파드리토스''가 밀롱가를 춘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으며, 농촌 가우초는 아니었다. 톰슨은 밀롱가를 추는 도시 건달들의 인구에는 흑인과 혼혈이 포함되었을 것이며, 모든 댄서들이 조롱으로 춤을 추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7]
아프리카의 영향은 아르헨티나와 무관하지 않았으며, 칸돔베는 특정 특성을 가지고 발전했다. 1580년경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흑인 아프리카 노예 인구가 존재했다. 그러나, 혼혈과 점차 증가하는 백인 인구(아르헨티나는 600만 명의 유럽 이민자를 수용했다) 및 구조적 인종차별(국가가 지원하는 ''블랑케아미엔토'' 정책 등)으로 인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 인구는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8][9]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정부 시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아프로포르테뇨''"(부에노스아이레스의 흑인)가 칸돔베를 공개적으로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로사스와 그의 딸 마누엘라가 이를 장려하고 방문하기도 했다. 로사스는 1852년 카세로스 전투에서 패배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 문화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심오하고 빠른 문화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프로포르테뇨는 조상들의 문화적 패턴을 점차 사생활 속에서 재현했다. 이러한 이유로 1862년 이후 언론, 지식인 및 정치인들은 아르헨티나의 일반 대중의 상상 속에 남아있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의 소멸에 대한 오해를 주장하기 시작했다.[10]
많은 연구자들은 칸돔베가 밀롱가의 발전을 통해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원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데 동의한다. 이 음악적 리듬은 특히 "수레냐 밀롱가"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탱고, 밀롱가 및 칸돔베는 동일한 아프리카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발전을 거친 음악적 삼부작을 형성한다.[11]
초기에 칸돔베는 "탕고"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소를 설계한 흑인들만 연주했다. 이 단어는 19세기에 "탱고"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지만, 당시에는 현재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오늘날, 칸돔베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과 아르헨티나 전역의 비흑인 인구에 의해 여전히 연주되고 있다. 코리엔테스 주에서 칸돔베는 흑인 아르헨티나인을 위한 민속 수호 성인인 산 발타사르의 종교 축제의 일부이다.[12]
최근 몇몇 예술가들은 이 장르를 자신들의 작품에 포함시켰으며, 미시밤바 협회,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프로 아르헨티나 커뮤니티와 같은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단체와 NGO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칸돔베는 우루과이로부터의 이민과 아르헨티나인들을 사로잡는 리듬의 매력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음악, 춤, 캐릭터를 배우고 비슷한 것을 재현한다. 우루과이 칸돔베는 산 텔모, 몬세라트, 라 보카 지역에서 많이 연주된다.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흑인 아프리카 출신 인구의 감소, 백인 이민자들과의 혼합, 마지막 독재 기간 동안의 카니발 금지로 인해 (우루과이에서 발생한 확산에 비해) 지역 확산이 적었다. 아프로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위치한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에 의해서만 그들의 사적인 집에서 연주된다.[15]
최근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이 은폐에서 가시성으로 전략을 바꾸면서 공공 장소, 무대 및 거리 퍼레이드에서 이를 공연하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다. 아프로 아르헨티나 칸돔베를 연주하는 그룹으로는 "탐보레스 델 리토랄"(산타페의 "발리쿰바"와 파라나, 엔트레 리오스의 "칸돔베스 델 리토랄" 연합), "바콩고"(이들은 자체 웹 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콤파르사 네그로스 아르헨티노스"와 "그룹 붐 케 붐"(두 그룹 모두 아소시아시온 미시밤바 소속)이 있다. 후자 두 그룹은 그란 부에노스아이레스(부에노스아이레스 시와 그 주변)에 있다.
2. 2. 아르헨티나에서의 발전
조지 레이드 앤드루스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이후 라틴 아메리카 흑인 사회의 젊은이들은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을 추기 위해 ''칸돔베''를 버리기 시작했다.[2] 1860년대와 1870년대의 상류층 포르테뇨스들은 스스로를 로스 네그로스(Los Negros)라 부르며 흑인 분장을 하고 매년 카니발 행렬에 참여했다.1913년, "비에호 탕게로"(Viejo Tanguero, "늙은 탱고 춤꾼")라는 익명의 춤 역사가는 ''칸돔베''의 아이디어를 담은 ''탱고''라는 춤이 1877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했다. 이 춤은 나중에 "소프트 탱고"로 알려졌으며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이 만들었다.[6][3][4][5]
1883년, 춤 학자이자 민속학자인 벤투라 린치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댄서들이 ''콤파드리토스''("거친 남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밀롱가는 도시의 ''콤파드리토스''만이 춤을 추는데, 그들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장소에서 추는 춤을 조롱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었다"고 썼다.[6]
1580년경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흑인 아프리카 노예 인구가 존재했다. 그러나 혼혈과 점차 증가하는 백인 인구(600만 명의 유럽 이민자를 수용) 및 구조적 인종차별(국가가 지원하는 ''블랑케아미엔토'' 정책 등)으로 인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 인구는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8][9]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의 통치 기간 동안, "''아프로포르테뇨''"(부에노스아이레스의 흑인)는 칸돔베를 공개적으로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로사스와 그의 딸 마누엘라는 이를 장려하고 방문하기도 했다. 1852년 카세로스 전투에서 로사스가 패배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 문화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급격한 문화적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프로포르테뇨는 조상들의 문화적 패턴을 점차 사생활 속에서 재현했다. 1862년 이후 언론, 지식인 및 정치인들은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의 소멸에 대한 오해를 주장하기 시작했다.[10]
많은 연구자들은 칸돔베가 밀롱가의 발전을 통해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원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데 동의한다. 이 음악적 리듬은 특히 "수레냐 밀롱가"에 영향을 미쳤다. 탱고, 밀롱가, 칸돔베는 동일한 아프리카 기원을 가지지만 서로 다른 발전을 거친 음악적 삼부작을 형성한다.[11]
초기에 칸돔베는 "탕고"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소를 설계한 흑인들만 연주했다. 이 단어는 19세기 "탱고"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지만, 당시에는 현재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오늘날 칸돔베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과 아르헨티나 전역의 비흑인 인구에 의해 여전히 연주되고 있다. 코리엔테스 주에서 칸돔베는 흑인 아르헨티나인을 위한 민속 수호 성인인 산 발타사르의 종교 축제의 일부이다.[12]
최근 몇몇 예술가들은 이 장르를 자신들의 작품에 포함시켰으며, 미시밤바 협회,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프로 아르헨티나 커뮤니티와 같은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단체와 NGO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루과이 칸돔베는 우루과이로부터의 이민과 아르헨티나인들을 사로잡는 리듬의 매력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우루과이 칸돔베는 산 텔모, 몬세라트, 라 보카 지역에서 많이 연주된다.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흑인 아프리카 출신 인구의 감소, 백인 이민자들과의 혼합, 마지막 독재 기간 동안의 카니발 금지로 인해 지역 확산이 적었다. 아프로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위치한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에 의해서만 그들의 사적인 집에서 연주된다.[15]
최근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이 은폐에서 가시성으로 전략을 바꾸면서 공공 장소, 무대 및 거리 퍼레이드에서 이를 공연하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다. 아프로 아르헨티나 칸돔베를 연주하는 그룹으로는 "탐보레스 델 리토랄"(산타페의 "발리쿰바"와 파라나, 엔트레 리오스의 "칸돔베스 델 리토랄" 연합), "바콩고", "콤파르사 네그로스 아르헨티노스"와 "그룹 붐 케 붐"(두 그룹 모두 아소시아시온 미시밤바 소속)이 있으며, 후자 두 그룹은 그란 부에노스아이레스(부에노스아이레스 시와 그 주변)에 있다.
2. 3. 우루과이에서의 발전
조지 레이드 앤드루스(George Reid Andrews)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이후 라틴 아메리카 흑인 사회의 젊은이들은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을 추기 위해 ''칸돔베''를 버리기 시작했다.[2]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따라 다른 우루과이인들도 이들의 발걸음과 동작을 모방하기 시작했다.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들은 매주 일요일과 새해 전야, 크리스마스, 성 발타사르, 묵주 성모, 성 베니토와 같은 특별한 휴일에 칸돔베 춤을 조직했다. 그들은 북을 데우기 위해 불을 피우고 칸돔베 음악을 연주했는데, 특히 밤에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와 팔레르모 같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행렬의 전형적인 인물들은 옛 몬테비데오 도시의 노예 시절 백인 주인을 상징하는데, 이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조롱하는 동시에 자유를 향한 반항 정신이자 아프리카 기원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칸돔베"라는 단어는 콩고어로 "흑인과 관련된"을 의미하며, 원래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과 그 후손들로 구성된 춤 단체를 지칭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점차 춤 스타일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고, 우루과이에서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13] 우루과이에서 "칸돔베"는 여러 아프리카 춤 전통을 복잡한 안무로 융합시킨 것으로, 동작은 역동적이며 스텝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14]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칸돔베는 60년대 팝 음악과 보사노바의 요소와 혼합되어 칸돔베 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이 장르의 기원은 우루과이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가인 에두아르도 마테오와 호르헤 갈레미레 등의 작품이라고 여겨진다.[16] 이 스타일은 이후 하이메 로스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호르헤 드렉슬러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디에고 얀센, 미겔 델 아길라와 같은 현대 음악가들은 칸돔베를 클래식 장르, 재즈, 블루스, 밀롱가와 융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17]
3. 음악적 특징
칸돔베는 앙골라 지역에서 기원하여 17세기와 18세기에 남아메리카로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다. 이들은 브라질, 쿠바, 리오 데 라 플라타 지역에 칸돔베 문화를 전파했으며,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리듬으로 발전시켰다.[13]
19세기 중반 조지 레이드 앤드루스에 따르면, 젊은 흑인들이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을 추면서 칸돔베를 멀리하기 시작했다.[2] 이에 영향을 받아 다른 우루과이인들도 이들의 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는 상류층 사람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카니발 행렬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들은 매주 일요일과 특별한 휴일에 칸돔베 춤을 추었다. 이들은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와 팔레르모 같은 지역에서 밤에 북을 데우고 칸돔베 음악을 연주했다. 행렬에는 노예 시절 백인 주인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이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풍자하고 자유와 아프리카 기원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1913년 "비에호 탕게로"라는 익명의 춤 역사가는 1877년에 칸돔베의 영향을 받은 "탱고"라는 춤이 만들어졌다고 기록했다.[6][3][4][5] 이 춤은 "소프트 탱고"로 알려졌으며,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이 만들었다. 1883년 벤투라 린치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댄서들이 "콤파드리토스" ("거친 남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며, 밀롱가는 도시의 콤파드리토스들이 흑인들의 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썼다.[6]
아르헨티나에서는 1580년경부터 흑인 노예 인구가 존재하여 칸돔베가 연주되었다. 그러나 혼혈과 백인 인구 증가, 구조적 인종차별로 인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 인구는 점차 줄어들었다.[8][9]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통치 기간에는 흑인들이 공개적으로 칸돔베를 공연했지만,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유럽 중심의 문화로 변화하면서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사적으로 유지하게 되었다.[10]
많은 연구자들은 칸돔베가 밀롱가를 통해 탱고의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탱고, 밀롱가, 칸돔베는 같은 아프리카 기원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르게 발전한 음악적 삼부작을 형성한다.[11]
초기에 칸돔베는 "탕고"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흑인들만 연주했지만, 오늘날에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과 비흑인 인구 모두 연주한다. 코리엔테스 주에서는 칸돔베가 산 발타사르 종교 축제의 일부로 연주된다.[12]
최근 몇몇 예술가들은 칸돔베를 자신들의 작품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단체와 NGO도 만들어지고 있다. 우루과이 칸돔베는 우루과이 이민과 리듬의 매력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며, 산 텔모, 몬세라트, 라 보카 지역에서 주로 연주된다.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흑인 인구 감소, 백인 이민자와의 혼합, 독재 기간 동안의 카니발 금지로 인해 확산이 적었다.[15]
최근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은 공공장소, 무대, 거리 퍼레이드에서 칸돔베를 공연하며 가시성을 높이고 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칸돔베는 팝 음악과 보사노바 요소를 결합하여 칸돔베 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 스타일은 하이메 로스와 호르헤 드렉슬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디에고 얀센과 미겔 델 아길라 같은 현대 음악가들은 칸돔베를 클래식, 재즈, 블루스, 밀롱가와 융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17]
2009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된 칸돔베는 몬테비데오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칸돔베의 주요 리듬은 클라베(3-2 형식)이다.
3. 1. 악기 구성
칸돔베의 음악은 '''쿠에르다'''라고 불리는 드러머 그룹에 의해 연주된다. 통 모양의 드럼 또는 '''탐보릴'''은 크기와 기능에 따라 다음과 같은 특정 이름이 있다.- '''치코'''(chico): 작고 높은 음색으로 리듬의 기준이 된다.
- '''레피케'''(repique): 중간 크기로 즉흥적인 구절로 칸돔베의 리듬을 장식한다.
- '''피아노'''(piano): 가장 큰 크기로 업라이트 또는 일렉트릭 베이스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바호''(bajo) 또는 ''봄보''(bombo) (매우 크고 매우 낮은 음색, 네 번째 비트에 악센트)라고 불리는 훨씬 더 큰 드럼이 한때 흔했지만 현재는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최소한의 ''쿠에르다''는 각 파트에 한 명씩 세 명의 드러머가 필요하다. 전체 쿠에르다는 50~100명의 드러머로 구성되며, 일반적으로 세 줄 또는 다섯 줄의 드러머가 있어 세 가지 유형의 드럼을 혼합한다. 전형적인 다섯 줄은 피아노-치코-레피케-치코-피아노일 수 있으며, 뒤에 있는 줄은 레피케-치코-피아노-치코-레피케 등으로 마지막 줄까지 이어진다.
탐보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공연 직전 밧줄로 조율하거나 불로 조율한 동물의 가죽으로 덮여 있다. ''탈리''(talí) 또는 ''탈린''(talín)이라고 불리는 어깨 끈을 이용하여 허리에 착용하며, 스틱 하나와 손 하나로 연주한다.
''칸돔베''의 주요 리듬 패턴은 클라베 (3-2 형식)이다. 드럼 측면에서 연주되며, "''아세르 마데라''"(문자 그대로 "나무 만들기")로 알려진 절차이다.
몬테비데오의 가장 중요하고 전통적인 리듬으로는 쿠아레임, 안시나, 코르돈이 있다. 200년 동안 칸돔베를 끊임없이 유지해 온 여러 명의 거장 드러머들이 있다. 안시나 학교의 주요 인물로는 와싱턴 오캄포, 엑토르 수아레스, 페드로 "페리코" 굴라르테, 에두아르도 "카초" 히메네스, 훌리오 히메네스, 라울 "포초" 마가리뇨스, 루벤 키로스, 알프레도 페레이라, "티토" 그라딘, 라울 "마가" 마가리뇨스, 루이스 "모캄보" 키로스, 페르난도 "우론" 실바, 에두아르도 "말룸바" 히메네스, 알바로 살라스, 다니엘 그라딘, 세르지오 오르투뇨, 호세 루이스 히메네스가 있다.[18]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남성만 연주하는 두 종류의 드럼으로 연주된다. 이 드럼들은 다음과 같다: "야마도르"( "베이스", "툼바", "퀸토" 또는 "툼바 베이스"라고도 함)와 "레피카도르"( "콘테스타도르", "레피케테아도르" 또는 "레킨토"라고도 함). 전자는 베이스 드럼이고 후자는 날카로운 드럼이다. 각각의 드럼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들어졌고, 다른 하나는 판자로 만들어졌다.
첫 번째 유형은 어깨에 끈으로 걸어 거리 퍼레이드에서 연주한다. 후자는 그들보다 더 높으며 보장된 상태로 연주된다. 두 종류의 드럼 모두 양손으로만 연주한다. 때때로 다른 드럼도 연주된다: "마쿠"와 "소피파". 둘 다 속이 빈 나무 통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첫 번째는 가장 크고 깊은 드럼이므로 바닥에 눕혀 연주하고, 작고 날카로운 "소피파"는 어깨에 걸거나 무릎 사이에 끼워 연주한다.
드럼과 항상 함께하는 특성 악기 중에는 "타바"와 "마자칼라"가 있으며, "퀴하다", "키산체", 그리고 "치네스코"를 추가할 수 있다.
3. 2. 리듬
Candombees의 음악은 '''쿠에르다'''라고 불리는 드러머 그룹에 의해 연주된다. 통 모양의 드럼인 '''탐보릴'''은 크기와 기능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치코'''(chico): 작고 높은 음색으로 리듬의 기본 역할을 한다.
- '''레피케'''(repique): 중간 크기로 Candombees의 리듬을 즉흥적인 구절로 꾸며준다.
- '''피아노'''(piano): 가장 큰 크기로, 업라이트 또는 일렉트릭 베이스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바호''(bajo) 또는 ''봄보''(bombo)라고 불리는 훨씬 더 큰 드럼은 매우 낮은 음색을 내며 네 번째 비트에 악센트를 주었으나, 현재는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최소한의 ''쿠에르다''는 각 파트에 한 명씩 세 명의 드러머로 구성된다. 전체 쿠에르다는 50~100명의 드러머로 구성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세 줄 또는 다섯 줄의 드러머가 세 가지 유형의 드럼을 번갈아 연주한다.
탐보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공연 직전 밧줄로 조율하거나 불로 조율한 동물의 가죽으로 덮여 있다. ''탈리''(talí)라고 불리는 어깨 끈을 이용하여 허리에 착용하며, 한 손에는 스틱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직접 연주한다.
Candombees의 주요 리듬 패턴은 클라베 (3-2 형식)이다. 드럼 측면에서 연주되는 이 절차는 "''아세르 마데라''"(문자 그대로 "나무 만들기")라고 불린다.
몬테비데오의 가장 중요하고 전통적인 리듬으로는 쿠아레임, 안시나, 코르돈이 있다. 200년 동안 Candombees를 끊임없이 유지해 온 여러 명의 거장 드러머들이 있으며, 안시나 학교의 주요 인물로는 알바로 살라스 등이 있다.[18]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Candombees는 남성만 연주하는 두 종류의 드럼으로 연주된다.
- '''야마도르'''(llamador): "베이스", "툼바", "퀸토" 또는 "툼바 베이스"라고도 불리는 베이스 드럼이다.
- '''레피카도르'''(repicador): "콘테스타도르", "레피케테아도르" 또는 "레킨토"라고도 불리는 날카로운 드럼이다.
각각의 드럼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들어진 드럼
- 판자로 만들어진 드럼
첫 번째 유형은 어깨에 끈으로 걸어 거리 퍼레이드에서 연주한다. 후자는 그들보다 더 높으며 보장된 상태로 연주된다. 두 종류의 드럼 모두 양손으로만 연주한다. 때때로 "마쿠"와 "소피파"와 같은 다른 드럼도 연주된다. 둘 다 속이 빈 나무 통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마쿠"는 가장 크고 깊은 드럼이므로 바닥에 눕혀 연주하고, 작고 날카로운 "소피파"는 어깨에 걸거나 무릎 사이에 끼워 연주한다.
드럼과 항상 함께하는 특성 악기 중에는 "타바"와 "마자칼라"가 있으며, "퀴하다", "키산체", 그리고 "chinesco"를 추가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Candombees는 보컬-기악 연주로, 앉아서 연주하든 거리 퍼레이드에서 연주하든 동일하다. 아프리카 언어의 고어, 스페인어, 또는 이 둘의 조합으로 된 방대한 노래 레퍼토리가 있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솔로, 응답, 교호 또는 그룹으로 해석된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관행이지만 남성이 참여할 수도 있다. 두 개 이상의 목소리가 있는 경우 항상 유니슨으로 불린다.
3. 3.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칸돔베의 차이
19세기 중반, 조지 레이드 앤드루스에 따르면, 젊은 흑인들이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을 추기 위해 ''칸돔베''를 버리기 시작했다.[2] 다른 우루과이인들도 이들의 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와 1870년대의 상류층 포르테뇨스들은 흑인 분장을 하고 매년 카니발 행렬에 참여했다.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들은 매주 일요일과 특별한 휴일(새해 전야, 크리스마스, 성 발타사르, 묵주 성모, 성 베니토)에 칸돔베 춤을 조직했다. 그들은 북을 데우기 위해 불을 피우고 칸돔베 음악을 연주했는데, 특히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와 팔레르모와 같은 특정 지역에서 밤에 이루어졌다. 행렬의 전형적인 인물들은 옛 몬테비데오 도시의 노예 시절 백인 주인을 상징하며, 이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조롱하는 동시에 자유를 향한 반항 정신이자 아프리카 기원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1913년, "비에호 탕게로"라고만 알려진 익명의 춤 역사가는 ''칸돔베''의 아이디어를 담은 ''탱고''라는 춤이 1877년에 만들어졌다고 썼다.[6][3][4][5] 이 춤은 나중에 "소프트 탱고"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들이 만들었다.
1883년에 벤투라 린치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댄서들이 ''콤파드리토스''("거친 남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린치는 "밀롱가는 도시의 ''콤파드리토스''만이 춤을 추는데, 그들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장소에서 추는 춤을 조롱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었다"고 썼다.[6]
칸돔베는 오늘날의 앙골라에서 유래되었으며, 17세기와 18세기에 콩고 왕국 등지에서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 남아메리카로 전해졌다. 칸돔베는 브라질, 쿠바, 리오 데 라 플라타 지역에 전파되었고,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으로 인해 각 지역에서 다른 리듬으로 발전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칸돔베는 1580년경부터 흑인 아프리카 노예 인구와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혼혈과 백인 인구 증가, 구조적 인종차별로 인해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 인구는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8][9]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통치 기간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흑인들은 칸돔베를 공개적으로 공연했다. 로사스 패배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 문화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문화적 변화를 겪었고, 아프로포르테뇨는 조상들의 문화적 패턴을 사생활 속에서 재현했다. 1862년 이후,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의 소멸에 대한 오해가 주장되기 시작했다.[10]
칸돔베는 밀롱가를 통해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원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데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탱고, 밀롱가, 칸돔베는 동일한 아프리카 기원을 가지지만 서로 다른 발전을 거친 음악적 삼부작을 형성한다.[11]
초기에 칸돔베는 "탕고"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소를 설계한 흑인들만 연주했다. 오늘날 칸돔베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과 아르헨티나 전역의 비흑인 인구에 의해 여전히 연주되고 있다. 코리엔테스 주에서 칸돔베는 흑인 아르헨티나인을 위한 민속 수호 성인인 산 발타사르의 종교 축제의 일부이다.[12]
"칸돔베"라는 단어는 콩고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과 그 후손들로 구성된 춤 단체를 지칭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점차 춤 스타일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고, 우루과이에서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13] 우루과이에서 "칸돔베"는 여러 아프리카 춤 전통을 복잡한 안무로 융합시켰다. 동작은 역동적이며, 스텝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14]
최근 몇몇 예술가들은 칸돔베를 자신들의 작품에 포함시켰으며,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단체와 NGO를 만들기도 했다. 우루과이 칸돔베는 우루과이로부터의 이민과 아르헨티나인들을 사로잡는 리듬의 매력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우루과이 칸돔베는 산 텔모, 몬세라트, 라 보카 지역에서 많이 연주된다.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흑인 아프리카 출신 인구의 감소, 백인 이민자들과의 혼합, 독재 기간 동안의 카니발 금지로 인해 지역 확산이 적었다. 아프로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위치한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에 의해서만 그들의 사적인 집에서 연주된다.[15]
최근 아프로 아르헨티나인들이 공공 장소, 무대 및 거리 퍼레이드에서 칸돔베를 공연하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칸돔베는 팝 음악과 보사노바의 요소와 혼합되어 칸돔베 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이 스타일은 하이메 로스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호르헤 드렉슬러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디에고 얀센과 미겔 델 아길라와 같은 현대 음악가들은 칸돔베를 클래식 장르, 재즈, 블루스, 밀롱가와 융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17]
2009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된 칸돔베는 몬테비데오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정체성의 상징이다.
''칸돔베''의 음악은 '''쿠에르다'''라고 불리는 드러머 그룹에 의해 연주된다. 사용되는 드럼은 다음과 같다.
- '''치코''', 작고 높은 음색으로 리듬 추 역할을 한다.
- '''레피케''', 중간 크기로 즉흥적인 구절로 칸돔베의 리듬을 장식한다.
- '''피아노''', 가장 큰 크기로 업라이트 또는 일렉트릭 베이스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바호'' 또는 ''봄보''는 현재는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최소한의 ''쿠에르다''는 세 명의 드러머가 필요하다. 전체 쿠에르다는 50~100명의 드러머로 구성된다. 탐보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동물의 가죽으로 덮여 있다. ''탈리''라고 불리는 어깨 끈을 이용하여 허리에 착용하며, 스틱 하나와 손 하나로 연주한다.
''칸돔베''의 주요 리듬 패턴은 클라베 (3-2 형식)이다.
몬테비데오의 가장 중요하고 전통적인 리듬으로는 쿠아레임, 안시나, 코르돈이 있다.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두 종류의 드럼으로 연주된다.
- "야마도르"( "베이스", "툼바", "퀸토" 또는 "툼바 베이스"라고도 함)
- "레피카도르"( "콘테스타도르", "레피케테아도르" 또는 "레킨토"라고도 함)
전자는 베이스 드럼이고 후자는 날카로운 드럼이다. 각각의 드럼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들어진 드럼
- 판자로 만들어진 드럼
첫 번째 유형은 어깨에 끈으로 걸어 거리 퍼레이드에서 연주한다. 후자는 그들보다 더 높으며 보장된 상태로 연주된다. 두 종류의 드럼 모두 양손으로만 연주한다. 때때로 "마쿠"와 "소피파" 드럼도 연주된다.
드럼과 항상 함께하는 특성 악기 중에는 "타바"와 "마자칼라"가 있으며, "퀴하다", "키산체", 그리고 "chinesco"를 추가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칸돔베는 보컬-기악 연주이다. 아프리카 언어의 고어, 스페인어, 또는 이 둘의 조합으로 된 방대한 노래 레퍼토리가 있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관행이지만 남성이 참여할 수도 있다. 두 개 이상의 목소리가 있는 경우 항상 유니슨으로 불린다.
칸돔베 음악은 '''쿠에르다'''라고 불리는 드러머 그룹에 의해 연주된다. 사용되는 탐보릴(tamboriles)은 다음과 같다.
- 치코(chico, 작고, 고음으로 템포의 기준)
- 레피케(중간 크기, 싱코페이션과 즉흥)
- 피아노(크고, 저음, 4비트의 액센트)
더 큰 드럼에는 바호 또는 봉보(매우 크고, 저음으로 4비트의 액센트)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쿠에르다는 최소 3명의 드러머가 필요하다. 최대 쿠에르다는 50명에서 100명 정도의 드러머를 보유한다.
탐보릴은 나무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지며, 연주 전에 몇 분 동안 로프나 불로 튜닝된다. 허리에 ''탈리 또는 탈린''이라고 불리는 숄더 스트랩으로 고정되며, 연주 시 한쪽에는 스틱을 들고, 다른 한쪽은 손으로 두드린다.
칸돔베 리듬의 열쇠는 클레베(3-2박자)이다.
4. 공연
19세기 중반 이후, 조지 레이드 앤드루스에 따르면, 젊은 흑인들이 왈츠, 스카치, 마주르카와 같은 유럽 춤을 추기 위해 ''칸돔베''를 버리기 시작했다.[2] 다른 우루과이인들도 이들의 발걸음과 동작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들은 매주 일요일과 새해 전야, 크리스마스, 성 발타사르, 묵주 성모, 성 베니토와 같은 특별한 휴일에 칸돔베 춤을 조직했다. 그들은 북을 데우기 위해 불을 피우고 칸돔베 음악을 연주했는데, 특히 몬테비데오의 바리오 수르와 팔레르모와 같은 특정 지역에서 밤에 이루어졌다.
1913년, "비에호 탕게로"(Viejo Tanguero, "늙은 탱고 춤꾼")라는 익명의 춤 역사가는 ''칸돔베''의 아이디어를 담은 ''탱고''라는 춤이 1877년에 만들어졌다고 썼다.[6][3][4][5] 1883년에 춤 학자이자 민속학자인 벤투라 린치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 댄서들이 ''콤파드리토스''("거친 남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밀롱가는 도시의 ''콤파드리토스''만이 춤을 추는데, 그들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장소에서 추는 춤을 조롱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었다"고 썼다.[6]
격렬한 공연은 적혈구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드럼 연주 직후 녹슨 색깔의 소변으로 나타난다.[19]
4. 1. 콤파르사 (Comparsa)
완전한 ''칸돔베'' 그룹은 집합적으로 '''''콤파르사 루볼라'''''(Comparsa Lubola, 전통적으로 그을린 코르크로 분장한 백인들로 구성) 또는 '''''칸돔베라'''''(Candombera, 흑인으로 구성)로 알려져 있으며, 물라타로 알려진 여성 댄서 그룹인 ''쿠에르다''(cuerda)와 각각 고유한 춤을 가진 여러 고정 등장인물로 구성된다.[19]
전형적인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La Mama Vieja''' (늙은 어머니): 여가장.
- '''El Gramillero''' (허브 의사): 톱 해트와 프록 코트를 입고 허브 가방을 든 고대 흑인. 라 마마 비에하의 남편으로 건강과 행복을 담당한다.
- '''El Escobero''' 또는 '''Escobillero''' (빗자루 남자 또는 지팡이 소지자): 숙련된 ''칸돔베로''이자 우아한 댄서여야 하며, 빗자루나 긴 마법 지팡이로 특별한 묘기와 저글링과 균형을 선보인다. 새로운 길과 미래의 가능성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칸돔베는 우루과이의 카니발 기간인 1월과 2월에 몬테비데오 구시가지 남쪽 지역의 거리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며, 그 외 지역에서도 공연된다. 80개 또는 90개에 달하는 모든 ''콤파르사''는 '''''라스 야마다스'''''("호출")라고 불리는 대규모 카니발 퍼레이드에 참여하여 ''Teatro de Verano'' 극장에서 열리는 공식 대회에서 서로 경쟁한다. 라스 야마다스 동안, 콤파르사 멤버들은 종종 햇볕 가리개와 검은 얼굴 페인트와 같이 노예 무역의 역사적 뿌리를 반영하는 의상을 착용한다. 상금은 크지 않으며, 즐거움, 자부심 고취, 동료들의 존경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다.
4. 2. 등장인물
행렬에는 옛 몬테비데오 도시의 노예 시절 백인 주인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백인 주인들의 생활 방식을 조롱하는 동시에 자유를 향한 반항 정신과 아프리카 기원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2]완전한 ''칸돔베'' 그룹은 집합적으로 '''''Comparsa Lubola''''' (전통적으로 그을린 코르크로 분장한 백인들로 구성) 또는 '''''Candombera''''' (흑인으로 구성)로 알려져 있으며, 물라타로 알려진 여성 댄서 그룹인 ''cuerda''와 각각 고유한 춤을 가진 여러 고정 등장인물로 구성된다. 고정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19]
- '''La Mama Vieja'''(늙은 어머니): 여가장
- '''El Gramillero'''(의사): 라 마마 비에하의 남편으로 건강과 행복을 담당
- '''El Escobero''' 또는 '''Escobillero'''(지팡이 소지자): 새로운 길과 미래의 가능성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긴 마법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칸돔베는 우루과이의 카니발 기간인 1월과 2월에 몬테비데오 구시가지 남쪽 지역의 거리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며, 그 외 지역에서도 공연된다.
4. 3. 라스 야마다스 (Las Llamadas)
완전한 ''칸돔베'' 그룹은 집합적으로 '''''Comparsa Lubola''''' (전통적으로 그을린 코르크로 분장한 백인들로 구성) 또는 '''''Candombera''''' (흑인으로 구성)로 알려져 있으며, 물라타로 알려진 여성 댄서 그룹인 ''cuerda''와 각각 고유한 춤을 가진 여러 고정 등장인물로 구성된다.[19]
고정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La Mama Vieja''': 늙은 어머니.
- '''El Gramillero''': 허브 의사. 톱 해트와 프록 코트를 입고 허브 가방을 든 고대 흑인.
- '''El Escobero''': 빗자루 남자. 숙련된 ''칸돔베로''이자 우아한 댄서여야 하며, 빗자루로 특별한 묘기와 저글링 및 균형을 선보인다.
칸돔베는 우루과이의 카니발 기간인 1월과 2월에 몬테비데오 구시가지 남쪽 지역의 거리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며, 그 외 지역에서도 공연된다. 80개 또는 90개에 달하는 모든 ''comparsas''는 라스 야마다스 ("호출")라고 불리는 대규모 카니발 퍼레이드에 참여하여 ''Teatro de Verano'' 극장에서 열리는 공식 대회에서 서로 경쟁한다. 라스 야마다스 동안, comparsa의 멤버들은 종종 햇볕 가리개와 검은 얼굴 페인트와 같이 노예 무역의 역사적 뿌리를 반영하는 의상을 착용한다. 상금은 크지 않으며, 즐거움, 자부심 고취, 동료들의 존경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격렬한 공연은 적혈구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드럼 연주 직후 녹슨 색깔의 소변으로 나타난다.
5.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2009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된 칸돔베는 몬테비데오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자부심의 원천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며, 젊은 세대들이 이를 포용하고 집단 응집력을 높이는 동시에 조상에 대한 공동체의 요구와 감정을 표현한다.
칸돔베의 음악은 '''쿠에르다'''라고 불리는 드러머 그룹에 의해 연주된다. 통 모양의 드럼 또는 '''탐보릴'''은 크기와 기능에 따라 다음과 같은 특정 이름이 있다.
- '''치코''', 작고 높은 음색으로 리듬 추 역할을 한다.
- '''레피케''', 중간 크기로 즉흥적인 구절로 칸돔베의 리듬을 장식한다.
- '''피아노''', 가장 큰 크기로 업라이트 또는 일렉트릭 베이스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바호'' 또는 ''봄보''(매우 크고 매우 낮은 음색, 네 번째 비트에 액센트)라고 불리는 훨씬 더 큰 드럼이 한때 흔했지만 현재는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최소한의 ''쿠에르다''는 각 파트에 한 명씩 세 명의 드러머가 필요하다. 전체 쿠에르다는 50~100명의 드러머로 구성되며, 일반적으로 세 줄 또는 다섯 줄의 드러머가 있어 세 가지 유형의 드럼을 혼합한다. 전형적인 다섯 줄은 피아노-치코-레피케-치코-피아노일 수 있으며, 뒤에 있는 줄은 레피케-치코-피아노-치코-레피케 등으로 마지막 줄까지 이어진다.
탐보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공연 직전 밧줄로 조율하거나 불로 조율한 동물의 가죽으로 덮여 있다. ''탈리'' 또는 ''탈리''라고 불리는 어깨 끈을 이용하여 허리에 착용하며, 스틱 하나와 손 하나로 연주한다.
칸돔베의 주요 리듬 패턴은 클라베 (3-2 형식)이다. 드럼 측면에서 연주되며, "''아세르 마데라''"(문자 그대로 "나무 만들기")로 알려진 절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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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ientes celebra a San Baltasar, el santo popular que hermana diferentes cultu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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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간행물
Rust Urine after Intense Hand Drumming Is Caused by Extracorpuscular Hemo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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