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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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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인(Thegn)은 고대 영어 단어 'þeġn'에서 유래한 앵글로색슨 시대의 계급으로, '하인' 또는 '전사'를 의미하며, 토지를 소유한 지주이자 군사적·행정적 의무를 지는 존재였다.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테인은 지방 정부와 군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세 계급으로 나뉘어 왕, 에알도르만, 다른 테인에게 봉사했다. 테인은 상속되거나, 자유민의 토지 소유, 상업 활동 등을 통해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며, 가신을 거느리기도 했다. 노르만 정복 이후 테인은 기사 계급으로 대체되었으며, 룬 문자 기록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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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인
지도 정보
명칭
언어영어
명칭thegn
로마자 표기tein
기본 정보
종류중세 브리튼과 스칸디나비아의 귀족 칭호
지위왕 또는 귀족 아래
역할군사, 행정, 봉사
역사 및 어원
어원고대 영어 'þegn'(하인, 수행원)
프랑크 왕국루드와 유사한 지위
브리튼의 테인
사회적 지위일반 귀족에 해당
토지 소유일반적으로 토지를 소유, 세습 가능
군사적 의무왕에게 군사 봉사 제공
앵글로색슨 시대사회적 계층 중 하나, 하위 귀족
노르만 정복 이후기사와 유사한 지위로 변화
스칸디나비아의 테인
사회적 지위왕이나 귀족을 섬기는 전사 또는 봉신
군사적 의무군사 및 정치적 의무 수행
봉사영주에게 봉사

2. 어원

테인(Thegn)이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 'þeġn'에서 유래했으며, '하인', '전사'를 의미한다.[1] 이는 독일어 'dienende'('섬기다')와는 관련이 없지만, 초기부터 종속의 의미를 내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

3. 역사

5세기 앵글로색슨족이 서로마 브리타니아로 이주하면서 사회적 엘리트가 없는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인구 절반은 자유 농민 ceorlas이었고, 나머지는 노예였다.

6세기 후반, 후기 고대 소빙하기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등으로 사회적 엘리트가 발전했다. '영주'는 고대 영어로 hlaford|흘라포르드ang (빵 보호자 또는 빵 제공자)였다.

8세기, 귀족을 뜻하는 eorl|에올ang이 게시스(gesith|게시스ang; 라틴어: comesla)로 대체되었다. 게시스는 왕 등의 수행원으로 일하며 보상을 받았다.

10세기, 앵글로색슨 사회는 노예, ceorlas|처얼ang, þegnas|테인ang (귀족)으로 나뉘었다. '''테인'''(þeġn|테인ang)은 하인이나 전사를 의미했고, 베르겔트는 1200실링이었다.

앵글로색슨 시대 말기 테인은 토지 소유자로, 왕 등에게 군사적·행정적 의무를 졌다. 일부는 궁정 내 특별 지위로 리브나 에알도르만 칭호를 받았다.

알프레드 대왕 시대부터 테인 역할이 명확해졌고, 노르망디 정복 후 왕의 테인은 남작, 기사와 동일시되었다. "테인"은 근대 영어 thane영어 형태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등에 사용되었다.

윌리엄 정복왕의 노르만 정복 후, 앵글로색슨 귀족은 노르망디인으로 대체되었고, 테인은 기사 계급 일부가 되었다.

3. 1. 기원

5세기에 앵글로색슨족으로 알려진 게르만 민족들이 서로마 브리타니아로 이주하여 섬의 동부와 남동부를 지배하게 되었다. 고고학적 증거(매장지와 건물 등)에 따르면 이 초기 공동체에는 사회적 엘리트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구의 약 절반은 자유로운 독립적인 농민(ceorlas)이었으며, 한 숨(hide)(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땅)을 경작했다. 노예들은 대부분 토착 브리튼인이었고, 나머지 절반을 차지했다.

6세기 후반 무렵, 고고학적 증거(더욱 화려한 매장지와 건물)는 사회적 엘리트의 발전을 시사한다. 이 시기는 후기 고대 소빙하기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과 일치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기근과 다른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여 폭력을 증가시켰을 것이며, 이전에는 독립적인 농민들을 강력한 영주들의 지배에 복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대 영어로 '영주'를 뜻하는 단어는 hlaford|흘라포르드ang (빵 보호자 또는 빵 제공자)이다.

초기 켄트의 법전에서는 고대 영어 단어 eorl|에올ang (고귀한, 귀족)을 귀족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8세기가 되자 '''게시스'''(gesith|게시스ang; 라틴어: comesla)라는 단어가 귀족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로 eorl|에올ang을 대체했다. 토지를 소유한 게시스와 소유하지 않은 게시스가 모두 있었다.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게시스는 왕, 왕비 또는 영주의 코미타투스la에서 수행원으로 일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보호(고대 영어: mund|문드ang)와 금은 보물을 받았다. 젊은 귀족들은 언젠가 그들의 게시스가 되기 위해 왕의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충성스러운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게시스에게 영지가 주어질 수도 있었다.

10세기가 되자 앵글로색슨 사회는 노예, ceorlas|처얼ang (자유민), þegnas|테인ang (테인, 귀족)의 세 가지 주요 계층으로 나뉘었다. ''테인''(고대 영어: þeġn|테인ang)은 하인이나 전사를 의미했으며, ''게시스''라는 용어를 대체했다. 법전은 ceorl|처얼ang에 대해 200실링의 베르겔트 또는 인명가격을, 테인에 대해서는 1200실링을 할당했다.

3. 2. 변천

앵글로색슨 시대 말기, 테인은 토지 소유자였으며, Bookland (law)|보크랜드|보크랜드영어(신하의 토지, 인가에 의한 상속) 및 포크랜드(왕의 토지[4], 관습법에 의해 상속)를 소유했다. 이러한 영지는 단일 군에 집중되거나, 여러 군에 산재해 있을 수 있었다. 테인은 소유 영지에서 영민에 대한 영주 역할을 수행했지만, 왕이나 Ealdorman|에알도르만|에알도르만영어에게 군사적·행정적 의무를 졌다.

테인은 지방에 고정되어 왕권이 지방 단위로 적용될 수 있게 하는 권력 연쇄의 중요한 연결 고리였다. 일부 테인은 discthegnang(집사장), hræglthegnang 또는 burthegnang(시종장), byreleang(작인) 등의 칭호를 가지며 궁정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졌다. 그러한 테인은 Reeve (England)|리브|리브영어 또는 에알도르만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도 가졌지만, 이는 왕에 대한 충성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변할 수 있었다.

테인의 계급은 계급을 지칭하는 단어 앞에 표시되었다. 7세기 말 케인트 왕국과 웨섹스 왕국 법전은 케인트에서 eorlcundmanang[5]이라 불리는 중간 계급과 최하층 자유민인 Ealdorman|차를|차를영어을 구분하고 있다. 테인의 역할은 알프레드 대왕 시대부터 웨섹스 왕, 그리고 이후 잉글랜드 왕의 입법에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노르망디 정복 이후, 왕의 테인은 중요한 존재로서 남작이나 다른 기사들과 동일시되었다. "세인(thane)"이라는 단어는 근대 영어에서는 thane영어 형태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3. 3. 노르만 정복 이후

윌리엄 정복왕의 노르만 정복 이후, 윌리엄 1세는 앵글로색슨 귀족들을 노르망디인들로 대체했고, 이전의 용어를 자신들의 사회 계급 명칭으로 바꾸었다. 이전에 테인으로 알려졌던 사람들은 기사 계급의 일부가 되었다. "테인(thane)"이라는 단어는 근대 영어에서는 thane영어의 형태가 되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4. 등급 및 기능

테인은 이얼드먼(후대의 이얼)과 왕의 테인, 그리고 중간 테인의 세 계급으로 나뉘었다. 왕의 테인은 오직 왕에게만 봉사했다. 가장 낮은 테인 계급은 중간 테인으로, 다른 테인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었다. 테인의 계급이 높을수록 왕에게 바치는 헤리엇도 더 커졌다.[1]

5. 사회적 이동성

자녀는 아버지로부터 테인의 지위를 상속받았으며, 테인 신분의 여성이 자유민(체를)과 결혼하더라도 귀족 신분을 유지했다.[1] 성공한 테인은 백작으로 승진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번영한 자유민은 스스로 지주가 되어 테인의 계급에 도달하기를 열망할 수 있었다. 법률 논문인 ''게딩크드(Geþyncðo)''에서 요크 대주교 울프스탄(1002~1023)은 테인이 되는 기준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만약 자유민이 번영하여 자신의 땅 5하이드를 완전히 소유하고, 벨후스(belhus)와 부르게앗(burhgeat) [방어 가능한 영지의 저택], 왕의 홀에서 자리와 특별한 직책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그때부터 테인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2] 법률 문서인 ''노르드레오다 라가''(북방인의 법) 역시 5하이드 자격을 포함했지만, 그 땅을 3대에 걸쳐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4]

테인의 신분은 또한 "자신의 힘으로 세 번 바다를 건넌" 상인에게도 가능했다.

6. 가신

귀족 가정에는 여러 명의 수하들이 있었는데, cniht|젊은이|수하ang (현대 영어 단어 '기사'의 어원) 또는 huscarl|가신|가정의 남자ang라고 불렸다. 테인의 유언장을 통해 귀족 가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데, 1043년경에 작성된 서스턴 루스트와인의 유언장에는 그의 cnihtesang와 두 명의 교회 사제에게 토지를 남겼다는 내용이 있다. 레오프기푸라는 귀족 여성의 유언장에는 세 명의 관리, 두 명의 뢰브, 한 명의 교회 사제, 그리고 그녀의 cnihtesang에게 토지를 남겼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언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정 관리자는 사냥꾼(ang)이다.[4]

왕의 테인들이 왕실 가정에서 일했던 것처럼, 하급 테인들은 왕의 테인과 엘도르먼의 시종, 집사, 그리고 관리자로 일했다. 이러한 직책은 영예로운 직책으로 여겨졌다. 레오프릭 백작의 가신들을 이끌었던 바그네는 그의 주요 장원이 우튼 와웬(바그네의 우튼)에 있었고, 54히드의 토지를 소유했다. 바그네와 같은 고위급 인물들은 영주의 가정의 내부 핵심 인물을 구성했을 것이다.[4]

7. 룬 문자 기록

10세기 후반과 11세기 덴마크스웨덴에서는 가족이나 동료들이 기념비적인 룬석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중 약 50개의 룬석에는 사망자가 테인(thegn)이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룬석의 예로는 널베르가의 Sö 170, 노라 해레네의 Vg 59, 벨란다의 Vg 150, 군데룹의 DR 143, 글라벤드룹의 DR 209, 그리고 리드스고르의 DR 277 등이 있다.

참조

[1] 논문
[2] 논문
[3] 논문
[4] 논문
[5]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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