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파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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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팀파눔은 페디먼트로 둘러싸인 비문을 의미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고전 건축의 특징으로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나갔다. 로마 시대에는 권위주의적 상징성을 띠었으며, 이후 유럽 전역의 교회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로마네스크와 고딕 시대에 팀파눔은 교회 정문 위에 조각이나 부조 형태로 나타나,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순례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현재까지도 건축 양식에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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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파눔 | |
---|---|
개요 | |
정의 | 박공벽 내부에 위치한, 아치, 문 또는 창문 위의 삼각형 또는 원형 패널 문 또는 창문 위의 벽의 오목한 부분 |
어원 | 그리스어 τύμπανον (týmpanon, "탬버린") |
건축학적 역할 | 장식적인 요소 제공 |
역사 및 양식 | |
고대 그리스 | 단순한 형태 조각으로 장식되기도 함 |
로마 건축 | 아치형 구조에 사용 다양한 장식 요소 추가 |
중세 건축 | 교회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 종교적인 조각으로 장식 |
르네상스 건축 | 고전적인 형태 재해석 |
바로크 건축 | 화려하고 장식적인 조각 사용 |
구조 및 디자인 | |
재료 | 돌 벽돌 나무 콘크리트 |
장식 | 조각 부조 모자이크 그림 |
형태 | 삼각형 반원형 기타 다양한 형태 |
기능 | |
구조적 기능 | 하중 분산 |
장식적 기능 | 건물 외관 장식, 시각적 강조 |
상징적 기능 | 종교적, 문화적 의미 전달 |
예시 | |
고대 건축 |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개선문 |
중세 건축 | 샤르트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
르네상스 건축 | 성 베드로 대성당 |
추가 정보 | |
관련 용어 | 박공 페디먼트 아치볼트 |
2. 역사
팀파눔은 페디먼트(pediment)로 둘러싸인 비문으로 정의되지만[4],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초기(기원전 700-48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5] 파르테논과 같은 초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페디먼트는 고전 건축의 특징으로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나갔다.[5] 당시 엔타블레이처(entablature)에 새겨진 조각들은 신들의 조각상이나 지리적 특징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때로는 비어있기도 했다.[6] 이러한 비문에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와 관련된 철학과 민주주의와 관련된 상징성이 담겨 있었다.[6]
로마인들이 이 스타일을 유럽으로 확산시키면서 페디먼트는 권위주의적 상징성을 띠게 되었다.[5] 후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페디먼트의 형태가 크게 변화하여, 삼각형 대신 곡선 형태가 도입되고 구조적 가치를 무시한 채 순전히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7]
로마 제국 멸망 후, 고전 건축물을 보유한 지역들은 이 특징을 빠르게 채택하고 변형시켰다. 프랑스에서는 6~7세기 메로빙거 건축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푸아티에의 생 장 세례당이 대표적이다.[7] 이 시대에는 형태가 더욱 추상화되어 조각 대신 기하학적 조각과 모자이크로 대체되었으며, 9세기 또는 10세기의 생 제네루와 같은 교회 창문 위에 작은 교차하는 곡선 및 삼각형 페디먼트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초기 중세 시대 후반에도 계속되었으며, 점차 장미 창이라고 알려진 고딕 시대의 커다란 둥근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으로 옮겨갔다.[7]
팀파눔은 페디먼트의 모양과 배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고전 페디먼트는 팀파눔보다 장미 창으로 더 가깝게 변형되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포털 위에 페디먼트 형태가 다시 나타났을 때, 다른 방향에서 영감을 추적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 위에는 그분의 무력함을 조롱하기 위해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옛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같이 초기 건물에 영감을 주었으며, 두 건물 모두 2인칭 시점에서 시가 새겨진 그리스도를 새겨 넣었으며, 이는 나중에 팀파눔 비문의 필수적인 특징이 되었다.[8] 초기 성유물함과 순례 교회는 투르의 성 마르틴 성유물과 같은 이 관례를 사용했으며, 558년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회의 수호 성인(성 마르틴)의 조각을 설치했다. 이러한 조각들은 정문 바로 위에 위치했으며, 방문객이 교회에 들어갈 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카롤링거 시대의 스위스 생 갈 수도원과 같은 교회에서 빠르게 복제되어 팀파눔의 형태를 완성했다.[8]
2. 1. 고대와 초기 중세 시대
팀파눔은 페디먼트(pediment)로 둘러싸인 비문으로 정의되지만[4],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초기(기원전 700-48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5] 파르테논과 같은 초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페디먼트는 고전 건축의 특징으로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나갔다.[5] 당시 엔타블레이처(entablature)에 새겨진 조각들은 신들의 조각상이나 지리적 특징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때로는 비어있기도 했다.[6] 이러한 비문에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와 관련된 철학과 민주주의와 관련된 상징성이 담겨 있었다.[6]로마인들이 이 스타일을 유럽으로 확산시키면서 페디먼트는 권위주의적 상징성을 띠게 되었다.[5] 후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페디먼트의 형태가 크게 변화하여, 삼각형 대신 곡선 형태가 도입되고 구조적 가치를 무시한 채 순전히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7]
로마 제국 멸망 후, 고전 건축물을 보유한 지역들은 이 특징을 빠르게 채택하고 변형시켰다. 프랑스에서는 6~7세기 메로빙거 건축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푸아티에의 생 장 세례당이 대표적이다.[7] 이 시대에는 형태가 더욱 추상화되어 조각 대신 기하학적 조각과 모자이크로 대체되었으며, 9세기 또는 10세기의 생 제네루와 같은 교회 창문 위에 작은 교차하는 곡선 및 삼각형 페디먼트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초기 중세 시대 후반에도 계속되었으며, 점차 장미 창이라고 알려진 고딕 시대의 커다란 둥근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으로 옮겨갔다.[7]
팀파눔은 페디먼트의 모양과 배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고전 페디먼트는 팀파눔보다 장미 창으로 더 가깝게 변형되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포털 위에 페디먼트 형태가 다시 나타났을 때, 다른 방향에서 영감을 추적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 위에는 그분의 무력함을 조롱하기 위해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옛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같이 초기 건물에 영감을 주었으며, 두 건물 모두 2인칭 시점에서 시가 새겨진 그리스도를 새겨 넣었으며, 이는 나중에 팀파눔 비문의 필수적인 특징이 되었다.[8] 초기 성유물함과 순례 교회는 투르의 성 마르틴 성유물과 같은 이 관례를 사용했으며, 558년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회의 수호 성인(성 마르틴)의 조각을 설치했다. 이러한 조각들은 정문 바로 위에 위치했으며, 방문객이 교회에 들어갈 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카롤링거 시대의 스위스 생 갈 수도원과 같은 교회에서 빠르게 복제되어 팀파눔의 형태를 완성했다.[8]
2. 2. 로마네스크 시대
초기 로마네스크 시대(1000–1200년)는 교회 건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순례는 교회들이 레이아웃과 상징성을 재고하도록 요구했고, 끊임없이 부상하는 베네딕토회는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변경했다. 건축적으로 로마네스크 시대는 정치적 혼란과 서기 1000년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신께 감사하는 것을 포함한 여러 요인과 관련된 교회 건설의 증가와 함께 고전적인 형태에 대한 감사의 증가를 보였다.[8] 팀파눔은 이 시대에 시작되어 그 이후 기독교 건축에서 복제된 로마네스크 건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2. 2. 1. 프랑스
콩크 생트푸아 수도원의 서쪽 입구 위에 있는 팀파눔은 가장 상징적인 팀파눔 중 하나이다. 1100년대 초에 조각된 이 팀파눔은 로마네스크 양식 팀파눔의 스타일, 목적 및 문화를 상징한다. 이 팀파눔은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는데, 이는 팀파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제였지만, 콩크 팀파눔은 로마 부조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인물과 장면이 훨씬 더 상세하다. 이 작품은 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끔찍함을 주도록 의도되었으며, 오른편에서는 악마가 저주받은 영혼을 고문하고, 죄인들은 기괴한 괴물에게 먹히며, 사람들은 심판을 기다리며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운데에는 그리스도가 있고 왼편에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있는데, 이는 순례자들이 여정을 떠난 이유를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9] 이 팀파눔의 이미지는 주로 보는 이에게 신의 심판의 힘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는 당시의 팀파눔이 순례자들을 교회의 경험에 정신적으로 대비시키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구두쇠 캐릭터가 저주받는 모습을 묘사하여 기부를 장려하고, 샤를마뉴가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 정치에 대한 논평을 하는 등 훨씬 더 미묘한 메시지가 있다.[8]
쿠시 성 팀파눔은 1225년에서 1230년 사이에 조각되었으며 팀파눔이 세속적인 환경에서도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커다란 팀파눔은 가장 큰 탑의 문 위에 위치하여 건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이 특정 팀파눔의 메시지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으며, 쿠시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이 사자와 싸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사자는 로마네스크 시대에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왕이나 십자군의 사건을 언급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세속적인 주제에도 불구하고, 인근 교회에 있는 많은 팀파눔과 매우 유사한 스타일, 형태 및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모양과 명문을 유지하고, 고전적인 영감을 받은 디테일, 움직임, 감정을 가진 커다란 중앙 인물을 보여준다.[10]
2. 2. 2. 스페인

팀파눔은 스페인 건축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레콩키스타를 통해 남서쪽으로 확산된 순례 교회에서 등장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가장 유명한 순례 교회 중 하나였으며, 전형적인 깊은 조각과 감정적인 표현을 담은 팀파눔이 두 개의 입구 위에 모두 있다.[11] 1090년대에 유럽 최초의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 팀파눔 중 하나를 새긴 하카 대성당을 시작으로,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많은 다른 사례들이 나타났다.[8] 레콩키스타 시대의 스페인 건축은 기독교와 아라비아 양식의 결합으로 정의되었으며, 팀파눔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의 조각가 중 다수는 무어인이었고, 아라비아 양식과 형태를 팀파눔에 적용하여 더 밝은 빨간색과 자연을 닮은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냈다. 이 조각가들은 르퓌 대성당과 콩크까지 아라비아의 영향을 퍼뜨리며 유럽 대륙 전역에서 계속 작업했다.[8]
2. 2. 3. 동유럽

팀파눔은 이 시대 기독교 건축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따라서 종교적인 성향이 강했던 비잔틴 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하기아 소피아에는 500년대에 교회가 완공되었을 때 또는 800년대와 1200년대의 개조 공사 중에 조각된 여러 개의 팀파눔이 있다.[12] 이는 이 문서의 첫 번째 섹션에서 설명된 팀파눔의 발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후기 고대 팀파눔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팀파눔의 진화적인 선행 요소였다. 주요 차이점은 초기 비잔틴 팀파눔은 모두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로 되어 있고, 모두 교회 내부에 있으며, 문 위에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달 모양과 그리스도 또는 중요한 성인의 큰 중앙 이미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유사점이 있다. 이러한 초기 팀파눔은 비문과 함께, 이후의 팀파눔과 동일한 목적과 메시지를 가졌을 것이다. 이는 이 관습을 사용하여 매체를 다른 특징과 더 통합하고 메시지를 강조하도록 변경했다.[12]
팀파눔 스타일의 뚜렷한 변화 중 많은 부분이 1000년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일어났지만,[8] 로마네스크 양식은 기독교 세계 전역에서 발견된다. 600년대에 건설된 조지아의 즈바리 수도원 교회는 전쟁과 순례의 중심지에 위치하며 중세 시대 내내 중요했다. 팀파눔은 조각 당시 서양의 관례에 따라 즈바리를 맞추는 동시에 그 이미지를 사용하여 정치적 투쟁을 지원했다. 이는 므렌 대성당을 예로 들면, 코카서스 지역 전체와 그 너머로 빠르게 복제되었다. 아르메니아의 므렌 교회는 전형적인 팀파눔 레이아웃과 일반적인 기독교 인물을 가지고 있지만, 이 인물들은 페르시아 옷을 입고 페르시아 스타일로 조각되어 지역적인 스타일 차이를 보여준다.[13]
2. 3. 고딕 시대
팀파눔은 로마네스크 건축 시대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고딕 건축은 팀파눔을 매우 특징적으로 사용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영향을 받아 고딕 양식에 더 잘 맞도록 변형했다. 고딕 건축과 장식은 화려한 세부 묘사로 유명하며, 팀파눔도 예외는 아니었다. 깊은 조각과 정교한 아키볼트를 통해 더욱 장식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고딕 팀파눔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명문의 소실로, 장식 공간이 더 넓어졌으며,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변화된 생각을 반영했다.[8]2. 3. 1. 프랑스
지슬레베르투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여러 교회에서 작업했으며, 많은 유사한 특징을 적용했다. 오툉 대성당은 훌륭한 예시로, 탑에서 벽, 팀파눔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에서 얇음과 장식을 강조한다. 지슬레베르투스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오툉 팀파눔은 그 아래에 매우 좁은 비문을 가지고 있으며, 이 비문은 여전히 매우 강조되어 있지만, 비문의 완전한 제거를 예고한다.[8]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로마네스크-고딕 건축의 가장 상징적인 예 중 하나이며, 여러 팀파눔을 가지고 있다. 1163년에 만들어진 원래의 부조는 형태와 스타일 면에서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팀파눔으로, 그리스도, 마리아, 몇몇 성인 등 일반적인 인물을 특징으로 한다. 1300년대 후반에 상당한 개조가 이루어져 대성당을 넓히고, 복원하고, 많은 팀파눔을 교체하여 당시 고딕 양식에 맞추려고 했다. 오른쪽 이미지는 고딕 팀파눔에 흔히 나타나는 많은 특징을 보여주며, 형태와 큰 중앙 인물, 그리고 그 주변의 작은 인물들을 유지하고 있다. 아치볼트, 여인상 및 부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훨씬 더 많은 공간이 복잡한 세부 사항에 할애되었다.[14]
2. 3. 2. 스페인
레콩키스타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이베리아 반도가 초기 고딕 시대에 들어서면서 평화로워짐에 따라 남아있는 아랍의 영향으로 많은 독특한 건축 발전이 이루어졌다. 1400년대 초에 지어진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내부와 외부의 평면도에서 거의 모든 면에서 무어 양식 건물과 유사하다. 즉, 대성당은 탁 트인 공간에 균등하게 배치된 기둥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무어 건축의 가장 일반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전히 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았으며, 팀파눔은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매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1400년대 고딕 양식의 또 다른 대성당인 톨레도의 성 헤르만다드(Saint Hermandad) 역시 무어 문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팀파눔에는 종교적 이미지와 세속적 이미지가 모두 조각되어 있는데, 한쪽에는 그리스도의 머리가, 다른 쪽에는 독수리가 묘사되어 있다. 이는 비문이 없더라도 고딕 양식의 팀파눔이 여전히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설정하는 역할을 했으며, 스페인과 같이 종교적으로 다양한 인구에게 기독교의 중요성과 신을 통해 권력을 정당화한 왕족의 중요성을 상기시켰음을 보여준다.[15]2. 3. 3. 이탈리아

고딕 건축에는 일관된 특징이 많지만, 유럽 전역에서 지역적 차이가 두드러졌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팀파눔은 현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 건축에서 이미 흔했던 특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더했다.[8] 스쿠올라 베키아는 1445년에서 1450년경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컬트 회관이다. 특히 유명한 점은 정문 위에 있는 팀파눔으로, 5번이나 옮겨졌음에도 불구하고 "500년 넘게 베네치아 풍경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는 점이다.[16] 이 교회는 근처의 마돈나 델 오르토 교회와 S.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교회와 매우 유사하며, 두 교회 모두 양쪽에 기둥이 있고 위쪽에 또 다른 기둥이나 여인상 조각이 있는 특히 뾰족한 팀파눔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고딕 팀파눔과 가장 연관된 특징은 명문이 유지된다는 점이며, 이 단락에서 언급된 모든 팀파눔에서 이를 볼 수 있다. 곡선 박공에 명문을 새기는 전통은 고대 후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예를 들어 구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볼 수 있다.[8] 이것들은 전형적인 팀파눔에 영감을 주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뾰족한 형태와 명문과 같은 많은 건축 전통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러나 이것이 외부의 영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팀파눔은 다른 예와 동일한 스타일과 목적을 가지며, 크고 깊이 새겨진 그리스도와 중요한 동시대 인물의 중심 인물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갈 때 이 인물들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16]
3. 한국의 팀파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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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3. 2. 기타 교회 건축
4. 갤러리
4. 1. 중세 유럽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서쪽 정면에 있는 팀파눔과 그를 둘러싼 아치볼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는 세 개의 팀파눔이 있다. 독일 슈트랄준트에도 조각된 팀파눔이 있다. 프랑스 탄 시의 생티에보 성당에는 동방 박사의 경배가 새겨진 팀파눔이 있다.이탈리아 비센차 산로렌초 성당의 팀파눔에는 종교적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스페인 비토리아의 산 페드로 아포스톨 성당 팀파눔에는 성 베드로와 마리아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영국 잉글랜드 킬펙의 세인트 메리 앤드 세인트 데이비드 교회에는 생명나무가 새겨진 팀파눔과 아치볼트가 있다. 영국 잉글랜드 롤스톤의 한 건물에는 예수와 네 천사가 새겨진 팀파눔이 있다. 독일 트리어 대성당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장식된 팀파눔이 있다.
4. 2. 유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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