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호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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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쿠호 쇼는 몽골 출신의 프로 스모 선수로, 2021년 은퇴할 때까지 스모계에서 괄목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2007년 요코즈나로 승진하여 2021년까지 요코즈나로 활동하며, 최다 막노우치 우승 45회, 최다 통산 승리 1187승, 최다 막노우치 승리 1093승, 최다 전승 우승 16회, 최다 요코즈나 재위 토너먼트 84회 등 기네스 세계 기록을 포함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19년 3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토너먼트에서 15전 전승으로 우승했으며, 2021년 7월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9월 은퇴 후에는 마가키 오야카타를 습명하여 미야기노베야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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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호 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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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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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뭉흐바틴 다바자르갈 (몽골어: Мөнхбатын Даваажаргал) |
일본 국적 취득 | 2019년 |
출생일 | 1985년 3월 11일 |
출생지 | 몽골 인민 공화국 울란바토르 |
신장 | 192.0cm |
체중 | 155.0kg |
BMI | 42.05 |
소속 헤야 | 미야기노 헤야 |
주특기 | 오른손잡이, 기대기, 샅바 잡고 던지기 |
최종 계급 | 제69대 요코즈나 |
생애 전적 | 1187승 247패 253휴 (122장소) |
마쿠우치 전적 | 1093승 199패 253휴 (103장소) |
우승 | 마쿠우치 최고 우승 45회, 주료 우승 1회 |
수상 | 수훈상 3회, 감투상 1회, 기능상 2회 |
첫 도효 | 2001년 3월 장소 |
입막 | 2004년 5월 장소 |
은퇴 | 2021년 9월 장소 |
은퇴 후 | 토시요리 마가키 → 토시요리 미야기노 |
요코즈나 취미 | 수면, 독서 |
비고 | 킨보시 1개 (아사쇼류 1개) |
신주료 | 2004년 1월 장소 |
공식 웹사이트 | 하쿠호 공식 웹사이트 |
선수 경력 | |
시코나 | 하쿠호 쇼 (白鵬 翔) |
기록 | |
마쿠우치 우승 횟수 | 역대 최다 |
요코즈나 활동 기간 | 역대 최장 기간 |
기타 정보 | |
별칭 | 스모 레슬링의 기록 제조기 |
2. 초기 생애와 스모 배경
하쿠호는 몽골 씨름 전통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지그지딘 뭉흐바트는 1968년 하계 올림픽 자유형 레슬링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여 몽골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8][9] 뭉흐바트는 몽골 씨름에서 "다르한 아바르가"(Darkhan Avarga, "불멸의 챔피언"이라는 뜻)라는 최고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요코즈나에 해당하는 몽골식 칭호이다.[8] 하쿠호의 어머니 울지우타스 타미르는 전 외과 의사이며, 칭기즈 칸의 혈통을 잇는 집안 출신이라고 한다.[218]
하쿠호는 몽골 씨름 선수 가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지그지딘 뭉흐바트는 1968년 하계 올림픽 자유형 레슬링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몽골의 국민적 영웅이다.[8] 그러나 하쿠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몽골 씨름 대신 농구에 집중했다.[8] 어릴 적부터 스모 잡지를 즐겨 읽던 그는 스모 선수처럼 덩치가 커지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꾸준한 노력으로 2004년 1월 주료로 승진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주료에서 12승 3패의 성적을 거두고, 오이카제와의 우승 결정전에서 승리하여 우승했다. 이로써 주료를 단 2번의 장만에 통과하고, 스모 입문 3년 만에 마쿠우치로 승진하였다.
하쿠호는 2004년 11월 아사쇼류를 꺾고 첫 금성을 획득했다.[221] 같은 장에서 요코즈나 승진이 걸려 있던 가이오에게도 승리하며 12승 3패의 좋은 성적으로 첫 수훈상을 수상했다.[221]
2005년 1월, 하쿠호는 신 산야쿠(서 고무스비)로서 가이오, 지요타이카이 등 2명의 오제키를 꺾고 11승 4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첫 기능상을 수상했다.[221] 3월에는 세키와케로 승진, 오제키 승진을 노렸으나 초반 3연패를 겪는 등 8승 7패로 승진에 실패했다.
하쿠호는 2007년 요코즈나로 승진한 이후 2021년 은퇴할 때까지 스모계를 지배하며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어린 시절 하쿠호는 농구에 집중했지만,[8] 스모 잡지를 읽으며 스모 선수에 대한 꿈을 키웠다. 당시 그는 체격이 평균 이하였다. 몽골 시대에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생 시절 여름 방학으로, 매년 한 달을 삼촌의 목장에서 보냈던 것이다. 게르라고 부르는 이동식 주거에서 눈을 뜨고,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말에 올라 양을 돌보고, 해 질 녘에는 늑대의 습격에 눈을 부릅떴다. 배가 고플 때는 프레리독 (정확히는 마멋. 몽골에서는 "타르바간"이라고 불린다)을 사냥해, 뜨겁게 달군 돌로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었다. 축하하는 날에는 양 통구이를 먹고, 말의 젖을 발효시킨 마유주를 마셨다. 하쿠호는 이후 인터뷰에서 "그 경험이 없었다면 요코즈나가 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219][220]
2000년 10월, 15세의 나이로 몽골 출신 선구자 교쿠슈잔의 초청을 받아 일본으로 갔다.[10] 그는 체중이 62kg에 불과했기 때문에 어떤 스모 훈련소(''헤야'')도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를 들은 교쿠슈잔은 미야기노 오야카타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다바자르갈은 일본에 두 달 동안 머무는 마지막 날인 2000년 12월 24일에 미야기노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는 "하쿠호"라는 시코나(''시코나'')를 받았는데, "하쿠"는 "백(白)"을, "호"는 중국 신화 속 새인 ''붕''을 의미한다. 그의 시코나는 전 요코즈나 다이호의 시코나를 본떠 만들었다.[11]
일본에 오기 전 부흐는 10 - 12세 때 장난으로 하던 정도였고, 별다른 경험은 없었으며, 오히려 농구에 열심이었다.[221] 15세가 되자 형 바트호야그가 유도 교사가 되었지만, 다바자르갈은 "유도는 싫다. 꼭 스모를 하고 싶다"며 고사했다. 뭉흐바트는 이전부터 다바자르갈의 의향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어머니 타미르는 평범하게 학문을 닦아 학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다바자르갈의 결의를 들었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동안 입문의 옳고 그름을 두고 부부 싸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타미르는 "분명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자유롭게 자란 다와가, 일본에서의 혹독한 수련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괴로워서 돌아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일찍 귀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입문을 허락했다. 다바자르갈은 몽골의 중등 교육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일본에 왔고, 이후 2년 반 동안 한 번도 귀향하지 않고 일본에서 스모에 매진했다.[222]
하쿠호는 레슬링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3월 오사카에서 열린 대회(''혼바쇼'')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211]
3. 입문
2000년 10월, 15세의 하쿠호는 몽골 출신 스모 선수 교쿠슈잔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왔다.[10] 당시 62kg에 불과했던 그는 체중 미달로 여러 스모 훈련소(''헤야'')에서 입단을 거부당했다. 하지만 교쿠슈잔의 도움으로 미야기노 헤야에 입단하게 되었다. 시코나 "하쿠호"는 "백(白)"을 뜻하는 "하쿠"와 중국 신화 속 새인 붕을 뜻하는 "호"를 합쳐 만든 것으로, 다이호의 시코나를 본뜬 것이다.[11]
2001년 3월 오사카에서 열린 대회(''혼바쇼'')에서 프로 스모 선수로 데뷔했다.[211]
4. 주료와 마쿠우치 시대
5. 오제키 시대
6. 요코즈나 승진
같은 해 7월, 6승 1패로 순항하던 중 8일째 후테노오와의 경기에서 왼쪽 발목 인대 손상 및 내반 염좌 부상을 입어 첫 휴장을 경험했다.[221] 9월에는 평막으로 강등되었으나 9승 6패를 기록,[221] 11월에 고무스비로 복귀하여 도치아즈마, 가이오 두 오제키를 꺾고 9승 6패를 기록했다.
7. 요코즈나 시대 (2007-2021)
2009년 1월 토너먼트에서 아사쇼류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패했다.[28] 3월에는 아사쇼류를 꺾고 무패(15승 0패)로 우승, 세 번째 ''전승 우승''이자 통산 열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29] 7월에는 14승 1패로 11번째 우승을 기록했다.[211]
2010년 아사쇼류의 은퇴로 유일한 요코즈나가 된 하쿠호는 3월 오사카 토너먼트에서 15전 전승으로 통산 13번째 우승을 달성했다.[36] 같은 해 7월, ''하나후다'' 도박 연루 사실이 밝혀졌으나 처벌받지는 않았다.[38]
2011년 1월, 18번째 우승으로 타이호, 아사쇼류에 이어 6연속 토너먼트 우승을 달성한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50] 5월에는 7회 연속 챔피언십 우승으로 아사쇼류와 기록을 동률을 이루었다.[52]
2013년 3월, 15승 무패로 2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62] 2014년 1월에는 28번째 우승,[68] 2015년 1월에는 33번째 우승으로 타이호의 기록을 경신했다.
7. 1. 2007-2009
2007년 9월, 요코즈나 승진 후 첫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28] 2008년 1월에는 아사쇼류를 꺾고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29] 2009년 3월에는 다시 아사쇼류를 꺾고 15승 무패로 우승하며, 세 번째 전승 우승이자 통산 열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29]
7. 2. 2010-2012
2010년 아사쇼류 은퇴 이후 하쿠호는 스모계의 유일한 요코즈나가 되었다. 2010년 3월, 15전 전승으로 우승하며 통산 13번째 우승을 기록했다.[29] 2011년 5월에는 7회 연속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하며 아사쇼류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52]
7. 3. 2013-2015
하쿠호는 2013년 3월 바쇼에서 15승 무패로 2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57] 2014년 1월에는 처음 14경기를 무패로 통과한 후 28번째 우승을 달성했고,[58] 2015년 1월에는 33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호의 기록을 깼다.
7. 4. 2016-2018
2016년 5월, 하쿠호는 37번째 우승을 확정지으며 스모 1부 리그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 2017년 5월에는 59번째로 요코즈나에 올라 치요노후지와 역대 2위 기록을 공유하게 되었다. 2018년 9월에는 41번째 천황배를 획득, 마쿠우치(스모 최고 등급)에서 1000승을 달성했다.
7. 5. 2019-2021
2019년 3월 대회에서 하쿠호는 15승 무패의 완벽한 기록으로 통산 42번째 최고 등급 우승을 차지했다.[29] 2020년 3월에는 13승 2패의 기록으로 통산 44번째 마쿠노우치 우승을 달성했다. 2021년 7월, 복귀한 하쿠호는 대회의 처음 14일 동안 무패를 기록하며 통산 45번째 최고 등급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8. 은퇴
2021년 9월, 하쿠호는 오랜 무릎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결정했다.[85] 같은 해 9월 30일, 일본 스모 협회 이사회는 하쿠호의 은퇴를 공식적으로 확정했다.
9. 은퇴식 및 이후 활동
2022년 7월 28일, 일본 스모 협회는 하쿠호가 미야기노 노인 주식을 상속받아 헤야의 감독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73] 하쿠호는 현역 시절부터 엔호, 이시우라, 호쿠세이호 등 여러 레슬러를 직접 모집했다.[174] 2022년 9월에는 전 아마추어 ''요코즈나'' 키호를,[175] 12월에는 하쿠오호를 영입했다.[176]
텐쇼호가 2023년 7월 토너먼트 이후 ''주료''로 승진하면서, 미야기노는 헤야의 수장이 된 지 1년여 만에 세 명의 ''세키토리''를 배출했다.[177] 2023년 9월, 미야기노는 코칭 경력 동안 두 명의 ''요코즈나''를 직접 훈련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178]
2024년 2월, 제자 호쿠세이호의 폭력 스캔들이 발생했다.[179][180] 스모 협회는 호쿠세이호의 사임을 수락했고,[181] 하쿠호는 2020년 7월에 발생한 호쿠세이호의 폭행 사실을 알고도 협회에 보고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이인''(위원)에서 최하위 계급인 ''토시요리''(원로)로 강등되고, 3개월간 급여 20% 삭감 처분을 받았다.[184][185]
협회는 추가 징계로 하쿠호를 미야기노 스태이블 안주인에서 무기한 해임하고, 2024년 3월 대회 동안 타마가키(전 토모노하나)를 임시 감독으로 임명했다.[186] 그 후, 미야기노 스태이블은 공식적으로 폐쇄되었고, 모든 레슬러와 코치는 이세가하마 스태이블로 이적했다.[187]
스캔들 이후, 하쿠호는 모든 레슬러의 가족들을 방문하여 사과했다.[188] 5월 대회 동안, 이세가하마 스태이블에서의 훈련에 헌신하는 모습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90]
10. 스모 스타일
하쿠호는 다카노하나 요코즈나를 연상시키는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191] 잡기 기술과 밀어내기 기술 모두에 능하며, 상대방의 의도를 읽고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 "전형적인 만능 스모 선수"라고 불렸다.[192] 그는 특별하거나 가장 좋아하는 키마리테는 없으며,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은 '요리키리'(밀어내기) 뿐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8] 이 기술은 스모에서 가장 흔한 키마리테이며, 하쿠호는 이 기술로 시합의 28%를 승리했다.[193] 그는 오른손을 상대방의 안쪽에, 왼손을 바깥쪽에 두는 '미기-요츠' 포지션을 선호했으며, 바깥쪽 왼손 그립으로 유명해졌다.[194] 또한 정기적으로 '우와테-나게', 즉 바깥 팔 던지기를 사용했다.
2009년 4월 외국 기자들과 만났을 때, 하쿠호는 매우 존경하는 35대 요코즈나인 후타바야마의 기술, 특히 타치아이 또는 초기 돌진에 대한 '고노센' 접근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8][195] 그는 와카노하나 1세의 트레이드마크 기술인 '요비모도시', 즉 몸을 잡아당기는 기술을 자신의 시합에서 사용하려 했다.[195]
11. 논란과 비판
하쿠호는 경기 후 불필요한 마지막 밀어내기(''다메오시'')를 한 것으로 비판받았다.[196][197] 2016년 3월 대회 4일째 오키노우미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그리고 8일째 요시카제를 링 옆의 심판인 이즈츠 오야카타에게 충돌시켜 이즈츠의 왼쪽 대퇴골을 골절시키고 3개월 동안 활동을 중단하게 만들면서 이 행동을 반복했다.[198] 하쿠호는 심판 위원장인 이세가하마 오야카타로부터 경고를 받았다.[198]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링 위에서도 제가 고쳐야 할 약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사과했다.[198]
요코즈나 심의회는 2018년 1월 하쿠호가 얼굴을 때리는 기술(''하리테'')과 팔뚝과 팔꿈치로 선제 공격하는 것(''카치아게'')을 사용한 것에 대해, 이는 ''요코즈나''의 위신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113] 그러나 하쿠호는 이러한 전술을 계속 사용했고, 2021년 7월 테루노후지를 상대로 우승을 확정짓는 승리를 거둔 후 다시 심의회의 비난을 받았다.[199]
12. 개인적인 삶
2007년 2월, 하쿠호는 3년간 사귄 일본인 대학생이자 글래머 모델인 와다 사요코와 결혼했다.[200] 결혼식은 메이지 신궁에서 열렸다.[201] 이 부부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202]
2017년 7월, 하쿠호는 은퇴 후 일본 스모 협회에 원로로 남기 위해 필요한 일본 국적 취득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203] 이는 하쿠호가 몽골 국적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했는데, 아버지 지그지딘 뭉흐바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꺼려왔던 일이었다.[204] 뭉흐바트가 2018년 4월 사망한 후, 하쿠호의 어머니는 남편이 이 생각에 반대했다는 것을 부인하며 하쿠호의 국적 변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204] 2019년 4월, 하쿠호가 몽골 국적 포기 신청을 통해 절차를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고,[205] 2019년 9월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법적 이름을 자신의 ''시코나''인 하쿠호 쇼로 변경했다.[206]
13. 기록
2021년 12월 4일, 하쿠호 쇼는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209]
기록 종류 | 기록 횟수 |
---|---|
막노우치 최다 우승 | 45회 |
최다 통산 승리 | 1187승 |
최다 막노우치 승리 | 1093승 |
최다 전승 우승 | 16회 |
최다 요코즈나 재위 토너먼트 | 84회 |
하쿠호는 이 외에도 최다 요코즈나 승리(899승), 연간 6개 토너먼트 시대의 최다 연승(63연승, 절대 기록은 69연승), 연간 최다 승리(86승, 2회 달성)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58] 2022년 10월에는 1분 만에 104개의 테가타 수형을 만드는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웠다.[210]
2014년 1월 장소에서 하쿠호는 첫날 밀어내기로 승리하며 사상 최단 기간인 76장소 만에 통산 800승(마에즈모 제외)을 달성했고,[322] 이튿날에는 걸어 떨어뜨리기로 승리, 막내 통산 707승으로 외국인 역사 최다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323] 5연승으로 5일째 단독 선두에 올랐고,[324] 중일에는 자신의 두 번째 6장소 연속 중일 승리 결정,[325] 10일째에는 10연승으로 통산 50번째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326] 14연승으로 맞이한 천추락 결승전에서 1패의 쓰루류에게 곁다리로 패했으나, 이어진 결정전에서 쓰루류를 꺾고 28번째 막내 최고 우승을 달성했다.[327]
3월 장소에서는 첫날부터 12연승을 기록, 8일째에는 자신과 같은 "7장소 연속 막내 중일 승리"로 사상 1위 타이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13일째 오른손 부상을 입고 3연패를 기록하며 우승을 놓쳤다.
5월 장소에서는 "8장소 연속 막내 중일 승리"를 달성하며 사상 단독 1위 기록을 세웠고,[328] 14승 1패로 29번째 막내 우승을 차지했다.[330]
7월 장소에서는 요코즈나 재위 42장소로 역대 8위 타이기록을 세웠으며, "연속 막내 중일 승리" 9장소를 달성해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13승 2패로 사상 3번째 막내 우승 30회를 달성했다.[332]
9월 장소에서는 요코즈나 재위 43장소로 역대 단독 8위에 올랐고, "연속 막내 중일 승리" 10장소를 달성하며 스모 사상 최초의 두 자릿수 기록을 세웠다. 14승 1패로 치요노후지와 함께 사상 2위인 통산 31번째 막내 우승을 달성했다.[336]
11월 장소에서는 6일째 타카야스에게 패하며 자신의 9번째 금성을 허용, 2년 만에 전반전 1패를 기록했다. 13일째 단독 선두에 올랐고, 14일 하마후지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통산 4번째 연간 80승을 달성했다. 4장소 연속 우승과 함께 다이호와 같은 우승 횟수인 32번째 우승을 달성했다.[338]
14. 역대 성적
(도쿄)
(오사카)
(도쿄)
(나고야)
(도쿄)
(규슈)
동 16
3-4
동 18
5-2
동 97
5-2
서 55
4-3
동 33
5-2
동 98
6-1
동 38
4-3
서 23
3-4
서 44
4-3
서 28
4-3
동 16
5-2
서 54
4-3
서 44
5-2
동 30
4-3
동 23
6-1
동 9
6-1
동 12
9-6
서 8
12-3
우승
동 16
12-3
敢闘賞|간토쇼일본어
동 8
11-4
동 3
8-7
서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技能賞|기노쇼일본어, 金星|긴보시일본어
서 1
11-4
殊勲賞|슈쿤쇼일본어, 技能賞|기노쇼일본어
서 1
8-7
동 1
9-6
동 1
6-3-6
서 1
9-6
서 1
9-6
서 1
13-2
殊勲賞|슈쿤쇼일본어, 大関|오제키일본어
동 1
13-2
殊勲賞|슈쿤쇼일본어, 大関|오제키일본어, 技能賞|기노쇼일본어
동 3
14-1
우승
동 1
13-2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8-7
서 2
부상으로 불참
0-0-15
서 3
10-5
서 1
13-2
우승
동 1
15-0
우승
서 1
11-4
우승
서 1
13-2
우승
동 1
12-3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1-4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5-0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3-2
우승
동 1
14-1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5-0
우승
동 1
14-1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4-1
우승
동 1
14-1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5-0
우승
동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5-0
우승
동 1
15-0
우승
동 1
15-0
우승
동 1
15-0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대회 취소
0-0-0
동 1
13-2
우승
동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3-2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3-2
우승
동 1
10-5
동 1
14-1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3-2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4-1
우승
동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5-0
우승
동 1
15-0
우승
동 1
13-2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3-2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4-1
우승
동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4-1
우승
동 1
13-2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5-0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11-4
殊勲賞|슈쿤쇼일본어
동 1
14-1
우승
동 1
0-3-12
서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14-1
우승
동 1
15-0
우승
동 1
10-5
서 1
부상으로 불참
0-0-15
동 2
11-4
동 2
11-4
동 1
2-3-10
서 2
15-0
우승
동 1
14-1
우승
동 1
부상으로 불참
0-0-15
서 1
14-1
우승
동 1
2-3-10
서 1
부상으로 불참
0-0-15
서 1
11-4
서 1
3-1-11
서 1
15-0
우승
동 1
부상으로 불참
0-0-15
동 1
10-4-1
동 1
15-0
우승
동 1
부상으로 불참
0-0-15
서 1
12-3
殊勲賞|슈쿤쇼일본어
서 1
0-2-13
서 1
14-1
우승
동 1
1-3-11
동 1
13-2
우승
동 1
대회 취소
0-0-0
동 1
10-3-2
동 1
부상으로 불참
0-0-15
동 1
부상으로 불참
0-0-15
동 1
코로나19 규정으로 불참
0-0-15
동 1
2-1-12
동 1
부상으로 불참
0-0-15
동 1
15-0
우승
동 1
코로나19 규정으로 불참
0-0-15
동 1
은퇴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