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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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통감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의 내정을 간섭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다. 1906년 2월 23일 한성부에 설치되어 통감부 의장을 수장으로 시작했으며, 7일 후 통감부 통감으로 수장 체제가 변경되었다. 일본 천황이 임명한 통감은 대한제국의 정세와 왕실을 감독했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조선총독부로 전환되었다. 통감부는 기유각서 체결을 통해 순종의 실권을 박탈하는 등 대한제국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대 통감으로는 이토 히로부미, 소네 아라스케,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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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한국 - 정미의병
정미의병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난 항일 무장 투쟁으로, 해산 군인들의 합류로 전력이 강화되었고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유격전을 전개,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서울 진공 작전을 시도했으나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 한국통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한국통감 - 소네 아라스케
소네 아라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대한제국 통감으로서 한국 병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한국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는다.
한국통감 | |
---|---|
직위 정보 | |
직위명 | 통감 |
관할 | 한국 |
원어 명칭 | ja: 韓国統監 (간코쿠토오칸) ko: 일본의 대 한국통감 (Ilbon-ui dae hangugtong-gam) |
형태 | 거주 총감 |
지위 | 폐지됨 |
약칭 | 해당 없음 |
소속 | 해당 없음 |
보고 대상 | 일본 천황 |
관저 | 해당 없음 |
소재지 | 해당 없음 |
임명권자 | 일본 천황 |
임명 자격 | 해당 없음 |
임기 | 해당 없음 |
임기 상세 | 해당 없음 |
설립 근거 | 해당 없음 |
형성 | 1905년 12월 21일 |
최초 | 이토 히로부미 |
최후 | 데라우치 마사타케 |
폐지 | 1910년 10월 1일 |
계승 | 조선 총독 |
비공식 명칭 | 해당 없음 |
부관 | 부통감 |
급여 | 해당 없음 |
웹사이트 | 해당 없음 |
비고 | 해당 없음 |
역사적 배경 | |
전개 과정 | 대한제국의 국권피탈 과정 참고 |
주요 인물 | |
최장 재임 | 이토 히로부미 (1905년 12월 21일 – 1909년 6월 14일) |
2. 배경과 체제
1906년 2월 23일 대한제국 한성부에 '''통감부'''가 설치되어 통감부 의장(統監府 議長)이 통감부의 수장을 맡았다. 1906년 3월 2일 통감부 수장 체제가 통감부 의장(統監府 議長)에서 통감부 통감(統監府 統監)으로 변경되었고, 1910년 8월 29일까지 통감부 체제가 유지되었다.
2. 1. 통감부 설치 배경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 후, 일본은 대한제국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1906년 2월 23일 한성부에 '''통감부'''를 설치하였다.[1] 1906년 3월 2일 통감부의 수장을 통감부 의장에서 통감으로 변경하였고, 1910년 8월 29일까지 통감부 체제를 유지하였다.[1]2. 2. 통감부 체제 변화
1906년 2월 23일 대한제국 한성부에 '''통감부'''가 설치되어 통감부 의장(統監府 議長)이 통감부의 수장을 맡았다. 1906년 3월 2일 통감부 수장 체제가 통감부 의장(統監府 議長)에서 통감부 통감(統監府 統監)으로 변경되었고, 1910년 8월 29일까지 통감부 체제가 유지되었다.3. 통감의 임명과 권한
통감은 일본 천황이 직접 임명하였으며, 천황의 명령에 따라 대한제국의 정무와 동태를 총괄적으로 감독하고 감시하는 동시에 조선 왕실 감독도 겸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1] 통감은 천황에 버금가는 원수급 예우를 받았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총독으로 전환되어 더 강화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1]
3. 1. 통감의 임명
일본 천황이 통감을 직접 임명하여 천황의 명령을 따르면서 대한제국의 정서와 동태를 총괄적으로 감독하고 감시하였으며, 조선 왕실에 대한 감독도 겸하였다.[1] 통감은 직급상 천황에 버금가는 원수급 예우를 받았다.[1]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동급의 총독으로 전환되어 권한이 강화되었다.[1]3. 2. 통감의 권한
일본 천황이 직접 임명하여 천황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대한제국의 정세와 동태를 총괄적으로 감독하고 감시하였으며, 조선 왕실에 대한 감독도 겸하였다.[1] 통감은 직급상 천황에 버금가는 원수급 예우를 받았다.[1]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동급의 총독으로 전환되어 권한이 강화되었다.[1]4. 통감부의 주요 만행
1909년 7월 12일 제2대 조선 통감 소네 아라스케는 대한제국과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순종 황제의 실권을 박탈하였다. 이후 1910년 5월 30일부터 8월 29일 경술년 한일 양국 합방 병합 늑약 사건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제3대 조선 주재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조선 주재 부통감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순종 황제 대신 차례로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통감부가 대한제국에 저지른 주요 만행으로 볼 수 있다.
4. 1. 기유각서와 순종 실권 탈취
1909년 7월 12일, 제2대 조선 통감 소네 아라스케는 대한제국과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순종 황제의 실권을 박탈하였다.[1] 이후 1910년 5월 30일부터 8월 29일 경술년 한일 양국 합방 병합 늑약 사건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제3대 조선 주재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조선 주재 부통감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순종 황제 대신 차례로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1]5. 역대 통감 및 부통감
통감 | 초상 | 이름 | 취임일 | 퇴임일 |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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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 ![]() | 이토 히로부미 | 1905년 12월 21일 | 1909년 6월 14일 | 메이지 천황 |
2대 | ![]() | 소네 아라스케 | 1909년 6월 14일 | 1910년 5월 30일 | |
3대 | ![]() | 데라우치 마사타케 | 1910년 5월 30일 | 1910년 10월 1일 |